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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ㅣ 블랙 캣(Black Cat) 17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이기원 옮김 / 영림카디널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소설은 이번에 나는 처음 읽어 보았다. 본래 나는 소설을 그렇게 많이 보는 편이 아닌데, 게다가 그 소설의 작가가 현대문학작가라면 더더욱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작품을 읽기 전에 전반적으로 책을 훑어보았을 때 알 수 있는 것은 북유럽에도 이런 유명한 추리소설작가가 활동하고 있었구나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작품을 보면서 생각하는 점은 이 소설은 시나리오가 매우 탄탄하고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상황이 매우 다채롭게 느꼈다. 그것은 어느 주인공을 시점으로 하여 진행되는 대부분의 서사 속의 인물처럼 적어내려 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나 범죄나 추리물들을 살펴보면 주인공들은 언제나 타인들에게 비해 꽤 좋은 매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항상 강한 의지와 넓은 마음 그리고 준수한 외모 등을 말이다. 사실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인 에를렌두르는 보통 추리소설이나 범죄소설에 등장할 만한 베테랑 형사는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의 베테랑을 인정하는 부분에 비해 그가 작가의 눈에 혹은 작품 내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의 눈에는 그렇게 좋은 인상을 볼 수 없다.
오히려 고집이 세고, 억센 성격에 상대방을 매우 몰아 붙여 넣고 의심하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형사라고 할까나? 게다가 가정환경도 매우 불량하다. 아내와의 결혼은 파경을 맞아 이혼하여 그 아내라는 사람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연애를 계속 즐기고 있었고, 그런 아내와 사랑 아닌 사랑으로 나온 자식들은 모두 폐인처럼 변했다.
특히 그의 딸은 마약에 손을 댈 뿐만 아니라 매춘부라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하였다. 그런 밑바닥 인생을 살아 왔어도 생명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지 에를렌두르의 딸 에바는 임신 도중 7개월 되는 때에 유산을 하고 만다. 7개월이 되버린 사산아에 대한 집착과 죄의식은 그녀로 하여금 마약과 매춘은 끝나게 할지는 몰라도 담배와 우울은 끊임없이 섭취하고 있었다.
이런 우울한 형사의 가족사에 서양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의 날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에를렌두르에겐 치명적인 시간임은 분명하다. 그런 치명적인 날에 살인사건과 아동폭행사건까지 터지니 그의 마음에는 수심이 쌓인다. 그런 상황에서 이야기의 진행은 이렇다. 에들렌두르가 추운 겨울 어느 고급호텔에서 사건을 접한다. 그 호텔에서 일하던 점원 남자가 그것도 호텔 크리스마스 축제에 산타로 나올 예정인 그가 바지를 벗겨진 나체로 칼에 찔려 죽은 것이다. 게다가 콘돔에는 정액 대신 인간의 침인 타액으로 가득한 채 말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두고 주변 호텔직원들을 캐고 다니지만 죽은 자의 동료들은 모두 그를 모른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에게 찾아온 아동 남성 성욕애자 영국인 헨리, 칼에 찔린 채 아이들의 희망이 아닌 절망으로 죽은 산타 구드라우구르의 가족, 친구, 스승 등을 찾아가면서 살인사건의 접점을 찾아간다. 그러나 막상 죽음의 비밀은 어디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닌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을 살인기구 장치 안에 집어넣고 다양한 사람 중에 누가 살아남는지 알아보려한 큐브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큐브처럼 이 소설에서는 그렇게 스릴러를 전개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답은 처음이었다는 증거다. 모든 범죄는 시작점과 조우하는 느낌이 여기서 강했다. 그것은 죽은 구드라우구르를 발견한 아름다운 아가씨 외스프의 비명에서이니 사실 제일 처음 목격자가 범죄자일 가능성이 높고 은폐시킬 확률도 높다는 것을 이 소설에서 진행한다.
하지만 왜 살해할 수밖에 없는가? 살해된 이후라도 왜 그렇게도 살해당했다는 분노보다는 그 외의 분노에 말려야 했는가? 혹은 그런 사건에 던져진 에들렌두르는 왜 이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는가? 단순히 이 소설은 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쫓아가는 추격자만이 아니었다. 살해된 구드라우구르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꼭두각시인형처럼 아무것도 못했다. 그저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도구가 되어야 하는 구드라우구르, 그런 그를 다정스레 대해주는 어머니,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다.
어머니의 죽음과 구드라우구르의 목소리 변성, 그 후에 돌아오는 모욕, 구드라우구르는 오로지 자신에게 희망이오 빛인 어머니를 잊지 못했는지, 이제는 그가 어머니가 되고자했다. 어머니의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장식을 하고, 아마 그런 행동으로 인해 그는 동성연애자가 되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들로 말이다. 물론 구드라우구르의 누나 역시 동생에 대한 아버지의 집착으로 소외감을 느끼고, 구드라우구르가 집을 나가고, 동생이 나가기 전 아버지가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되자 평생 아버지를 보살핀다.
왜 이들은 이렇게도 잔혹하고 비극적인 운명으로 오게 되었을까? 죽은 산타는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나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한 가족은 비극적으로 마감한다. 그리고 죽은 산타를 차가운 칼로 찌른 살인자, 그 살인자 역시 불행했다. 살인자는 살인자로 살고 싶기 보다는 살인을 할 수밖에 없는 강박관념으로 몰고 갔다. 게이인 산타, 그리고 게이에게 농락당하는 살인자의 동생, 그 동생은 마약과 나태로 절망에 가득한 인생이다.
그래도 같은 배에서 태어난 남매인 이상 누나로서 그를 도와야 했다. 하지만 동생의 약물에 빠지면 빠질수록 누나와 가족들은 어려움에 처하고, 잦은 협박에 시달린다. 그런 와중 살인이 있기 전 6개월 살인자는 동생에게 마약을 팔았단 작자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런 강간을 당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바로 자기 눈앞에 동생이 그의 가난으로 인해 어느 산타행세를 하는 게이에게 농락당한다. 그녀는 동생의 모습에서 예전에 윤간당하 본인의 비참함을 떠오르면 피가 끓고 결국 산타의 가슴에서 따뜻하고 화려한 불꽃이 뿜어져 나온다.
이런 살인사건에서 에들렌두르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증오, 그리고 헌신과 배신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지배하던 어둠에 몸은 맡긴다. 어린 시절 산에서 놀다가 조난당한 2살 어린 가장 친하고 소중한 동생을 말이다. 동생은 평생 시체조차 찾지 못했고, 아버지는 무기력한 인생으로 마감하였고, 어머니와 자신에게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은 잃어버린 늙은 늑대처럼 다정하던 아버지는 이제 죽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에들렌두르는 그런 가족관계에서 숨이 막혔다. 자신이 차라리 죽었다면 그리고 동생이 살았다면 그런 집안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러나 동생 역시 형이 죽고 자기만 살아있다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어느 소년이 심하게 다쳐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 소년의 아버지가 범인으로 몰렸으나, 그 소년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따르고 있었다. 사실 알고 보니 정신병원에 입원한 어머니가 밖에 우연히 산책할 기회에서 몰래 집에 가서 자신의 아들을 폭행한 것이다. 어떻게 힘없는 어린 아이를 그것도 자신이 낳은 아이를 무참하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말인가? 구드라우구르의 죽음을 조사하는 내내 에들렌두르는 그런 자신의 지난 과거와 그런 과거에서 무의식적으로 벗어나지 못해 이혼까지 맛본 자신을 허무해 한다.
그런 허무함에서 자기 자식들이 있는 것은 알아도 자식들에게 헌신적인 아버지가 아닌 무심한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에게 실망한 자식들은 모두 비행을 저지르고, 딸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증오로 에들렌두르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얼어붙은 가족관계가 게다가 가족들이 있어야 크리스마스의 악몽도 에들렌두르에겐 이번 사건에선 하나의 전환점이 된 듯하다. 가족 간의 폭력사건과 구드라우구르의 사건의 원인은 가족에 대한 관계로 얽혀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