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박태균 지음 / 책과함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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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역사와 문명 속에서 가장 쓸데없는 행위와 행동들이 바로 전쟁일 것이다. 전쟁이란 것은 인간을 서로 붕괴하고 망치고 이때까지 노력한 모든 것을 모래성처럼 무너뜨린다. 그 모래성도 성난 파도가 몰아치는 태평양 중앙에 위치한 작은 암초에 세운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을 다 사라지게 하는 것이 전쟁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전쟁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정치적인 업적에서 주요 이벤트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아니한가? “역사는 승자만 기억한다.” 어차피 패자들에게 기억해줄 이름 따위가 없는 세상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그 역사 곳에서 우리는 오랜 시간과 시간 속에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딱히 그렇다고 볼 수가 없게 되었다. 패자들이 모두 사라지지 않은 이상 그리고 그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인 이상, 하다못해 그들과 조금이라도 연이 닿은 인간이 존재하는 이상 승자의 기록이 아닌 패자의 기록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전쟁의 역사와 패자의 역사, 그리고 우리 모두를 패자로 만든 전쟁, 한국전쟁은 패자들의 기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쟁 후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시체로 이루어진 들판과 산하, 그리고 부서진 건물잔해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공간에서 지금 한국의 경제적 성장을 보면 대단하기도 하나, 한편으로 불안하다. 세상에는 과도기라는 존재하는데, 우린 그 과도기가 너무 짧았으며, 그 과도기 속에 충분히 통과의례로 봐야할 것들이 너무 미비했다. 나는 지금도 한국사회는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잊어버린 전쟁이라던 625사변 즉 한국전쟁이라고 하나, 아직도 한국인의 무의식적인 공간에는 공포와 적대심이란 것이 남아있다. 해방 전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에서 직접 겪은 사람과 더불어 그들의 직계 후손이 아직도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태균 교수의 <한국전쟁>에서는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이라고 표지에 그려져 있지 않은가? 한국전쟁은 정말 끝나지 않았다. 단지 휴전된 상태로 화약고에 점화가 언제 터질 줄 모르는 위기감만 계속 맴돌고 있다.

 

최근 북한정치계의 변화와 세계사회의 탈(脫)이데올로기로 통한 더욱 더 견고한 이데올로기적 행동, 유가상승과 에너지고갈, 환경오염 등 이 모든 세계적인 변화, 거기에 맞춘 한국의 외부에 대한 변화 내지 내부 자체의 변화는 여전히 한국사회가 어지럽다고 생각한다. 그 뿌리를 알기 위해서는 결국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역사를 알아야 결국 지금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와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방향이 보인다. 예전에 <철학, 가장 오래된 질문들에 대한 가장 최근의 대답들>이란 책을 보았는데, 역사학과 철학은 조금 다르나, 기본적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과거를 보고 앞을 생각하여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라고 말이다. 철학에서는 그 문제의 해결을 바로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그 문제의 원인, 즉 문제 자체에 대한 답을 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해본다면 어느 철학자 말처럼 철학은 철학에 대해 생각해서 철학적이기보다는 그 행동으로 통해 하나의 실천의지가 있어야 철학적이란 문구가 생각난다. 게다가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과학이란 지식이 존재해야 한다. 철학의 사유는 논리가 필연적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적 사고로 통한 논리적 판단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절실할 것이다.

 

물론 칸트가 말한 것처럼 논리라는 것은 윤리라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제대로 된 윤리가 나온다고 한다. 그래도 역사 속의 사실에서 우리는 윤리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단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길 앞에서 윤리적 가치가 필요한 것이다. 한국전쟁에서는 윤리적 시선보다는 논리적 시선에 가깝다. 사료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에 의해 저술된 점을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특히나 일방적으로 누구의 입장보다는 당시 상황을 잘 알 수 있는 자료로 통해 복원했다.

 

한국전쟁을 연상하게 하는 방법으로 우리는 대부분 사진과 간략한 연표정도일 것이다. 그 당시 어느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어떤 방향으로 갔는지 대해선 잘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오해와 갈등이 심해질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런 문제를 잘 간파했는지, 당시 정치적 상황에 대한 판단을 당대의 문헌과 기록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국내보다는 남한 측의 전시작전에 큰 기여를 한 미군정과 미국정부의 자료, 그리고 북한 측에 있었던 소련에 대한 자료였다.

 

소련이 해체되어 러시아로 전환되자, 러시아 전쟁기록물에 보관된 전쟁기록의 등장은 매우 신기했다. 그만큼 신빙성이 보인 자료가 객관성을 보이는 자료가 등장한 것이다. 이때까지 그저 우리는 재구성된 자료로서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여기의 자료와 기록물은 그 가치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시 전쟁의 원인을 찾자면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왜 전쟁이 되어야 했고, 왜 1950년 6월 25일이어야 했으며, 또 1953년 7일 27일에 휴전 협정을 맺어야 하는 가이다.

 

단순히 했다고 했지 그 뒤에 숨은 이야기는 모른다. 또한 무슨 이유로 발발했는지 까지 생각하면 말이다. 친일파 문제부터 시작하여 북한 측의 공작, 이승만의 자기 독단, 비리와 부정, 미군과 소련, 유엔의 결정 등을 말이다. 그런 부분에서 가장 인상 남는 것은 이승만 정권이 미국에 상당히 교우가 좋고 협력적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틀렸다는 점이다. 오히려 미군정은 전쟁의 의한 물자 및 인원 소모와 내부 정치적 입지로 피곤하고 지쳤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몰래 이승만을 정치적인 숙청을 계획에 많은 놀라움을 주었으며, 미국이 전쟁에 그렇게도 적극적 의지가 없음에도 이승만의 북진을 추구하는 점에서 그의 지도력이 정말 의심스러웠다. 임시정부 수립부터 시작하여 미국의 원조를 받던 그가 어느덧 미국과 차질을 빚는 모습을 말이다. 당시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분명하고 견고했으나, 적어도 이들은 필사적이지 않았다. 당시 2차 세계 대전 후의 두 진영의 정치적 파워에 집착했었지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독립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한국의 독립에 중요성을 안 것은 당시 참전한 중하급 장교와 사병들이었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참전해서 죽음으로 한국의 자유를 지켜내었으나, 그 가치를 이승만이 거침없이 무시한 점에서 의외의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그것이 일방적인 내용이 아니라 미국 자체의 공문서 보고라는 점에서 말이다. 미군의 젊은 군인들은 자유의지라는 가치로 참전해었을지 몰라도 미국이란 정부는 그렇지 못함은 절실히 나와 있었다. 아니 소비에트 연방의 무서운 독재자 스탈린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보는 그의 정치적 판단은 매우 공격적인 성향이 아니라 오히려 조바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세계 2차 대전 종료 시까지 독일 나치와 전쟁을 벌인 소련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에 직접적 물자투입은 힘들었고, 게다가 전쟁직접 지원국이 된다면 국제적인 정치외교 입장이 매우 곤란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점을 중국의 모택동의 중국 공산화 성공과 더불어 중국 공산군에 있던 조선인들을 북한에 다시 복귀하여 강한 군사력으로 키워 남한으로 내려가도록 했다. 그리고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도되기 전에 1949년에 이미 황해도 일대에는 전투가 있었다는 점에서 그 당시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은 일반화된 현상인 것 같았다.

 

단지 1950년에 전쟁으로 서울수복과 낙동강전선에 이르는 불리한 전황에서 순식간에 전투가 아닌 정치적 무력항쟁인 전쟁으로 번질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내가 군대 출신이 공군이다. 미국이 에치슨 선언이후 미군을 다 철수했어도, 한국전쟁 발발 후 일본에 있던 미공군이 전쟁 발발 후 제일 먼저 대구에 도착한 사실에 의아해 하였다. 당시 미국에는 공군이 제대로 된 군사조직이 아니었다. 공군에 사용되는 항공기들이 해군 항공모함 내지 육군기지로 의해서 조직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미군이 지원한 항공기가 제일 먼저 한국전투에 들어온다. 미리 전쟁을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실제 일본이 진주만 습격 시에 미군의 주요 작전병력은 많이 없었다는 사실에 고의적인 전쟁명분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한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일본과 전투를 벌인 이유는 진주만 습격이고, 그 습격원인은 미국인 일본이 필요한 군수물품 중에 원유수입을 금지한 것이었다. 모든 기계는 석유에너지로 움직이니 그 석유를 공급받지 못할 경우 일본군은 전쟁을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행위를 보면 첩보전이라든지 심리전이란 고도의 기술과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행위로 인해 2차 세계 대전 이후 전쟁복구 순위에서 한국이 상당히 뒤에 있는 점, 한국전쟁 후 비로소 지원이 오다가도 그 지원의 지속성을 유지할 수 없고 당시 이승만 정권과의 신경전에서의 지원의 차단은 매우 정치적인 암투가 적대국 사이만 아니라 내부의 갈등에도 있었다는 점이다. 그 사이에 전쟁을 하는 주체는 정치선택권자가 아닌 선택자에 의해 지시받는 군인이란 점이다.

 

위에서 언급하나 미국이나 유럽 기타 많은 국가에서 자유를 위해 희생한 젊은 청춘들에게 나는 분명히 경외심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을 보내도록 유도한 자들은 불쾌하게 여긴다. 그들은 한국의 자유가 목적이 아니라 단지 세계패권에 있어서 실험을 한 것이고, 그들의 지원은 진정으로 타국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이해관계란 점이다. 자본주의가 성공시키는 것 까지는 좋으나, 그 성공으로 통한 군장비의 획득은 하나의 시장관계가 형성한다. 전쟁은 단순히 밑에 있는 직접적 무력 행위자와 달리 그 과정이 상이한 점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역사란 상징적 기록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민주자유주의와 더불어 탈산업화된 정보시대에 개인의 역사 역시 중시되나, 기본적으로 역사의 바탕은 큰 사건과 기록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매우 정치적 입지가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 관계에서 우리는 이런 과거의 지난날을 어떻게 다시 되돌아 봐야 할 것인가? 남과 북은 대치되고,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서로 초토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남는 것은 오로지 시체와 잔해물이다. 그런다고 지금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과 북, 한국사회, 국제정세가 참 묘해질 수밖에 없다. 단지 있었다는 사실과 왜 있었고, 어떻게 흘러가야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해 자세히 알아갈 수밖에 없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음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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