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죽었는가? - 새로운 논쟁을 위하여
다니엘 벤사이드 외 지음, 김상운 외 옮김 / 난장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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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죽었는가? 라는 도서는 현대사회에서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한 정치, 사회, 철학, 심리학 등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학자의 논제에 대해 기술한 도서이다. 이 책을 보자면 현대사회에서 세계에서 내놓으라고 하는 유명 대석학들의 의견과 사고에서 과연 민주주의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책을 읽어보면 8명의 세계 유명 석학들이 길지 않은 페이지에 자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흐름과 현황을 적어 놓았다. 그들의 의견은 모두 조금씩 다르게 나왔으나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에 민주주의가 과연 민주주의로서 가치를 발현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은 모두 가지고 있었다.

우리들은 진정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그것이 오히려 아니라는 것일까? 위에서 언급하다시피 세계에서 소비에트 연방 해체는 공산주의국가와 민주주의국가의 2원화적인 대립을 피할 수 없게 된 운명을 바꾸어 버렸다. 이른바 탈(脫)이데올로기. 탈(脫)냉전 등의 단어들이 줄기차게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탈이데올로기적인 면이 강조되면 될수록 오히려 이데올로기로 인한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완성되기 보다는 오히려 비뚤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 민주주의라는 것은 결국 다수의 국민이 가진 투표권을 토대로 선출되나, 그 투표권에 의해 추대된 정치대표자가 과연 정치적인 행보가 옳은지?

혹은 다시 투표함에 있어서 국민들 즉 주권을 가진 투표권자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한 활동을 하는지 말이다. 이들을 움직이는데 뭔가 강력한 미끼가 필요할 것이다.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국가에서 민주주의적인 방법보다는 전체주의적인 부분이 강하다.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민주주의를 부정해야 한다.

그것이 어떻게 본다면 독일의 나치즘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민족 그리고 독일이란 국가를 위해 타인을 희생시켜야 했다. 자신들이 정당함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를 자신들의 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혹은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라던 그리스 아테네의 폴리스도 그렇다. 폴리스에서 정말 정치적으로 민주적으로 잘 운영하더라도 단 10%의 남자성인이었다.

이방인, 노예, 여자, 아이들, 그 밖의 소외계층은 무시되었다. 민주주의는 이때까지 누군가의 기반과 혹은 누군가를 국가의 적이나 사회 내부의 악적인 존재가 존재할 때 정말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 것은 이 책에서 아직도 고발하고 있다. 가령 기독교와 반기독교 사이의 문명대립은 과거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가령 십자군 전쟁과 이슬람 문화권 국가에 대한 이질적인 존재감은 과연 세계 평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평화가 정당한 것인가 의심하게 한다.

우리는 계속 우리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그것을 하나의 교조적인 잣대로 삼아 마치 신의 영역까지 올려, 더 이상 거기에 의문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여 그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망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에서는 민주주의자라고 외치는 자들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망가뜨린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목 높여 외치는 하나의 진리이기도 하나 그 진리가 의도되지 않거나 혹은 조작되어 타인들의 지배를 합리화한 것이 아닌가 싶다.

모든 국가적 정치에서 자유로운 국민 스스로의 권리를 찾을 때 민주주의라면 우린 어떤 역사를 보았는가? 예전에 맑스·엥겔스 평전을 읽었는데, 187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는 독일군에 대항한 프랑스 파리의 시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른바 파리코뮈니스트라고 불렀다. 그들이 독일군에 저항한 이유는 당시 독일이 프랑스 정부와 짜고 프랑스 국민들을 국가권력 안에 가두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리의 시민들은 무력으로 진압하는 독일군과 독재로 억압하는 프랑스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다. 하지만 그 역사는 차마 말할 수 없이 참혹했다. 무참히 파리의 시민들은 무장된 총칼에 무너지고, 점령된 파리의 거리는 총살된 시민들의 주검만이 무성했다. 맑스·엥겔스 평전에 본 당시 기록에는 10대 후반의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그는 몸이 아주 불편했고, 게다가 10대 중반의 여자아이도 있었다.

왜 이들은 이기는 것이 힘든 싸움에 총탄이 쏟아지는 그 거리에서 목숨을 던져 투쟁할까? 민주주의라는 것은 과연 이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행동해야 과연 납득하게 될까? 아니면 민주주의라는 이름은 단순히 국민들을 속이고 만든 하나의 상징에 불과할까? 그렇다면 그 상징이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최고의 적이 아닐까?

세상에 정보가 발전하고 교류도 발전했다. 그러나 민주주의국가인 국가가 과연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키는가? 민주주의라고 외치는 국가가 식민지를 건설하고 식민지 국민들을 억압하고 있는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자신만의 이익에 충실한 현실 속에서도 민주주의라고 외친다. 이런 모순된 현실에서 민주주의라는 슬로건은 가장 잔혹하고 비겁한 상징이다.

민주주의라는 슬로건을 절실하게 유용하게 합리적으로 말하는 것이 이제는 민주주의를 망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의 주인들은 그것을 파악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른바 소비의 사회와 스펙터클의 사회라는 거대한 인간의 욕망과 수동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본다면 진정한 민주주의는 주인 없는 노예, 노예 없는 주인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주인도 노예도 없다.

하지만 현재 사회는 민주주의는 주인과 노예를 만들어도 그것이 아닌 것처럼 합리적으로 눈을 속인다. 그래서 스펙터클의 사회가 아닌가? 그 스펙터클은 이미지가 매개가 되고, 이미지의 매개에서 이미지는 우리의 욕망을 가장 잘 표현한 존재이니, 그 욕망이 소비로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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