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의 에덴 극장판 1
카미야마 켄지 감독 / 버즈픽쳐스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우리가 흔히 보던 애니메이션 중에서 공각기동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공각기동대는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아키라와 같이 20C 사이버펑크 저패니메이션 3대 명작으로 뽑힌다. 그리고 이 공각기동대는 극장판으로 만든 오시이 마모루 감독 버전이 있는 반면 TV에서 2002년부터 방영한 카미야마 켄지 감독 버전이 존재한다.  

TVA에서 제작된 공각기동대는 극장판과 달리 여성사이보그에 대한 고찰로 통한 여성이 기계와 합일되어 기존 오이디푸스 가부장체계를 부정하는 것으로 작품이 전개된다면 TVA에서는 기존 정치, 사회, 경제 등 다양한 현실 문제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 작품이다. 



주: 사이버펑크라는 단어를 줄이면 SF라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단어인 공상과학영화(science fiction film)가 아니라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펑크(Punk)의 합성어이다. 사이버네틱스란 생물 및 기계를 포함하는 계(系)에서 제어와 통신 문제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고, 펑크는 1970년대 락뮤직 흐름에서 이른바 펑크락이 등장했는데, 이 펑크는 젊은이들이 기존의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정신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이버로 통한 인간 및 생물과 기계의 조합에서 반항의식을 표출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사이버네틱스가 나오는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펑크라는 저항의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작품들을 이른바 사이비펑크라고 명명한다.




극장판 공각기동대에서 주요 문제원인 발단자가 인형사라면 TVA에서는 웃는남자 즉 스마일맨이다. 그렇게 스마일맨 중심으로 하여 파시즘에 대한 문제, 정치의 부패, 대중사회의 군중심리에 대한 문제를 공안9과로 통해 우리에게 전달한다.

 이렇게 카미야마 겐지 감독은 현실에 대한 비판을 공각기동대에 더불어 그런 문제점을 이번에는 동쪽의 에덴에서도 언급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역시 공각기동대를 만든 감독의 작품인지 음악담당자가 카와이 겐지라는 것을 보면 공각기동대의 작품배경, 인물설정, 상황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동쪽의 에덴에서 그가 다루고 싶은 문제는 무엇일까? 우선 이 문제를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하여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우리는 기성세대에 의해 만들어진 관료화, 체계화, 획일화라는 기준과 틀에 맞추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문제는 그런 틀과 기준에 조금이라도 못미치거나 혹은 부적격자로 판단된다면 현실에 보이는 현상들을 어떻게 보일까? 

여지없이 등급을 정해버리게 됨으로써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게 아니라 인간이 기준에 의해 차별되어 가는 것이다. 그런 차별 중에서는 경제력, 학력, 지역, 민족, 인종, 젠더, 사상 등 다양하고 복잡한 인자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런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작품이 바로 동쪽의 에덴이다.  


그렇다면 에덴이란 무엇일까? 서양 사상 중의 하나인 기독교 성서에서 에덴은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가 살던 곳이고, 에덴에서 평화롭게 살던 이브는 뱀에게 속아 금단의 사과를 먹음으로써 인간은 혼란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문명을 탄생한 이래 계속적으로 폭력과 억압 그리고 분쟁 등과 같은 갈등을 맞이하는지도 모른다. 동쪽의 에덴에서는 그런 에덴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나와 과연 우리가 찾아가야할 천국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천국에 이르게 하는데 문제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알려준다.  

동쪽의 에덴에서 왜 하필 방향이 동쪽일까 싶지만, 기본적으로 유럽은 서구사회, 한국과 일본, 중국은 동양이라고 한다. 동쪽은 작가나 감독이 거주하는 동쪽인 일본도 될 수 있으며, 혹은 예수가 태어날 때 찾아온 동방박사 3명, 즉 동쪽에서 온 3명의 현인이 있어서 방향성을 준 것이 아닐까도 싶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타키자와와 모리미로 이둘의 만남은 자국인 일본이 아닌 미국 백악관 근처에서 만난다. 모리미는 미국으로 올때 분명히 무기같은 위험한 물건을 소지하지 않았으나, 어느 순간 자신의 가방에는 총기가 보관되어 있었고, 이때 나타나 벌거숭이 남자인 타키자와로 통해 구출받아 다시 일본으로 넘어온다.  



일본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타키자와는 모리미와 모리미 친구, 그리고 주변에 등장하는 셀레상의 만남으로 통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것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나온다.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현실에 대한 문제점이 보여주는데, 그것은 일본사회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과연 내일이란 미래가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작품의 여자주인공인 모리미는 용모단정하고 머리도 나쁘지 않은 보통 평범한 여성이다. 그런데 그녀가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보러 가던 일화에서 우리는 이 사회의 일면을 볼 수 있다.  



모리미가 중년층으로 회사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남자 간부에게 모욕을 당한 점이라던가 혹은 그런 남자들이 "밑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위에 있는 사람을 받치기 위한 것들(정확한 번역이 아닐수 있음)"이란 말처럼 이 현실사회에서는 이미 기성세대들이 모든 권력을 잡음으로써 새롭게 올라오고 있는 신세대들에 대해 따듯한 조건조차 주지 않은 비정한 세상이었다.
 

또한 비정한 세상에서는 이른바 니트족에 대해 매우 비인간적으로 대한 점이었다. 니트족들은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자신의 틀과 어두운 마음에 갖힌 사람들이다. 그런 니트들이 처음부터 니트가 되고 싶었을까라는 것이다. 니트라고 니트가 아닌 사람들처럼 웃고 즐기고 먹고 사회생활을 하고 싶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서의 니트는 어느새 사회적인 차별로 인해 낙인이 찍혀버려 더 이상 자신들이 밖으로 얼굴을 내비출 수가 없던 것이다. 타키자와의 엽기행위 중에서 니트들을 다 모아서 외국으로 갔다가 그들을 다시 해방시켜 그들이 그들 자신에게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극한 상황을 주게 되었다. 물론 그 방법이나 수단은 옳지 못하나 결과론적으로 니트 중에서는 과거 생활을 청산한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타키자와가 행동한 것이 좋은 의미라 하나 인간이 인간에게 대하는 인격적인 태도는 결코 비판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타키자와가 아닌 타키자와와 반대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타키자와처럼 강제적인 수정궤도를 제공하기 보다는 오히려 세상에 필요를 느낄 수가 없어서 말살하려 한다. TVA 말부분에 니트들에게 공중에서 무서운 미사일이 폭격하려 하지만, 타키자와가 니트들의 아이디어를 빌려 그 위험한 미사일로 인해 희생자를 내는 것을 방지했다. 



그렇다면 타키자와에 대한 윤리적인 부분이 강압적이라도 그가 하고자 하는 의의는 상당히 깊고 올바를 수밖에 없는 극단적 현실이었다. 왜 타키자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까? 세상을 구하는 것은 어느 개인 하나로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간에게 영향을 주려면 거기에 대한 권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사소한 것까지 포함된다. 남녀, 경제, 정치, 지역, 학력 등등에서 말이다. 타키자와가 세상을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이 권력을 어떻게 제대로 사용하고 보여주는 것인가이다. 셀레상이라는 사람들이 특수한 휴대폰 쥬이스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만능적인 능력을 보이는 휴대폰 쥬이스를 가지고 좋은 일에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좋지 않은 일에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쥬이스에는 엄청난 금액이 입금되어 있는데, 만약 그 금액잔고가 0으로 되는 순간 셀레상은 게임오버가 되어 죽음을 당하게 된다. 실제 그것이 얼마나 효용이 있는지 모르나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형사는 쥬이스로 통해 금액을 다 소모하여 결국 게임오버가 되었다. 그런데 약간 의문사항으로 그의 죽음은 쥬이스 운영체계에서 보낸 암살자라기보단 원망에 가득찬 아내의 칼부림이었다. 단순히 돈이 다 되어 게임이 다 된 것으로 보기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 한 양심적인 의사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병들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받쳤음에도 죽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런 점으로 보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다 비명에 죽은 형사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타인을 택한 의사의 최후는 인간의 윤리적인 선택에 따라 그 희비가 갈리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 셀레상들의 자신을 위한 투쟁과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한 투쟁에서 주인공 타키자와는 동료를 만나게 된다. 그의 동료는 미국에서 우연히 만난 모리미의 대학친구들이다. 그들은 모리미와 같은 대학 동아리로 이름은 동쪽의 에덴이다.

동쪽의 에덴 회원들을 보면 다소 뛰어난 인물은 보이지 않으나, 히라사와 카즈오미라는 참모는 다른 학생과 달리 매우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사회상을 절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작품 내에서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난다. "자신은 니트족을 원해서 되었다고" 말이다. 그는 확실히 인물도 준수하고 매우 뛰어난 두뇌를 가진 인재였다. 그러나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여 일반회사에 취업하여 관료조직에 뛰어들기 보단 그저 니트족으로 살아가길 원한다.




즉, 니트족이라고 해서 모두 사회적으로 멸시받는 존재가 아니라 충분한 능력이 있어도 스스로 니트족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세상을 살 때 어느 일정기준으로 통해 인간을 구분짓어 그 사람을 마치 세상의 쓰레기인양 취급하는 슬픈 인간상을 보게 된다. 그런데 히라사와는 그 슬픈 니트족이 자신에게 슬픈게 아니라 사회에 대한 그리고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심으로 대처한다. 자신의 능력을 사회에 맞춰가는 톱니바퀴로 살아가긴 보단 자기 자신이 하나의 톱니바퀴로 사회 속에서 독자적으로 굴러가길 원한 것이다.  

히라사와 친구 중에 매우 뛰어난 컴퓨터 프로그래머 니트족이 있다. 그의 이름은 이타즈 유타카로 분명히 유타카는 매우 비상한 머리로 컴퓨터와 인터넷 프로그램을 상당히 잘 다룬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대한 트렌드에 너무 따라가지 못한 것에 대하여 세상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그래서 그는 집에만 박혀 컴퓨터 앞에 앉아만 있는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폐인이 되버린다. 어떻게 보면 유카타의 행위는 기성세대로 본다면 조금 뒤쳐진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체가 그의 인간성에 대한 비하와 무시로 연결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그를 쓸모없는 폐인으로 낙인찍히게 만들었다. 그가 비록 좋은 머리와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동쪽의 에덴에서 카미야마 켄지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존의 기성세대로 채워진 이 세계는 젊음이에 대한 꿈과 열정을 살려주긴 보다 그저 자신들의 틀과 기준에 맞추어 가야하는 것과 그것에 미치지 못하면 니트족처럼 사회적으로 억압당해야 하는 점이다. 그런 부당함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여 니트족에게 대하는 행위는 하나의 당연성을 뛰는 헤게모니(어느 한 세력이 다른 세력을 지배하는 형태)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타키자와는 무엇을 원한 것인가? 그는 자신이 악당으로 되는 것을 각오하면서 니트족들을 억지로 구했다. 그렇지만 그에게 돌아간 것은 비난과 원망이었다. 현대사회에서 누군가 어느 조직이나 행위의 정점이 되면 그 모든 책임과 영향은 그 정점에 있는 사람에게 갈 수 밖에 없다. 타키자와의 셀레상으로써의 역할은 그런 정점을 두고 자신을 희생했는가 혹은 안했는가로 그의 가치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허나 셀레상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욕망만 채우는 인간들은 대중들을 위해 사용하는 권력이 아닌 단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용도였다. 권력을 가지게 되면 거기에 알맞은 능력과 권한이 따르지만 그 권한에 따라서는 하나의 책임과 처벌이 따른다는 점에서 다른 셀레상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그저 방관하기만 한다. 어떻게 하면 방관하면 낳을지도 모른다. 때에 따라서는 상대 셀레상이나 아무 죄없는 일반인들에게 피해주는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말이다.



이 넒고 넓은 세상에서 손을 잡고 있는 타키자와와 모리미, 그리고 옆에 수많은 동료들은 이 세상에서 저절로 생긴 비틀림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전해주고 싶은가? 동쪽의 에덴이란 그저 우리에게 허망하고 멀기만 한 꿈일까? 아니면 타키자와가 혼자만의 세상에서 왕자가 되어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일까? 세상은 혼자만의 힘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혼자만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모두에게 전해 줄 수는 있다. 오늘날 현대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젊은 사람들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야할까? 현재 사회의 톱니바퀴로 굴러가고 있는 내 생활에서 우리는 어떻게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옳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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