인류는 쇠퇴했습니다 3 - J Novel
다나카 로미오 지음, 야마사키 토오루 그림, 곽형준 옮김 / 서울문화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3권은 과학과 비과학의 대립이었다. 과학적인 것이 인간에게 축복을 내렸는가? 아니면 파멸을 내렸는가? 여기서 주인공이 사는 쿠스노기 마을에 human monument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미 쇠퇴한 인류가 과거 자신들의 조상들이 이룩한 업적을 하나의 상징적인 가치관을 부여하기 시작한 사업이다. 문제는 그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그것조차 복원할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 없다는 게 문제였다. 주인공의 할아버지인 박사나 그리고 마을에 몰려온 소년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소년단체는 주인공과 함께 다니는 조수와 비슷한 나이또래가 아니라 주인공 할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들이었다. 그런데도 소년이라니? 탐색과 모험이 될지 모르는 미지의 발굴 유물을 찾는 것조차도 지식의 산물을 가지지 않으면 불가능이란 뜻이다. 지금의 인류는 쇠퇴했기에 지식의 전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사의 마지막 졸업자인 주인공과 그 앞에 있는 노인들에서 그 노인들은 그나마 학사가 건재하지 못해도 어느 정도 유지되던 시기에 다니던 사람이니 이번 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간인 것이다.

 

가장 모험적인 사람들이 젊은 층이 아닌 구시대 쪽에 가까운 인물이라니? 인류는 쇠퇴했습니다에서 기술적 진보 내지 문명적 진보는 젊은 층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에 가까운 존재에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 책에서 주인공이 탐사할 때 절대로 가서 안 될 도시문명 유적지는 지금 이 책을 읽는 독자인 나에게 오히려 21세기 인류의 과학기술문명보다 몇 세기나 지나야 갖출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공간이 형성된 시기로부터 몇 세기가 지난 시점의 지구라면 대략 서기 3000년 수준?

 

그런데 그 시기에 인류는 번영과 혜택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멸종과 쇠퇴의 위기란 메르헨 속에 펼쳐진 암울한 SF와 가깝다. 아니라면 혹성탈출 영화에서 주인공이 탈출할 때 그 혹성에서 벗어나면서 뉴욕에 위치한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한 것과 비슷할 노릇이다. 그 증거는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3권처럼 주인공과 조수가 그 도시문명국가가 있던 곳에 가는 순간 잘 드러난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human monument 사업이 된 까닭은 바로 전기의 사용과 전기로 통한 전자파의 발생이다. 요정들은 전자파가 오면 무서워하고 도망치기 바쁘다. 전기에 의한 전자파의 발생은 바로 과학기술의 원동력이다. 아니 지금 현대사회의 인간들에게 전기란 것은 문명의 모든 것이다. 전기가 없다면 우리는 식사, 직장, 이동, 거주 등 모든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인 활동이 불가능하다. 문화의 존재적인 근원이 바로 에너지가 된 이상 숲속 밀림에 사는 원시부족이 아닌 이상 전기는 우리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이에 반해 인간이 아닌 요정에게 전기란 공포다. 신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은 요정들이 이 세계에서는 현존하는 존재다. 바로 시대적 구분으로 보면 인간의 과학 이전에 신화가 인간을 지배하던 고대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통한 문명사회로 진입하다가 이제 인류가 쇠퇴하면서 신화 속의 요정이 실존적 존재가 되었다. 이것은 인간이 과거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존재가 다르게 복원한 셈이다. 인간은 원래 신화 속에 갇힌 존재에서 그 신화적 환상을 벗어나게 한 것은 계몽과 과학이다. 물론 교조주의적인 계몽은 또 다른 신화라는 억압으로 환생하고, 과학은 과학이란 맹신 아래 또 다시 인간에게 새로운 억압의 주체가 되었다.

 

쉬운 예로서 과학의 단점인 폐해는 인륜이나 윤리의 부재라는 점이다. 인간이 도구로 되었다는 점,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유물 그 자체로 되었다는 것이 무섭다. 인간이 도구로 되면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단지 수단과 목적을 위한 소모품이 된다. 그것이 바로 주인공과 조수가 발견한 도시국가이다. 이 국가의 존립은 EPM 즉 전자파이나, 그 전자파는 단순히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는 전자파가 아니라 거대한 외부의 타격에서 발생되던 전자파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시설물이었다.

 

따라서 모든 요정이 사라지고, 주인공이 요정에게 받은 부적 안에 잠든 요정은 전자파로부터 격리된 도시국가에서 생존이 가능했다. 하지만 과거 인간들이 그렇게 격리하고, 그 안에서 절명했다는 사실은 인간의 쇠퇴원인은 문명의 발달에서 언제나 등장하던 전쟁에 의해서다. 도시국가의 설립자체는 책 본문에서 언급하다시피 핵전쟁이 포함된 사실이다. 핵전쟁에서 핵폭탄은 주로 지면에서 폭발하기보단 공중에서 폭발한다. 그것이 효과적으로 인명에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핵폭탄에 의해 먼저 거대한 열에너지로서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산화시키고, 두 번째로 거대한 폭발에너지와 열에너지로 통해 대기 중의 공기에 큰 변화를 주어 거대한 폭풍을 일으킨다. 마지막으로 방사능에 의해 낙진이 형성되는데, 핵폭발 후에 알파, 베타, 감마선과 같은 방사선이 방출되어, 특히 감마선의 경우 인간 DNA 구조변이로 통해 돌연변이 내지 사망을 일으킨다. 그러니깐 도시국가가 전자파와 무관한 이유는 방사능오염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인도어과 사람들로 이어졌으나, 문제는 인도어 사람들은 멸종했다. 왜 멸종했는가? 많은 이론이 있겠으나, 작품을 읽다보면 물이나 식량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며(물론 수 세기 지난 지금 인간이 섭취할 유기물은 존재하지 않으나), 공기도 어느 정도 신선도를 유지했다는 점과 안의 설비들이 매우 첨단장비란 점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소멸은 외적환경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이다. 히키코모리 은둔형 폐인들처럼 자신들끼리 있다고 소멸한 것일지 모른다. 인간은 외부와 소통(언어적이든 물리적이든 육체적이든)을 하지 않으면 말이다.

 

혹은 주인공과 조수의 생명을 위협하는 물컹물컹한 것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쇠로 된 도구를 녹일 정도의 슬라임이라면 일반적 생명이 생존가능한가? 어떻게 되었든 자신들만 살아볼 것이고 발버둥을 치던 인간들은 모조리 사라진 것만이 결과적인 상황이었다. 적어도 인간들의 소멸에는 분명히 그 위험한 슬라임과 관계있을 것이다. 이번 편에 등장한 피온과 오야지란 2개의 기계인간은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인 것처럼 행동한다. 아니 인간이 아니나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진다.

 

과거 인류의 지나친 개발력으로 명령어에 의해 수행하던 기계들에게 유기정보생명체로서 진화하게 한다. 덕분에 피온과 오야지는 기계인데도 사람형상으로 있으며, 사람처럼 말한다. 단지 자신들이 무엇인지 왜 있었는지 각인하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과거에 만들어낸 인공위성 PIONEER, VOYAZER 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창조주인 인간 이외에 새로운 생명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결국 찾지도 못하고, 인간들도 쇠퇴하여 모두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단지 최근 human monument 사업의 일환으로 전자파가 잡히면서 자신들에게 그 정보가 들어온 것이다. 본래 기계란 마음이 없는데, 특이하게도 이들에게 마음이 생겼다.

 

human monument 사업 기획에서 본래 있었던 문명의 기능성을 재발동하는 것이다. 결론은 PIONEER, VOYAZER 두 위성이 다시 우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에는 더 이상 생명체를 찾을 수도 없고, 거기에 가면 아무 것도 없이 혼자 쓸쓸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반항적인 VOYAZER는 그 어둡고 춥고 외로운 곳이 싫었다. 쓰레기더미 같은 죽은 도시에 사는 것이 오히려 행복이었다. 거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주인공은 VOYAZER와 조수와 짜고 전자파를 생성하는 기계장치를 무력화시켰다.

 

덕분에 애니메이션 1화부터 다 큰 처녀가 긴 머리가 아닌 삭발과 가까울 정도의 짧은 머리가 된 이유가 여기부터이다. 그러나 그 행동에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신인류인 요정이 다시 찾아온다는 점이다. 요정은 과거 인류가 만든 폐허가 되어버린 문명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발전된 문명에는 요정이 살 수 없다. 주인공인 조정관으로 임무는 요정과의 관계이고, 한편으로 인간적인 측면에서 외로운 곳에 인간들의 욕심으로 희생되던 그들을 그렇게 방관할 수 없었다.

 

그 무엇인가에 대한 발전은 그 무엇에 대한 희생이고, 그 희생에 대한 구원은 또 다른 자에 대한 희생이다. 결국 주인공은 월급 감봉에 시말서 별도의 근무시간과 여자의 소중한 머리카락까지 희생시킨 것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여자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빼앗는 것만큼 큰 단죄는 못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전환은 요정이 다시 왔다는 점이다. 요정은 과학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류다. 문명도시에서 길을 잃으며 조수와 걷던 주인공은 목마름과 배고픔으로 생존의 위기를 겪는다.

 

주인공과 조수는 생리적인 문제로 고통 받고, 심리적인 압박감에 시달리는 그 묘사란 인간에게 물과 음식은 필수적인 도구다. 그러나 요정들은 필요 없는 존재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절대적인 삶의 유지가 아니라 절대적인 삶의 재미다. 재미있으면 1명에서 수없이 늘어나는 요정의 불가사의에서 어떻게 과학적 설명이 가능한가? 과학이란 합리성은 과학적 입장에서 유지될 뿐이지 비과학적인 합리성에서 과학은 과학적이지 못한 모순이란 점이다. 문명에서 쇠퇴한 인간들이 이제는 요정들의 가호까지 잃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란 의문에서 요정들이 처음 피신 갈 때 주인공에게 준 도서를 참고하면 충분히 납득한다.

 

요정이 많으면 많은 만큼 요정과 마주치는 사람은 곤란한 일을 겪는 일이 많지만, 그만큼 행운이나 삶의 희망이 커진다는 것이다. 대신 요정이 적어지면 초자연적인 곤란한 일들은 그대로 피해가지 못하며, 초자연적이지 못한 물리적인 위협조차 구원될 수 없다. 어떻게 보자면 구인류인 인간의 쇠퇴, 신인류인 요정의 등장 이 관계에서 무엇을 논의할 수 있을까? 결국 인간이 과학에 의해 문명이 이룩했으면서도 오히려 그것이 인간을 역으로 망친 것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건담에서 샤아 아즈나블이란 전쟁영웅은 거대한 유성을 지구에 떨어뜨려 지구를 살리려 했다. 본래 환경학적으로 지구는 자정정화작용이 있으나, 인간의 문명활동에 의해 자연이 파괴되어 그 자신을 정화시킬 능력마저 상실했다.

 

차라리 자연이 신으로 추앙받던 샤머니즘, 토템이즘, 애니미즘 사상에서 인간의 종속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끔 환경정보에서 자외선, 방사선, 토양오염 등으로 많은 문제가 지구상의 이슈로 드러날 때 우리의 과학기술은 과연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물론 의학기술이나 보건위생학의 발전은 과학의 선물이라고 볼 수 있어도 그런 만큼 피해는 다시 돌아온다. 요정이 늘어난다고 해서 인간에게 특별한 위해나 문제는 없다. 단지 요정의 도래는 신화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는 인간의 현실이다. 주인공이 다니던 학사는 폐쇄하고 지식의 요람은 사라졌다. 지식에서 과학기술은 전수는 필수적이나 그 전수공간과 심지어 그 전수할 교사나 교수도 없다.

 

인간에게 과학적 지식이 없다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주변 환경에 의지하여 그 속에서 삶의 개척지를 찾아야 한다. 덕분에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에서의 산업구조는 원래 인간이 처음 시작하던 1차 산업으로 변모했다. 농사나 가축사육 혹은 그 이전의 삶의 방식인 수렵이나 채집이다. human monument 사업에 제일 중요한 전기에너지도 없어서 결국 유적지에서 이동차량을 내버려두고 왔다. 전기가 있을 때는 마치 전차처럼 이동차량들이 며칠이나 걸려 도착할 곳은 단 몇 시간에 도달했다.

 

앞으로도 그 도구들은 이 작품에서 영원히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에너지를 잉여적으로 비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잉여의 비축에서 계속 새로운 욕망이 인간에게 더 많은 잉여의 비축을 요구하고, 에너지원이 고갈된 이 작품세계에서 사실 전기가 새로 도입되더라도 그것은 유지할 에너지원이 없다. 어차피 전기 역시 다른 에너지의 소모로 통한 전기에너지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환경공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보자면 이 작품의 세계관은 상당히 미래인간들에게 납득이 간다.

 

문명의 유지는 자연에 대한 노동의 투입이고, 그 자연에서 나올 수 있는 재화는 한정적이니, 지금보다 더 크고 발달된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착취이니, 더 이상 착취적 조건 없는 자연이라면 인간은 자신의 문명으로 착취해야 한다. 결국 미국의 저명한 과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만든 도서인 <문명의 붕괴>처럼 인간문명의 붕괴는 자연에 대한 착취에 대한 반증은 분명하다. 그래서 요정들의 문화가 왜 붕괴하지 않은가에서 그들은 물도 음식도 필요 없이 생존이 가능하다. 요정은 자연을 파괴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살아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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