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분기 애니메이션 중에서 그렇게 깊은 내용은 아니나, 재미있게 작품이 있었다. 그것은 <최애가 부도칸에 가 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이었다. 부도칸, 무도관(武道館)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무대공간이다. 아이돌이나 혹은 스타들이 공연을 하는 무도관에서 한자를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무도회(舞蹈會)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무도관(武道館)이란 말이 다소 아이러니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연만 아니라 각종 행사, 운동회 등도 열리지만, 아이돌이나 연예인을 동경하는 자라면 동경하는 곳은 분명하다.

 

이런 곳을 동경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무명의 아이돌에서 시작하여 인지도를 올려 톱스타를 노리는 수많은 소녀들이 그러하다. 2000년대로 오면서 애니메이션 문화에서 많은 변화를 겪은 것 같다. 서사중심에서 특히나 영웅주의적 요소보단 일상적인 요소로 전환이 되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적이란 절대적 존재를 타도하는 것에서 떠나 개인적 목적, 취향, 생활 등이 주요 소재가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서 스포츠도 일상에 포함되나, 승부라는 세계에서 승패의 기로는 주인공이 경기장의 히어로로 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선택을 받는다.

 

그러나 단순히 이기는 것만이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이 하나의 결말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최애가 부도칸에 가 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는 그렇게 깊고 어려운 내용을 담은 작품은 아니다. 지역에서 무명의 아이돌인 Cham jam이 활동해가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아이돌 작품 특성상, 주인공은 보통 아이돌 소녀 또는 아이돌을 지망하는 소녀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뭔가 조금 다르다.

 

아이돌 그룹 Cham jam이 주요인물이기도 하나, 이들이 활약하는 것 이상으로 이들을 지켜보는 팬들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반영되었다는 점이다. 스포트라이트란 화려한 세계에서 아이돌은 자신의 경쟁자들과 싸워 나간다. 그래서 언제나 고독하고 힘들지만, 같은 목표를 향하기에 서로의 결속력은 강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들의 싸움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그들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돌 장르는 이미 흔한 장르가 되었지만,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에서 관점이나 상황 등은 조금씩 변해간다. 가령 최근에 종영된 <좀비랜드사가>의 경우 메이지유신부터 버블경제를 지나 최근까지 다양한 시대의 소녀들이 죽음 이후 좀비로 태어나 아이돌을 결성하는 이야기이다. 처음부터 좀비소녀들을 아이돌로 내세우는 것도 엉뚱하나, 이들이 지역적으로 낙후된 사가현을 발전시키기 위해 활약하는 것은 더욱 엉뚱하다. 살아있지 않은 죽은 소녀들이 좀비가 되어 아이돌을 한다는 발상자체가 특이하다.

 

아이돌이란 장르는 단순히 꿈과 희망, 우정 등 외형적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과 상황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러브 라이브>처럼 학교가 폐교되는 것을 저지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돌 마스터>처럼 거대한 기획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최애가 부도칸에 가 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의 등장인물은 아주 작고 영세한 아이돌기획사에서 시작하여 애니메이션 마지막 장면까지 약소한 아이돌의 한계를 보여준다. 물론 조금씩 노력하고 진보하여 새로운 스테이지에 도전하지만, 결론적으로 무도관에 입성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묘미를 무엇인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 각자의 삶에서 최종목표가 자신이 스스로 이룩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이룩하는 것이 목적인 삶이 있다. 조선시대 많은 어머니들이 아들이 과거에 합격하여 어사화를 쓰고 고향에 오는 것이다.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아들의 성공이 곧 자신이 원한 삶인 것이다. 현대라도 그렇지 못한 법은 없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잡기를 원한다. 그런 점에서 <최애가 부도칸에 가 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 역시 보편적인 인간의 목적의식이 반영된 것은 분명하다.

 

단지 아이돌 그룹 Cham jam이 무도관을 가는 게 Cham jam만이 아닌 그들의 팬들의 목적이다. 특히 주인공 에리피요의 경우 평범한 직장여성이 우연히 Cham jam 멤버 마이나를 보게 되면서 아이돌 오타쿠가 된다. 직장도 퇴사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마이나 관련 상품은 구입한다.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도저히 납득이 어려운 행동이다. 그러나 에리피요나 Cham jam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다른 의미이다. 남들은 인정해주지 않아도 언제나 그들은 Cham jam를 바라보고, 그들이 더욱 더 성장하여 훌륭한 아이돌이 되는 게 인생의 목표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중심이 자신이 아닌 타인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은 Cham jam 멤버 역시 그렇다. 그들의 목표는 아이돌의 정점이고, 무도관에 입성하는 것이다. 인지도가 떨어지고, 팬들 숫자는 많지 않다. 팬들 대부분 외모가 단정치 못한 아저씨가 주를 이룬다. 그래도 그들은 실망하지 않는다. 자신을 좋아해주는데 싫어할 리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들이 이렇게까지 노력하고 힘내는 이유는 자신들을 응원하는 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애가 부도칸에 가 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점은 마지막 화였다. 만화책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지만, 평소 내가 가진 생각이 작품 내 대사로 나왔기 때문이다. “노력은 보답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노력을 해도 무명의 아이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도 일상에서 어떤 목적을 위해 시간과 열정을 받쳐도 얻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다고 그 과정이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그 시간과 노력이 보답을 받지 못할지라도 그 순간들이 결코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에리피요를 비롯한 아이돌 오타쿠들이 계속 Cham jam을 응원해준다. 마지막에는 오히려 Cham jam 멤버들조차 팬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다고 한다. 나를 위해 무도관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위해 무도관을 간다. 경쟁이 심한 외로운 싸움이나,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 삶도 마찬가지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항상 경쟁해야 하며, 성과를 내야 하는 입장에 처한다. 거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했어도 당장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누가 봐준다면 어떨까? 다소 위안이 되어 힘이 나지 않을까?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나, 때로는 남을 위해 살아가는 것도 괜찮은 삶이다. 혼자 외로운 길을 걷는 것보다 옆에서 계속 지켜봐준다면 앞으로 한발 걸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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