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의 진보적 자유주의 - 이근식 자유주의 총서 03
이근식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존 스튜어트 밀의 대한 가치는 저자의 마지막 장에서 잘 나와 있었다. "밀의 영원한 위대함은 불공정한 분배와 민주주의의 결함과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였다는 것에 있기보다는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올바른 시각과 태도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차가운 머리와 함께 더운 가슴으로 노동자, 여성, 아동, 식민지 백성과 동물과 같은 약자를 위하여 평생 애를 썼다. 풍부한 지식만이 아니라 올바른 윤리의식도 갖추어질 때에 비로소 이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밀은 이의 전형이라 할 만이다“

 

예전에 한 번 밀의 자유론을 읽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내 정치적 입장과 사고에 대해서 많은 영향을 주었다. 밀의 자유론은 그저 자유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 통한 인간과 인간, 사회 그리고 모든 가치와 철학까지 담론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왜 이런 밀과 같은 철학자의 이야기를 귀 담을 필요가 있을까? 밀은 이성의 성자라고 불릴 정도로 넓은 포용력과 철학적 사유를 소지했다.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조차 밀은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고, 항상 신사적으로 대했다.

 

그는 언제나 인간의 인격과 자유, 권리에 대해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성이면서 여성의 인권을 중시한 그는 아내인 앨리엇 밀과 함께 한 시간을 통해 만든 <여성의 종속>은 현재까지 페미니스트 인문학에서 큰 중요성을 미친다. 특히 영미계열 인문학자 중에서 매릴린 옐롬과 같은 미국 페미니스트 인문학자에게도 밀의 철학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밀은 왜 이렇게 주장하려고 했을까?

 

밀이 살던 시절은 산업혁명과 동시에 왕정봉건국가 시대에서 자본주의국가체계로 전환되고 있었다. 물론 왕권은 존재하나, 왕권 아래 의회가 존재했으며, 절대주의적인 왕권이 아니라 다소 의회제로 통해 결정하던 국가체계였다. 당시 영국의 정치수준은 그 만큼 높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추방된 카를 마르크스가 노동자를 앞에서 연설하는 것이나 혹은 마르크스가 계속 저술해도 밀은 마르크스의 행위를 존중하고 인정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표현의 자유와 의사에 대한 권리이며, 직접적인 행동으로 인한 물리적 충격이 없다면 충분히 그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는 점과 자유에 대해서는 집회의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다르게 생각해보면 밀 역시 마르크스처럼 노동자, 여성, 어린이에 대한 인권을 매우 중시했다. 당시 17세면 벌써 노동자의 길을 걷고 있었고, 심지어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어린 아이들이 공장에서 가혹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제대로 된 음식은 섭취하지 못했으며, 먼지와 소음이 가득한 불쾌한 환경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마르크스가 그런 노동에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뛰어다닌 점으로 보아 밀 역시 마르크스의 업적을 인정했으나, 그런다고 마르크스처럼 혁명이라는 극단적 행위를 배제했다. 밀은 이들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지만, 그런다고 하여 극단적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밀의 특징은 어느 한 곳에 모두 발을 담구는 것보다는 중간에 서서 절충주의로 가려고 했다. 이를테면 진보와 보수에서 어느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가지고 간 것이다. 그래서 밀의 자유주의는 진보적 자유주의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서로를 배제하고 의사를 나누지 않으며, 문제의 해결보단 비난으로 이어져 가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추구하는 토론의 과정이 아니었다.

 

밀은 오로지 서로간의 대화로 통해 토론문화를 형성하여 인간의 이성적 행위로서 결정하려고 했다. 그렇기에 그의 노력은 무척이나 고되고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영국인들이 당시 유럽사회에 비해 정치적 수준이 높더라도, 여성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았다. 밀은 정치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나, 그가 살던 마을에서 하원의원에 출마하라고 권유하는 바람에 출마했지만, 밀은 자신이 하원의원이 되어도 절대로 그 마을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오로지 대의를 바라보며 의원을 한 것이다.

 

문제는 너무 자신의 의지에 충실했기에 재선의원은 되지 않았다. 그가 한 일은 바로 사회적 약자를 구제하고, 모순과 왜곡을 제도적으로 혹은 교육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특히 여성인권에 대해서 논할 때 그는 잦은 비난과 지탄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 사회라면 당연한 것이 그때는 당연하지 못한 것이다. 과거의 진보는 현재로서는 보수의 가치와 동등한 것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을까? 그래서 밀이 보수와 진보 모두 가져가는 것이야 말로 정치적 자유주의가 아닌가 싶다.

 

밀은 그런 점에서 인간에게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인과 공존하는 삶을 추구하길 바랐다. 그는 분명 자유주의자이다. 자유주의자인 만큼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하고, 부르주아 계급이 운영하던 산업체나 지대의 이윤을 인정했다. 마르크스와 달리 부르주아 경제체계는 그는 인정했다. 하지만 그런 만큼 그는 프롤레타리아의 존재도 인정했다. 최근 영국의 수상인 토니 블레어를 비롯해 우파진영조차도 임금지급을 한국처럼 최저임금제가 아니라 생계운영임금제로 통해 근로자의 생계를 보호하려 했다.

지금 고물가 인플레이션에 의해 생계가 어려워지는 한국 서민들에게 저런 제도야 말로 국민경제 발전과 내수산업을 지키는 보전방법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 것처럼 노동자는 자신이 생산한 생산품에 소원해지더라도 다른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품을 구매한다. 예를 들어 신발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식품공장에서 나온 제품을 구매할 것이고, 식품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신발공장의 제품을 구매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밀이 따르고 있는 고전경제학 아담 스미스의 논리에 충실한 것처럼 말이다.

 

본래 밀은 아담 스미스의 고전경제학, 데이비드 리카도의 경제학,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 아버지 제임스 밀의 철학과 인문학까지 다 섭렵했기에 다양한 사유와 현실에 대한 안목을 높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은 손이라는 것은 저런 국민들이 살아가는 자유로운 흐름에 맡기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스미스의 고전경제학 시대와 달리 마르크스와 밀이 살던 시대는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했기에 스미스의 고전경제학으로 설명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에 괴로워하던 대부분의 국민들에서 스미스의 이론은 해결방법이 되지 못한 것이다. 밀도 역시 그 문제들을 인지했고, 그것이 국민들을 좀먹고 있음을 알았다. 게다가 가난한 국민들은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지 못해 국가재정이 부족해지는 점과 가난한 국민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기에 가난을 대물림을 하는 것까지 생각했다. 특히 교육의 문제는 당시 사회적 도덕과 관계있었다. 교육의 기회가 적을수록 범죄가 높았고, 교육으로 통해 좋은 사회구현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으로 그들을 교육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다고 하여 밀은 벤담처럼 단순히 양적 공리주의(功利主義)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황경식 교수님의 의견대로 공리주의(公利主義)를 추구했다고 한다. 양적인 부분이 아닌 질적인 부분이었다.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인간이 좋았고, 배부른 인간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가 좋았다고 한다. 인간은 본능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이성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의 자유론에서 자유란 자신만의 자유가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위한 선처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행복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타인에게 이익이 되어 그것이 정신적인 성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어떻게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는 인간 스스로가 그 사회구성원들에게 도움이 되어 인정받는 때라고 하니, 타인을 위한 선의 추구야 말로 진정한 기쁨인 것이다. 점점 삭막해지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은 사회구조는 오히려 인간 스스로의 기쁨을 빼앗는 것이 되었다. 그 의미는 밀은 이성을 중시했고, 그만큼의 윤리를 중시했다.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처럼 정언명령의 의지를 밀은 가졌던 것이다.

 

밀의 철학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도 그렇고, 영미철학에서 큰 획을 이은 존 롤즈의 <정의론> 역시 밀의 사상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특히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보았다. 롤즈 역시 정치적 자유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상호간의 불평등을 인정하나, 그런다고 하여 그 불평등으로 어느 개인에게 인생의 패배와 절망으로 몰아넣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가 있기 위해서는 개인의 인권이 필요했고, 그 개인이 최소한으로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존재해야 한다고 보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실직자, 미취업자, 장애인, 고아, 이방인, 노인 등등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계층들을 생각하면 절실하게 배울 점이 아닐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좌절하여 인간적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음이고, 이들의 외적인 형태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하여금 미적 불쾌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불쾌는 단지 보기가 싫어서인지 혹은 보는 이에게 마음의 아픔을 주는지에 따라 틀리겠지만, 적어도 좋은 예를 아니다는 점이다. 노인은 모르더라도 적어도 고아와 실직자, 미취업자의 경우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밀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에게 항상 범죄의 길과 연결되었다고 보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범죄를 저지르는 많은 사람들이 불우한 어린 시절과 절망적인 현실에서 비롯된다. 그들의 죄를 물어보는 것과 동시에 왜 그런가라는 의미도 봐야한다. 단순히 1회의 범죄를 1회의 처벌로 끝날지언정 그 1회가 멈추지 않고 계속 굴러간다는 점이 이 사회의 병폐인 점을 본다면 말이다. 자유라는 것은 자신만의 자유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존재한다.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자유를 논하는 것은 오히려 자유를 죽이는 행위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밀의 진보적 자유주의는 한번 생각하게 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고도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