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되는 게 없어
황금가지 / 1997년 5월
평점 :
절판


 

마빈 해리스의 “아무것도 되는게 없어”는 정말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에게 정말 제대로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실감나게 만든다. 그것은 계속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보매체의 확산으로 통해 인간이 거기에 대한 물질적 혜택을 받아야 하는 만큼 정신적인 여유나 안락함이 증가하기 보다는 오히려 감소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도서가 목표로 하는 것은 1980년대 미국이라는 점과 그 미국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회적 문제, 정치적인 현황,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과연 이런 문제, 현황, 현실을 어떻게 제대로 보고 판단해야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일종의 지침서에 가깝다고 본다.

마빈 해리스는 분명히 자신은 이런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줄 수 없다고 하나, 이런 일들에 대해 원인부터 찾아감으로써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아서 그것에 대한 처방이나 강구들은 독자들에게 알아서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전체적으로 보는 사회를 일련의 각개의 문제로 해설해 나가는 방식은 마빈 해리스라는 문화인류학자의 독특한 집필방법이다.

주제는 따로 제시하나 그 주제 하나하나 읽고 난 뒤에는 그것이 하나의 큰 원으로 그려지게 되어 어느 거대한 사회적 문화적인 구조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마빈 해리스의 서적이다. 이런 방법으로 아무것도 되는게 없어는 미국이란 국가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문제를 제기한 서적이다.

어떻게 본다면 1980년대 미국의 문제들이 오늘 날의 2000년대로 들어선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까지 포함되어 있다. 가령 인플레이션 문제, 게이와 레즈비언과 같은 동성애자들, 나날이 심각해지는 폭력행위와 범죄들, 비정형적인 문화와 종교들의 행태들, 여성들의 직업참여로 통한 가정문제 등등 말이다.

결국 문제가 되는 하나하나가 분리되기 보다는 일련의 과정으로 통해 서서히 그렇게 되어버리는 역사적인 계보가 형성된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전제에서 본다면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끝이 없는 욕망과 이기심, 그리고 무관심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기계 산업의 발전과 정보통신 매체의 발달은 어느새 인간이 주체적으로 노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을 하나의 수동적인 존재로 소외시켜 버렸다. 자본주의 발달함은 인간의 물적 욕구와 사회적 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으나 막상 인간 그 자신에 대한 정신적인 안락함은 사라져 간 것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본국 영토에 큰 여파가 없었다. 공장에서는 여전히 기계가 돌아가고 게다가 기술의 발달로 다수의 인원보다는 소수의 인원으로 작업이 가능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가속화로 통해 기업들의 자유경쟁이 과열화 되면서 일부 소수 대기업이 독과점을 점령했다.

게다가 인구도 늘어나고 전쟁 이후 전쟁참전자를 위해 각종 복지혜택 거기에 따른 제반 행정기구의 확대들은 국가예산을 소비시키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계속되는 기업들의 병합과 부도, 정부기관의 몸집 부풀리기는 이른바 빚 덩어리에 앉게 되버린 공룡들의 아우성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이런 문제들은 기존 공장기업들이 폐쇄로 대규모 기업에서 독점적으로 생산하게 되자 적은 인원으로 일을 하게 되니 근로자들의 수가 감소하고, 여기에 남성노동력의 가치가 저하된다. 그리고 저하된 남성노동자 대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인간을 상대하는 새로운 업종이 들어나자 집에서 가정을 돌보던 여자들이 사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여자들이 집이 아닌 일을 한다는 것은 여자 스스로의 사회참정권을 얻어가기 보다는 집에서 가족을 부양하는 남편의 월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남편의 월급으로 자신들의 생활도 문제지만, 아이들의 부양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 1명당 들어가는 돈이 수십만 달러에 이르게 되었고, 거기에 대한 방편으로 가사하던 여자들이 일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기존 남성노동자에 비해 여자들은 본래 임금의 50~60%라는 저조한 화폐만 받고, 업무환경도 개선되지 않아 결국 폭발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의 여성들에게 사회적 권리를 보장함은 맞으나 단순히 그 권리로 인해 남성들의 일자리의 축소와 또 일자리에 넘치는 덕분에 화폐유통이 증가하여 인플레이션을 가중시켰다. 인플레이션 문제에서 기업의 장인정신 대신 한몫 잡으려는 상술은 소비자로 하여금 좋은 제품을 오래 사용하기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제품을 계속 사게 하는 방법으로 변경되었다.

새로 산 토스트 제조기계가 벌써 고장이 나는지 혹은 청소기가 금방 망가지는 일들은 고객에 대한 배려감 따위는 관심 없었다. 게다가 고객들의 항의를 받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방관하는 태도로 소비자를 지치게 하여 물건을 계속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물건이 계속 디자인과 사용방법이 조금씩 바꾸면서 질적인 부분은 유지되고, 판매가는 예전보다 약간 올랐으나, 인플레이션으로 통해 기계에 화폐가치적인 부분은 저하되었다.

이런 불량품 공화국에 이것을 파는 점원들은 고객을 동네상인처럼 행동하기 보다는 지나가는 행인 다루듯이 한다. 그들은 고객이 단골손님이 아닌 지나가는 행위이라는 생각아래 고객이 무엇을 필요하든 말든 그저 수동적으로 다가갈 뿐이다. 기계제조업 자리가 부족하게 되자 많은 일자리가 서비스 직종으로 전환되면서 이런 폐해는 심하게 된 듯하다.

서비스 직종은 평균에 해당되는 임금보다 낮은 가격으로 종사자들에게 지불되고, 종사자들은 대부분 학력이 낮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와서 일하기까지 자신의 고용업체에서 제대로 된 관리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그냥 투입된다. 이런 무분별한 상업은 소비자로 하여금 불만을 높이게 되었다.

여러 가지 독과점과 정부의 중앙관리로 인해 국민들 대부분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뭉개져 가는 서비스에 자신의 돈을 소비할 정도로 악화된 것이다. 가령 아스팔트가 망가짐에 따라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고장이 날 수 있고, 자동차 이외에 별도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며, 특히 장거리 이동자에겐 버스나 기차보다는 비행기라는 고가의 운송체계를 이용하도록 만든다. 게다가 항공기 이용하는데 있어 갖은 불친절, 체증, 지연 등은 소비자 즉 미국사람 하여금 지치게 만든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려 했으나, 그 욕망이 국민이 아닌 일부 큰 단체의 편리함으로 이용당하게 되어 갖은 사회적 자본이 무효화되고, 그 부분에 대해 다시 국민들의 비용이 들어가서 가계 부담 증대와 인플레이션이란 괴물을 만들어낸다. 최근에는 월급은 오르지 않고 물가가 오르는 스태크플레이션이란 변종괴물까지 탄생했다. 지나치게 과열된 사회적 문제가 결국 인간들을 소외시키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인간을 편하고자 한 각종 기술들은 일자리에서 남성노동자를 물러나게 하고 여성노동자를 불러 모우고, 흑인들에게 여전히 직업과 사회적인 기회를 놓치게 함으로써 불만을 올리게 했다. 가령 범죄에서 흑인과 백인의 비율은 엄청나고 거기에 희생되는 흑인의 수는 상당하다. 또한 흑인들의 대부분 남자아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 대신 사회범죄로서 직업수단을 찾는 경우가 발생된다.

범죄가 발생하니 미국에서는 낮이 아닌 밤에는 길거리를 다니기가 불편하고, 밤늦은 시간에 집에 있더라도 각종 강도나 미치광이들이 살인, 절도, 성폭행까지 이어진다. 노인들과 여자, 아이들은 길거리를 돌아 다니기가 무섭고, 이들은 언제나 범죄의 타켓으로 이어진다. 이들이 불행하게 만드는 범죄자들은 처음부터 범죄자로 태어났었을까? 각가지 사회적 문제와 현상들은 오히려 그 문제를 다시 재생산 및 재가열로서 사람들을 위협한다.

그런 모습은 미국이라는 다양한 민족과 대기업의 독과점, 국가정부의 거대화 및 비능률화로 오히려 자신들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런 문제는 인간들에게 각가지 정신적 질환이나 스트레스를 주게 되고, 사람들은 정상적인 신념이나 철학보다는 어긋난 가치관에 따르게 된다. 가령 사이비종교에 빠져 거기에서 정신적 구원을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신적 구원이 아닌 그저 자신의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하나의 탈출구였으나 사실 알고 보면 깊은 늪이었던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은 정신적인 위압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인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물가는 오르고 남자들은 자신의 임금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없고, 여자들도 일을 하고 있다 보니, 그들은 2세를 낳는 것을 꺼리게 되고, 이에 따라 2명 이상의 아이들을 가진 가정은 계속 줄어들고 혼자 낳아 키우거나 어느 때에는 아예 놓지를 않을 경우도 있다.

게다가 남자와 여자의 이성애적인 사랑에서 이제는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라는 게이와 레즈비언의 동성애적 사랑까지 등장했다. 남자들이 더 이상 경제적으로 부담을 가질 수 없고, 여자들도 자신이 경제적인 권리를 갖자 결혼하여 아이를 가기를 거부했다. 게다가 sex라는 것은 결혼하고 나서 2세를 위한 신성한 행위라기보다는 이제는 서로 즐거움을 향응하기 위한 하나의 오락으로 되었다. 그런 정신적인 압박일까? 미국에서 게이의 증가는 상당히 놀라웠다. 게이마을이 생겨 각가지 게이를 위한 미디어, 인프라가 구축되어 쉽게 그들이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서 말이다.

인간이 평소 가지고 살아온 기존 생활방식과 규칙으로는 도저히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에 오게 되면서 인간 생활, 문화 전반에 왜곡된 이야기만 넘쳐나고 있다. 이런 무섭고 낯선 이야기들은 더 이상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의 초판이 나온지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가 새롭게 대두되는 문제가 없으라 법은 없다. 
 

우리 한국도 물가 상승, 화폐가치 하락이 오더라도 임금수준은 여전히 차이나고 차이나면 날수록 저임금자에겐 힘겨워진다. 게다가 남성들이 산업 전반에 투입되다가 남성 혼자 벌기 어려워 여성들도 투입되고, 이런 문제로 결혼이 늦어지고 아이가 적어지는 사화 고령화 현상까지 일어난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서비스업종이 육체적으로 덜 피곤하더라도 오히려 정신적 심리적 피로는 증가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계를 다루고 있는 사람은 결국 기계에 의해 수동화 되지만, 그래도 기계가 아닌 사람을 만나면 사람과 사람으로 대할 여지라도 있으나, 인간을 인간 그자체로 기계적인 일을 대하는 사람은 사람과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 여지까지 빼앗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복잡하면서 다양한 인간사회에서 우리는 오늘날을 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답은 없다는 것은 분명하나 적어도 이런 문제를 생각하여 내가 지금 단백질로 구성된 지능을 소유한 동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주체를 잃지 않고 다시 상기 시켜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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