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스쿨 DxD 1 - Novel Engine
이시부미 이치에이 지음, 곽형준 옮김, 미야마 제로 그림 / 데이즈엔터(주)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그 사람의 머리카락 색이랑 똑같아. 선혈로 물든 손을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붉은 스트로베리 블론드보다 더욱 선명하게 붉은 머리카락, 그래, 그 사람의 아름답고 붉은 머리카락은, 내 손을 물들인 피와 똑같은 색이다.>

 

이 대사는 하이스쿨 DXD에서 처음 나오는 대사다. 즉 효도 잇세이가 죽어가는 찰나에 자신의 죽음에 한탄하며, 마지막으로 마음 속 깊이 숨겨둔 본심을 회고하는 것이다. 하이스쿨 DXD 라이트노벨 1권을 읽기 전에 나는 이 대사를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보았다. 라이트노벨 특성상 약간의 일러스트를 제외하면 문자텍스트란 점에서 그 실감도는 덜하겠으나, 애니메이션에 본 주인공의 독백은 상당히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의미는 죽음을 앞두고 가장 자기 자신이 원한 욕망을 넘어 하나의 절망을 승화시킨 비장미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특히 위의 대사처럼 주인공 효도 잇세이가 동경하는 그레모리 리아스에 대한 표현은 매우 아름답고 시와 같았다. 다른 것은 모르지만, 애니메이션에서 잇세이의 눈에 비추어진 리아스와 라이트노벨에서 묘사한 리아스의 모습은 다가가고 싶으나, 막상 앞에 도달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소년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았다.

 

먼저 작품을 분석하기 전에 이 작가의 프로필이 조금 흥미가 있어서 적어보겠다. 작가 이시부미 이치에이는 제17회 장편 환타지아 장편소설 대상에 특별상을 수상했다는 점이다. 환타지아라는 것은 결국 환타지 즉 환상에 대한 작품인 것이다. 환상에 대한 장편소설에서 이미 환상이란 것은 모든 서사의 기본이다. 서사의 여러 가지 갈래 중에서 신화(神話) 즉 신의 이야기가 모든 인간의 욕망과 억압을 다룬 것이다.

 

환상을 말한다는 것은 인간 무의식적 내면에 자리 잡은 욕망을 말해주고, 그 욕망이 억압과 해방을 연결해주는 끈으로 묶여있다. 환상이란 실제 우리 인간이 볼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인간 내면이나 혹은 관념으로 볼 수 있는 미지의 세계이다. 결코 현실에서 보여 질 수 없음에 우리는 거기가 있지 않음을 알기에 오히려 그 현실적인 인식을 자리 잡을 수 있음을 확인한다. 따라서 하이스쿨 DXD에서 보이는 작품 내부의 이야기는 분명 인간사회와 인간 이상의 세계의 갈림길에서 현실과 환상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야기다.

 

현실적 존재로서 효도 잇세이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변태망상 소년으로 보통 청소년과 비슷하다. 캐릭터의 개성부여를 위해 그는 필요 이상으로 여자아이를 밝히며, 특히 가슴에 큰 집착을 가진다. 주변 친구인 마츠다와 모토하마의 경우 변태적인 욕망이 끊이지 않아 여학생들이 환복 할 경우 몰래 숨어볼 정도로 심각한 변태다. 거기에 안경소년 모토하마는 약골에 키도 작아 어떤 여학생에게 불러나가 돈을 빼앗길 정도이니 효도 잇세이의 악우들에서 그는 학교에서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다.

 

그가 실제 어떤 인간인지 몰라도 그의 행실에서 좋은 인식이란 없다. 그런데, 그가 유마라는 미소녀를 만나고, 데이트를 하고, 기대한 첫키스를 원했지만 이와 다르게 그에게 온 것은 날개달린 유마와 그녀의 손에 잡힌 이상한 창이었다. 그 창은 잇세이의 배를 뚫고, 잇세이는 죽음의 수레바퀴 위에서 부당한 이 처사를 한탄했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악우와 바보아들이라고 매일매일 핀잔만 주던 부모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은 그레모리 리아스였다.

 

인간이 죽기 전에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스쳐가고, 마지막으로 떠오르던 사람에게 매우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잇세이는 그레모리 리아스를 떠올렸고, 이제 앞이 제대로 보이지 못할 상태에 왔을 때 누가 잇세이 앞에 서면서 미소를 짓는다. 붉은 머리카락이 아름답게 휘날리며 말이다. 그 미소를 본 후 효도는 잠에서 깨고, 악몽에 시달린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너무 현실적인 느낌이라 그 고민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사실이고, 효도 잇세이란 인간은 죽었고, 효도 잇세이란 악마가 탄생했다. 문제는 악마가 되어도 그는 전혀 악마다운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악마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조차도 무색했다. 효도 잇세이의 특징과 단점은 오로지 야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나, 한편으로 솔직하고 남을 속이지는 않았다. 선악의 이분법에서 다시 해체되는 것은 아시아 아르젠트라는 시스터를 만나서이다.

 

아시아는 수녀이고, 수녀는 신에게 봉사하는 존재로서 악마와 적대적 관계이다. 하지만 잇세이는 아시아가 수녀이든 아니든 그저 친구로서 대하려 했다. 악마와 수녀의 관계는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으나, 그것은 도덕적 문제이지 윤리적인 영역에서 본다면 효도의 가치관이 옳은 것이다. 차후에 효도가 아시아가 타락천사 레이나레(유마)에게 끌려간 것을 보고 구하려고 할 때, 교회 내부의 전경에서 과연 선악의 본질은 어디인가라는 의문을 준다.

 

성인들의 석상이 모조리 파괴되어 있고, 수단과 방법을 위해서라면 사람까지 죽이는 그들의 무자비에서 신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를 의문하게 만들었으며, 아시아가 교회에서 추방되어 타락천사 손에 의해 죽어갈 때 신은 아시아에게 구원의 손길을 전해주지 않았다. 물론 따지고 보면 신의 선물인 세이크리드 기어인 부스티드 기어 역시 잇세이의 죽음을 준 원인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신은 누구인가? 절대적인가? 아니라면 방관만 하는 무책임한 존재인가? 라는 작품세계관이 그대로 반영된다.

 

책 겉표지를 보자면, 잇세이가 그레모리 리아스를 두 팔로 올려 안아주고, 아시아는 잇세이의 팔짱을 끼고 있다. 단지 특이점은 리아스는 잇세이의 턱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봐도 남자 1명에 2명의 미소녀가 있다는 점은 3각관계가 도래한다는 의미이다. 뒷면에 보면 “기세와 번뇌만으로 보내드리는 학원 러브코메디 배틀 판타지 개막!” 이라고 하지만, 내용 중간을 살펴보면 단순히 러브코메디 요소만 집착할 수 없다.

 

효도 잇세이란 인물이 싸우는 이유는 아시아란 수녀가 정말 좋은 사람인데도 친구도 없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부당함과 자신의 주인이자 오컬트부의 부장인 리아스가 자신의 영지에 타락천사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어서 그것을 해결하는 것에서 싸움이 일어난다. 그 싸움의 이면에는 선악의 이분법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 선악의 기준이 도덕이란 거대한 인식이 옳은가라는 의문도 있다.

 

아시아가 레이나레에 의해 죽었을 때, 효도는 레이나레를 보면서 자신이 악마이지만, 오히려 레이나레 쪽이 더 악마 같다고 한다. 악마사냥꾼인 프리드 신부 역시 악마를 죽이는 것과 악마를 따르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서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점이다. 원래 타락천사의 가호를 받는 엑소시스터들은 처음부터 타락천사로부터 가호를 받았던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활동하던 엑소시스터들이 악마를 처단하는 것은 인간의 행복과 안위를 위해서인데, 오히려 자신의 파괴욕구로 통한 자기만족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프리드리히 니체라는 한 독일철학자의 서적 <선악의 저편>에서 나온 문구를 인용하고 싶다. <만인이 좋아하는 책에서는 언제나 불쾌한 냄새가 난다: 거기에는 소인(小人)의 냄새가 베여 있는 것이다. 대중이 먹고 마시는 곳에서는, 심지어 그들이 숭배하는 곳에서조차 악취가 나곤 한다. 순수한 공기를 마시고자 한다면 교회에 가서는 안 된다.>,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 일이다. - 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다.>

 

내가 위 문구를 적은 이유는 천사에서 나온 타락천사와 그 타락천사를 따르는 무리들은 니체가 지적한 내용이 그대로 나온다. 단순히 대상이 다른 존재에게 피해가 가지 않음에도 태생적인 존재적 이유로 죽어야 한다는 자체가 윤리적 영역에서 크게 비켜가기 때문이다. 물론 에로소년 효도 잇세이의 가슴타령과 효도 잇세이가 만들어가는 번뇌 에피소드에 집중해도 좋다. 그러나 모든 라이트노벨이 단순히 작가와 독자의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진다면 라이트노벨은 그저 킬링타임 용으로 분류되어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하면 그것 역시 부당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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