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폴리스 2 - 다시 페르세폴리스로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최주현 옮김 / 새만화책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란을 떠나 전쟁이 없는 오스트리아로 넘어온 사트라피, 그녀에게 다가온 유럽은 정말 상이한 곳이었다. 당장의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이 죽어나가고, 거기에 모자라 언제라도 도망을 칠 준비를 해야 하는 이란과 너무 다른 풍경에 많은 문화적인 충격을 받는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란, 자신이 주어진 공간과 시간 속에서 길들여 가는 것이고, 문화라는 것은 그런 길들여지기 위해 존재이기도 하다.

 

또한 문화라는 차이는 국가와 민족에 따라 어느 개인적인 존재를 극과 극으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은 국가와 민족에 따라 다르지만, 같은 국가조차도 말이다. 사실 사트라피가 오스트리아에 오기 전인 이란에 있던 자신의 집에서 그녀는 부모님의 사랑에 의해 자신의 의지가 자유로운 아이로 자라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가정을 벗어난 학교와 사회에서는 다른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국경을 넘어버렸다.

 

과연 그녀가 자유가 다시 온 것인가? 아닌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녀는 당장 지겹고도 짜증나는 베일을 벗어 던질 수가 있었고, 머리카락을 계속 키울 이유도 긴 옷을 입을 이유도 없다. 폭압적인 정권아래 파티와 락음악까지 즐기는 것조차 눈치 보던 그녀에게 여기에서 파티는 일상이었고, 그녀가 즐겨들은 핑크 플로이드는 모두가 그냥 듣는 음악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사소한 것에 해방을 느끼던 이란과 달리 여긴 해방이란 공간이 다시 그녀의 목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그것은 문화적인 차별이다. 먼저 언어권이 유럽이라 독어나 불어 중에 뭔가 했어야 했고, 게다가 그녀가 다닌 학교는 프랑스계 학교라는 점과 기숙사 동료가 독일어를 쓰는 것이 문화적 장벽이었다. 언어의 차이는 결국 상대방과 나의 소통을 단절하게 되므로, 사트라피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야 하고, 그들이 평소 즐기는 방만한 태도까지 즐기어야 했다.

 

가령 흡연, 음주에 넘어 마리화나, 대마초와 같은 환각제를 말이다. 자유라는 것에서 당시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에 반항하고 일탈적 행위로서 자유를 외쳤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환락적인 재미와 감각적이고 일순간의 쾌락을 위한 방편에 그쳤다. 그들이 즐긴 자유라는 것은 그저 일탈과 방만한 태도였다. 그런 태도라도 사트라피는 거기에 목메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너무 외롭고 쓸쓸하고 게다가 견딜 수 없는 마음의 억압이 있었다. 그녀는 이란인이라는 민족적인 정체성에서 많은 혼돈을 겪었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데, 다른 공간에서는 그것조차 망각한 채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물론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가는 곳에 따라 다른 점은 인정해야 하나, 문제는 이란에서 벌여진 비극에 대해 누군가 아무렇게나 왜곡된 시각으로 말한다는 사실을 사트라피는 견딜 수 없는 비극일 것이다.

 

어린 시절에 학교에 가서 주변 친척들이 자유를 위하여 죽었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말하던 어린 소녀였으나, 이제는 그들의 죽음을 하나의 슬픔으로 받아들어야 했다. 인간의 죽음은 인간이 죽음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더 깊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불과 몇 년 사이의 행동이나, 이란 사회내부의 불안은 사트라피의 부모님과 할머니의 안위가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그녀는 깊은 마음을 나눌 자가 없었다. 이란인이라는 외부인이라 그녀는 자유가 있다는 국가조차도 자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평등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등과 자유는 뭔가 다르면서도 한편으로 보완적인 관계이다. 가령 내가 자유를 가지고 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자유가 없다면 그것은 불평등이라는 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평등이란 것은 형식적이라 윤리적이고 인간애적인 부분은 법적 제도적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의지로서 할 수밖에 없다. 사트라피에게 그 평등이란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자기가 머물던 집에 헬러 부인은 겉으로 좋아 보이는 척하고 있었으나, 내심으로 사트라피에 대한 불신감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헬러 박사는 사트라피에게 자신의 물건을 훔쳐갔다고 의심하면서 그녀를 무시한다. 사트라피는 아무리 여기에 적응하려고 해도 그녀는 천상 이란인이었고, 서구사회에서는 그녀가 아무리 서양말과 서양문화를 즐겨도 이란인이라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게다가 남자친구와 사귈 때 그는 사트라피를 데리고 자신의 집에 데려가자, 그의 어머니는 사트라피에게 나가라고 말한다.

 

그녀는 분명 자유가 있으나 자유롭게 되지 못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자신의 존재감을 확신할 수 있다. 그녀에게 성취감으로 아무리 공부를 잘해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도 단지 그뿐이다. 그녀는 사랑이 필요했다. 외로움이란 개인적인 자유이고, 영혼적인 자유일 수 있으나, 인간은 외로움을 이기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그런 그녀에게 이란에 있던 어머니의 방문은 마치 모든 것을 가지는 기분이었다. 단지 아쉬운 점은 자신을 도둑으로 의심한 헬러 부인이 있던 곳에 방을 얻은 것은 어머니와 같이 있을 때이지만 말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사트라피는 결국 방황을 한다. 가출을 한 것이다. 거리에서 잠을 자고 길거리에 있는 담배를 주워 피고, 쓰레기통에서 음식을 주워 먹고 그렇게 1달 이상을 보낸 것이다. 그녀는 몸도 마음도 모두 망가지기 시작해 처음에 기침이 조금씩 나오더니 이제는 끝임 없이 나오다 이젠 입 안에서 피까지 나왔다. 그녀는 오랜 과로와 우울증으로 쓰러졌고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결국 그녀는 모든 것을 정리하여 이란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가 돌아올 때 자신 안에 있던 우울함은 가족과 만남으로 사라질 줄 알았으나, 다시 우울은 멈추지 않았다. 서구사회에서는 이란인이었으나, 이란 안에서는 서구인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어디서나 자신의 발길을 줄 수 없는 그녀에게 다시 우울함으로 가득하기 시작한다. 전쟁이 싫었으나 전쟁을 무의식적으로 상기하던 그녀에게 모순적인 형태로 내보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와중 그녀는 레자와 만나 사랑에 눈을 뜬다. 잘생기고 나름 지적인 그에게서 뭔가 지루한 자신에게 새로운 공감대가 되어줄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환상이었다. 그녀는 남자친구 레자와 결혼하고 난 뒤에 불과 1달 만에 싫증을 느낀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그런 세계가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그들이 서로 원하는 것은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이성이었다. 현실은 전혀 반대였고, 둘 사이에 벽이 가기 시작했으며 결국 이혼을 선택한다. 사트라피에겐 이 이혼은 새로운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여태까지 자신이 가져왔던 억압들이 세상에 대한 반항들로 표출되었는데, 이제 그 반항이 왜 반항인가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예전에 오스트리아에서 이란으로 넘어올 때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미술대학에 다닌 사트라피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이혼하고 난 뒤에 프랑스로 가기로 한 것을 말이다. 가기 전에 우연히 아버지가 선물해준 책과 책을 읽은 후에 만난 이란의 신지식인들에서 그녀는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녀는 진정한 자유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자국에서의 가족과 국가정치의 폭력, 그런다고 외국에 가도 자유라는 것은 없었다. 그녀에게 진정한 자유는 없었다. 단지 그녀의 자유란 자신이 살아온 모든 경험과 현실 속에 받아들인 숙명을 다시 새롭게 재조명하여 그것을 알리는 것이 그녀가 새롭게 만들어갈 자유였다.

 

서구사회에서 이란인, 이란에서 서구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안고 가야했다. 마르잔 사트라피의 제2의 출국은 그녀의 새로운 인생을 도약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인생에서 그녀는 당시 알고 있었고, 이 만화를 만들 때에도 그 알고 있던 것을 다시 언급 한다. 페이지 마지막 부분 그녀의 독백에서 그녀가 출국할 때 가족들의 배웅을 보면서 적은 글이다.

 

<작별은 훨씬 덜 괴로웠다. 10년 전 내가 오스트리아에 갈 때와는 달리 더 이상 전쟁은 없었고, 나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으며, 엄마는 기절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할머니는 여기에 있었다...1994년 9월의 이날 저녁 이후, 운 좋게도 나는 1995년 3월 이란 새해 때 한 번 더 고향을 방문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1996년 1월 4일에 돌아갔다. 자유에는 대가가 따랐다.>

 

사트라피가 출굴 할 때 전쟁은 끝이 났으나, 전쟁이 끝난 후에 이란은 생각이상으로 성을 억압하고, 정부는 필요이상으로 억압적이었다. 그녀는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찾아 프랑스로 갔지만, 대신 영혼의 안식과 자유를 주는 할머니와의 시간은 버려야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운명을 하신다. 언제나 좋은 꽃향기가 나는 할머니의 몸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음은 사트라피에겐 큰 슬픔이 아닐 수가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란 단지 몇 가지 선택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는 길이다. 어떤 선택이라고 할지어도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가 없다. 자유라는 것도 어떤 선택에 따라 앞날이 다르게 변모된다. 하지만 선택한 것에서 진정한 자유가 있냐는 질문에 과연 얼마나 있는 가이다. 우리에겐 자유로운 삶보다는 선택이 주어질 뿐이다. 단지 여러 길 중에 1가지만 선택한 자유만 있다. 물론 생각하거만 그 선택할 수만 있는 자유조차 박탈되는 경우도 많지만 말이다. 그런 사트라피는 지금 프랑스의 유명한 예술인이 되었다. 그녀가 얻은 자유는 더 많은 표현의 장으로 갔으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녀가 그만큼의 자유로운 이야기를 할 때 그녀에겐 또 다른 자유를 희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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