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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에 목숨을 건 조선의 아웃사이더
노대환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세상에는 아웃사이더란 존재하는 법이다. 아웃사이더가 있기에 우리는 정녕 새롭고 다른 영역에 손을 넓히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왜 아웃사이더란 존재가 그토록 아름답지 못하고 오히려 천대받아야 하는 것일까? 아웃사이더는 현실세계에 발을 맞추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혹은 더 앞으로 가는 셈이다.
가령 유럽사회에서 전위예술이란 아방가르드처럼 전위적으로 앞을 향해 가는 존재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면 그렇지 못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아방가르드는 전위적이고 진취적이기도 하나 진보의 극치와 극좌적인 요소를 보인다. 가령 우리가 아는 예술가 중에서 파블로 피카소란 인물을 보자. 그는 매우 예술적인 인물이다. 너무 예술적이라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존재다.
그는 예술이란 삶을 광학적으로 보는 존재고, 그 광학은 너무나도 굴절이 심하여 우리가 볼 수 없는 초현실적 영역에서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초현실적인 영역을 추구했기에 그의 예술은 현실을 잘 반영했다고 보는 것이다. 가령 게로니카라는 전쟁의 비극성을 다룬 작품이나 우는 여자를 보자. 그것이 현실을 그대로 있는 모습만 담기보다는 그 이상적으로 담았다.
그렇게 보이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니 오히려 인간에게 사유를 전달하는 셈이다. 예술이란 그런 사유를 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피카소가 20세기 거장미술가라고 해도 일단 그도 아웃사이더였다. 그도 마르크스주의자였고, 스페인 내전의 아픔도 보고, 내가 살아가는 한국전의 비극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가 원한 것은 인간의 해방이요 인간의 자유다.
감옥에서 갇혀 있을 때 간수와 대화를 나눌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는 그냥 감옥에 갇혀 있지만, 사람들은 세상의 감옥에 갇혀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역시 아웃사이더였다. 단지 아웃사이더가 어느덧 아웃사이더가 아닌 것처럼 당시 사회에서 매우 소외당한 자들이 혹은 멸시되거나 또는 화근의 대상이 되던 이들이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인상을 건네준다.
그들이 하고자한 행동과 그들이 주창한 말들이 오늘날 우리가 보아도 상식을 뛰어넘은 하나의 신념을 보이기 때문이다. 신념이란 아름답다고 생각하나, 그 신념을 지키는 것은 곧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책 제목처럼 조선의 아웃사이더인 만큼 당시 조선시대라는 특성에서 아웃사이더는 매우 위험하다. 대부분 인물을 보자면 조선시대에 글을 기본적으로 보고 적을 수 있는 양반신분들이다. 혹은 서자 정도로 나온다. 그들에게 주어진 삶이 왜 그리도 비참한가?
오늘날 한국에서 본다면 매우 보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보수는 정치적 영역의 보수가 아니라 전통적인 문화의 보수이다. 착각을 배제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가부장제를 중시하는 그런 조선시대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보수로 본다면 지금의 보수적인 정치영역과는 무관한 영역이다. 차라리 전통주의적인 인물이라면 납득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조선시대의 시대상을 보자.
봉건적 군주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조선은 사농공상이다. 선비, 농민, 장인, 장사꾼들이 4가지 계급으로 이루어진 사회다. 조선의 사대부 즉 선비들은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 그들은 유학 그중에 주자학이란 성리학으로 통해 너무 형이상학적인 영역에서 정치를 실현했다. 가령 여기 주인공 중에서 윤휴라는 인물을 보자. 개인적으로 조선왕조 내에서 탁월한 임금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광해군과 정조로 뽑겠다.
태종과 세종에서 태종의 피바람으로 세종을 변하게 왕권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광해군이란 달랐다. 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인해 조선영토가 전쟁터로 변한 것을 아버지 선조를 대신하여 복구시켰고, 게다가 명이 지고 청이 떠오르고 있음을 파악하여 중립적인 실리외교로 통해 전쟁을 피하려고 했다. 전쟁이 닥치면 제일 먼저 피해가는 자들은 당연히 백성이다. 그 백성의 고통을 짊어지게 하는 것은 군자로서 도리가 아니며, 공자의 정치철학에서 가장 피해야 할 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오히려 당시 양반들은 자기들의 정치적 헤게모니에 대해 집착하는 바람에 광해군을 억지로 폐위하는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청과의 전쟁으로 임금이 외국장수에게 수치를 받도록 했다. 그 후에 그렇게 만들었던 강경론자들이 결국 청에 머리 숙여 조선이 망하는 그 순간까지 감투에 의지했다. 정치란 권력에 향한 의지인가? 조선이란 국가는 그렇다. 힘도 없으면서 명분과 체면만 살리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도 나 몰라라 한 시기였다. 그런 시대에 아웃사이더로 낙인찍히면 그야말로 출세와 생명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웃사이더들은 그런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만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었다. 때로는 변화하는 세상에 유동하여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변화해야 했는데, 변화하지 않아 도태했고, 때로는 최전방 저격수로 천주학을 비판했던 김치진이란 인물이 도리어 역적 같은 존재로 변모되었다. 그들은 그 당시 묻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한 권에서는 매우 매력 있는 인물로 변했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여성들은 없고 오로지 남성만 있다. 조선시대가 사대부사회도 있지만, 남성우월주의가 뿌리 깊은 세상이기에 매우 보수적인 것이다. 그래도 남자들은 바보 같은 남자들을 좋아한다. 바보들은 이기심이 없고, 배신을 하지 않는 점이다.
그러나 늘 그들의 마지막은 비참하다. 바보 같이 사는 것은 곧 자신의 앞날을 한치 앞을 볼 수 없음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보가 낭만적이고 끌리는 이유는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없는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별 것 없는 존재일 수 있으나 평생 찾을 수 없는 그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기만의 신념이요 철학이다. 단지 남의 눈치나 보고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보는 위대하고도 어리석은 도전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