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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붕괴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05년 11월
평점 :
환경공학과 출신으로서 환경문제에 대한 기사나 이야기가 나오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이미 사전에 일어나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그전부터 종종 했던 일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굵직한 문제나 예전부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던 일들은 계속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주변 사람과 토론해보아도 결국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우려한 일들로 연결되어 버린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환경을 연구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회의적 내지 절망적이라고 볼 수 있다. 회의적이란 것은 그 문제가 일어날 것을 미리 예견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없이 그저 그대로 보는 것에서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고, 절망적이란 말은 그 일이 발생하여 절망이기보다는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자 하는 환경이란 미래에서 희망이란 단어가 과연 존재하는가?
항상 그것을 고민할 수밖에 없으나 현실에서 원점에서 맴돌 수 없기에 자기모순이란 덫에 빠지고 만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개인적 환경인으로서는 판단할 수 있으나 개인적인 환경인으로서는 그것을 조절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진실로 그것을 막아낼 수 없는 개인적 능력이 아닌 정치적인 역량에서 말이다. 환경문제를 왜 그렇게 중요할까?
우리들은 항상 환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환경 중요하지!” 혹은 “환경 그게 뭐가 중요해”라고 말이다. 웃기게도 그런 말투를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아닌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전반적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투다. 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할 리가 있나 하지만, 사실이다. 왜냐면 자기 이익 앞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환경이고, 자기 이익과 무관하면 환경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만약 오늘 당신의 집에 갔는데, 집 앞에 도로공사 중이다. 도로공사를 하면 대개 굴삭기나 덤프트럭과 같은 중장비들이 오고간다. 중장비가 오고가면 소음진동이 기본이고, 디젤연료를 다량으로 소비하므로 고온고열의 매연이 나온다. 만약 날씨가 더운 여름이라면 상당한 불쾌지수로 환산된다. 왜냐하면 대부분 여름철에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은 이상 창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창문 너머로 매연의 악취와 더위의 가스를 느낀다면 기분이 좋을까? 본인은 그렇게 느끼겠지만, 주변 사람들과는 무관하다. 기껏 해보았자 차량이동 시에 도로가 협소함에 따른 짜증나는 기분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 금방에 있어야 하는 사람으로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러면 누구는 환경 중요하지! 누구는 환경 그게 무슨 대수이냐고 말하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닐까?
이런 사소한 건들도 그러한데, 만약 환경적인 요소가 단순히 도시화된 요소가 아닌 자연적인 대상이라면 어떨까? 인간은 90일 앞에만 본다는 이 책의 본문처럼 그건 사실인 것 같다. 특히 환경공학과를 나와 환경영향평가 업무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나도 어리석으나 왜 인간들은 이토록 어리석은가라는 한탄을 내뱉게 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를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학부시절에 각각 여러 교수님에게 강의 받던 대기환경, 수질환경, 토양지하수, 환경위생학, 생태학, 폐기물처리 등등을 말이다. 그것은 각기 다른 과목으로 배우나 결론은 한 지점에서 맞춘다. 그리고 그 지점은 인간의 위기이다. 왜냐고? 당신이라면 탈황장치도 없이 뿜어 오르는 공장매연을 즐겁게 마실 수 있는가? 당신은 분뇨와 공장폐수가 충분히 섞인 강물을 식수로 삼을 수 있는가? 당신이라면 기름으로 노출된 곳에 소풍이나 갈 수 있는가? 당신은 새조차도 울지 않은 쓰레기가 넘쳐대는 공원에 산책이라도 갈 용기라도 있는가?
전혀 없다. 그런데 그 범인들은 누군지 아는가? 바로 나와 당신들이다. 내 자신만 아닌 다른 타인도 조금씩 그렇게 한다는 믿음으로 자신의 결점은 가린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인 듯하다. 단체 속에서 언제나 정의나 진리를 군중심리로 먹혀 들어가기 때문이다. 환경문제에서 당연히 원칙적으로 장기적인 안목을 두고 말해도 군중에겐 통하지 않을 경우가 허다하다. 왜냐하면 집단적 이기주의는 합리적 이성도 마비시킨다. 물론 합리 역시 좋지 않다.
합리(合理)는 때로는 합리(合利)라는 이름으로 위장되기 때문이다. 물론 한자어나 영어철자에선 다르나 한국어에서는 발음을 대조하면 딱 어울린다. 말장난처럼 보이나 사실이다. 이때까지 우리는 이런 식으로 우리 인생과 미래의 인생을 갉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명의 붕괴를 읽다보면 다소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그게 당연하지 그런데 왜 사람들은 바보처럼 당하고 마느냐?
그것은 인간들이 욕심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물론 욕심이면 다행이다. 욕심은 채우면 그만이나 욕망은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 때문에 숲의 나무를 베고, 물가의 고기를 모두 잡고, 기름과 광산을 모조리 뽑고 사라지는 술수로 결국 그 지역의 주민뿐만 아니라 그 국가와 사회마저 좀을 먹는다. 문제는 그곳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 범세계적인 문제로 향한다. 가령 독극물질은 중금속과 PCB와 같은 물질들이 발생하는 장소가 아니라 북극의 생물과 거기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에게 높게 나온다면 당신은 이해 가겠는가?
이해가지 않을 것이나 우리나라의 봄철을 상기해보자? 봄이면 항상 황사가 불어 눈과 코를 괴롭히고, 그것도 모자라 건물과 차량을 더럽힌다. 이전에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는데, 입자가 굵어지고, 심지어 입자 안에 중금속과 독성물질까지 보너스로 달려온다. 왜 그런가? 황하라는 대하천은 우리 영토와 엄청나게 멀리 이격되었는데도 그렇다. 결국 세계의 특급 독극물이 북극으로 간다는 것이 이상치 않다. 예전에 일본의 쓰나미로 인해 밀려나간 콘크리트 구조물이 미국 해안가에 등장했다.
수 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것들인데도 가고 있다. 환경오염이 그렇게 단순하게 보이는가? 문제는 그런 환경오염이 국제사회의 문제와 분쟁을 넘어 우리의 앞날을 흐리게 한다. 왜냐고 물어본다면 이 책에 나온 이스터섬이나 그린란드, 그리고 바이킹들의 운명을 보라. 당시는 우리가 살던 때보다 자연환경 자원이 풍부하고 오염이 덜 되었다. 그런데도 망해서 모두 사라졌다. 그 당시 역시 환경오염이 있었다. 나무를 보이는 데로 베어 쓰고, 풀은 모두 양이나 염소가 뜯어먹었다.
토양이 가벼운 곳에는 바람과 강우로 토양이 씻겨 내려가고, 토지는 황폐화되고 양분도 없어 식물이 자라지 못해 양과 염소 모두 죽었다. 나무도 없어서 강우 시 저장한 공간도 없고 나무열매도 없다. 결국 남은 것은 굶어죽기를 기다리는가? 아니면 서로 카니발리즘이란 죽음의 축제에 향연의 기회를 누릴 것인가? 먼 바다로 가서 도중에 죽을 건가? 자살할 것인지에서 다소 여러 가지 선택권은 있으나 모두 죽는다는 답 외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 그들의 죽음이 그러하다. 굶어서 추워서 병들어서 그 밖의 비참한 죽임들에서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우리랑 관계없냐는 이야기에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조심해야할 일이다. 앞으로 자원은 고갈되고, 자연환경은 파괴가 진행되어 사막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먹을 물은 줄어들고 지하수마저 오염되고, 지구온난화로 얼음의 물이 사라진다. 오늘 당장 한시적으로 관계없어서 그저 그러니 하나, 처해지면 어떤 위기가 올까?
우리나라도 그런 비슷한 일들이 없지 않아 발생했다. 수목을 베어 토양침식이 일어나고, 억지로 외래종이 와서 생태계 파괴가 도래하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일피해가 해안 쪽에서 조금 심해지고, 어획구역이 조금 변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 아니면 90일만 생각하는 동물인지 계속 누락되고 있다. 문명의 붕괴를 읽다보면 지금 우리가 처해진 상황이 좋지 않다.
물론 그 외의 환경오염에 대한 책들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위기는 위기라고 여기지 못할 때 다가올 경우 더 큰 타격이 된다. 문명의 붕괴에서 사라져간 문명들이 위기라는 것을 처음부터 각오했을까? 그 각오를 했고 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에 순응했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이나 죽음의 문명을 다루니 이미 결과는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문명의 붕괴는 그런 과거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말한다.
붕괴라는 것이 내일 당장 오지 않는다고 하나, 문명의 이기로 통해 피해본 소수약자들은 상당히 있었다. 당장 내일아침의 이익만 쫓다가는 그런 것 자체도 못할 멀지 않은 미래가 올 것이다. 이미 미국에선 그런 문제가 있었다. 광산이나 벌목으로 돈 좀 잡아보려다 오히려 복구비용으로 애를 먹고, 심지어 그 문제를 주민에게 돌려 주민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누가 문제란 말인가? 당장의 문명의 붕괴는 일어나지 않으나 소소한 곳에서 일어나고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조금씩 붕괴되어 모를 뿐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인지 어제와 같은 오늘인지는 누구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좋은지는 각자의 문제지만 말이다.
ps 참고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라는 책을 먼저 읽었으나 이 책을 알게 된 동기는 故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의 미래>에서 찾았는데, 진보라는 것은 언제나 현실을 제대로 확인하고 그것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무조건 전복만 생각하는 것이 진보도 아니고, 그런다고 하여 고칠 생각도 없이 멈추는 보수들은 보수도 아닌 것 같다. 전통이란 단순히 그대로 머물러서 전통이 아니라 조금씩 같이 세상을 보면서 변해가는 것도 전통이다. 인간들이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닌데, 눈앞의 이익만 보거나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는 순간 우리도 모아이석상이 있는 이스터섬처럼 그대로 사라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