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경제학 (개정증보판) - 상식과 통념을 깨는 천재 경제학자의 세상 읽기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4
스티븐 레빗 외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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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경제학 Freakonomics이란 책을 봤을 때 상당히 의아했다. 괴짜경제학이란 말에서 괴짜가 만든 경제학인지, 아니라면 괴짜 같은 사람이 경제학을 연구한 것인지?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 안의 경제가 괴짜라는 것이지 말이다. 또 다른 의아함은 이 사람이 무얼 하는 사람인가라는 점이다. 매우 똑똑한 사람이고 독특한 인물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머리말에 들어갈 때 우연히 아는 이름을 발견했다. 로버트 노직 Robert Nozick라는 미국 철학자는 자유지상주의였다.

 

물론 자유지상주의라고 하여 자본주의와 함께 하는 자유주의에 대한 그 자유지상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에 대한 자유에 대한 권리이지 자본으로 통한 자유를 모조리 억압하는 형태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 노직이란 노장의 철학자가 이 책에 등장했다. 어느 날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브 레빗이 연회장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말에 이래저래 모두 하고 싶다는 엉뚱한 답변에서 노직이 그에게 나이를 묻자 저자는 스물여섯이라고 한다. 그 대답을 들은 노직은 이렇게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 말해주었다.

 

“이 친구는 이제 겨우 스물여섯이네. 그렇다면 벌써부터 굳이 통합적인 중심 주제가 있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이 젊은이는 재능이 너무나 풍부해서 하나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친구인지도 모르지. 결국 그때그때 질문을 하나 택해서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을 거라는 애긴데,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과연 철학의 거장다운 말이다. 그런 거장의 안목이 있었는지 이 스티븐 레빗의 감추어진 능력은 정말 재미있다. 책을 넘길 때마다 오! 이런 면이 있었나? 라고 생각 드는 것도 있었고, 한편으로 본인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부분도 있었다. 어차피 인간사회는 자신이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만큼 안다는 말처럼 단지 스티븐 레빗은 절대적인 영역의 인간이 아니라 보통 인간들에 비해 머리가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그의 호기심과 분석하는 과학적 사고가 훨씬 발달했다는 점이다.

 

그 과정을 보자면 그가 가진 가치관인 것 같았다. 그는 클린턴 정부시절 부시의 잘못된 선거운동에 대한 자문관이라고 했으니, 그의 가치관은 얼마든지 여기서 알 수 있다. 그는 분명히 엘리트 출신의 학자이고 당연히 백인이지만, 그것에 하나의 헤게모니적인 권력을 바라기보단 그것을 파헤치려고 했다. 왜냐고 이 책을 자세히 보면 나오지 않은가? 미국의 극단적인 백인우월사상으로 가득 찬 인종차별주의자 KKK(Ku Klux Klan)단에 대한 일화에선 분명히 그의 입장을 보여준다.

 

그가 만약 백인우월주의자라면 자신들 백인들의 문제점과 난폭함, 그리고 잔혹함을 그대로 떠버릴 수가 있을까? 예전에 본 미국역사에서 흑인이나 유색인종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 레빗은 이미 그런 기존의 올바르지 못한 인식과 고정관념에 대한 공격으로 볼 수 있다. 마약상에서 왜 부모와 사는지, 낙태문제와 범죄문제, 교육과 주변 환경 요소는 분리하기 힘든 요소이다. 특히나 부동산과 스모선수는 폐쇄적인 정보로 통해 이익을 챙기는 부당성을 고발한다.

 

인간에게 항상 자신만의 영역이란 것이 있다. 그 영역에서 하나의 신성함을 인정받으면 그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는 것 같다. 단지 일본의 스모선수의 경우 스모선수의 사회에 내재된 비리와 부정을 고발한 두 명의 용사는 어느 순간 싸늘한 주검으로 변할 뿐이다. 정보를 고립하는 것과 대중들이 정보를 알아도 그것을 인식하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그 인식 자체가 너무 당연한 이데올로기이니 말이다. 우리는 이상한 이데올로기 안에 갇혀 편견과 고정관념에 쌓여간다.

 

인간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사회구조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란 한계라는 점이다. 그 정보 자체가 어마어마한 경제적 효과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시장에 채소를 사러갈 때도 같은 골목길 안의 가게인데도 어느 가게의 채소는 양도 풍부하고 가격도 합당하고 게다가 영양가도 좋다. 반대로 어느 곳은 그러지 못하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어느 것이 분명한지 구분할 수 없다. 그들은 식물학자 및 전문상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상인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지역의 어느 농장에서 값도 합리적이고, 영양가가 높고 신선한지를 모두 타인에게는 비밀이다.

 

영업의 전략에서 정보라는 것은 매우 사소한 일상의 부분까지 미친다. 그런 정보이니 그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겐 어느 정보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조차 불분명할 때가 있다. 분명 그 판단을 내리는 순간만큼 우리 인간들, 혹은 본인 같은 일반 사람 역시 “나는 분명 이 선택이 옳고, 틀리지 않았으며, 합리적이고 정확한 판단이었어.”라고 하나, 막상 돌이켜보면 그것은 틀린 답이었다. 레빗의 괴짜경제학에서 부동산이 그렇게 보였다. 분명 42,000달러에 매매를 할 수 있어도, 중개업자가 40,000달러로 팔아 자신에게 수수료가 적게 떨어지더라도 유도하는 점이다. 그러나 수수료를 비율로 받아가기 때문에 몇 백달러 이상 차이나지 않으며, 오히려 빨리 거래를 성사함으로 부동산 업체 사람에게 그 만큼 거래물량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부여한다.

 

흔히 시간만 끌면 광고비와 운영비가 나가니 이왕이면 어서 나가는 편이 이익이란 점이다. 그러나 업체사람은 판매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42,000달러가 적정하나 요새 시세는 40,000달러입니다. 2,000달러를 낮추면, 금방 팔리고 이 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 말은 자신의 심리적 욕망을 남에게 떠미는 꼴이다. 사소한 부분들은 이래저래 좌충우돌한다. 특히 인상 깊은 점은 범죄다. 누구나 자신은 안전하고 안락한 사회생활을 누리기를 바란다. 문제는 자신은 그런 욕구를 가지나 주변은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런가?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부분으로 넘어간다. 가난하고 못배우고, 게다가 집안환경이 나쁜 청소년이 범죄확률은 매우 높다. 게다가 그들은 대부분 10대 청소년들이다. 이들의 범죄원인은 부모이다. 어머니가 10대 미혼모로서 흑인들이 주로 많고 술, 마약, 담배 등으로 매우 심각한 부작용이 온다. 물론 이런 아동들은 원하지 않은 임신이고, 낙태가 거절당하면 무리하게 낳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낙태수술비까지 비싸고, 불법적이라면 한계가 있는 법이다.

 

부적절하게 관리된 산모의 자녀들은 편부모에 가난한 집안에 학교에 가서 교육의 기회도 낮고, 좋은 직업도 얻지 못하며, 중고등학교 시절부터는 학교보단 거리로 나간다. 그때부터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매우 값이 저렴한 일이나, 혹은 불법적 일이다. 마약의 손길은 그러하다. 어느 유색인종 학자가 몇 년 동안 마약r 갱들과 지내며 그들의 생활을 봤는데, 처음에 그는 죽을 수 있으나, 그 역시 유색인종으로 미국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고, 흑인사회에서 흑인들 역시 그를 보면서 처음에 적대적이었으나 어느 순간 같이 밥도 먹고 생활까지 돌봐주는 사이가 되었다.

 

딱히 범죄자와 학자에 대한 친밀도를 높이 사기보단 그들을 주시할 때 왜 그렇게 되는가이다. 우리는 그냥 흑인이니깐 가난한 할렘가의 불량배라고 하나, 막상 왜 그렇게 되고, 그것이 된 배경과 사유에는 관심이 없다. 스티븐 래빗이 그런 일들을 어떻게 잘 포착하여 책까지 썼는지 그의 자유이나, 적어도 그가 그렇게 본 것은 괴짜경제학은 단순히 경제라는 합리적 계산이익으로 보는 경제학이 아니라 정말 그 경제 자체를 연구하는 하나의 사회과학이다. 물론 이 사회과학에는 철학이 있다. 철학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모범답안이 아니라 왜 그 문제가 생겼는지 알고 싶은 것에 대한 원인의 답이다.

 

괴짜경제학은 정말 그가 괴짜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괴짜처럼 되지 않으면 건들지 못한 부분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별과 고정관념, 일부 사람들의 정보 독점과 왜곡이다. 결국 그것은 그 사회에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괴물이다. 처음에 괴물은 큰 살모사처럼 독만 내뿜다가 결국에 메두사처럼 모든 것을 돌로 만든다. 적어도 살모사는 무조건적으로 사람을 위협에 빠뜨리게 하지 않지만, 메두사는 보는 인간 모두 망가뜨린다. 결국 망가져 가는 사람들은 우리가 보지 못한 사회의 이면이다. 물론 두 눈 크게 뜨고 생각을 한번만 아니라 또 다시 한번 더를 유지하면 가능할지 모르나, 그것이 되었다면 레빗이 책을 적어 낼 이유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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