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중학생이 보는 금오신화 중학생 독후감 따라잡기 (중학생 독후감 필독선) 46
김시습 지음, 성낙수 엮음 / 신원문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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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를 읽으면서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보통 인문학에서 철학, 문학, 역사학이라는 3가지 대표적인 학문이 떠오르는데, 이 금호신화라는 서적을 보는 것은 결국 이 3사지 부분을 인정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먼저 시대적인 배경에 따른 것을 본다면 김시습이란 인물은 1435년(세종 17)~1493년(성종 24). 조선 초기의 학자이며 문인, 생육신의 1사람이었다. 당대 최고의 명군이신 세종대왕 시절부터 시작하여 역사적 풍파와 비극을 앓던 세조시대를 지나 성종을 이어온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비극이란 역사적 현실을 승화할 방법은 현실에 보이지 않으나 현실의 욕망을 투영하는 신화라는 문학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그런 시대적인 흐름과 그런 역사적인 배경에서 김시습이 만든 금오신화는 많은 요소를 여기저기 배치하였다. 만복사저포기의 이야기를 들어다보면 먼저 서생이란 선비가 있는데, 그는 아주 학문적으로 우수하고 훌륭한 인품을 가졌다. 어느날 절에 가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슬프게 시를 읊었는데, 여기에 어느 아름다운 아가씨가 응답해준다. 그녀와의 첫 만남 그리고 당시 사대부 사회로 도저히 용납되지 않은 뜨거운 사랑, 하지만 이 모든 러브스토리는 허망한 스쳐가는 일이었다.

물론 허생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나, 사실 허생이 천상배필이라 여기던 그 아름답고 숭고한 여인은 허무하게 억울하게 외적의 침입에 목숨을 잃은 한 많고 외로운 여인이었다. 자신의 청춘과 사랑을 펼치기 전에 꽃다운 나이로 칼에 맞아 그저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을 외로이 떠돌고 있었다.

그런 허생에게 그런 운명같은 슬픈 사랑이 다가온다. 겉으로 본다면 분명 이 작품은 그냥 러브스토리로 볼 수 있으나 사실 그 이면에는 이 산과 강이 아름다운 이 조선에 외적의 잦은 침입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가족들이 비통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이다. 그런 한이 맺힌 이야기를 두 남녀의 사랑으로 보여준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한 여인을 위해 서생은 평생 결혼 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고, 세상 사람들을 피해 먼 산으로 숨는다. 그가 죽은지는 아닌지는 모르나 이 작품 내에서 서생은 아마 김시습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세상의 속세를 잊고 산으로 강으로 떠나 세상의 시름을 잊어가는 그의 방랑자의 인생을 말이다.

이생규장전은 처음에는 매우 애틋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신화다. 가세가 기울어진 사대부 남자 이생, 거기에 비해 부잣집에 귀한 양반 규수인 최랑은 분명 당시 사회나 혹은 지금 사회나 이루어지기 힘든 빈부격차를 둔 집안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빈부 격차와는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서로의 인격과 학문, 그리고 자질로서 사랑을 확인했다.

사랑을 하는데 조건은 그저 조건일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현대사회처럼 모든 물질적인 기준으로 삼는 사랑과 차원이 다른 순수하고 열정적인 그들의 가치였다. 그러나 현실은 무서웠다. 최랑에 빠진 이생은 집에 돌아가는 것을 잊은 채로 며칠 최랑의 집에 살다가 추후 귀가 뒤에 밤과 새벽공기를 마시며 만난다. 세상에는 꼬리가 길면 밟히는 것처럼 그의 행동을 주시하던 이생의 아버지는 아들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어 그를 시골로 보낸다.

그러나 어찌 하오리?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한 순수한 불꽃처럼 타오른 두 사랑을 이토록 멀리 유배생활하게 하여 최랑은 병에 걸리고,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외동딸을 세상 그 모든 보물보다 아끼던 최랑의 부모님은 자신의 외동딸을 가난한 선비인 이생에게 시집보낸다. 물론 어렵고 긴 어두운 터널로 들어간 심정이었으나, 길고 긴 터널을 지나면 밝고 화사한 풍경이 있었다.

학문도 출중하고 성품도 올바른 이생이 나라님이 계시는 구중궁궐에 들어가서 국무를 보지 않을 소인가? 허나 이런 기쁨도 잠시, 이듬해 홍건적의 침입으로 고려국은 전쟁의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가족과 하인들은 모두 흩어지고, 외로운 아낙네 최랑은 사랑의 기쁨도 잠시 뒤로 한 채 오랑캐의 칼에 한을 품고 죽는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사랑인 이생을 위해 정절을 지켰다. 자기가 선택하고 자기가 직접 스스로 성사시킨 사랑인 만큼 모든 것을 승화했다. 그 죽음이란 극단적인 비극으로 말이다.

하지만 죽음은 남아있는 이에겐 절망의 씨앗만 심어줄 뿐이다. 아내 잃은 이생에겐 모든 것이 암흑이다. 그래도 죽어도 죽은 것을 아는 이생이라도 최랑의 혼백은 이생에게는 살아있는 인간과 다름없었다. 죽어나 사나 같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전쟁 통에 죽은 식솔의 차가운 몸과 갈기갈기 찢어져 들판에 뿌려진 최랑을 운구하여 묻으니 저승에 가지 못해 남은 이승의 혼백은 결국 한을 남겨둔 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명계로 떠난다.

이생은 이미 모든 것을 잃은 듯한 마음으로 병들어 죽음을 기다리다 결국 그녀에게 떠난다. 어떻게 보면 김시습의 마음속의 군주 문종과 단종이 죽을지라도 자신은 영원히 그들을 따를 것이라는 깊은 맹세가 있음이 아닐까 싶다.

최유부벽정기는 홍생이란 젊고 잘생기고 학문이 뛰어난 청년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의 이야기보다는 그가 있던 배경이 인상 깊다. 김시습이 살던 조선, 그가 그리던 고조선, 이것은 결국 잃어버린 역사 그리고 그 아름다운 시절을 기억하는 것이다.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홍생과의 시를 주고 받으며, 아름다운 그 시절을 추억한다.

그 추모의 시가 오고가자 어느 순간 하룻밤의 꿈처럼 새벽의 닭이 울자 모두 사라져 간다. 홍생은 그 아름답고도 고귀한 고대왕가의 여인을 사모하다가 결국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순수히 맞이한다. 고조선을 그린다고 하나 사실 홍생에겐 원래 자신이 있어야 할 공간이 없어진 것에 대한 김시습의 기분이었으랴.

남염부주지는 정말 김시습의 기분일 것이다. 시대적 배경은 세조 11년이고 경주에 박생이란 선비를 두고 말한다. 박생은 학문적인 기질은 훌륭하고 인품 역시 온후하나 정치에 발을 들일 수가 없었고, 세간에 그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은 박생이 그저 거만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다. 그것은 그가 정말 선비로서 훌륭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세계에서는 그는 그저 마음에 깊은 뜻을 품어도 답답하고 원통할 뿐이다. 그의 원대한 꿈은 현실에서 그저 꿈같은 이야기이므로 오히려 꿈의 세계에서 그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랴? 그는 어느날 이상한 세계로 간다. 그곳은 인간의 세계가 아닌 요물과 뜨거운 염화가 불타는 곳이다.

박생은 거기 가서 염라대왕을 만나고, 세상 모든 이치와 존재에 대해 말한다. 이 신화까지 보면 금오신화의 사상적인 배경은 많은 것이 섞여있다. 일단 우리나라는 무속신화에 담겨 있니는 무속신앙, 그리고 불교사상, 조선의 정치이념인 유학, 또한 도교사상까지 깃들여 있으나 아주 복잡 다양한 세계관이 펼쳐져 있다.

그 중에 최고의 가치는 유교사상으로 주공과 공자의 덕을 최고로 여기며, 다음으로 석가의 도를 칭송했다. 유학은 정론적인 학문이고 불교는 사론적인 학문이나 모든 학문의 최종 목표는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함에서 목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목적이 있는 사상과 학문이라도 현실에서 임금은 백성의 뜻을 거르고, 오히려 백성을 힘으로 누른다는 말처럼 김시습이 여기는 현실에 대한 원망과 한을 여기서 볼 수 있다.

다행히도 염라대왕은 주자와 공자의 유학이란 덕을 이어 감에 따라 자기의 임기를 채웠고, 이제 새로운 염라대왕을 여기에 앉혀야 한다. 모든 것을 공정하게 봐야할 인물이 필요하고, 그것은 박생이었다. 하지만 박생이 염라대왕이라 함은 결국 김시습이 국록을 먹던 시절에 자신의 군주를 지키지 못한 채 죽어버리게 한 세조와 그의 무리였을 것이다. 결국 현실은 몰라도 저승에서 그들을 심판하겠다고 하는 김시습의 깊은 복수심이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다.

용궁부연록은 위의 이야기와 다르나, 사실 남염부주지와 비교하여 그 내용적인 가치는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용궁에 간 박연이 용왕을 만나 자신의 필력을 넓게 보이고 용왕이라는 엄청난 신에게 예우를 받아 신과 대등한 인간임을 내세웠다. 신이 존경하고 신이 우러러 보는 인간, 그 박연은 결국 김시습 자신의 이야기임이다.

그는 용왕에 가서 진지상과 즐거운 잔칫상을 받고, 용왕의 보배를 본다. 그 보배들은 번개를 치고 바람을 불고 물을 넘치게 한다. 재앙을 부를 수 있는 도구였다. 박연이 그것을 유심히 보는 이유는 아마 당시 살고 있는 현실을 부수고 싶다는 깊은 불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다. 그것이 불가능한 하나의 꿈은 아마 잘 알 것이다.

그런 모양인지 박연이 용궁에서 나올 적에는 비단상장에 보관할 진주와 비단이었다. 현실의 부조리를 없앨 수가 없어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나 그것도 되지 않음에 김시습은 아쉬운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지만 진주와 비단과 같은 보배처럼 이것을 그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고 산으로 떠난 박연처럼 김시습은 평생 보배 같은 자신의 마음을 지키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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