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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바보들 - 틀린데 옳다고 믿는 보수주의자의 심리학
크리스 무니 지음, 이지연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나라는 사람은 이 책에 비유하자면 환경주의자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단순히 환경주의자라서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라는 전공을 선택했기에 환경주의자가 된 것이다. 따라서 상당히 관념적으로 환경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연적인 유물론적 영역에서 환경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순히 지구환경이 오염되는 것이 일반화된 정보보단 전공지식과 과학적 기술정보에 의해 논리성을 부여하는 것이니 그만큼 다를 수밖에 없다.
막상 <똑똑한 바보들>이란 도서를 보면서 생각난 도서는 예전에 보았던 <지상의 위험한 천국>이란 서적인데, 그 부제에는 American Fascists라는 명제가 붙어 있었다. 즉 미국의 전체주의자라는 의미이다. 똑똑한 바보들과 지상의 위험한 천국에는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더라도 근본적인 연결고리는 맞물러 있었다. 내가 바로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나는 환경공학을 전공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과학이란 정확한 사실을 그리고 그 과학을 중심으로 하는 논리와 이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진술에서 과학의 부정은 결국 비합리성인 사고관념으로 가득하다는 것만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책에서 그런 비합리적 사고로 무장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과 심리, 그 속에 무엇이 차이인지 보여준 내용이 있었다. 과거 한국에 이런 일이 있었다. 구미시에 폭우로 인해 흙탕물이 수돗물에서 나온 적이 있었다. 수돗물에서 흙탕물이 발생될 가능성은 몇 가지 있으나, 그 중에 예를 들자면
(1) 원수의 지나친 흙탕물이란 조건 - 그러나 정수시설을 가게 되면 모두 스크린과 침사지, 응집조에 의해 제거된다. (2) 정수시설의 문제 - 정수시설의 문제라면 그 정수시설에 나온 물을 공급받는 가구들은 모두 흙탕물이 나와야 하나 나오지 않았고, 어느 지역에 한정되었다. (3) 물의 송수과정에서 파이프나 관로 등이 손상을 받아 흙탕물이 유입될 경우 - 이 경우가 가장 확률이 높은 것으로 기본적으로 송수관로 주변에 하중이나 지형변화 등이 일어날 경우 관의 손상을 받아 주변 흙탕물이 상수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4) 각 가구마다 관로가 손상 받을 경우 - 동시다발적으로 흙탕물이 유입되었다면 수만 가구의 수도관이 고장 난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면 (3)번의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그런데 당시 이 문제를 두고 어느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이 적국의 간첩이 한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 사건이 일어날 무렵에 엄청난 폭우와 폭우에 따른 토사유출이 발생했다. 기본적으로 토사유출이 발생하면 지반이 무너지거나 인근지역의 지면으로 내려오는 경우도 있으며, 토사누적으로 인해 지반붕괴 및 균열이 발생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부분 아스팔트로 이루어진 도로 밑에 상수관로 흐르는 것이 대부분이며, 그 매장된 깊이가 매우 깊지 않다. 가끔 도로변에서 상수관로가 터져 아스팔트 위로 올라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나 그 발언을 하는 사람과 그 발언을 믿는 사람, 게다가 그 발언을 하는 사람을 그 위치에 올려놓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과학적 사고는 무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물론 이런 과학적인 논증으로 통해 어이없는 일들은 하나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에게 별로 큰 충격이 아니었다. <똑똑한 바보들>에서 보인 그 어이없는 사고들은 거의 충격적이었다. 내가 왜 <지상의 위험한 천국>을 언급했냐면, 기본적으로 환경을 배우면 생물학 내지 생태학을 배우게 된다. 게다가 기상의 기본적 정보, 대기과학, 수질과학, 토양지하수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익히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충격을 받은 사실은 공룡이 등장한 것은 수천만 년 전의 일인데, 그 원원을 아담과 이브가 동산에서 사과를 먹었다는 이유로 공룡이 멸종한 것이다. 공룡화석을 방사선 원소 측정을 해보면 분명 수천만 년 전의 뼈들이다. 그런데도 부정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어떻게 받아 들이야 하는가? 한국의 보수와 진보에서는 그나마 환경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는 편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이미 초월하여 이미 정확한 사실을 부정함으로서 스스로의 pata-physics한 공상소설을 만들고 있다.
지구과학에서 온난화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매년 탄산가스와 메탄가스의 증가로 지구의 기온이 높아지고,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려 해면수위 13m를 상승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극악의 상황은 아니나, 적어도 일부 국가의 토지가 해수면에 의해 잠식당하는 경우도 있고, 해일이나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도 증가추세다. 기본적으로 태풍의 경우 적도부근에서 대기운동과 더불어 수증기의 압축에너지로 인해 거대한 폭풍이 발생한다. 이 원인은 지구의 과잉적인 온도증가다.
문제는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부정한다는 사실이다. 지구온난화에서 예전에 미국이 탄소배출의 저감을 합의하는 교토의정서에 미국이 탈퇴했다는 사실이다. 탄소배출에서 대부분 문명국가에서 에너지원인 화석에너지의 소모 그 자체가 탄산의 배출과 지나친 낙농업의 확장은 소의 메탄가스 발생을 확대시킨 점이다. 당연히 대기업의 입장에서 이윤추구에 방해되는 세계조약에 반대할 입장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있어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눈을 가리고 귀를 닫고, 억지로 거짓 논리를 펼치는 점이다.
그들의 비논리적 태도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국 현재 대통령인 오바마가 미국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이슬람 쪽이라고 믿는 사람이 엄청 많다는 사실과 911테러에서 이라크가 알카에다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있다고 부풀린 사실이다. 심지어 부시도 직접적 발언을 하지 않았는데도, 보수주의자 미디어인 폭스에선 그런 것들은 계속 내보낸 점이다. 당시 테러사건 이후 미국에선 많은 사회적 혼란이 있었고, 그 혼란에 대한 불안 심리에서 타자에 대한 폭력적 행위도 있었다. 쌍둥이 빌딩 2블럭 옆에 이슬람 사원이 건축된다는 사실이 그 쌍둥이 빌딩에 세워지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은 자유주의자라고 불리는 미국인들에 의해 엄청난 폭력과 협박에 시달렸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가 가장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적이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국가의 헌법에서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와 각각의 자율성을 추구한다. 문제는 종교가 너무 깊이 국가와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린 점이다. 진화론을 없애고, 창조론을 믿게 하는 점부터 괴상하고, 인체 DNA구조에서 성체로서 대체할 수 있다는 미신은 비합리적이다. 도저히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들은 마구 생산하고 있다. 게다가 이것에 대한 반박마저 새로운 가설과 논증으로 만들고 있으나, 그런 유사한 문제는 미국 공화당 부시의 주변 정치조력자마저 내치는 상황으로 연결된다.
과학적 사고는 무슨 일을 하든 필연적인 부분이나, 그 사고자체가 위협이 되는 것에서 우린 어떤 반응을 취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 이 책에선 뇌과학으로 통해 분석하고자 했다. 일단 우리 뇌에는 끊임없이 진화를 했기에 용량이 크다는 점이 있지만, 사람마다의 능력과 직업, 취미에 따라 뇌스캔을 해보면 어느 부분이 활성화 되어있는 모습을 알 수 있다. 결론은 뇌로 통해 저런 정보의 오류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란 가설이다.
단적으로 이 책에선 모두 보수주의자를 비과학적이라 하지 않는다. 오히려 1960년대 진보주의자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와 같이 보수주의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 내린다. 단지 그 기준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과학적 사고를 하는가이다. 공화당의 1960년대에서 경제학적으로 매우 합리적이나, 당시 그 합리성을 제기한 경제학자가 2010년대의 미국 공화당을 보면 환장할 지경이란 것이 문제다. 왜 그런가에서 뇌의 실험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어떤 주제와 텍스트를 볼 때 관심을 가지며 보는 시간이 있다. 어느 글을 보면서 전체적으로 보면서 판단하는가? 아니면 제목과 문장 첫줄만 보고 결정하는가? 개방적인 사고를 하는 진보주의적 사람들은 보수주의자보다 같은 글에 대해 더 오래보며, 상반된 내용이라도 다 같이 보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오직 자기입맛에 맞는 정보만 보고, 상세한 내용은 제대로 안보고 결정하는 셈이다. 주변에 보면 우리가 신문을 보는 경우 제목과 본문의 내용이 안 맞는 경우가 있다.
‘어느 사람이 어떤 사람을 죽이려고 생각했다’에서 제목에서 보인 정보는 사람을 살해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는 반면, 본문을 보면 그 내용과 전혀 다른 의도로 가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정보를 다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제목의 선전에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한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정보의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적인 프로파간다의 계략에서 똑똑한 바보가 된다. 머리에 그대로 복사기를 상황에 따라 같은 것들을 복사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런 부류가 대다수로 될 경우 하나의 정의 내지 교조주의로 흐르게 된다.
사람이 과학적이고 합리적 사고를 위해 뇌가 있으나, 한편으로 가장 비합리적으로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느 책을 인용하면 “파스칼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광기에 걸려 있다. 따라서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미쳤다는 것의 또 다른 형태일 것이다”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미친 사람은 미쳤다고 하지 않고, 미치지 않은 사람 역시 미치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두 부류 다 어느 곳에는 미친 영역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자신들이 미치지 않았다고 또한 옳다고 증명하기 위해 미친 행위를 어김없이 보이는 것이 주변에서 보이고 들리는 현실이다.
미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미친 짓을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의 행동일 것이다. 물론 합리적이고 이성적 보수주의자들은 대화와 소통으로 풀어간다. 진보주의자들이 개방과 유연성을 중시해도, 그들 역시 극단적 영역이 없지 않아 있기에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보고 듣고 판단하느냐이다. 대통령이 기독교 문화와 갈등중인 이슬람 문화권이라는 발상조차 어이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관계없는 국가면 몰라도 한국인인 나도 아는 사실은 자국민 미국인마저 농락당하고 있고, 그것을 확실하게 여긴다는 것은 결국 이것은 <똑똑한 바보들>의 복제품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현실의 비극을 절실히 보여준다. 이 책이나 나 역시 진보와 보수는 어느 행위나 사고행위에 장단점을 지니고 있기에 합리적인 접점을 찾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시작하려면 먼저 이성적, 과학적, 객관적 사고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