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인생 38년! 물론 아버지의 고향은 다산선생의 슬픔이 담긴 강진 도암면이고, 그곳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태어나시고, 증조부가 터전을 잡았다. 하지만 내가 태어난 곳은 영도이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결혼 전까지 영도에서 자랐다. 영도인생 38년, 그동안 영도에서 살면서 느낀 점은 영도는 가난한 동네이다. 피난민들이 많이 모이고, 전남과 제주 각 지방의 가난한 시골사람들이 정착하던 곳이다. 물론 내가 살던 영도 동삼동 일원은 어촌이었다.


지금이야 매립과 개발로 많이 발전했으나 초등학교 시절 통통배가 다니고, 갯벌이 있었고 숲으로 덮힌 곳이 더 많은 곳이다. 가난한 분들이 많아 도개공 아파트도 많고, 태풍불면 휘청거리며, 하수처리장도 생긴지도 얼마 되지 않은 곳이다.


도로도 좁았고 병원도 많이 없었으며, 아버지란 불리는 이들은 육지보단 바다에 나가 거친 삶을 살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어머니는 이북에서 월남하여 거제를 거쳐 평생 영도에서 살고 머물렀다. 나는 가지 않으나 신선성당에서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살았고, 나는 가톨릭신자는 아니나 부산가톨릭대학교를 졸업했다!


아니 부산천주교 교구의 수장이 손삼석 신부님이다. 내가 대학시절 총장님이시다! 기억이 나는 것이 있다. 문재인 국회의원 후보시절 나는 사상캠프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그리고 당선 후 우리형이 KTX를 타고 가는 와중에 문재인 국회위원을 우연히 만났다. 같이 사진찍다가 우리형이 영도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녔다고 하니 문재인 국회위원이 매우 반가워했다. 


그리고 우리형님은 한국해양대학교를 나왔다. 해사대학 출신이 아니나, 문재인 대통령 형제분이 해사대 출신이다! 우리 작은아버지도 역시 해사대 출신이다. 삼춘과 문재인 대통령 동생이 해양대 다닐 때 같은 해사대 선후배였다! 직접적으로 관계는 없지만 많은 접점이 스치는 것 같았다. 이번에 강한옥 여사님이 영면할 때 깜짝 놀랐다. 형이 갑자기 톡이 와서 강한옥 여사님의 소천소식을 나에게 보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에 왔다. 중구에 있는 병원이라 하여 가톨릭신자이니 분명 메리놀병원이라 여겼다. 어머니와 전화하며 오늘 KBS노래교실에 갔는데 KBS 옆에 남천성당이 있다는 것을 이제 제대로 알았다. 거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오셨고, 강한옥 여사님의 마지막 육신이 있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나는 가톨릭신자는 아니나, 초기 한국천주교회사 쪽으로 보통 가톨릭신자보다 많이 공부한 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 다산 정약용 선생이 아닌가? 정약용 선생의 바로 위의 형님이신 정약종선생과 정약종 선생의 따님 2분은 천주교에서 위인이 아닌가? 정약용 선생의 이종사촌형님인 윤지충은 한국 최초 가톨릭순교자가 아닌가?


정약용선생의 친구와 그리고 친구 아들은 사위가 되었다. 정약용 선생의 아버지의 친구가 정약용 선생 친구 아버지였다. 그분은 당시 내 할아버지의 친척이었다. 지금도 다산 선생의 사위의 후손과 우리 집안문장과의 왕래는 계속되고 있다(파시조 세사를 시골에서 계속 지내고 있으니).  


어째든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나, 이런 우연의 산물 혹은 피할 수 없는 운명적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아버지에 의해 삶의 가치를 많이 받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진짜 못먹고 못살고 못배워 무시당하고 억압당한 하층민의 원한을 고스란히 나에게 넘겨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자식은 부모라는 존재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운가보다. 


운명이란 서적을 봤을 때, 강한옥 여사님의 이야기를 보았고, 종종 뉴스에서 영도에서 그저 소탈한 영도할머니로 살아가는 강한옥 여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를 넘어 증조할머니, 외증조할머니인 강한옥 여사님, 나이가 90이 넘어도 자식에게 손자들에게 슬픈 것은 슬프게 다가온다. 영도츨신 사람으로서 영도에서 할머니로 살다 세상을 떠나신 강한옥 여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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