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열대 한길그레이트북스 31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 한길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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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세기 세계인류의 최고의 학자이자 위대한 인간 중의 하나다. 그는 프랑스에서 구조주의라(構造主義, Structuralism)라는 새로운 철학·사상·학문 분야를 창조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구조주의 이전 탄생 이전에 배경이 되었던 학문으로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있었으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했던 것은 “페르디낭 드 소쉬르”라는 언어학자의 ‘일반언어학’이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구조주의가 정확하게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단지 내가 구조주의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주변 문학비평을 전공하는 학도들이 나의 학문이나 사상적인 배경이 구조주의라는 평을 많이 듣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그렇게 철학이나 사상에 깊은 통찰력과 이해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런다고 해서 내가 정규적으로 인문학을 배우는 학생도 아니었고, 예전부터 책을 그렇게 많이 읽은 사람도 아니다.

 

그저 무지하고 평범한 한국의 보통 인간이었다. 물론 지금이야 예전보다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나 여전히 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 자신의 한계와 수준을 알기 때문에 여전히 이런저런 책을 접하면서 공부하고 있다. 내가 철학과 사상 그리고 문학을 접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접한 분야는 후기구조주의 쪽이다. 고대 그리스나 중세와 근대철학보다는 현대철학부터 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보니 기초 없이 그저 끝부분만 들어다 보니 내 자신이 거기에 얽매인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학문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와 근대철학을 같이 읽어보기로 하였다. 중세 서양철학 역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나 너무 기독교(가톨릭)적인 부분이 많으므로 철학적인 부분보다는 종교적이거나 신학적인 부분이 강하여 그렇게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을 정하면서 이런저런 책을 직접 사서보고 도서관에서 빌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조주의 시작인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보기로 했다. 우선 나는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읽기 전에 먼저 “마빈 해리스”라는 문화인류학자의 책부터 보았다. 기본적으로 주변 사람들은 나보고 구조주의적이라고 하기도 하나 또한 문화상대주의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내가 만화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오타쿠라는 사실에서 시작하여 만화애니메이션을 리뷰, 비평, 칼럼을 하면서 같이 코스프레라는 문화에 대해서도 조금씩 관심을 기울여서 하나의 리뷰와 비평문화로 이끌어 내기 위해 코스프레 문화에 대한 연구서적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문화인류학자가 바로 마빈 해리스이다. “마빈 해리스”의 “식인과 제왕”, “작은 인간”, “문화의 수수께끼”,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말이다.

 

내가 이런 서적들을 읽으면서 문명과 야생이라는 이원화되어진 공간과 배경 그리고 시간 속에 문명이라는 곳에 살아가는 나 자신과 그리고 우린 인간들이 얼마나 오만하고 어리석고 이기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틀에 박힌 고정관념과 편견, 그 속에서 피어나는 하나의 광기적인 사고방식은 인간 자신 스스로가 인간이길 거부하게 만드는 마약과 같은 행위라고 생각했다.

 

이런 서적을 읽으면서 아마 나는 인문학 공부는 문화인류학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인류학을 알려고 한다면 반드시 알아야할 사람이 바로 “레비 스트로스”라고 들었다. 그리고 예전에 미국 저명한 사회인류학자인 “에드먼드 리치”의 ‘레비 스트로스’라는 책을 읽으면서 대략적으로 "레비 스트로스“가 누군가를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내용은 ”레비 스트로스“가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부정적인 부분도 있는 비판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다. ”레비 스트로스“는 직접 현장에 방문하여 원주민에 대해 연구하기 보다는 먼발치에 머물러 단순히 외적인 부분에서 연구함에서 그것이 정확한 연구자료로 인정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레비 스트로스”가 직접 남아메리카 대륙에 가서 여러 원주민을 만나기 위해 열대로 들어가서 원주민과 생활하고 이야기하고 같이 동고동락한 일들을 적어간 이 '슬픈 열대‘는 “레비 스트로스”가 밀림 지역에 방문하여 거기에 있던 일들을 아주 생생하게 적어 내려간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슬픈 열대“를 읽어보면서 왜 슬플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문명에 살아가는 지금 현대사회에서 1930~1940년대 프랑스는 현 시점보다 문명이 덜 발달함은 사실이다. 그런 상태에서 오늘날 내가 보는 그 미개지역의 원주민들은 그 당시 사람보다 더욱 더 미개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하나의 선입관과 편견 그리고 자만과 오만에 빠뜨린다.

 

바로 그런 자만과 오만이 지금의 나나 많은 사람들에게 혹은 “레비 스트로스”가 방문했던 그 시대에 혹은 그 이전시대라도 말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조금 안타까운 부분이 많았다. 왜냐하면 원주민들의 고향이면 삶터인 남아메리카 대륙이 어느 순간 자신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아니라 다른 누구로부터 지배되어가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콜럼부스나 마젤란처럼 많은 항해자나 탐험가들이 남아메리카와 많은 미개척지를 발견한 순간 이 곳은 슬픈 열대로 되어 버렸다.

 

많은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거기에 자신들의 식민지를 건설하여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어 착취하고 밀림을 파괴하고, 광산을 캐어 환경을 오염시켰다. 그런 상태에서 남아메리카 대륙은 어느 순간 자신만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그 자신의 색깔을 잃어가면서 많은 원주민들은 고유의 문화를 상실하게 되었다.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바로 이런 원주민들에 대해 인류학자의 시점으로 그들의 생활과 삶 그리고 운명을 아주 객관적으로 지켜보면서 한편으로 나에게 슬픈 마음을 주었다.

 

특히 원주민들을 구호할 것이라고 유럽 선교사들이 파견되어도 선교사들은 자신들만의 사고와 문화에만 치중하여 원주민 고유문화를 무시하였고,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사상만이 최고로 여겨 원주민들을 업신여기거나 혹은 가혹하게 대하기도 하였다.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은 남아메리카에 도달한 정복자들은 원주민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자신들의 옷이나 침구를 숲이나 거리에 놓았다. 그런데 이 옷에는 기존 원주민들이 모르던 무서운 재앙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은 남아메리카대륙에 아직 퍼지지 않은 많은 전염병들이 원주민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그 덕분으로 많은 원주민들이 사망하고 일부 종족은 멸종위기까지 갔었다. 이런 잔인하고 어리석은 행위는 다른 형태로 이어졌다. 어느 원주민 보호자들이 갔을 때에 그들은 원주민들은 아주 건강했다고 기록했으나, 그 원주민들은 어느 순간 없어지게 되었다. 그 보호자라고 하는 사람들하고 같이 온 병원성미생물이 원주민에게 하나의 사신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문명화되었다고 자만하던 인간은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원주민을 죽이고 말았으며, 원주민이 야만적이고 잔인하다고 한 문명인들은 원주민들을 잔혹하게 아주 잔인하게 죽였던 것이다. 물론 이 도서에서는 식인문화부분을 다루지 않았으나 사실 식인종족들이 자신의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죽이는 인간이 아주 많고 그 살해당하는 인간에게 아주 잔혹한 방법으로 고문하여 마지막까지 저주심을 잃게 하지 않으나, 한편으로 보자면 전쟁으로 수십만 내지 수백만 인류를 죽이는 문명들은 과연 도덕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우리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문화라는 곳에서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물질화된 문명으로 인해 우리의 정신은 항상 빈곤하고 뭔가 부족함 마음을 가진 채 텅 빈 가슴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원주민들은 그런 마음의 빈곤이 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에 동화되어 자신의 존재를 거기서 극복하고자 하였다. 자연을 극복하고 동화하고 조화로이 살아가는 것보다는 오로지 파괴로써 정복하려는 문명인과는 크게 다르다.

 

미개인들이 우리가 보기에는 아주 불쌍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막상 그 미개인 즉 원주민들이 불쌍하게 된 원인은 원주민들이 미개하기 보다는 문명인들이 그렇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나는 미개인이 문명인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미개인들은 문명인이 가지고 살아가는 정신적인 풍요에서는 우월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자연같이 살아가는 원주민들은 점점 현대사회에 도달하면서 조금씩 사라진다.

 

인간의 과도한 욕심, 그리고 지구를 오염시키는 환경오염과 자연파괴! 이 모든 행위는 우리 인간이 인간 스스로 인간적인 면을 버려 가며 자기만의 욕구와 타인에 대한 정복욕으로 슬프게 물들어 간다. 슬픈 열대는 문명인의 과도한 욕심과 이기심 그리고 오만으로 병들어간 열대 원주민들을 관찰한 책이다. 하지만 정작 슬픈 것은 열대 쪽의 미개인일까? 아니면 그 미개인을 바라보는 우리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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