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체에 대한 권리
에티엔 발리바르 지음, 진태원 옮김 / 후마니타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정치체에 대한 권리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인간들이 누리는 권리라는 것이 무엇일까? 혹은 그 권리를 당연한 것이고, 만약 당연하다면 과연 그것이 나만 우리만이란 슬로건을 내세우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지은 저자는 “에티엔 발리바르”로 프랑스 파리10(낭테르)대학의 교수로 재직한 사람이다. 번역자는 이전에 자크 데리다가 저술한 마르크스의 유령을 번역한 진태원 교수이다. 진태원 교수가 주로 프랑스 사회학, 철학, 정치학 등 다양한 도서를 번역하는 것으로 아는데, 여기서 진태원 교수의 연구목적을 이 책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아니 애초부터 진태원 교수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참고로 역자후기를 유심히 보면 2011년 9월에 번역을 완료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갈등과 원인들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정치체에 대한 권리라는 책으로 통해 과거 프랑스에 있었던 일들과 그리고 그 일들을 서술하는 발리바르의 연구에서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그것의 원인은 무엇일까? 생각을 할 수 있다.

다소 철학적인 범주라기보다는 정치학 범주에 가까운 이 책은 정치라는 것 역시 철학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들을 나에게 부각시켜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발리바르는 프랑스란 국가에 대한 문제점을 소개했다. 그 문제점이란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는 자유와 평화 등 같은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를 잘 지키고 보전한 국가로 알고 있다.

게다가 루이16세 국왕과 마리 앙투와네트 여왕을 날카로운 단두대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만든 국가이다. 그 후에 자코뱅파, 왕당파, 나폴레옹, 독일과의 전쟁, 세계 제1차 및 2차 대전 등등 그 만큼 많고 많은 전쟁과 혁명, 사건들이 늘 존재했던 나라이다.

또한 위대한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프랑스 혁명 전에 있다가, 20C에 도달해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 문학자 롤랑 바르트, 실천하는 철학자 미셀 푸코, 프로이트를 이은 정신분석학의 권위자 자크 라캉 등 이른바 프랑스에서 등장한 구조주의와 그 뒤를 이은 후기 구조주의는 21C에 살아가는 지금 현실에서도 그들의 철학과 사상들은 위대한 업적으로 남겨져 있다. 또한 프랑스는 철학과 더불어 피카소를 배출한 예술의 명국이 아닌가?

그런데도 이런 자유와 평화, 철학과 예술이 발전한 나라에도 멍은 있었다. 아니 확실히 정말 이런 문제는 잘못되었다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그것은 오래전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고, 알제리 독립전쟁에서 프랑스가 알제리에 가한 행동들 역시 과연 자유와 평화를 외친 국가라는 슬로건에 부합되는가이다.

이전에 다른 도서에서 paris-match 즉 파리의 마치라는 사진을 보았다. 이 사진에는 어느 흑인 소년이 프랑스 국기를 보며 경례를 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이 의미는 과거 프랑스에서 알제리 독립전쟁에 참여하면서 자신들의 전쟁이 합당하고 정의롭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한 하나의 광고인 것이다.

흑인소년이 프랑스 국기를 보고 경례한다는 의미는 결국 흑인소년은 알제리 국가국민이고 그들은 프랑스에 충성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흑인의 선택 범주에서 어른이 아닌 소년의 의미는 아직 그들은 어리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어리고 미숙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지배하여 올바르게 그들 위에 군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마치 서양이 동양, 아프리카, 혹은 문화적 수준이 자신들보다 미개한 나라와 민족들은 문화적으로 우수한 국가와 민족에게 통치를 받는 것이 합당한 파시즘이 이르게 된다. 그런 파시즘을 이 책 정치체에 대한 권리에서 다루고 있다. 파시즘은 상당히 무섭다. 과거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파시즘적인 정치노선으로 통해 다른 민족을 억압하고 자국민들을 전체주의로 만들어버렸다.

특히 히틀러의 나치즘은 유대인에 대한 학살과 더불어 잔인한 반인륜적 행위를 저질렀다. 문제는 이런 파시즘에 대항하는 여러 연합국 노선이 당시 그들의 투쟁은 옳으나 그 후가 문제다. 그들 역시 파시즘이 되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파시즘을 척결한 순간부터 자신들은 파시즘이 아니라고 하는 안일한 의식구조다.

혹은 그런 의식구조가 자기들에겐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적인 진리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고, 그런 자유와 평등이 없는 국가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최근 들어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더불어 이른바 자본주의국가와 대립되던 (스탈린주의적인) 공산주의의 몰락은 탈이데올로기와 탈냉전으로 이어지겠지만, 그런다고 하여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프랑스는 아주 잔인한 법을 시행한다. 어떤 정치인 법을 발효한다. 문제는 그 법에서 프랑스의 외국인들을 강제로 비행기로 태워 추방하는 것이다. 그들의 인권과 의식에 대한 눈곱만큼의 인정도 없이 보냈다. 게다가 비행기 안에는 산통으로 괴로워하던 임부도 있었다. 임산부가 그 긴 시간동안 비행기 안에서 산통으로 괴로워하면 임산부와 태아의 생명이 위험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강제출국을 시켰다. 이게 과연 인권적이란 말인가? 그러나 프랑스에선 오히려 이것이 인권적이라 말한다. 프랑스에서 프랑스인이 프랑스어로 프랑스 안의 모든 것을 누려야 한다. 이른바 국민사회국가라는 것으로 자기 자신들이 파시스트로 변모한 것도 모른채 파시즘에 빠진 것이다. 또한 유럽에서 극단적인 극우들은 유대인들의 묘지를 훼손하였는데, 그들은 자신들을 네오-나치즘이라고 했다.

이미 죽은 자들의 무덤인 묘지를 훼손할 필요가 없으나 그들은 자신들이 애국주의를 외친다. 타자와의 경계선을 정하여 자신들의 가치가 옳다고 폭력적인 행동이 결국 애국이란 단어로 연계되는 게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태이다. 최근 얼마 전에는 어느 극우인물이 기관총을 난사하여 사람 100명 정도가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과연 이런 행동들이 왜 일어나는가?

이른바 국민을 위해서라는 슬로건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혹은 그 국민이 구성하는 국가를 위해서라는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불안함과 불편함을 자기 스스로 개선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아닌 타자들에게 전가하여 자기비판에서 도피한다. 이런 방법은 프랑스에서 우파나 좌파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국가경제를 위해서라든지 혹은 노동자를 위해서라든지 어느 쪽이든 파시즘으로 빠진다.

그러나 본인들은 파시즘이 아니라고 한다. 파시즘은 계속 가속화되어가고 있으나, 그 주범들은 각성하지 못한 채 계속 자신들의 파시즘을 정당화할 희생양을 찾는다. 특히 그것이 외국인이란 존재에 가장 부합된다. 초기 그들이 유입될 때에는 식민지정책으로 인한 노예일수고 있고, 혹은 아메리카 드림처럼 해외이주로 통한 성공을 꿈꾸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처음 낯선 타국에 와서 제대로 기반을 갖출 리가 만무하다.

그들은 최하의 조건에서 시작하여 갖은 허드렛일이나 위험한 일들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들도 점차 교육을 받고, 주변 현지인과 교류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 사회에서 새로운 존재로 등장한다. 문제는 그들을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내치는가? 그러나 아파르트헤이트 즉 인종차별적인 행위들은 여지없이 터진다.

그런 행위를 저지르는 국민들은 자신들이 과연 자유와 평등에 의거한 인민주권을 외치는 것에서 과연 옳은가?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만의 자유와 평등을 지키기 위해 이방인들을 몰락시키려 한다. 방법은 많다. 법적으로 강제퇴거와 출국시키거나 또는 사회구조적으로 견디기가 어렵게 하던가? 그러나 그런 일들은 아주 쉽게도 혹은 당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그렇게 만들고 실행하는 이들은 자유와 평화를 외치고 있다. 프랑스에서 바로 그 무섭고도 잔인한 파시즘이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도구로 되어가고 있는 셈인 것이다.

아마 그런 내용을 진태원 교수가 이 책을 번역하여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한 것이라면 우리 역시 그런 파시즘에 빠져있지 않은가? 하지만 문제는 파시즘에 대항하여 생긴 대항세력 역시 파시즘화되어 간다면 결국 파시즘끼리 싸움이다. 그래도 문제는 먼저 파시즘으로 무장하여 파시즘을 만들게 한 원인부터 찾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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