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자유라는 것은 무엇일까? 언제나 인간은 자유를 열망하고 자유를 위해 살아가고 심지어 자유를 위해 죽어간다. 그 자유라는 것에서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그 현실이 아닌 다른 공간에 있는 인간들에게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 정말 다양하고 천차만별이라 무엇이라고 정의내리기가 난색할 정도인 것 같았다.

 

그런 자유의 개념에서 가장 자유라는 이름이 많이 사용되고 가장 유린되며 그리고 가장 신처럼 신봉되다가 때로는 악마의 얼굴로 변하는 전쟁에서, 이 자유를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 것일까? 식민지의 암울함과 동족상잔의 슬픔을 받아온 한국이라는 곳에서 자유라는 이름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숭고와 폭력을 남긴다.

 

따라서 전쟁의 씨앗이 스쳐가거나 혹은 스쳐가는 도중에 있는 국가와 인간이라면 뭔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을까도 한다. 이번에 읽어본 페르세폴리스라는 만화를 보면서 자유라는 이름과 혹은 국가라는 존재에서 어느 한 소녀가 성인여성으로 성정하기까지의 이야기로 통해 그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큰 대가이며, 큰 선물이고, 한편으로 허울 좋은 망상이면서도 반드시 갈구해야할 가치관이란 사실을 파괴적으로 보여준다.

 

그 파괴라는 것은 자아에 대한 파괴도 있을 수도 있으나, 그 파괴 되어가는 과정이 그 소녀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다. 인간에겐 삶과 죽음이 같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나, 그 죽음에서 나의 의지와 운명을 개척하는 도중의 죽음이 아닌 그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무책임한 외부의 압력이라면 정말 납득이 불가하지 않은가?

 

이런 폭력의 시대에 태어난 마르잔 사트라피는 정말 독특한 운명을 가진 여자아이였다. 그녀의 외증조할아버지는 본래 이란국가의 왕이었다. 그는 매우 똑똑하고 열심히 국정을 하려고 했으나, 그의 꿈을 좌절되었다. 그 이유는 이란에서 군부쿠데타가 일어나고 일개 장교 하나가 왕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임금은 샤라고 하는데, 세계 석학들의 전쟁, 테러, 착취에서 빠질 수 없는 독재자로 등급 한다.

 

그의 독재자의 등급에는 많은 원인이 있으나, 기본적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이란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가 난다는 점이다. 석유, 그것은 인류가 기계문명이 시작되고 나서 검은 황금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지금 내가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석유채굴에서 나온 나프타가스로 요리를 해먹는 것이고, 다음날 회사에 출퇴근하기 위해 버스를 타거나 승용차를 운전함에도 디젤유와 휘발유가 필요하다.

 

그것뿐만 아니라, 지금 타이핑을 치는 컴퓨터의 키보드와 마우스조차도 다 석유에 의한 화공산업용품으로 생긴 존재다. 석유라는 것은 20세기부터 시작해 21세기 모든 문명을 지닌 국가라면 필수적으로 챙겨야 할 에너지다. 그런 에너지가 막대한 양이 보유한 이란에 많은 국가들이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20세기 1차, 2차 대전 이후 강대국들은 많은 자본력을 유지 및 재생산을 위해 제3의 국가를 타도할 필요가 있었다.

 

이란의 경우 이슬람문화권이라 기본적으로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무역경제자유주의에 군사적인 적대감은 처음부터 없었다. 차라리 스탈린주의를 위시한 소비에트연방 및 동유럽 국가들이 더욱 골치가 아플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대국들은 이란의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독재정부를 만들고, 민중들을 억압하고 통치한다. 그런 와중에 어린 소녀 사트라피는 시대의 모순과 상처 그리고 반항으로 이어지는 자신을 이야기를 담은 서적이 페르세폴리스다.

 

1권과 2권이 분리되어 있다면, 1권은 그녀가 아직 어린 시절을 중심으로 하여 오스트리아에 있는 학교로 유학가기 전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페르세폴리스라는 책은 단순히 픽션적인 이야기를 담은 만화가 아니라 논픽션을 기본으로 하여 기술해 나가는 하나의 다큐멘터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혹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니 자전적인 회고록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만화로 탄생한 이야기지만, 이것은 만화로 생각하기엔 다소 무거운 정도가 아니라 깊은 좌절과 반항의식을 옆볼 수 있었다. 샤 정권의 독재와 거기에 저항하는 시민들, 그리고 그들을 무참히도 살해하는 권력들, 가장 인상 남는 부분은 어느 극장의 문을 모조리 잠군 후에 거기 안에 화재를 일으켜서 사람들을 못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오는 사람들에 대한 폭력적인 억압, 이게 바로 독재 권력에 맞서는 사람들을 운명일까?

 

감옥에 출옥하여 자유를 맞이하고 싶었으나 얼마 후에 자신의 집에 있는 욕조에 얼굴이 빠진 채 죽은 마르크스주의자, 그것도 모자라 괴한에게 습격당해 교사된 가족들까지, 이런 혼돈스러운 시기에 전쟁까지 일어난다.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이 말이다. 1980년 이라크에서 이란에 대해 침공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도시문명을 파괴를 당한다. 이 모든 원인은 이권에 대한 집착이었다. 아랍권 국가에서 석유가 많이 나와 재정적으로 부유하기도 하나, 한편으로 수로에 대한 집착이었다.

 

물길이 있어야지 무역할 때 유조선이 출입이 가능하고, 환경생태학적으로 생각하면 물이 있어야지 인간은 생존하므로 에너지와 자원에 대한 약탈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미소 냉전 이데올로기가 없어도 말이다. 문제는 이런 것으로 국민의 생활을 처참하게 무너지고, 그 대신 무기를 팔아먹은 국가들은 부를 쌓아갔다. 예전에 전쟁을 하는 국가가 있으면 다른 국가가 두 나라에게 전쟁무기를 팔아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특히나 국가조약에서 금지되어야 화학무기 및 생체병기가 양쪽으로 흘러갔다는 사실이다.

 

20세기 이전의 전쟁은 총기의 총알에 맞거나 창과 칼의 날에 찔리거나 베여 죽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20세기 이후에는 이런 백병전보다는 가스로 통한 화학무기 살상이 가능했다. 전쟁에 희생되는 사람들은 군인이 아니라 그 상대국가 자체의 인간으로 변질된 것이다. 페르세폴리스에서 그런 인도적이지 못한 세계시장 논리를 비판했다. 경제주의에 의한 자유와 인권에 대한 자유는 명백히 다른 것이었으나, 이것이 오용되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존재가 결국 하나의 유물적인 도구에 지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전쟁 중에서 사트라피는 직접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도 보는 것에서, 자신의 주변 사람이 끌려가는 현실까지 인지한다. 그녀가 외국으로 유학가기 전에 그 나라의 14세 미만의 남자아이들은 외국으로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쟁에 끌려가서 민족해방의 전사라는 숭고한 이름이 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숭고한 이름 뒤에는 희생이란 커다란 대가가 있었다. 게다가 끌려가는 아이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어려운 집안의 아이들이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황금열쇠 하나이다. 그 열쇠를 가지고 전쟁터에서 죽으면 천국에 가서 부자가 되어 많은 미인 속에서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것이다.

 

마치 이건 미치광이 종교단체에서 신도들에게 행하는 하나의 주술행위와 같다고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전쟁에 가서 총을 들고 싸우나 결국 지뢰밭에서 산산조각이 난 채로 꽃이 꺾이고 만다. 더욱 비극은 그들은 죽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닌 국가라는 명분 아래였으며, 전쟁으로 통해 이권을 지키려는 자들의 방패막이로 살아가야만 했고, 그 생존이 다하는 순간 총, 폭탄, 지뢰에 의해 사라져야 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인간은 억압이란 공간에 있으면 거기에 맞추어 가면서도 한편으로 거기서 벗어나려는 충돌의지도 있다. 자유가 없는 세계에서 자유라는 이름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외부로부터 억압된 자기의 내면을 해방하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욕망이 들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모습은 어린 소녀 사트라피에게 잘 보인다. 이란에서 서구사회 문명을 차단할 때 그녀는 핑크 플로이드 음악을 듣고, 마이클 잭슨과 나이키를 원했다. 그것이야 말로 어린 그녀에게 하나의 자유라는 공간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사회는 계속 억압적이었다. 여자에게 끊임없이 베일을 착용하기를 강요하고, 여성의 인권은 그저 자신을 받아주는 남성의 재량에 달려 있을 정도였다. 전쟁과 전쟁 후에 사회가 어지러우면 그만큼의 억압과 독재가 강해지는 것은 권력이 특정 세력에 집중되어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성들의 정치적 조직이고, 그 남성이 군사행동 주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억압된 공간에서 모든 것을 제한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공간에 불안한 일상을 할 수밖에 없는 사트라피 가족들은 사트라피를 오스트리아에 유학 보내기로 한다. 그러나 폭력과 억압이 없는 곳에 가서 자유가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만 같았다. 그건 사랑하는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자유를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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