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 이원기 옮김, 김동택 해제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폭력의 시대>의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중요한 키워드를 잘 찾아내었다. <홉스봄이 다루는 정치적 주제들은 “21세기의 전쟁과 평화”, “세계 제국들의 과거와 미래”, “민족주의의 성격과 변화”, “자유민주주의 앞날”, “정치적 폭력과 테러이다. 에릭 홉스봄이 이 서적을 내 놓을 시기는 20세기가 물러나고 새로운 21세기의 도래이다. 그 도래의 결정은 후쿠야마가 선언한 자유주의 승리다. 1990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갈림길에서 자유주의가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돌아보면 단지 그것은 시장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의 대립에서 전자가 이긴 셈이다. 스탈린이 집권한 일국사회주의 파시스트 정권에게 처음부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만든 공산당 선언과는 완전히 상반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어째든 그런 역사적, 정치적 흐름을 어떻게 되었든 현실의 모습에서 분명 (시장)자유주의가 승리한 것은 분명하고, 더 이상의 냉전으로 인한 불안감을 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재앙의 도래였다. 세계적으로나 혹은 국내 상황적으로나 인간들은 모두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힘겨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1세기에 냉전의 종식은 전쟁이란 큰 위기감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다른 전쟁에 부딪히고, 그것이 또 다른 경제와 사회적 불안으로 연결된다. 전쟁이 일어나면 기본적으로 난민과 이민이 발생하고, 경제적으로 약한 나라의 국민들은 경제적으로 윤택한 국가로 넘어온다. 그러면서 국가는 단일민족의 모임체계가 아니라 여러 민족들이 같이 존재해야 하는 다민족 체계로 들어선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출신자가 국회의원이 되듯이 외국인이라도 다른 나라에서 한 사람의 정치적 행위와 참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선진국에서 정치적 참여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프랑스에선 어느 높은 관료가 한국인이란 사실만으로 이미 전 세계의 국가는 그 나라의 민족만으로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타 민족과의 교류가 늘어나는 만큼 충돌도 늘어난다. 에티엔 발리바르의 <정치체의 대한 권리>에서 프랑스 우익정부의 외국인 불법체류자에 대한 행위는 윤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제로 비행기에 태워 추방하는 당시, 비행기 탑승객 중에 곧 출산을 앞둔 임산부가 있다는 점이었다. 상대방이 누구든 생명이 위급한 사람에 대해 비인격적 대우는 국법을 둘째 치고 과연 제네바에서 의결한 국제법도 따르고 있을까라는 점이다. 하지만 대부분 전쟁이나 테러행위에서 보듯이 현대사회의 전쟁과 테러는 더 이상의 위대함이나 숭고함 따위는 없다. 단지 죽이기 위해 다시 태어난 전쟁도구이고, 그 전쟁도구는 원래 인간이었던 자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점에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으며, 오로지 이상주의적 관념에 따라 움직인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숭고한 완장을 차고 있으나, 그들의 행위란 불법적으로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포로를 잔인하게 고문하는 것이다. 본래 포로를 잡아도 즉결처분 내지 비인격적 고문을 가하면 안 된다. 그들의 행위는 오로지 포로에게는 상대진영의 정보를, 그리고 민간인의 학살에는 심리적인 압박을 가한다. 어차피 상대국가에 침공하여 어느 민가에 들어갈 경우 그 민간인들이 결국 자신이 싸워야 할 대상과 같은 민족이기에 무차별적 폭력이 가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전반만 하더라도 군인들은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했다.

 

20세기 초반까지 살해의 대상은 왕, 정치관료, 고급장교 등과 같은 정치, 외교, 군사적으로 높은 책임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대상은 점차 민간인이 되었고, 전쟁은 목적과 관계없이 수단에 의존하는 테러 그 자체로 변한 것이다. 그 테러에서 폭력은 오히려 자신들만의 이상을 추구하는 성전으로 변모했다. 안 그렇다면 자살폭탄테러를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슬람 과격무장단체들은 자살폭탄테러로서 많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문제는 그 대상이 점차 군대나 정치조직이 아닌 민간인이란 사실이 분명하고, 거리와 버스 안에서 폭탄테러로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하는 점이다.

 

이런 문제들은 다 근본이 있기 마련이다. 왜 테러를 하느냐이다. 정말 테러를 일으키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에서 우리는 국제적으로 보이는 힘의 대결이다. 이 힘의 대결은 자신들만의 도덕적 관념에 빠진 것에서 문제시 된다. 가령 자신의 인종적이나 민족적 우위로서 다른 민족들을 침공하던 독일이나 일본은 결국 파시스트로서 낙인찍힌 채 2차 세계대전에 패망했다. 하지만 문화적 도덕적인 이유로 싸우는 것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어떤 날조와 위조로 통한 정보조작으로 모든 원인제공을 상대편에게 넘겨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폭력의 정신은 그 폭력을 하나의 미()로서 만들어 버린다. 이 책에서 언급하기를 무제한적 폭력을 부르는 더 위험한 요인이 있다. 1914년 이후 국가 간 내부 세력 간의 분쟁 둘 다를 지배한 이념적 확신이다. 그것은 자신을 선(),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명분은 너무나 정당하고 상대의 명분은 너무도 형편없기 때문에, 패배를 면하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 어떤 것도 동원해야 하고, 동원되는 모든 수단은 정당하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그런 확신을 가지면 정부군이나 반군 모두 어떤 야만적 행동도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비단 그것은 내전을 다루는 부분에서 반군과 정부군의 폭력행위만을 꼬집는 말투가 아니다. 20세기부터 시작된 전쟁의 공포부터 시작하여 내부 치안단속이라는 정치적 압박도 마찬가지다. 물론 20세기 전쟁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18700만 명에 이른다는 점만 해도 충격이나, 전쟁의 특수성에서만 이런 극단적 위기만 오지 않는다. 정치적인 이권과 평화라는 슬로건을 위해 사회적 약자나 국민, 심지어 외국인까지 살인과 폭력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민주주의 역사에서 많은 민주화 투사가 죽었고, 또한 북한과의 대치에서 북한군의 테러행위에서도 많은 희생을 거두었다.

 

또한 625 동란은 결국 내전이란 비극으로 우리 민족 역시 비이성적인 광기가 합리적인 도구가 되어 많은 민간인 살상이 일어났다. 그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은 살인을 저지르는 자들이 정신병적인 기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비이성적인 대처로 인해 그렇게 된다는 점이다. 마치 니체가 집단에 있으면 광기에 말려간다고 하듯이 말이다. 이런 폭력이 계속 진행되면 폭력을 받은 이들이 다시 다른 형태로 폭력을 시도하고, 원초에 폭력을 행한 그들이 그 폭력을 받게 되면, 분노의 폭력으로 응징을 가한다.

 

이때가지 제노사이드 혹은 홀로코스트라고 지명해도 아깝지 않은 죽음의 향연은 바로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와 자신들의 도덕적 관념을 고집이다. 분명 20세기 2차 세계대전은 최소한 인종과 민족의 우월성으로 생긴 전쟁이기에 시민의식으로 구성된 군인들이 많았으나, 1960년대 베트남전쟁부터 1980년대의 중동지역의 전쟁, 21세기의 이라크 전쟁은 더 이상 전쟁이 시민의식으로서 대처할 행위가 아님을 증명했다. 국민들이 점차 국가적 전쟁행위에 동조하지 않은 만큼 또한 전쟁의 잔인성은 커지고 있다. 전쟁이 예전처럼 국가 정치나 외교적 최후 무력수단으로 행하기보다는 다른 이유로서 시도되는 것이 늘어가는 이유다.

 

20세기가 전쟁의 시기라고 해도 무방하나, 지금은 그 전쟁의 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오히려 테러가 계속 일어나는 시기다. 제국주의 강제통치를 받은 제3국도 내전으로 서로 피를 흘리며, 그 내전에서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폭력단체에 대해 어느 강대국 일부는 원조까지 하는 실정이다. 그런 것들은 1983년 레바논전쟁이나 스페인의 프랑코의 독재 그러하다. 그 이유는 무력으로서 자유를 주겠다고 하는 유토피아조차도 될 수 없는 자기들만의 평화의식에 오늘도 내일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정당화할 수 있는 게 과연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하지만 폭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은 자신의 폭력을 정의와 선으로 가득한 하나의 진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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