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과 폭력 - 공산주의 문제에 대한 에세이 우리 시대의 고전 17
메를로 퐁티 지음, 박현모.유영산.이병택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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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도서관에 가서 영국 철학자 브라이언 매기 교수가 저술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철학의 역사”라는 서적을 대여하여 읽은 적이 있었다. 당시 이제 막 철학과 사회학 그리고 문학에 대하여 입문할 시절 본인이 직접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철학사와 철학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이 도서를 빌려보았다.

 

당시 프랑스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라는 분야를 처음 접하면서 이들의 학문 역시 프로이트, 니체, 마르크스, 소쉬르와 같은 근대철학자만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연결이 된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도서를 읽으면서 그리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리스 철학과 그리고 그 이전과 그 외로 하여 시기별로 따라 토마스 아퀴나스, 마키아 밸리, 루소, 칸트, 니체, 마르크스로 점점 따라오다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미국 철학자 러셀과 그리고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가 나왔다.

 

메를로 퐁티라는 인물이란 이름을 여기서 처음 보았고, 현상학에 대한 인식 여부와 더불어 현상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했는지도 몰랐기에 사실 당시 메를로 퐁티라는 인물은 상당히 낯선 존재였다. 그러나 인상이 정말 깊은 점은 무엇이냐면, 메를로 퐁티가 1961년 심장병으로 서거하기 전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철학적인 연구와 업적을 남겼는지 그리고 그가 남긴 많고 많은 연구와 업적으로 메를로 퐁티의 장례식에 수 만명의 인파가 몰렸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이야기로 메를로 퐁티를 생각해본다면 시각(視覺)의 현상학(現象學)이란 도서를 저술하여 후설과 하이데거를 이은 현상학적 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본인은 현상학에 대한 입문을 하지 못했다는 점과, 현상학에서 꼭 다루어야 할 헤겔의 정신현상학(精神現象學)까지도 입문하지 않아 현상학을 뭐라고 딱 표현하기는 어렵다.

 

단지 이 메를로 퐁티라는 사람이 당시나 지금이라도 마르크스주의 내지 신마르크스주의,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에서 마르크스주의적인 요소를 어떻게 다시 보았는지가 아주 흥미로운 점이다. 수 만명의 인파가 몰려온 메를로 퐁티의 장례식과 달리 현대철학과 사상, 그리고 인문학 전반에 큰 영향을 준 마르크스의 죽음에는 불과 열 명 내외의 쓸쓸한 배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죽어도, 엥겔스에 의한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와 20세기 그리고 21세기에 계속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그가 죽을 때까지 저술한 도서였고, 미완성의 명저이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죽은 후에 엥겔스는 죽을 때까지 마르크스의 유지를 이어 받아 마르크스의 글과 사상을 정리하였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마르크스가 시작했으나 그 끝은 엥겔스와 마르크스의 딸에 의해 정리된다.

 

완성되었다고 하나, 그것은 미완의 도서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이란 이미 완성된 책이 아니고, 끝없이 적어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을 집필하던 무렵 영국 도서관에서 애덤 스미스, 리카도 등과 같은 경제학자에 대한 도서를 볼 뿐만 아니라 각종 문학과 철학에 대한 도서까지 참고하여 저술했다. 또한 세계가 움직이고 사회가 조금 유동하는 과정에 마르크스의 자본은 집필 도중에 계속 수정과 추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주석과 첨부내용은 마르크스의 자본은 완성본이 아니라 지금도 오늘 그가 죽은 지 130년이 다 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자본은 적어나가고 있다.

 

어떻게 마르크스주의 또는 신마르크스주의는 그냥 그대로 끝내거나 한번 요동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실을 똑바로 보면서 자신과 사회 그리고 그 세상에 대한 지속적인 과학적, 객관적인 탐구와 비판이 존재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것을 상실하고 그것을 망각하는 순간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그저 사이비주의로 전략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메를로 퐁티의 “휴머니즘과 폭력”이란 이 책은 아마 그런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영향이 미친 러시아혁명과 그 후에 이루어진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을 담은 도서이다. 참고로 이 책의 후반부에 가면 재미있는 말이 있다. 공산주의가 아닌 좌파 지식인이라는 역자들의 후기가 말이다. 그 말의 의미는 아직까지도 좌파하면 공산주의로 보는 한국의 현실과 더불어 공산주의 노선만이 좌파라고 착각하는 많은 인식불가한 자들에 대한 조롱이랄지 아니면 착각이랄지 혹은 아쉬움을 나타낸 것인지, 왠지 모를 다양한 생각을 오고가게 하는 문구가 있다.

 

그렇다면 왜 그런가? 메를로 퐁티의 이 도서의 집필에서 재미있는 이름이 하나 나왔다. 실존주의 철학자이면서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에게 그토록 칭송을 하였던 장 폴 사르트르라는 이름이다. 실존주의적인 장 폴 사르트르는 구조주의 인류학을 만든 레비 스트로스와의 학문적인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다. 그리고 프랑스는 구조주의가 대세를 이룬다. 하지만 레비 스트로스 이전에 장 폴 사르트르는 학문적 동지인 메를로 퐁티와 결별을 맞이하게 된다.

 

그 이유는 한국전쟁의 발발에 의해서다. 기존에 메를로 퐁티는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통한 무능한 차르왕권이 무너진 것을 환영했으나, 러시아혁명 속에 큰 역할을 맡은 레닌이 1924년에 죽고, 1929년 트로츠키가 스탈린에 의해 권력을 잃은 채로 타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이때부터 스탈린주의가 시작되고, 레닌이 후계자로 지명한 6명의 후보자 중에서 트로츠키를 포함한 5명은 모두 죽거나 정치적 숙청을 당하고, 오로지 스탈린만이 살아남아 공안정국을 만든다.

 

그 후에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 스탈린은 북한과 손을 잡고 한국 즉 남한을 남친하게 된다. 따라서 메를로 퐁티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만든 공산주의에 대해 결별을 선언한다. 문제는 그 공산주의의 환상에 장 폴 사르트르가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후에 장 폴 사르트르는 1968년 프랑스 파리 5월 혁명을 지지함에 따라 구좌파적인 낡은 정신을 비판적으로 보고 잘못됨을 인정했는지도 모른다.

 

단지 문제는 이 메를로 퐁티가 어째서 이렇게 바라보게 되었는가 이다. 메를로 퐁티는 단순히 어느 문제되는 것에 대해 배타적으로 대하기보다는 그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의 인식문제로는 어느 문제가 일어날 경우 그것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하기보다는 처음부터 반대하는 개념이 강하다. 그 개념에 대한 이해가 정말 이해하고 있는지 안했는지 모른 채 자기는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아니라면 “나는 혹은 그는 그것을 믿지 못하고 있음에 대해 믿지 못하는 것 자체는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처럼 정말 인간은 자신이 믿거나 믿지 못함을 정말 믿고 있다거나 믿지 못하고 있음에 대해 정말 믿는지 혹은 안믿는지 조차도 분간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인간의 인식이란 언제나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와 한도 안에서 판단하려고 한다. 그 외의 것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음이 보통 인간의 인식이다.

 

인간이 그것을 알기 전에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과 그 범주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보편적인 인식 안에서 알고 있다는 것에서 더더욱 심한 편견과 오해가 생긴다. 그런 점은 정치적인 영역에서는 더 크게 빛을 발휘하게 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폭력이다. 폭력은 분명 타인에 대해 일정한 육체적, 정신적, 소유적인 부분을 훼손 내지 피해를 주는 행위이다. 더구나 폭력의 강도가 강해지면 생명과 존재에 대한 위기감으로 다가온다.

 

이 폭력에 대한 가치와 존재 그리고 거기에 대한 정의, 이 모든 것이 과연 옳고 그런지 혹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주게 된다. 메를로 퐁티가 러시아혁명에 대한 글을 적으면서 기존 차르왕조가 폭력적인 행위 즉 군중억압과 무력사용은 폭력에 의한 정치적 방법이다. 오직 국가만이 폭력의 정당화할 수 있다는 말처럼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 이전 봉건적 국가에서는 국가적인 권력은 곧 군주와 군주를 기반으로 하는 세력에 대한 정치권력 합리화이므로 국가의 정치적 권력은 하나의 정당성을 가졌다.

 

하지만 권력의 집중은 부패하게 되어있고, 부패된 권력은 결국 폭력을 부르게 되기 마련이다. 러시아혁명은 폭력으로 물든 차르왕권에 대해 러시아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군인과 여성이란 하위조직이 부패하고 지나친 횡포로 인해 그들의 차르를 내몰았다. 폭력에 대항하는 혁명이라고 하나 사실 그 혁명조차도 폭력이라는 정당성을 가지게 되었다. 혹은 그런 폭력에 대항하여 폭력을 남용한 혁명가도 이후 다른 사람들에 의해 폭력적인 행위를 당한다.

 

그렇다면 누가 평화와 정의를 위한 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책에서는 “가치, 도덕적, 순수성, 내적 인간에 대한 허세적인 숭배는 폭력, 증오, 환상과 은밀한 유사성이 있다”라고 되어 있다. 어떻게 본다면 기존 체계에 대한 문제에 대한 반발은 역사적인 주체 당사자에게 당연한 권리이겠지만, 한편 다르게 생각하면 그것에 대한 반항 역시 기존 체계와 더불어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나지 않겠는가? 라는 의문을 던진다.

 

이전에 가라타니 고진의 도서에서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후진국인 나라에서 그것도 타국의 지배를 받는 나라가 독립을 하려고 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예를 들어 식민지국가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조직은 진보적인 존재이고, 그것을 방해하는 존재하는 극단적 인종주의 내지 국가주의적 보수에 가까운 존재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진보적인 독립 운동가들이 나라를 되찾으면 그들은 진보노선이 아니라 보수노선 특히 민족주의적인 노선을 걷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이제 막 세운 국가는 매우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에 의해 건국한 나라는 결국 내외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에 다소 강압적인 전체주의적인 정치가 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러시아혁명까지의 그 투쟁이 역사는 분명 민주주의적이지 못하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불안을 초래한 차르의 퇴진은 분명 옳은 일이다. 그렇지만 그 이후의 길이 문제였던 것이다. 당시 세계는 군국주의와 더불어 식민지 개척을 위하여 끊임없이 세계분쟁이 일어났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과 같은 서구국가들은 대량생산된 공업물품을 팔고, 값싼 원자재가 필요했다. 따라서 그들에게 경제적 식민지는 필수였다. 그런 점에서 땅이 넓고 정치적으로 불안한 러시아는 분명 위기의 국가였을 것이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패배한 경험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 다른 국가 강대국들의 손실을 막기 위한 총알받이로 출전하였던 러시아군으로서는 아마도 통제라는 수단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스탈린 체제에 들어서면서 러시아혁명의 혁명가들은 점차 숙청되어가고, 소비에트연방은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가고 있었으나, 오히려 그렇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이름이 오히려 프롤레타리아를 억압했다. 또한 자본주의에 반하는 공산주의라도 경제적인 조건은 필요했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중의 하나인 트로츠키는 숙청당하기 전에 그런 점을 고려하여 농업을 육성하려고 했다.

 

또한 다른 지도자 역시 식량을 위한 농업과 무역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였던 트로츠키가 우파적인 정책으로 부농에게 농업을 유지할 것을 권했고, 이에 반대하던 세력은 집단화를 요구했다. 아마 소비에트연방의 가장 큰 실수는 인간은 모두 이상주의적인 존재가 아니라 개인주의적인 존재가 가깝다는 점을 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러시아혁명은 이상주의적인 가치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존에 달린 문제였다.

 

이것에 따라 생각하면 노동자와 농민이라는 대중, 즉 프롤레타리아의 존재에 대한 강렬한 의지는 분명히 따르고 이에 이들을 제대로 인지시키고 각자의 존재를 알도록 하는 것이 지식인들의 의무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이란 자신의 이성을 키우기보다는 이미 이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욱 쉽고 편하고 흔하다는 점이다. 이런 점들은 집단주의적인 사고로 전환되어 이른바 파시스트적인 관념으로 발전할 수 있다.

 

군중심리로 통한 파시즘은 비이성적인 사고와 관념이 그것 자체 합리적 이성과 관념으로 변모되어 폭력적이 하나의 미적인 가치로 변하는 순간 즉 광기가 보편적 가치가 되는 순간 파시즘이란 큰 위기가 다가온다. 소비에트연방에서 추구하던 그 혁명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번으로 끝났기에 실패한 혁명이 되었다. 사실 루이 알튀세르가 만들어가고 싶은 마르크스주의란 관념적인 부분과 유물론적인 부분이 끊임없이 서로를 비판하고 존재함으로 그 경향을 찾아 발전을 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공산주의는 없어지고, 그나마 남은 북한마저 공산주의국가 아닌 그저 스탈린주의를 모방한 국가자본주의에 불과하다. 국가자본주의도 매우 아깝고 아쉬운지 가라타니 고진은 북한 독재체계를 이씨 조선의 연장이라고 한다. 이미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끝나버린 봉건국가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을 유토피아적 망상으로 인간중심이라 하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그것을 합당하게 보이게 하는 폭력만이 존재한다. 물론 그런 폭력적인 부분은 반드시 저런 허황된 유토피아(사실은 디스토피아에 가까우나)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테러리즘이 일어나는 현대사회 국제무대도 마찬가지이다. 테러의 발달은 무엇인가? 테러를 가하는 존재가 소수약자라면 반드시 그 소수약자에 대한 폭력적인 수단이 가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수단에 의해 테러리즘을 일으킨 존재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가나 조직들은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반테러리즘으로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체도 테러리즘과 별반 차이 없는 폭력이란 점에서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는 정치적 행위에는 반드시 폭력을 수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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