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생태환경 관련된 엔지니어 업체에서 근무하는 나로서는 이 영화는 상당히 와 닿는 작품이었다. 자연의 파괴로 인해 환경이 오염되고 새는 떠나고 사람들은 쉴 곳은 잃어간다. 그런데 만일 자연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영화 <물의 기억>은 그런 마음을 염원하던 자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그 모습이 만들어가는 장면을 찾아내는 영화이다. 보통 5월이 되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해이다. 더구나 518의 슬픔 뒤의 523일이 다가오면 마음이 심란한 사람이 있고, 이에 반해 조롱과 비웃음을 날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전자인 사람이다. 518 망월묘역을 보며 그 끔찍한 일들을 스스로 상기시켜 보고, 책을 읽으면서 가족과 친구를 잃은 그들의 분노와 절망에 마음이 심란했다. 올해 4월 시골에 시제(時祭)가 있기에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을 찾아갔다. 집안의 문중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문중 제각으로 가기 위해 강진군 칠량면 동백리 벽송마을을 찾아가면 입구 쪽에 작은 안내표지판이 있다. “합수 윤한봉 생가라고 말이다. 집안제각 근처 합수선생의 본가가 있다. 낡은 슬레이트지붕 한옥식 건물은 왠지 모르게 쓸쓸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골에 있는 문중 사람들은 그에 대해 잊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그에 대한 오명과 조작은 여전하다. 합수(合水)라는 말은 물을 합한다는 의미이나, 물은 좋은 것만 오는 게 아니다. 똥오줌 같은 오물도 들어온다. 하지만 그게 없다면 논이나 밭에 천연비료를 줄 수 없으며, 심지어 맑은 시내에 살아가는 생물들의 영양분이 될 수 있다. 물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물의 기능을 말하자면 수소원자 2개에 산소 원자가 모여 결합하여 4기준 1L1이란 물리화학적 구조를 가진다. 윤한봉과 노무현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갔으나, 그들에겐 물이란 공통적 성상을 가진 것 같다.

 

합수란 물이 모인 곳을 말한다면, 노무현은 강물은 바다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이 흘러 최종적으로 흘러 그 종착점은 바다이다. 똥오줌이 결국 비와 강물에 의해 씻기어 나가면 바다로 간다. 물은 생명의 고향이고, 인간에게 없어서 안 될 존재이다. 물이란 문화의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물을 업신여기고 그들을 파괴했다. 그리고 물은 농부에게 소중한 존재이기도 했다. 윤한봉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으나, 농민과 함께였으며, 노무현은 농부의 아들이었다. 농부가 농사지으면 무조건 잘 되란 법은 없다. 농부는 언제나 성실하고, 그 성실함에 보답하여 땅을 은총을 내린다.

 

신이 내리는 것은 기상의 이변일지 몰라도, 그 모든 것은 인간의 손에서 달려있다. 영화 <물의 기억>은 인간의 손에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을 마치 한 폭의 생명처럼 보여준다. 환경업무를 하다보면 화포천이란 지방하천이 어떤 곳인지 대략 안다. 2008년 봉하마을에 노무현 대통령이 귀향할 때 그곳은 오염으로 심각한 몸살을 겪었다. 각종 폐기물이 하천변을 어지럽게 만들었고, 하천 바닥은 저질로 가득했다. 저질이 가득하면 물 안이 썩어가고, 결국 죽은 강물이 되고 만다.

 

그가 처음 와서 한 업적은 화포천 살리기이다. 화포천에 맑은 물이 되면 농사도 잘 되고, 생명들도 찾아오고, 세계적인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말이다. 2017년 화포천 일원은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던가? 정말 변했다. 봉하마을에 봉사활동가면서 농촌 봉하마을이 자연적으로 잘 관리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가기 전부터 많은 이들이 그곳을 정리해갔다. 우리가 아는 봉하마을과 다르게 우리가 모르는 그곳이 있다. 동물과 식물이 살아가는 봉하마을을 말이다.

 

영화에서 부지런한 농부는 벼의 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벼의 꽃은 단 1시간만 피고 진다. 그 벼는 우리에게 식량이 되고, 논 안의 생태계는 매우 다양한 공간으로 가득하다. 작은 물고기, 곤충, 잡초, 황새와 두꺼비, 이때까지 우리가 잃어버린 생명들이 다시 찾아온다. 나는 조금 놀란 것이 영상에서 긴꼬리투구새우가 발견된 점이다. 멸종위기 2급 야생생물인 이 저서성대형무척동물이 발견된 게 신기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멸종위기 1급 야생생물 수달이 나온 것이다. 수달을 직접 본 것은 진주시에 있는 수목원이었다. 수달이 좁은 욕조에서 이리저리 오고가는 모습을 보면서 수달이 귀엽다는 생각보단 가엽다는 생각만 들었다.

 

공작처럼 우아하게 천천히 걸어가는 새라면 모를까, 수달은 아기자기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훨씬 어울리기 때문이다. 화포천이 이런 생물이 찾아오고 황새가 날아온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동네 뒷산에 가면 무당개구리가 천지였다. 플라나리아를 찾기도 했다. 산가 산책로를 돌면서 산딸기도 따서 먹기도 했다. 어느 순간 그런 자연은 사라지고,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올라섰다. <물의 기억>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후손에게 물려줄 것은 손자가 자연에서 뛰어놀고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라 했다.

 

내가 어린 시절 내 집 뒷산이나 시골에 가면 자연과 함께 살아갔다. 그러나 지금은 뒷산은 사라지고, 시골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영원히 찾을 수 없는 하늘로 가버렸다. 그리움만 사무치는 가슴 한편에 그저 머무는 것보다 우리가 그런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란 새로운 안식을 만드는 것이라 여겼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진 꿈은 사람 사는 세상이라 했다. 그곳엔 조금 먹고 사는 것도 어렵지 않고, 더러운 꼴도 안 보고, 하루 좀 신명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려면 사람 사는 세상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풀 한 포기라도 작은 물고기 한 마리도 소중하다. 그래서 물은 우리가 지켜야 할 존재이다. 물은 우리 모두를 비추는 거울이며, 우리 모두를 담아주는 요람이다. 그곳에 삶도 있고 죽음도 있다. 늘 같은 모습은 아니나, 그런다고 우리가 모르는 모습도 아니다. <물의 기억>은 정화되어가는 봉하마을과 화포천에 살아가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만든 것은 노무현이란 존재이다. 대통령 노무현도 시민 노무현도 아닌 그저 촌로 농부 노무현의 꿈이다.

 

모든 생명이 공존하고 생존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자연에 우리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인간성을 찾아갈 수 있다. 올해 4월 벽송마을에 갈 때 그곳 역시 논밭과 산자락을 가진 농촌마을이다. 벽송(碧松)이란 말처럼 푸른 소나무가 우리를 반겨준다.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곳에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아름다움을 모른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처럼 그때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은 가난과 배고픔에 서러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서러움이 깃든 공간이 없어진다면 더욱 서러울 것이고, 그 공간이 영원히 사라지고, 후예들에게 남기지 못하면 더 서러울 것이다.

 

다행히 최근 웰빙 라이프가 유행이라 공기 좋고 물 좋은 산과 들, 강과 바다에 많은 인파가 북적인다. 하지만 아쉽게도 농촌의 공간은 잘 보이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윤한봉의 고향에 푸소가 유행이다. 푸소는 'feeling-up, stress-off'의 약자 fu-so로 자연 속에 살아가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고, 모든 인간은 자연 앞에 평등하고 서로 공평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옆에 누군가 힘들면 같이 도울 수 있다. 서로 마음을 합치고 살아가는 그런 공간이 자연인 점이다. <물의 기억>에서 태양의 빛은 그 모든 생명에게 공평하게 간다고 했다. 태양의 하늘 아래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은 오죽할까? 자연의 섭리를 생각하면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서 만일 거기에 따라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왠지 조금 더 두려울 것 같았다.

 

자연이란 존재, 물이란 존재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봉하마을에 자원봉사를 할 때 봉하 들녘에 나가 잡초를 뽑았던 기억이 난다. 피를 뽑아내며 봉하마을의 그 모습을 만들어간 기억이 있다. 그때 왕우렁이 알이 생각난다. 벼의 줄기에 붙은 분홍색의 알들이 말이다. 그게 왕우렁이 알인지는 몰랐다. 단지 왕우렁이가 잡초를 먹고, 그 잡초를 먹은 후 배설물이 나오면 벼에게 필요한 영양분이 되는 것은 알았다.

 

왕우렁이가 알을 낳고, 왕우렁이 알에서 새끼들이 탄생할 때의 소리를 들었다. 소리는 분명 존재하나 우리는 들을 수 없는 소리이다. 그것이 들렸을 때 너무 신기했다. 우리 모두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하지만 그것조차 물의 기억이다. 농부가 조심스레 논두렁을 걸어가고, 벼를 심어가는 것도 물의 소리이다. 우리는 자연의 공간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물은 기억해 줄 것이다. 우리는 분명 오늘 이 순간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5-26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6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