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베트남 전쟁
후루타 모토오 지음, 박홍영 옮김 / 일조각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문구가 가장 인상이 깊었다. “총알은 미국의 것이고, 보급품은 일본의 것이고, 흘린 피는 한국의 것이다.” 물론 100% 조사의 사용은 맞지 않을 수도 있으나 전반적인 내용은 맞다. 무기는 미국이 제공하고, 보급품은 군수기지로 활약하던 일본(오키나와 섬이 베트남과 가깝고, 게다가 거기는 미군이 주둔했다 - 생각해보면 일본의 땅이 아니라 오키나와는 류구왕족이 평화로이 지내던 곳인데, 일본근대사에서 억지로 빼앗은 영토이다. 그러고 보니 북해도의 아이누족 역시 그러하다 - 거기서 B-52 폭격기의 웅장한 날개를 펴고 갔으니 얼마나 무서우랴?)

 

어째든 <역사 속의 베트남전쟁>이란 책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내용을 아주 구체적이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만든 도서이다. 보통 베트남전쟁하면 무엇인가? M-16A1을 들고 있는 한국용사들이 베트콩을 향해 연속사격을 날리면, 베트콩들은 바주카를 들고 나와 응사해주는 영화 같은 장면들이 생각난다. 물론 그런 장면은 실제 없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은 전쟁을 하게 되면 초반에 군대의 규율에 따라 아주 용감히 전진을 하게 되겠지만, 시끄러운 총소리와 대포소리, 폭격기들의 폭탄투하가 시작되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다.

 

기본적으로 사격을 해본 남자들이라면 알겠지만, 자기가 직접 가늠쇠에 눈을 조준하며, 겨누는 M-16 기관소총이 조용하지 않은 도구라는 것을 알 것이다. 게다가 군대사격장에서는 반자동모드로 통해 한 발씩 사격한다. 만약 반자동에서 자동으로 넘기어 여러 명이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사격한다면 아마 소음과 진동으로 인해 뭐가 뭔지 모르를 공화상태에 빠질 것이다. 게다가 수류탄이 터지고, 바주카포가 날라 오고, 폭격기의 폭탄이 지면 위로 비오는 뿌리면 인간이 이성은 마비된지 옛날이다.

 

그때부터 도망치기 바쁘거나 땅에 엎드려 떨기 바쁠 것이다. 물론 그 중에 엄청난 정신력을 가진 자라면 어떻게든 헤쳐 나갈 것이나, 적어도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없는 곳이 전쟁이다. 그런 전쟁에 대한 기록을 어느 직접 참전하거나 지켜본 입장이 글을 쓴다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말이 나올 수 없다. 적어도 자신이 총을 맞아 큰 부상을 입거나 옆에 있던 사람이 무참히 총이나 폭격에 죽던가, 혹은 전쟁이 끝이 나도 자신 안의 세계에서는 전쟁이 끝나지 못한 채 정신적 충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전쟁이란 그런 것일까? 물론 멀리서 망원경을 전황이나 보며, 혹은 지도나 전광판에 마치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을 엄청난 고민하고 신중을 기하는 플레이어처럼 말 한마디나 때로는 손가락으로 끝내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겐 목숨의 위태로움이 없기에 그들에게 전쟁이란 영광의 순간이다. 병사 수 천 명이 죽어도 적진에 큰 타격과 승리의 전환점이 되면 누가 죽든지 그 원망의 소리 대신 환호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다. 누가 있든지 그 자리에 있으면 객관적인 입장은 불가능이다.

 

어째든 전쟁이란 인류의 역사로 보면 문명의 존재에겐 필요악이란 이름이라고 본다. 전쟁은 분명히 나쁘고 더럽고 증오스럽지만, 인간은 자신의 그 나쁘고 더럽고 증오스러운 존재성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이 전쟁이다. 그래서 그 전가를 시키는 자들은 매우 비열하고 치사하며 악독한 자들이다. 보통 전쟁에서 승패의 결과나 군세나 혹은 군인이나 전투요원이 아닌 자들이 옆에 말리는 것도 아닌데도, 20세기의 전쟁은 군인과 군인의 전쟁이 아니라, 그 국가의 정치적 권력(안에 숨은 이권단체)과 상대국가(특히 어린이, 여자, 노인들과 같은 저항이 불가능한 사람들)의 그 존립자체이다.

 

실제로 1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집계하면 총과 칼에 의해 죽기보단 독가스에 의해 더 많이 죽었다고 한다. 독가스가 퍼지면 군인들은 방독면이라도 구비하여 막으면 되나, 민간인들은 그냥 노출되고, 면역력이 약한 자들은 그저 죽을 뿐이다. 전쟁이 미친 짓이라고 외치는 것이 백 번, 천 번이고 옳고 지당하다. 전쟁 후에 남는 것은 없다. 그나마 원정 간 국가의 영토는 무사하나, 원정당한 영토는 그야말로 시체가 거리에 널려 있고, 환자와 난민만 무성할 뿐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 그 나라에 다녀간 사람들이 상대국가 정치체계는 몰라도 그 국민에 대한 발언이 정당하냐고 생각하면 이들의 사고회로는 완전히 파시즘의 그물에 걸린 불쌍한 물고기에 불과할 것이다.

 

역사 속의 베트남전쟁이란 도서는 저런 표현이나 느낌을 살리지 못하나, 적어도 그런 상황 속에 전쟁이란 상황을 잘 정리해간 도서다. 책의 저자는 일본 동경대학교 부총장으로 문화연구를 하던 학자이니 매우 잘 정리했다고 본다. 저자인 후루타 모토오 교수는 일본이 직접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기에 한국이나 미국처럼 강한 충격을 일본에게 오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일본은 군사적 목적에서 파병과 같은 전투행위보단 물품이나 팔던 보급기지였다. 생각해보면 1950년 625전쟁에서 가장 피를 본 나라는 당연히 한국과 북한이다. 많이 죽고 많이 다치고, 게다가 농토가 황폐화되고, 도시가 무너졌으니 말이다.

 

그 다음으로 미국이나 유엔군, 소련, 중공 순으로 갈듯하다. 그러면 이에 반면에 누가 가장 이익을 봤는가에서 당연히 일본이다. 일본은 전쟁경제로 통해 부를 축척해갔다. 한국전쟁에서 옆집에 불 건너 구경하였는데, 그 옆집이 모조리 불타니 거기에 대한 조치에서 얼마나 많은 이득을 봤는가? 게다가 베트남전쟁이라니, 후루타 교수는 그런 점을 이 책에 명시했다. 적어도 그는 일본에서 망언이나 하는 비양심적 인물이 아니라 순순히 학자의 입장에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객관적인 판단 아래 이 책을 적은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이 전쟁에 대한 문제점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본래 베트남은 고대 중국으로 시작하여 10세기부터 독립하여 다시 19세기 후반 프랑스에게 식민지화 당한다. 중국 역사서에서 남만이란 미개한 종족들이 소개되는데, 아마 베트남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에게 정치적 압박을 벗어나 자기 나름대로의 왕국이 있었다. 그런데 19세기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자본제국주의에 점령당했다. 웃기는 사실은 프랑스하면 자유와 평등이 연상되나, 그것은 자기들만의 공간이었다. 지금은 많이 양호한 편이나 20세기 현대사까지 지켜보면 알제리전쟁과 그 일들은 프랑스가 과연 자유와 독립, 그리고 평화와 평등을 논할 가치가 있을까 싶다.

 

이에 반해 다른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베트남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와 더불어 서구사회의 식민지로 전략했다. 그러던 베트남이 스스로 독립하려고 했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프랑스 대신 일본이 와서 침략하더니, 이제 베트남 스스로 독립하려고 했다. 문제는 이때 프랑스와 일본과의 충돌이 있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가 침략을 하려다 실패하고, 1964년 그 유명한 통킹만 사건이 있었다. 통킹만 사건을 쉽게 말하면 지나가는 동네 초등학생에 대해 덩치 좋은 고등학생이 다가와 자기 얼굴에 주먹 2대를 날리는데, 한 번은 가짜라는 점이다. 혼자 죽치고 쇼를 하다가 미국과 베트남은 전쟁을 하게 된다.

 

물론 정치적으로 1917년 10월 레닌이 만든 러시아혁명을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닌 스탈린주의자로 변질되어버린 소비에트연방이 미국과 냉전 중이라, 베트남이든 중공이든 당시 국민들은 오로지 2차 세계대전과 강대국의 해방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해진 이후 도래할 냉전에는 아무런 감이 없었다. 그 시험무대가 1차 매치는 한국전쟁이고, 2차 매치는 베트남전쟁이다. 그나마 한국전쟁은 미군과 전 세계 유엔군이 왔기에 미국 입장에서는 합리적이고 정당성이 부여되나, 베트남전쟁은 단독적이고, 그 우군이 한국파병만 도착했다. 물론 다른 남베트남 내지 다른 일부 국가가 있으나, 유럽사회는 그렇게 도착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 전쟁은 단순히 겉으로는 좌우이데올로기란 목적의식이나, 그 뒷면에 나온 보고서에는 원유, 고무 등과 같은 자연원자재인 셈이다. 아마 이때부터 전쟁은 조금씩 정치적 힘겨루기와 더불어 원자재 소유 전쟁을 하고, 21세기는 완벽하게 자원과 영토의 목적으로 변모했다. 결국 세계는 시장자유주의라는 것이고, 소비에트연방 해체 이후 탈(脫)이데올로기가 오히려 더 거센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베트남전쟁은 미소 냉정의 엄청난 여파를 준 전쟁이다.

 

아직도 미국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베트남전쟁을 보면 M-16을 들고 있는 병사들이 죽고 또 죽어 죽음의 언덕을 차지한다. 이길 수 없었던 베트남에 대해 최후의 승자는 미국이다! 라는 깃발을 날리듯 그때 미군이 패배해도 21세기에는 그런 생각마저 드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그래도 전쟁을 알아야 하는 것은 전쟁이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며, 특히 퓰리처상으로 올라간 네이팜탄소녀의 모습이 다시 보이면 안되는 것이다.

 

네이팜탄이 자신의 옷에 붙어 그 옷을 모조리 벗어 폭격을 피해 달아나던 그 소녀, 이젠 중년의 부인이 되었지만, 그 사진의 비참하고 급박함은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전쟁을 하면 나는 군인이 죽는 것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들 특히 어린이들이 학살되는 것에 분노하는 것이다. 누구에겐 상당한 이익과 발전이 되었지만, 그만큼 누군가에겐 그 이상의 피와 눈물을 쏟게 하니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는 것에서 모순을 느낀다. “세상이 평화롭고 아름답도록” 정말 누가 그것을 망치는지는 잘 생각해야 한다. 오히려 그런 부분은 어느 피해자 내지 가해자의 특이성을 살리는 것보단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고찰해볼 수 있는 책이 좋을 듯하다. 비록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아주 못된 짓을 해도, 우리 역시 그런 짓을 한 것은 사실이다. 자신에게 가한 폭력을 기억해도, 남에게 폭력을 가한 것을 외면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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