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드립니다 - 더 이상 꿈꾸지 않는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 에세이
문재인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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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던가? 그 사람에 대한 인격과 수준 그리고 사유를 알려면 그 사람과 대화하기 전에 그 사람의 서재를 찾아가 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상과 생각이 그 서재에 의해 존립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사람의 서재와 혹은 그 사람이 읽고 있는 책으로 통해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책들을 보고, 그와 대화를 시작하면 무엇을 생각하고 하고 싶은지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대통령 선거후보로 나온 문재인 의원의 책 역시 문재인의 가치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에서 그가 의자에 앉아 보고 있던 서적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牧民心書)였다. 정약용이라고 하면 한국 철학사와 과학사 심지어 온갖 학문 영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위대한 정치인이기도 하며, 사상가였으며, 그 누구보다 백성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절망과 한탄을 안고 살아간 지식인이다. 그의 기록 중에서 나 역시 잊지 못할 사연들이 구구절절 떠오른다. 그가 강진에서 억울한 유배생활을 할 때 어느 농민의 비극을 본다. 한 농민이 군포세를 내지 못해 집안에 있던 소 한 마리를 강제로 관청에 빼앗긴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몫이 아닌 돌아가신 아버지의 군포로서 말이다. 농민은 기가 막혀 너무 분해 자신의 성기를 스스로 베었고, 그 농민의 아내는 고통스럽게 울면서 방에 쓰러져 있던 남편을 보면서 그 울분과 서러움에 한이 맺힌 채 남편의 성기를 들고 관아에 찾아갔다. 관아에 찾아간 아낙네는 잘라진 남편의 성기에 의해 손이 흥건히 피로 물들였으나, 그 누구도 아낙네의 원망과 슬픔을 받아주지 않았다. 관청의 담은 높지 않았으나 그 어떤 벽보다 높고 다가설 수 없었다. 결국 아낙네는 힘없이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는 실화다.

 

정약용은 그 사건을 보면서 애절양(哀絶陽)이란 시를 지어 그들을 생각했다. 지금의 한 고전국문학에서는 이 시조는 매우 가치가 높은 작품이나, 당시 백성들이 겪던 그 고통은 지금 읽어도 내 가슴을 후빈다. 그렇게 힘없는 약자를 생각하고 살아가려한 다산 정약용을 문재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의 1표2서에서 대표적인 서적 목민심서는 당시 관리만 아니라 지금의 관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이다.

 

물론 문재인은 칸트의 추구한 이성을 중시한 것 같았다. 칸트는 나이 80세 동안 자신이 태어난 고향 쾨니히베르크에서 한발작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칸트는 자유를 위해서는 인간에게 이성이 중시되어야 했고, 그 이성으로 하여금 타인에게 선을 추구하는 실천이성을 중시했다. 문재인이 중시하는 이성이란 상식이 통하고, 서로간의 합의와 대화를 추구하는 세상일 것이다. 그런 그가 전해주고픈 이야기라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청춘에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 자신과 함께 살아가야할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누구나 낙오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의 서민들은 모두 두려워하며, 그것을 피하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간다. 그러나 잘 풀리지 않거나 오히려 길의 끝에 몰려 절망의 눈물을 흘린다. 문재인은 그런 삶이라도 좋고, 뒤틀린 길에서 넘어져도 좋다고 했다.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고, 그 길에서 새로운 자신을 찾아가면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가끔 절망과 낙담한 심정을 보내고 있다. 꿈이란 무엇인지? 뭐든지 한 가지 목표로서 그 기준에 미달되면 인간적인 가치에서 탈락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 모두 개인에게 소중하고도 존귀한 생명이고 이성적 주체이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뭔가 군중 속에 고독을 겪는 아쉬움에서 우리의 모습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른다.

 

자본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돈은 중요하다. 하지만 돈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마음을 터놓을 친구도 필요하고, 서로간의 약속과 신뢰로 살아가야 할 사랑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두가 현실의 벽에 막힌다면 얼마나 청춘들에게 큰 좌절일까? 많은 청춘들은 그런 모순과 왜곡된 현실에서 처음에 분노와 반항을 느끼나 어느 순간 그 모순과 왜곡을 생산하는 주체자로 전도된다. 반복되는 아픔과 슬픔, 그리고 좌절, 이 모든 것은 영원히 이어갈 수밖에 없는 숙제인가?

 

오늘날의 청춘은 먼 미래의 청춘의 어른이다. 거울 앞에 선 청춘이 언젠가 그 후를 이어갈 청춘에게도 큰 벽이 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문재인의 글이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권위 있어 보이려는 애쓰는 사람보다,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는 사람이 훨씬 권위 있어 보입니다.” 라고 말이다. 청춘들에게 길이 막힌 이유는 그 권위라는 벽에서 시작됨을 알고 있던 것이다. 자신도 그런 벽에 의해 살아왔고, 그것도 깨닫지 못한 채 자녀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았던 것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은 스스로의 과거로부터 시작하여 기쁨, 슬픔, 좌절, 눈물, 절망, 희망, 실수 등을 솔직한 심정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반성으로 통해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남을 배려하고, 그 배려로 타인과 소통하고, 그것으로 통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자신에게만 혹은 우리들에게만 사랑을 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웃이 아닌 자들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은 자신과 자신의 주변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곳에 어느 이는 굶고 어느 이는 추위에 떨며 어느 이는 절망으로 지낼 수 있다. 그들을 관용적인 자세로 대하고, 불평등한 것 자체를 인정함으로 좀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노력하고 서로 미소 짓는 삶, 어떻게 보면 쉬울 것 같으나 생각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첫걸음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길을 걸어야 할 운명이다. 가다보면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면 된다. 하지만 그 일어서는 자에게 우리 사회의 온정은 너무나도 각박하다. 그래도 문재인은 괜찮다고 한다. 자신이 아무리 쓰러져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그것을 하나의 교훈으로 삼으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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