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 사후의 트로츠키주의 - 국제사회주의경향의 기원
토니 클리프 지음, 이수현 옮김 / 책갈피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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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 중에서 아직 읽어보지 않은 소설로 아리랑이란 작품이 있다. 조정래 작가의 역사소설로서 실존 인물인 김산이란 인물을 토대로 당시 일본강점기 아래 비극적인 시대상황과 동시에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쉽게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 소설의 주인공 김산은 사회주의 노선에 따라 움직인 독립군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독립운동을 한 분들 중에 미국의 자유주의와 더불어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로서 활동했는데 불구하고 왜 후자 측이 소비에트 연방에 의해 숙청이 되었을까 라는 것이다. 예전에 본 드라마 중에 김두한을 소재로 한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의 아버지가 독립군의 위대한 장군인 백야 김좌진으로 나온다.

 

김좌진 장군은 항일활동을 전개하면서 조선의 독립과 더불어 민족정신을 재정비한 위대한 선조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그 인물이 공산주의자에게 살해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이다. 소비에트 연방이 기존에 항일투쟁활동을 하던 중국과 조선에게 영향을 줄망정 방해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선 독립 운동하는 사람들이 숙청되고, 게다가 강제로 소비에트 연방에 의해 이주되었다.

 

그것은 누구의 계략인가? 1927년 러시아에서는 매우 특별한 일이 발생된다. 그것은 레닌과 더불어 러시아 왕정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상과 체계를 펼치려 한 트로츠키가 소비에트 공산당에서 제외되고, 1929년 러시아 영토로부터 추방된다. 그것은 결국 트로츠키와 적대관계로 되어버린 스탈린이 소비에트 연방을 장악한 것이었다.

 

스탈린의 소비에트 연방의 장악은 결국 기존 반파시스트 내지 반독재에 저항한 마르크스-레닌으로 이어지는 사상이 결국 막히게 된 것이다. 문학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보면 나폴레옹이란 사나운 돼지가 용기 있고 지혜로운 스노볼이란 작은 돼지를 내쫓으면서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독재와 암흑정치에 대해 비판한다.

 

그 모든 암흑정치의 원인점은 바로 스탈린에 의한 트로츠키의 추방이고, 그것도 모자라 트로츠키는 멕시코에서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당한다. 트로츠키가 왜 이렇게도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를까? 전에 읽어 보았던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史에서 한국의 근현대사의 암울한 이야기를 다시 수중 올라왔을 때 아직까지 한국에 강력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메카시즘의 덫을 결국 스탈린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트로츠키의 추방은 결국 진정한 민주주의를 꿈꾸던 볼셰비키의 영웅을 영원한 추방으로 이어짐에서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나오던 비극은 시작되었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에 의한 숙청에서 소비에트 연방을 실패하거나 또는 변질된 노동자의 국가로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트로츠키 사후의 트로츠키주의를 저술한 토니 클리프는 소비에트 연방이 변질된 노동자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가 자본을 소유하고 독점해 버리는 국가자본주의라고 한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국가자본주의, 사실 일반적인 자본주의는 자본의 유통과 힘으로 통해 시장경제를 자유적으로 활동하는 곳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소비에트 연방과 더불어 동유럽, 현재 유일하게 스탈린주의에 골수처럼 박힌 북한의 국가독점이다. 그것은 하나의 전체주의이고 파시스트의 국가였다.

 

재미있는 내용은 예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스트에 몸담은 자들이 반파시스트 세력에 제대로 된 응징이나 처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과 같이 권력을 소유했다. 가령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라면 정치적인 참여가 농민과 노동자들이 많아야 하나 오히려 엘리트와 재력가 내지 관료들이 더 많았다.

 

처음에는 그나마 농민과 노동자처럼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제일 많은 국민이 많은 참여를 보이다가 어느 순간 그 비율이 줄어들고 어느새 국가 당을 장악하는 것은 관료들이 되었으며, 이것은 곧 관료주의 내지 전체주의로 변모된 것이다. 솔직히 말해 모택동과 같은 중국 공산당이라 하는 작자도 결국 관료들과 군인들로 채워진 하나의 권력수단으로 변모했다.

 

군중에 향해서는 자유와 평등을 외쳤지만 그 뒤로는 권력의 장악에 힘쓴 것이다. 물론 이런 아이러니한 이야기는 토니 클리프의 어린 시절에 나온다. 고통 받는 노동자가 이스라엘인이냐 팔레스타인민족이냐에 따라 서로 차별을 하는 것이다. 과연 이들의 적은 누구란 말인가? 솔직히 말하여 진실로 우리가 봐야 하는 것보다는 그저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비록 페이지 수도 작고 책의 크기도 작아 봐야할 내용은 적지만, 생각할 것들은 정말 복잡하다. 마르크스 이후 레닌과 트로츠키의 볼셰비키 이야기, 글리고 트로츠키와 스탈린과의 마찰에서 말이다. 최근에 스탈린에 대한 기사를 봤는데, 스탈린이 자기가 사랑한 여자에게 보낸 연서가 아주 로맨틱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로맨틱이 아닌 악마틱했다. 미소 냉전 이데올로기는 스탈린과 스탈린을 위주로 한 허울 좋은 반파시스트의 파시즘이 결국 자기 권력만 나누어 먹으려 한 위선자의 도구로만 사용되었다.

 

그래서 1967년 체 게바라가 죽을 시에 소비에트 연방의 스탈린주의자들은 오히려 체 게바라를 부담스러워했다. 결국 변질된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 위에 군림하려던 동물농장의 주인공 나폴레옹이란 돼지였다. 그리고 조심할 점은 스탈린주의의 나폴레옹만이 문제가 아니라 나폴레옹과 같이 식사하러 온 옆 동네 농장 주인장들도 역시 만만치 않은 존재다. 그러나 반대가 있기에 그 옆 동네 농장 주인장들은 편하게 먹고 마시고 논다.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것 중에 최고는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리마인드 한다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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