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 - 정치와 사회에 관한 철학에세이
김만권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정치는 무엇이고? 사회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한다. “인간은 정치적(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사회라는 구조 안에서 평생을 머물게 된다. 먼저 가족이라는 작은 혈연지간의 사회, 다음에 학교와 지역사회, 그 다음으로 넘어가면 군대와 직장, 국가까지 연계된다. 사회라는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인간은 자신만의 의견과 생각으로만 살 수 없다.

 

인간과 인간이란 사이를 이어주는 사회구조 속에서 인간은 모든 것을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여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무엇이 필요 한가 라고 상기시켜보면 정치라는 큰 조율적인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많은 문제가 있다. 인간은 언제나 사회라는 틀에 머물기 때문에 인간 본인이 사회적 존재가 아닌 동물적 내지 무의식 또는 식욕, 수면욕, 성욕까지도 사회적 영역에 벗어날 수 없다.

 

밥을 먹는 시간과 공간마저도 사회 안에서 이루어질 문제고, 잠을 자는 공간 역시 자기의 집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집인지 또는 집단 무리인지, 성욕도 부부의 합법적인 행위로 이어지는지 혹은 불법적으로 이루어지는지 미성년자들끼리의 동의로서 오묘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난감한 상황이 계속 벌어진다. 인간이 가진 기본 무의식 욕구마저도 사회적 조건과 정치적 상황에 계속 변화가 온다.

 

인간이 동물적인 요소로 살아가는 것마저도 사회와 밀접한 관계에 있고, 정치적인 영역 아래 영향을 받는다. 실제 저런 기본 욕구마저도 인간이 만든 이성과 그 이성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법과 제도로서 통제를 받는다. 지나친 무의식의 표출은 사회에 큰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하여 인간은 자기의 무의식적 세계의 표출과 또는 욕망, 이성적으로 추구하는 이익을 포기할 수 없는 존재다.

 

어떻게든 자신에게 좋은 것을 찾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행동하기에 정치적인 중재나 판단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많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대부분 인간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그리고 자신 주변 또는 그 너머에 있는 세상에 대해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즉 사회현상에 대해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 누구라도 쉽게 이야기하고 옳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기가 말하고 있는 것에 다른 누군가가 부정하게 될 경우 상당히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한다. 타인의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가치가 월등하게 높은 것이 인간 본인들의 운명이다. 물론 그런 것들에 대해 나 역시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점들로 얼룩진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오로지 이익에 대한 인간의 집착과 그 집착을 받쳐주는 권력이나 힘의 대결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 많은 역사적 기록이나 사건을 참고하더라도 인간의 역사란 결코 아름다운 문화 창조만이 아니라 투쟁과 전쟁, 갈등과 고뇌의 연속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 많은 문제들이 문화 창조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즉 파괴를 위해 창조가 일어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위한 기술 중에서 대중교통과 의료기술이 전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빠른 병력이동과 빠른 적군의 타격은 자동차, 선박, 항공기로 이어지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화학전, 생물학전, 방사능전의 공격이 약학과 의학, 그리고 엑스레이 등과 같은 영상진단장치 기술을 발달시켰다.

 

인간의 갈등이 인간을 파괴하면서 이룩해온 인류의 문명과 역사 속에서 정치라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그 현재의 순간만으로 판단해야할 것인가? 아니면 그 이전과 저기 너머, 앞으로 다가올 미래 그리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의 인간들, 정치라는 것은 언제나 이런 문제에 난봉을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와 사회에 대해 쉽게 말할지언정 그 정치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원인과 문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방법이나 가치들은 정말 찾아가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와 사회를 일상 속에서 말하고 살지만, 정치학과 사회학에 대하여 대부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며, 정치학과 사회학의 원류가 될 수 있는 철학을 더더욱 멀리한다.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마키아 밸리의 군주론으로 통해 철학이 정치에서 분리된 최초라고 하여도 정치에 철학이 따라붙지 않을 수가 없다. 정치는 인간을 상대로 목적의식을 가져야 하는 윤리적인 영역이지 결코 공학적으로 보는 수단적인 영역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 많은 인간들이 희생되고 고통 받고 억울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지 않은가? 이번에 읽은 김만권 박사의 “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들”이란 도서는 정치와 사회에 관한 철학에세이로서 현실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해 담론하는 도서다. 이미 김만권 박사의 서적은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으로 통해 미리 접촉한 바가 있다.

 

앞에도 읽어본 이 책 역시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맞으나 그 이야기 뒤에는 사상과 사상가가 있었다. 사상가는 결국 사회학과 철학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2가지 책에서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을 쉽게 개념을 설명하는 책이라면, 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은 좀 더 내용이 깊이를 추가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기본적으로 두 책에서 마키아 밸리의 등장과 더불어 기본적으로 다루어야할 근대 내지 현대철학자들이 속속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에서 철학적인 영역에서 가장 중요시 다루는 사건은 세계 제1차 내지 2차 대전이다. 20세기에 들어온 인간들이 합리적인 사고를 가졌는지 아니면 광기에 빠졌는지 당시 구분하지 못할 병폐가 세계 도처에 만연했다. 히틀러라는 독재자와 히틀러만큼의 난폭한 스탈린의 등장은 전체주의적인 사회와 국가의 권력이 민주주의사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감시와 통제로 이어지는 여파로 이어졌다.

 

인간이란 자기의 주관과 가치를 명확히 이해하고 살아가기 보다는 그저 파블로프의 개처럼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개인이 자각과 판단 의지를 모두 살해당한 채 말이다. 인간의 광기가 폭발하던 시기에 인권이 무엇인지? 또 그런 인간들이 무참히 살아가야했던 지난 세월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생각하는지 이 책에서 하나의 의문을 던지고, 그 의문에 대해 많은 철학자들의 논리와 주장으로 풀어나간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많은 공감과 이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란 단순히 한 가지로 잴 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 그런다고 하여 인간 모두에게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인정하고 살아가야할 권리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그 가치적인 영역에서 많은 고민이 든다. 루소가 인간은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 니체는 인간을 평등하다는 것이 오히려 불평등하다는 점, 인간의 자유적인 가치가 평등한 인권이 아니라 개인적인 재산권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 등등에서 어떻게 우리는 제대로 판단하고 살아야할지 또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어야 말로 한나 아렌트가 말한 대중(mass), 선동가(mobs), 시민(people, 책에서는 인민)에서 진정한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결국 대중들이 선동가들에게 휘말리지 않고 시민으로서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런 구도를 지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듯 하다. 인간이 합리주의 사상이 나오기 전에 신을 믿는 신화적 세계에서 그것을 제거하는 계몽 자체가 다시 억압이라는 신화로 탄생했다. 오히려 더 합리적인 가치라고 하여 하나의 헤게모니로서 억압과 비이성이란 형태로 나오지 않았던가?

 

아니면 인간은 너무 이성적인가? 혹은 아직 이성이 결여되어서 그런가? 내가 볼 때는 인간은 분명 이성이 결여되어 있지만, 자기 자신은 너무 이성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란 모든 경험적인 조건을 배제하여 순수하게 형이상학적 관념으로서 판단하려고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처럼 이성의 영역은 모든 인간에게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성 자체에 대한 의심과 비판 없이는 나갈 수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나는 이성적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이기에 어느 큰 비이성적인 대규모가 하나의 합리적 이성으로 변모하여 마녀재판을 열어 인간을 사냥하듯이 말이다.

 

그런다고 하여 인간의 이성으로만 바라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인간에게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만 남겨 놓는다면 그것은 육체라는 껍질만 지닌 인공지능 로봇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런 존재가 바로 전체주의적인 국가이며, 그곳에는 오로지 국가권력 합리화를 위해 약자를 계속 희생시켜야만 한다. 누군가 정의롭게 보이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정의롭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그 사회의 정치적 도덕이라고 한다면 정말 정치적이라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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