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앵무새 죽이기, 말 그대로 앵무새를 죽인다는 것이 앵무새 같은 존재를 죽이는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혹은 생물학적으로 죽일 수 있는 것이다. 1960년대 나온 소설인 앵무새 죽이기는 21세기가 되어도 유효한 소설이다. 어린 아이 루이스의 눈으로 통해 보는 미국의 이야기다. 비록 그곳이 미국 앨라배마 주에 위치한 메이콤이란 작은 마을이라도 아마 모두가 공감하고도 남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내전으로 큰 고통을 수반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이란 동족상잔을 겪은 만큼 그들은 민족이라기보다는 자유주의를 추구하던 자들이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을 했다. 미국은 본래 종교박해 문제로 이민한 자들이 세운 국가였다. 종교는 이민 당시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문화적인 권력을 수반했기에 그들의 종교자유는 곧 정치적 자유를 논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의지를 발산한 것이다.

 

문제는 종교에서 토크빌이 언급하다시피 모든 사람은 신 앞에서는 평등하다라는 명제가 모두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주인공 루이스는 어린 시절에 스카웃이라는 별명으로 그 작은 마을에 살았는데, 그 당시 일어난 일들을 회고하면서 어린 소녀 눈에 비추어진 어른들의 세계란 어떤 것인지 우리가 알아야 필요가 있었다.

 

미국 내전을 이야기한다면 당연히 링컨 대통령이 집권하던 미국 남북전쟁이다. 남북전쟁의 원인은 백인들이 우월주의로 뭉쳐있던 남부지역과 흑인도 인권을 가져야 한다는 북부지역의 사람들끼리의 의견충돌로 인해 일어난 비극이다. 모든 역사에서 현재의 진보가 있기에는 수많은 피와 눈물로 희생삼아야 했다. 예전에 다른 강연에서 미국 영화 Gang of New York에선 남북전쟁이 일어날 때 국가에 300달러를 지불하면 징병되지 않았지만,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전쟁에 징병되었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만 전장에 참가하여 주검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런 희생을 가지고 북부군이 승리해도 여전히 남부지역의 흑인차별은 여전했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 1930년대 미국은 민주당 소속의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공화당과 달리 흑인에 대해 조금 우대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 것처럼 스카웃이 살던 메이콤에서 루즈벨트 대통령과 그의 아내를 조롱하는 동네주민 말투가 들린다.

 

아직 스카웃이 살던 마을은 흑인에 대한 인권의식이 상당히 부실했다. 그 부실함은 1930년대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던 시기에 히틀러가 파시즘으로 세계평화를 위협할 때, 스카웃의 학교선생은 분명 히틀러는 옳지 못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선생이 강간범으로 고소된 톰 로빈슨의 재판에서 피고인에 대해서 상당히 냉혹한 반응을 보였다. 스카웃의 아버지인 애티커스는 톰의 변호를 맡으면서 현명한 판사 테일러와 함께 충분히 톰의 무죄를 알려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배심원은 톰의 유죄를 선고했다.

 

그의 이때까지 살아온 행동이나 그의 진실함을 외면하고서 말이다. 그 이유는 단지 톰 로빈슨이 흑인이란 사실이다. 흑인은 비겁하고, 남을 속이기 좋아하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라고 하는 백인우월주의에서 톰의 유죄는 아무리 어느 개인이 옳고 정직한 사람이어도 출신이나 피부만으로 모든 것을 결부지어 버리는 사회적 편견이었다. 물론 이런 문제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문제가 있다. 단지 어느 지역이라고, 단지 어느 학교라고 무시 받고 천대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서 그런 대접은 어느 정도 감수하는 것은 최소한의 불평등으로서 인정할 수 있으나, 태어난 그 자체로 차별받는 점은 매우 부당한 일이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바로 그 앵무새 1마리가 톰 로빈슨이었다. 그런 톰을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욕과 행패를 억지로 참아야 하던 애티커스의 행동은 존중을 넘어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애티커스의 행동은 순수한 자신의 양심보단 자신이 세상에 남긴 소중한 존재 루이스와 루이스의 오빠 젬 덕분이었다. 자녀 2명에게 애티커스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흔히 우리는 부모님이나 선생들과 같은 어른들이 자녀나 학생 같은 아랫사람들에게 착하게 살자 내지 올바르게 살자고 말하나, 막상 어른들의 행동을 보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라는 의심을 해본다. 애티커스는 자신이 흑인 역시 인간이고, 그들도 인권을 가져야 한다는 법조인의 정신과 그리고 두 자녀의 아버지로서 양심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올바르게 살았으나, 마을사람들에게 공격당해야만 했다.

 

작품 초반에 젬과 루이스가 놀 수 있는 공간이 넓지 않은 이유는 자신의 입장으로 자녀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서가 아닐까 싶다. 그런 아버지이기에 두 자녀도 매우 좋은 양심을 가졌다. 나는 톰의 재판에서 루이스와 젬의 친구인 딜의 눈물을 잊을 수 없다. 딜은 재판과정에서 피고인이 흑인이란 이유로 천대받는 것을 보고 분하고 슬퍼서 눈물이 나온 것을 보면서 과연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더 이성적인가? 차라리 어린아이의 순수한 감정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싶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피부색을 떠나 그 인간 존재로서 대하는 딜의 자세는 우리가 모두 배워야 하는 자세가 아닌가? 톰은 죄가 없으나 흑인이란 이유로 배심원에게 유죄선고를 받을 때 그것이 억울하다고 소리칠 수 있는 루이스와 젬에게서 뭔가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앵무새 죽이기는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게 적었다. 말 그대로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어른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작품 내에 이야기하는 세상은 너무나도 깊고 곤혹스럽다.

 

평소에 술주정뱅이에 아이들도 돌보지 않은 이웰의 행동에서 마을사람들은 이웰이 충분히 자녀들을 학대한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그래도 이웰이 백인이란 이유로 그를 승리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웰이란 인물은 비열한만큼 치사했다. 테일러 판사에게 앙심을 품고 집주변을 돌아다니고, 애티커스에게 침을 뱉으며, 심지어 애티커스의 자녀를 폭행하려고 했다. 아니 살해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젬의 왼팔은 오른팔에 비해 제 기능을 펼칠 수 없었다.

 

관용이 없는 인간에게 관용을 펼쳐 결국 무고한 희생자는 내게 되는 점에서 오늘날의 현실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젬의 팔을 꺾을 때, 마치 도와준 부 래들리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부 래들리란 사람이 결코 나쁜 인물이 아니라 보았다. 젬과 루이스가 집으로 갈 때 래들리 집을 지나가는데, 그 집 앞의 나무 홈에 껌, 고장 난 시계, 동전 등과 같은 선물이 있었다.

 

처음에 부 래들리가 아주 무서운 인물로 알고, 그의 집앞을 지나가고, 집 앞에 가는 것도 담력시험으로 생각했으나, 알고 보면 부 래들리, 아셔는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예전에 친구를 잘못 사귄 덕분에 마을사회로부터 격리되었다. 그가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으나 마을주민의 눈치로 못했고, 그러던 와중에 그의 존재는 마을 아이들에게 만나서 안될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젬과 루이스, 딜의 장난기와 호기심이 발동하여 아셔의 집을 기웃거리면서 아셔 역시 젬과 루이스에게 관심을 주게 되었다.

 

결국 앵무새 죽이기는 톰과 같은 흑인만 아니라 인생에서 한 번 흠집내어 격리된 삶을 살아야 했던 아셔까지 궁지로 몰았다. 마지막에 비춘 그의 모습은 매우 마르고 부끄러워하며, 게다가 겁도 많은 아저씨였다. 하지만 팔을 다친 채 잠이 들어있던 젬을 보자 루이스는 자신의 손을 아셔에게 가져가 젬의 머리를 만지게 해주었다. 순수한 선의와 우정은 결국 모든 오해와 벽을 넘을 수 있었다. 그것을 넘지 못한 것이 톰의 죽음이고, 그것을 넘을 것은 결국 아셔와의 우정이었다.

 

그러나 앵무새 죽이기에선 그런 과정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셔가 그 동안 받아온 주민들로부터의 지탄과 소문, 그것으로 인해 마을아이들이 생각하던 아셔의 인상은 아셔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애티커스는 아셔가 밖으로 나오지 않은 이유는 나오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앵무새라는 것은 인간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않지만, 인간과 같이 말을 할 수 있는 동물이다.

 

말을 한다는 점에서 대화가 가능하나, 그 대화를 할 수 있어도 앵무새라 만드는 그 자체, 즉 인간이면서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차별의식이 들어있고, 앵무새를 죽인다는 것은 출생이 그래서나 혹은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대다수로부터 배타적인 대우를 받게 됨으로 그의 인간적 존중이 상실되는 것과 같다. 단지 흑인이란 이유로 억울하게 구속되어 사형 당할지도 모르는 톰이 자신을 강간범으로 몰아넣은 이웰과 그 이웰의 딸과 법정에서 만나면서 이웰의 딸을 보고 불쌍하다고 했다. 인간이 앵무새를 돌보는 것이어야 하나, 오히려 앵무새 쪽에서 인간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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