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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소년 1
임진주 지음, 임애주 원작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카페 포푸리의 소녀! 날 쫓아다니는 거머리 같은 추종자들을 전부! 네게 반하게 만드는 거야! 내 주변에 지긋지긋한 추종자들이 한 놈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을 때! 그때가 네가 나한테서 해방되는 날이야!”
이 모든 서사의 끈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보통 서사라는 담론에서 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 비합리적인 현실적 외압에 의해 운명이란 거대한 덫에 걸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 운이는 그 운명의 시험에서 비극의 주인공보다는 오히려 히로인에 가까운 인물이 되었다. 물론 모든 서사적인 관점에서 남성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그가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히로인이라 불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는 남성임은 분명하나 던져진 비합리적인 세계에서는 여성으로 활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가장 참혹한 상황 중에 하나를 생각해 본다면 자신만이 희생으로 끝나는 것이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희생될 문제가 있을 때 더욱 비극적인 궁지에 몰린다. 만약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위기를 그냥 받아들이고 끝날 문제라면 그것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이는 그것으로 허락되지 않는다. 그는 부모님이 모두 안계시고, 의지할 친척도 없는 고아가장이기 때문이다. 가장의 입장으로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운이는 자신의 5살 여동생 솔이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고통을 참아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바로 솔이의 생계를 돌봐야 하는 오빠인 운이의 현실이다. 본래 비극적 상황에 몰린 인물들을 보면 외모적으로나 능력적으로 탁월한 점을 가지고 있다. 운이의 탁월함은 오랜 아르바이트로 숙련된 체력과 여자보다 더 예쁜 외모라는 것이다. 안경 아래 감추어진 얼굴은 미소녀로 보이며, 그 모습은 다른 여자아이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바로 그런 부분이 기회라는 점이고, 그 기회 이전에 위기라는 점이다. 그의 위기는 생계라는 점이고, 그가 아니 그녀로서 택한 운명의 길은 카페 포푸리에서 일하는 간판소녀로서의 등극이다.
운이가 포푸리 소녀로 되는 날은 그가 막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온 후 며칠 되지 않은 시점이다. 포푸리 소녀로 활동하면서 그녀는 그 카페의 모든 남성들의 시야를 사로 잡아버렸다. 문제는 포푸리 소녀가 학교에서 운이라는 소년으로 살아갈 때는 그 학교 최고의 미인인 류아라는 소녀가 포푸리 소녀 앞에서는 아무런 두각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류아는 다른 곳은 몰라도 유일하게 자신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장소는 카페 포푸리이다.
하지만 그것도 모른 채 운이는 류아를 여신님으로 여겼으나, 그 속은 아주 속이 시커먼 여왕이었다. 포푸리 소녀는 우연히 여자화장실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던 중 자물쇠가 고장 나는 바람에 자신이 여장하는 모습을 류아에게 들키게 된다. 보통 소녀들이라면 큰 소리로 지르며 놀라겠지만, 평소 카페 포푸리를 방문하던 류아에겐 하나의 찬스로 되었다. 류아가 제시한 것은 주변에 귀찮은 남자를 모두 포푸리가 사로잡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참 난감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만약 남자인 게 발각될 경우 카페 포푸리에서 포푸리 소녀는 쫓겨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가족 생계에 큰 차질이 생긴다. 게다가 여장 의상을 구매하기 위해 빚을 늘렸으니 운이의 입장에서는 막다른 골목길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거기서부터 운명의 장난은 시작된다. 여자가 아닌 여장남자가 다른 남자를 반하게 하란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그렇지만 꼭 그런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사실 여자의 행위를 하는 것에서 여자가 직접 하는 것보다 여장을 한 남자가 더 여자다운 것이 있다. 그것은 이른바 융의 아니마 이론으로 남성 안의 여성성으로, 남성이 가진 무의식적 여성성이 있어서 남성이 만들어내고 싶은 이상적인 여성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약간 이 작품에 아쉬운 부분은 운이에게 그런 요소가 처음에 없었다는 점이다.
아마 작가가 여성으로 이루어진 점과 남성이 가진 이상향에 대한 접근을 일부로 반영하지 않은지 혹은 이후에 반영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단지 만화를 보면서 생각한 것은 남성의 여체화를 너무 강조한 것은 분명하다. 여성 안의 남성성은 아니무스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운이는 여성들이 원하는 남성인가? 라고 생각해본다면 여성이 원하는 남성보다는 오히려 남성이 여성보다 더 여성스럽게 보인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남성이 여성보다 여성적이란 사실로 아니마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도대남과 데이트 하는 모습에서 도저히 여성의 매력을 보여준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여신님으로 여기는 류아에 대한 환상적인 관념을 그대로 도대남에게 보여주었다면, 도대남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도대남은 포푸리 소녀와 만나는 도중 포푸리 소녀에게서 전혀 여자아이라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와 달리 포푸리 소녀가 카페 포푸리에서 근무할 때에는 남자손님들의 심리를 자극하여 매상을 올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포푸리 소녀가 본래 남성이 가진 여성성의 본질적 요소를 모르고 있을 리는 없다.
이 작품을 들어다보며 다른 점을 생각해보면, 만화에서 그려지는 캐릭터의 모습이다. 본래 캐릭터란 존재에 개성과 의미를 부여하면 할수록 그 효과는 커지는 법이다. 캐릭터를 볼 때 개성은 분명 잘 반영되었고, 거기에 세세한 의상 디자인도 잘 그려 넣었다. 그러나 문제는 카페 포푸리 소녀가 치마를 입을 때의 신체이다. 본래 만화애니메이션 캐릭터 영상기호론 적으로 대부분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학과에서는 인체해부학을 배우는 과정이 있다.
관절이나 근육, 골격을 제대로 파악하여 움직임이나 행동을 제대로 묘사하기 위해서다. 그런 만큼 인체비율을 무시하는 4등신 만화라면 몰라도, 얼굴 크기를 제외한 나머지 인체비율을 고려했다면 포푸리 소녀의 신체 역시 조금 신경 쓸 부분이 아닌가 싶다. 기본적으로 남성은 달리기나 과격한 운동에 적합한 신체구조로서 골반이 좁고 다리가 일자형으로 되어 있는데, 포푸리 소녀가 치마를 입고 등장할 때는 골반이 상당히 넓다는 점이다.
글과 그림을 모두 자매인 여성작가가 했던 점으로 보면, 여성의 관점에서 그린 점은 분명하나, 포푸리 소녀는 여장한 남자이지, 본래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