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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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전율편
전율 편은 보는 나의 입장에선 뭐라고 할까나? 그냥 이제 나이가 43세에 들어선 남자와 그 남자보다 7살 어린 여자가 오랜만에 만나서 둘이 회상하고 조롱하는 것으로 모든 이야기의 결말을 보인다. 한때 엄청난 인기를 받고 모든 여자에게 선망의 대상이던 시인인 자우린은 이제 과거의 영광은 커녕 현재의 암울한 삶에 살아간다. 

첫 장부터 책을 잡지 않았다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비롯한 철학도서와 각종 문학도서를 집어 들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우연히 잡은 책에 종이쪽지가 나온다. 아주 오래 전에 보낸 쪽지인데, 거긴 마란이란 여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그 여자의 주소로 편지를 보내고 다시 편지고 오고 둘은 다시 만나기로 한다.

이때 그의 갇혀있던 자신의 삶에서 밖으로 나간다. 귤이 먹고 싶은데 귤을 집어들 때 그는 귤이 얼마인지 몰랐다. 게다가 귤장수는 그에게 귤값을 내놓기 보다는 귤 하나를 주고 나가라고 한다. 그의 입장은 화려한 과거와 달리 참혹한 인생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겉은 비루하고 가난한 시인이었다.

그가 그런 몰골로 마란과 만나 과거를 회상한다. 둘은 주로 귤장수에게 귤을 얻어먹은 비참한 그는 마란과의 이야기에 꿈 같은 청춘을 맛본다. 잘생긴 외모와 화려한 말투 그리고 거기에 따라오는 많은 여자들, 자우린은 과거에 많은 여자와 연애를 즐겼다. 자기 침대에서 혹은 상대의 침대나 다른 장소들 그리고 다양한 여자를 만나고 나서 마란과의 만남도 있었지만, 당시 마란에게 자우린은 눈길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하지만 영원한 화려함은 없다. 자우린은 어느 순간 여자들에게 인기 없는 남자였고, 그래도 자우린은 여전히 여자에게 손을 대려 했다. 그러는 동안 그렇게 작업을 계속 거는 와중에 그 자리에 마란은 있었다. 하지만 자우린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자우린의 사랑을 원했으나 자우린의 무관심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예전의 아름답던 청춘을 대신해 중년의 여자로서 그를 접한 것이다.

자우린은 솔직히 말해 타고난 작업남이었다. 흔히 여자에게 음흉한 작업을 거는 남자들은 대놓고 원하기 보다는 말을 돌려 말한다. 그렇게 언제나 여자에게 “너만은 특별해, 너니깐 이렇게 마음이 아픈거야” 라는 미사어구들을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시는 역사보다 철학적이다”란 말처럼 시인의 입에서 나온 시의 언어는 청자로서 활동하는 여자에게 당연히 개연적으로 필연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모든 여자들이 그의 포로로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포로로 되는 것은 그의 모습이 화려한 공작새와 같을 때다. 나이가 40대인 자우린 그것도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에겐 더 이상의 매력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30대의 마란도 마찬가지다. 중년의 여인답게 몸이 둔해짐을 나타남은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가길 바란 것이다. 그런 2사람의 과거사냥 다운 모습으로 침대 위에 놓인 외투에서 교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자우린의 외투 한쪽 팔이 마란의 어깨를 은근스레 건들고 있었다. 자우린이 직접적으로 야한 작업을 걸지 않았으나 그것이 하나의 제스쳐가 된 것이다. 그리고 2사람은 아주 열정적인 육체적인 관계에서 서로간의 과거를 되돌아가려 한다. 이때 그녀가 자우린에게 원한 것은 자우린의 얼굴표정이었다. 과연 자우린은 어떤 얼굴을 짓고 있는가?

자우린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쾌락이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자우린이 마란이란 여자에게 과연 전율을 느끼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과거 잊혀진 얼굴로 기억된 자신에게 육체적인 관계로 통해 전율을 느껴 잃어버린 지난 시절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또한 자우린은 모든 과거로부터 멀어진 자신에게 과거로 가는 길을 가고 있었다. 2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탐닉하면 과거의 욕망을 채워간 것이다.


2편 우연한 사건  

이 사건은 어느 카페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토대로 장퍄오와 천허의 편지를 왕래한 이야기다. 살인사건의 발단은 어떤 조용히 휴식을 취하던 남자가 카페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어떤 불안한 시선을 가진 남자가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자의 가슴에 칼을 꼽고 나서 경찰을 부른 것이다. 살인의 동기는 알 수 없이 말이다. 

그날 현장에 있던 장퍄오와 천허는 경찰의 심문에 의해 신분증을 맡겼는데, 그것이 서로 엇갈리게 가버렸다. 그래서 편지를 주고 받는데, 그 내용은 살인사건에 대한 내용이었다. 천허는 그 사건의 희생자가 여자에게 바람을 피게 만들어 죄는 받은 것이고, 장퍄오는 그것은 처음부터 여자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일 수 있고, 또한 천허의 일방적인 추론을 일일이 비판적으로 사고하여 답변한다.

그러는 와중에 장퍄오는 자신의 집에 찾아오는 여자를 품에 안고 성적희롱을 즐겼다. 또한 그런 여자 이외에도 다른 여자도 말이다. 장퍄오는 전형적인 바람둥이었다. 하지만 천허처럼 결혼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성적인 사고로 통해 천허하고 편지를 주고 받았다. 하지만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나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장퍄오가 만난 여자이야기와 그 편지 내용과 일치해 가는 부분이다.

그리고 살인과정과 동기 그리고 차후 처리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이 편지를 보낸 천허가 장퍄오가 만나는 여자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2사람은 만났고, 둘이 처음 살인을 목격한 카페에서 그 때 듣던 “당신은 왜 나를 쫓지 않은가”란 노래가 나오자 장퍄오의 가슴에는 칼이 꽂혀 버린다. 

솔직히 이 작품은 어느 결백증적인 남편이 자신의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고 그 의심이 되던 남자에게 의도적으로 다가가서 그런 부정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면서 자신 역시 그런 살인범이 되기를 바란 것이다. 결국 천허는 자신의 살인동기와 살인목적을 그렇게 찾은 것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앞의 살인은 치밀하지 않은 계획이라면 후자는 매우 치밀한 계획이었다. 자신이 죽일 남자에게 그 살인의 과정을 토론한 장퍄오는 참으로 허무하게 칼에 맞아 죽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에 대해 크게 논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 작품의 결말이 너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너무 내가 판단하던 결착으로 가게 되어 그런 여흥이 많지 않은 작품이었다.


3편 여자의 승리

이 작품은 여자의 사랑이 어떻게 질투로 변하고 어떻게 승화되는가이다. 린홍이란 여자는 평범한 주부로 남편인 리한린과 결혼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나 어느날 린홍은 리한린의 서랍에서 칭칭이라 하는 여자사진과 편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결혼생활은 위기에 닥친다. 리한린의 여자에게 린홍은 순간 열등감에 사로 잡힌다.

그녀의 강박관념은 자신과 리한린의 주변 사람에게 전화하여 이것을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그 중에 아주 예전에 린홍에게 관심있던 남자에게 전화하자 그는 린홍에게 최대한 남편을 절벽에 몰게 하라고 한다. 그리고 린홍은 그렇게 따르고 처음에 자신의 외도를 누설당한 것을 생각지 못한 남편은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칭칭의 사진을 보자 남편은 당황하고, 남편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매우 조용한 집안살이를 시작했다. 같이 자던 침대에서 나가고, 쇼파에서 눈치보면서 책보고 게다가 TV조차 못본다. 그러나 린홍은 그런 자중하는 태도의 리한린을 꽤씸하게 여긴다. 린홍은 남편이 자기에게 아주 열렬히 사과하고 잘못을 토하고 아니라면 격정적으로 대하길 바랬다. 하지만 오히려 리한린은 보통 남자처럼 아내를 배려하는 척으로 잘못을 인정하려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린홍에게 감정의 폭발로 이어진다. 이 장면을 보니 나도 과거의 내가 생각난다. 나 역시 그렇게 크게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니나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것이 상대편에게 큰 화를 부른 것이다. 오히려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냄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야 했다.

그래서 최악으로 치닫게 되자 2사람은 이혼을 하러 관공서로 간다. 이때 마지막으로 카페에서 서로 커피와 사이다를 마시려 한다. 과거 2사람은 결혼하기 전에 이렇게 커피와 사이다를 마시면서 행복의 미래를 기대했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얼굴조차 마주보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린홍은 사이다를 마시다 다른 자리에 어디서 많이 본 여자 얼굴을 마주친다.

그 여자는 린홍의 라이벌인 칭칭이었다. 칭칭이 있자 남편도 놀랐으나 아내의 행동은 더욱 놀랐다. 린홍은 남편에게 대낮의 카페에서 자신에게 안아달라고 한다. 남편은 그렇게 하고 린홍은 남편을 더욱 강하게 안고 남편을 몸을 감싸고, 그녀의 혀를 남편의 입안으로 다가가서 남자의 미각을 황홀경으로 이끌어낸다. 그리고 마치 보란 듯이 칭칭이를 노려본다. 칭칭이는 보다 못해 나가버리고, 린홍은 이혼대신 집으로 가자고 한다. 그녀는 칭칭이를 두고 남편에게 자기에게 복종할 것을 강요한 것이다. 만약 이혼한다면 칭칭이에게 가라고 말이다. 

남편은 자신은 칭칭이에게 가도 할 수 없음을 알기에 다른 사람이 눈치에도 아내의 유혹을 따랐다. 결국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칭칭이에게서 모두 가져간 셈이다. 아내의 사랑이 질투로 변하고 질투는 투쟁으로 변하여 결국 사랑으로 돌아왔다. 결국 질투는 여자의 힘이란 것일까?


4편 무더운 여름

무더운 여름은 여자의 가식을 두고 서로 허풍을 떤다. 결국 2여자는 친구사이이나 알고 보면 경쟁자였다. 그녀들은 아주 착하고 성실한 리치강이란 남자를 두고 서로간의 허풍을 다툰다. 서로 리치강이 자기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자기에게 호감을 보인다고, 또한 리치강이 문화국에서 일하면서 인기가수 홍화의 공연에 관계되자 2여자는 리치강에게 서로 티켓을 달라고 한다.

리치강이란 남자는 아주 착하고 좋은 남자이지만, 나쁜 여자에게는 그저 단순하고 이기적인 희생양이 되는 남자였다. 50위안짜리 홍화공연 티켓을 2여자에게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녀들과 헤어진다.

2여자는 서로 리치강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고, 또한 리치강이 홍화와의 스캔들을 이야기했다. 그런 와중에 홍화의 애인으로 여기던 리치강은 어느 순간 다른 모습으로 나온다. 어느날 2여자 중의 리핑은 그 2여자 중의 원홍과 이야기하다가 리핑이 남자친구가 생기고, 그와 데이트하러 간다고 하는 것이다.

리핑은 그가 누군지 알려달라고 하나 당장은 아니나 나중에 보여준다고 한다. 결국 그 남자는 리치강이었다. 그러나 그가 오기 전에 리핑은 거짓으로 인기가수 홍화가 리치강과 스캔들이 있고, 마치 자기에게만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여기에 원홍 역시 되받아치기 했다. 하지만 결국 팔짱을 끼던 리핑과 리치강에서 원홍의 거짓말은 탄로났다. 서로 리치강에게 관심있었지만 마치 서로 없는 것처럼 말하다가 결국 리핑이 선수친 것이다. 내숭적인 2여자 사이에서 리치강은 그저 내숭싸움의 승자에게 자신의 한쪽 팔을 내어주게 된 것이다.

처음에 2여자가 말하듯 남자를 사귀면 그 남자가 밥도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고, 데이트 비용도 내어주는 어장 같은 남자를 바랐다. 그런 점에서 리핑은 승리자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본다면 리치강은 승리자의 노예가 된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에서 여자의 승리는 유혹의 여신에게 돌아간 것인가? 그런 것을 증명하듯 원홍은 흥하면서 리핑과 리치강이 가는 길 반대로 가고 있다.


5편 다리에서

자기보다 1살 어린 25살 트럭운전사는 자신의 아내가 임신여부를 끝없이 물어본다. 그는 아내가 임신하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아이를 가지면 당장에 집안 가정생활이 어렵다는 이유다. 그래서 매일처럼 아내의 임신여부를 묻는다. 여성은 제2차 성징기가 오면 월경을 시작한다.

그래서 임신하게 된다면 월경이 중단되니 월경이 된다면 임신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처음에 아들을 가지고 싶다는 트럭운전수의 소망과 달리 이제는 왠 불임사실을 기뻐한다는 말인가? 남편은 끊임없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다. 아이를 가지면 돈을 벌지 못하거나 혹은 보모를 사용해서 돈이 많이 들어간다던지 혹은 아이를 일찍 가지면 50대에 할아버지 할머니로 돼서 그게 좋냐고 말이다.

그런 우려를 역시 잘 해결되었는지 아내는 결국 월경을 했고, 그 월경은 남편에게 반가운 친구로 다가왔다. 이에 아내는 힘든 과정을 극복한 후에 자신에게 그저 편안한 일상과 작은 남편의 상이 있기를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의 입에서는 나온 차가운 말은 이혼이었다. 남편은 이혼을 하기 위해서 아이가 없어야 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그 다리에서 사라지는 남편을 보며 아내를 절망해야 했다. 결국 여자는 무엇을 위해 결혼하였다는 말인가?


6편 그들의 아들

이 작품은 어렵게 힘들게 살아가는 노부부가 아들 하나를 두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노부부는 힘들게 공장에서 일하고 집에 갈 때는 만원버스를 타고 가며, 오늘 아들이 오기로 한 날에 일찍 가기로 했으나 버스 안의 사람들의 밀침에 혹은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의 방해로 일찍 집에 못가게 된다.

게다가 버스에서 떨어져 둘 다 심한 멍과 상처를 입는다. 그래 힘들게 일하면서 한 달 월급이 600위안도 되지 않으나 이에 반해 아들에게 한 달 300위안을 보낸다. 이런 부모의 고생에 아랑 곳 없이 아들은 그저 TV 보면서 음악을 듣는다. 게다가 오늘 집에 올 때 아들은 버스 대신 택시를 타고 온다. 버스는 사람 많고 비위생적이라 병에 걸릴 것 같고 토할 것 같다고 말이다.

처음에 아들의 행동에 분개한 부모는 아들의 말에 이제는 오히려 동조한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면서 자신들은 버스를 타는데, 아들에겐 버스를 타지 말라니. 이게 어찌 보면 중국의 현대 젊은 사람들의 인식이다. 부모의 고생은 관심 없이 자신의 이익이나 관심을 최고로 하고 또래 아이들의 눈치만 보는 것이 말이다. 

그것은 한국에서 마찬가지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보다는 누가 어떻게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고 뒤쳐져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런 한심한 태도에 부모는 고치기보다는 오히려 동조한다. 힘들게 일하면서 그래 키워서 무슨 소용인가? 이제 어머니는 4년 이후에는 돈을 벌 수 없다고 한다. 대신 아들은 퇴직금을 받으면 된다고 한다. 빵이 없으면 고기 먹으라고 하는 어느 어리석은 임금처럼 말한다. 그건 결국 현대사회의 젊은이들의 허영심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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