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고백(告白)은 자신의 죄(罪)를 고백하는 것이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설 고백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보다는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이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 죄의 시작은 모든 것이 크고 원대한 문제로 시작되지 않는다. 정말 작고 작은 사건(事件)들이 하나의 인화(引火)점이 되어 크게 화산폭발로 이어진다. 아마 이런 문제를 다룬 것이 고백이란 소설일 것이다. 모든 사건의 원흉에서 범죄의 시작점은 13~14세의 어린 청소년이었다. 제2차 성징기이면서도 몸은 어느 정도 커진 상태에서 마음은 아직 어린아이라는 불안한 시기이다. 

가령 우리가 잘 아는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란 작품이 있다. 이때 등장하는 주인공인 신지는 14세 중학교를 다니는 남자아이로 나온다. 14세라는 어린아이와 어른의 경계선에서 그는 세상과 사회의 부조리와 소외 그리고 왜곡 등에 의해 갈등을 앓는 모습을 보여준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보여준 신지의 행위나 심리들은 매우 부적당하면서도 위험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행동 뒤에 보여진 이면에는 이 사회와 부모라는 기성세대의 이기심이 가득하게 숨어 있었다. 결국 아이는 아이 그 자체로 망가져 있던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 의해 망가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의 최고의 범죄자인 슈야와 나오키는 그런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청소년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 둘은 비교하여 보자면 슈야는 부모 특히 어머니의 비인간적인 요소로 인했다면 나오키는 지나친 어머니의 간섭으로 인해 사고가 일어난 것 같다. 또한 이 작품의 최고의 피해자면서도 최고의 범죄자가 된 유코에서는 어머니의 이름을 가진 한 인간의 격렬한 분노로서 보여주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이고 틀어졌을까? 슈야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어머니로부터 시작했다.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으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학업을 중단한 그녀,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욕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평범하고 인자한 슈야의 아버지와 같이 잘 지낼 수 있음에도 그녀는 욕망을 위해 가족을 버렸다. 

어머니의 욕망에 대해 슈야는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역전할 기회를 노렸다. 자신의 이름을 드높여서 어머니가 다시 자기를 봐주길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전국 과학경연대회에서 수상할 때 세구치 교수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세구치 교수는 어머니와 결혼하였고, 어머니는 높은 사회적 지위에 안주하여 자신의 존재를 망각했다. 그러는 와중에 슈야는 모든 윤리적 가치관을 버리고 대규모 살인을 기획한다. 1차 계획은 유코의 어린 딸 미나미를 죽인 것으로 시작하여 최종적으로 학교 모든 사람을 죽이려 했다. 그렇게 사람을 죽이거나 혹은 그 이전에 과학경연대회에서 자신을 돋보이려 한 이유는 어머니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돌아보지 않았고, 오히려 분노의 칼날을 올렸다. 분노의 칼날을 향해할 곳은 슈야의 어머니고, 그리고 분노의 칼날이 꽂혀야 할 곳은 슈야 마음에 있는 자신의 비윤리성이어야 했다. 슈야는 대단히 똑똑하고 판단력이 뛰어나서 논리적 물리적인 이성은 뛰어났으나 정작 중요한 윤리적 이성은 형편없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인간과 다름없는 존재가 아니라 우월하다고 여겼다. 결론은 슈야는 그런 보통 인간과 같은 행위를 저질렀다. 그 행위는 자신보다 약하거나 상관없는 제3자인 것이다. 1차 희생자는 미나미, 2차 희생자는 나오키, 3차 희생자는 미즈키, 4차 희생자는 친어머니였다. 그리고 최종적인 희생자는 자신의 분노로 인해 자신을 파탄하게 만든 본인이었다.

그런데 이 분노의 복수에서 유코의 반전(反戰)은 정말 놀라웠다. 그리고 유코와 슈야의 관계도 조금 흥미로웠다. 사실 슈야가 미나미를 노린 이유는 약한 대상인 어린아이란 사실도 있으나 정말 중요한 것은 미나미에게 질투를 느낀 것이었다. 유코는 상당히 힘든 삶을 살아가는 싱글맘 선생이었으나, 언제나 미나미에게 사랑과 관심으로 대해주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 대신 차가운 공학수식만 들은 슈야에겐 비교하자면 충분히 질투감에 사로잡히게 할 일이었다. 이에 반해 유코도 슈아의 어머니로서 대해주었다. 아이를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어머니가 아니라 아이의 불만을 뒤에서 보고 있는 어머니로서 말이다.

열심히 슈야의 홈페이지를 본 유코는 자신의 복수가 어떻게 되고 가는지 철저하게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슈야가 어머니가 보기를 원한 것을 다른 어머니가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유코는 매우 힘든 인생을 살아오며 매우 헌신적으로 살아온 사쿠라노미야 마사요시 선생의 연인이다. 마사요시는 AIDS에 걸려 투병하여 시한부 인생을 살아갔으나 그 누구에게 원망을 주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딸을 죽인 2학생까지 용서하려고 한다. 그는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마사요시는 자신의 딸을 죽인 학생에게 AIDS 감염시키려한 유코의 폭주도 미리 사전에 방해하였다.

결국 자신이 AIDS에 걸리지 않음을 알던 슈야는 당당히 학교에 나와 자신이 어긋난 정의를 실현할 계획을 세우고, 자신이 AIDS에 걸린 것으로 착각한 나오키는 인생의 낙오자가 되어 버린다. 나오키가 인생의 낙오자가 된 것을 보면 사뭇 우리 사회의 일편을 알 수 있다. 내가 이때까지 적은 2사람의 범죄자에서 슈야는 어머니의 비정함에 범죄가 싹을 틔웠다면 나오키는 어머니의 간섭으로 시작된 것이다.

나오키는 평범한 집안이다. 어딜 가더라도 평범하고 나오키 역시 평범하다. 평범하기에 그의 광기는 더욱 무서운 것이다. 그가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평범한 남자아이가 어딜 가도 우수한 인재로 될 수 없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것이 아닐까? 나오키의 콤플렉스를 보면 그의 어머니의 집착이 상당한 영향이 컸었다. 우리 아이는 절대로 아닙니다. 단지 남의 아이가 그래서 잘못 그런 것입니다. 우리 아이는 착해요. 왜 우리 아이어야 합니까? 라는 그런 부분이 나온다. 우리 인간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나름 정의가 있다 라면서 남의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 설정에서 일가족 5명을 살해한 어느 여중생의 엽기행각에서 그 여중생은 사실 극히 평범하고 아무 문제없이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 소녀가 일가족을 몰살시킨 것이다. 평소에 그런 여자아이나 혹은 나오키가 살인행위를 저지른 이유가 무엇일까? 결국 그 자신의 문제인 것인가 혹은 그 이상의 문제인가? 슈야의 경우는 분명히 특별 케이스다. 그런 특별 케이스가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슈야보다는 신문기사에 난 여중생과 나오키가 더욱 무서운 현실처럼 다가왔다. 아무런 문제가 없던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지른 자체가 더욱 겁나는 것이다. 그런 점을 더욱 부각시킨 것은 베르테르 선생이 학교로 부임오면서이다. 미즈키가 반장으로 있으면서 베리테르와 함께 나오키의 집으로 찾아갔을 때 미즈키는 베리테르의 가식과 억지스러움에 지겨움을 느꼈다. 자신이 가능하면 베르테르를 독살하고 싶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 미즈키라도 그녀 역시 피해자였다. 유코가 학교를 그만둔 뒤에 슈야의 학급 내에서 일련의 마녀로서 이지메를 당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유일하게 이지메를 가하지 않은 것은 미즈키였다. 미즈키가 이지메에 가담하지 않은 것은 슈야가 옳기보다는 슈야로 통해 자신들이 정의(正義)롭다고 생각하는 마녀(魔女) 같은 마녀사냥꾼이 되기 싫어서이다.

하지만 추후 베르테르에게 이지메 사실이 들통이 나면서 그 사실을 고하지 않은 미즈키가 되려 마녀로 몰린다. 이때 그 마녀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즈키는 우유팩을 슈야에게 던지는데, 던지는 부위가 등이 아닌 얼굴이었고 순간 슈야의 얼굴에 우유팩이 닿일 때 미즈키는 왠지 모를 쾌감을 느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이는 군중심리이다. 군중심리로 통해 미즈키는 쾌감(快感)과 우월감(優越感)을 느꼈으나 이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유일하게 학급 내에서 제대로 판단하였던 사람은 미즈키였다. 하지만 그녀 역시 타인에 대하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추후에 슈야의 콤플렉스를 자극하여 슈야의 거대한 냉장고에 보관된 고기가 되어 버린다.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여 시체마저 유린(蹂躪)당한 것이다.

모든 편을 읽으면서 읽을수록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이냐 질문에서 점점 난해하게 되어가고 있었다. 그 누구도 옳은 행위를 한 것이 아니고 그 누구도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상은 나쁜 사람이 만들어지도록 자꾸 유도하는 것 같았다. 이런 모든 나쁜 근본을 다시 찾아 되돌릴 방법은 없으나 그 나쁜 근본은 모두 없앨 수는 있었다. 나오키가 어머니를 살해하고, 슈야의 어머니는 슈야의 폭탄으로 죽었다. 결국 모든 사건의 원인자들은 사건 실행자에 의해 모두 죽게 되었다. 나오키는 어머니 살인으로 경찰에 넘어가게 되면서 그의 죄는 유아살인죄로 인한 정신강박 증세로 이루어진 돌발적인 행위로 죄가 성립되고, 슈야는 동급생 미즈키의 살인과 폭탄살해로 죄가 성립되었다.

그런데 이 2사람의 살인죄를 일으키게 하고, 게다가 그것이 자신의 복수로 통해 이루어진 조작된 살인에서 가장 큰 피해자인 유코는 복수의 여신으로 등극된다. 그녀의 최고의 복수는 자신의 딸을 죽게 만든 2사람에게 각자의 어머니를 죽이게 하는 것도 모자라 그 모든 원흉이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2사람에게 시작된 것으로 만들어 모든 알리바이 만든 후에 자신은 어둠의 역사로 사라져 버렸다. 최후의 장에서 슈야에게 걸린 발신표시제한번호에서 유코는 자신이 유도살인한 것에 대해 슈야에게 폭록한다. 하지만 슈야는 그것을 경찰에게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폭탄은 자기가 만들었고, 폭탄 역시 자기 학교는 아니나 어머니가 있는 대학교라는 점, 또한 냉장고에는 동급생 미즈키의 시체마저 있었다. 이 모든 비밀은 유코가 모두 알고 있었고 모두 만들도록 유도했다. 과연 인간이 비정상적으로 변하게 만드는 것은 누구의 문제일까? 어긋난 분노의 칼날은 누구에게 향하는가? 미친 분노의 칼날을 다시 회수할 수 없을까? 책에서 어린 미나미가 죽은 이유는 별 것 없었다. 단지 자기보다 약하고 거기에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 대신 죽인 사람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약자이기 때문이라는 그물로 씌웠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순간 역전되면 어떨까? 최근에 본 존 롤즈의 “정의론”이 생각난다. 이것을 보는 내내 응보적 정의가 떠오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 응보적 정의는 개인에서 한정짓는 것에 반해 이 작품에서의 응보는 점차 확대되어 간다. 사회가 개인을 망쳐가는 듯, 그 개인의 사건이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다. 그러면 개인과 사회 어디부터 틀려먹었을까? 그것은 그런 개인과 사회를 만들어낸 아이의 거울인 어른이라는 존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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