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질경찰>은 스토리를 보면 조금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약간 산만한 소재를 하나로 뭉칠 때 다소 부드럽게 전개해야 할 것, 그리고 과거의 회상이 너무 몰입하여 신이 전개한다. 차라리 몽타주 방식으로 현재와 과거가 다소 현기증적으로 반복대비 된다면 조금 더 긴박한 상황을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질경찰>은 한국영화의 고질적 요소를 상당히 많이 탈피했다. 이른바 클리쎄(Cliche)라는 전형적인 이야기 흐름, 전개, 결론, 방법론적 양식에서 크게 벗어난 셈이다.

 

만일 영화를 본다면 이렇게 느낄 것이다. 이런 큰 사건을 다른 검사와 언론기자들과 힘을 합하여 다른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특히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나 또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사도 괜찮은 방법이다. 영화 <소수의견>에서 실패한 변론이었지만, 주인공은 운동권출신 진보정치인의 힘을 빌려 재판에서 유리한 방향을 찾으려 한다. 물론 판결에서 패배하더라도 어떻게 보더라도 부조리한 세상에서 그나마 희망의 끈은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악질경찰>은 다르다.

 

영화 자체가 매우 폭력적이고, 직설적이며, 잔혹하고 때로는 냉소적이다. <악질경찰>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나가 조필호 형사와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조필호가 묻는다. “야 너는 커서 뭐가 될래?”, 여기에 답하는 미나의 대답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보통 힘을 가진 자가 되어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은 게 보편적 인간의 대답이다. 가령 국회의원이 된다던지 검사가 되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이때 미나의 대답은 진격의 거인이라고 말한다. <진격의 거인>, 원작은 만화인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일본만 아니라 한국 및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린 작품이다.

 

작품을 보면 거인이 등장하여 어느 왕국의 벽을 부수고 마을을 파괴한다. 이들의 특징은 말이나 돼지 같은 가축에는 손을 대지 않으나, 오로지 인간만을 노린다. 인간을 손으로 잡은 이들은 그 커다란 입에 인간을 넣고 그대로 씹어 먹는다. 거인의 크기는 작은 것은 3m 넘는 것도 있지만, 약간 강한 거인은 10m 넘기도 하고, 매우 강력한 거인은 40m도 넘는다. 초대형거인은 왕국의 장벽높이보다 더 놓은 체구를 가진다. 그 거인의 손길 하나 성벽이 무너지고, 집이 박살난다. 손아귀에 인간을 잡으면 그대로 산산조각이 난다.

 

미나는 바로 그런 거인이 되고 싶다고 한다. 거인이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청와대 안에 있는 인간 모두를 죽이고 싶은 것이다. 만화에서 나올 만한 공상적 발상, 결국 현실에서 좌절하고,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어린 소녀의 절망이었다. 미나는 분명 불량한 소녀이나, 그 내면은 보통 인간보다 더 훌륭한 마음을 가졌다. 조필호가 모은 돈을 챙겨 어디에 사용했다고 한다. 그 돈이 사용한 곳은 미나의 친구 지원이가 바다에서 죽자, 그때 지원이의 시신을 찾아준 잠수부의 병원비로 기부한 것이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고, 분노를 참을 수가 없는 세월호 참사, 미나의 친구 지원은 세월호가 바다로 가라앉을 때 그 꽃다운 청춘이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차디 찬 바닷물 속에 그저 말없는 비명을 지르던 그들은 주변의 가족과 친구에게 큰 상처를 안겨줬다. 미나가 권실장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자살을 선택했을 때 조필호는 미나의 손목을 본다. 수도 없이 손목을 그은 흔적을 말이다. 그녀는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바보 같은 남자친구인 기철의 죽음을 밝힐 수도 없고, 미나의 죽음을 만든 그들에게 단죄조차 할 수 없다. 부모님도 안계시고, 혼자 고아인 그녀에게 남은 것은 자살이었다.

 

자살은 흔히 사회적 타살이라 말한다.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자살 이외에 그 어떤 선택지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악질경찰>의 현실적 냉소주의는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왜 조필호는 정의의 사자보단 악질경찰로 등장하는지 말이다. 조필호는 도덕적 양심이 없는 형사이다. 뇌물을 좋아하고, 조폭과 합작하여 건물투기도 한다. 게다가 투기자금이 부족해지니, 기철과 공모하여 은행ATM까지 턴다. 그것조차 부족하니 경찰이 피의자들로부터 압수한 창고까지 털려고 한다. 사건의 발달은 이렇게 시작한다. 창고 안에 들어간 기철은 나오지 않고, 창고는 폭발로 인해 송두리째 날아간다.

 

우연으로 가장한 사고이나, 뭔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흔적을 발견한 소방관은 살해되고, 미나와 알고지낸 동네 양아치도 권실장에게 살해당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일을 크게 여기지 않고, 아무도 그 일을 자본의 권력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남검사는 겉으로 태성그룹을 수사하는 척하나, 사실은 권실장과 내통하고 있었다. 세탁소에서 만나자고 했던 남검사는 권실장을 데리고 와서 조필호를 구타한다. 이때 조필호의 반응이 재미있다. 겁에 질리기보단 그의 모습은 오히려 반항하는 모습이다. 반항과 저항은 다르다. 저항의 불의의 권력에 대항하는 것이라면 반항은 그저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대항하는 것이다.

 

미나와 조필호는 처음 만날 때부터 반항했지만, 둘 사이에서 계속된 충돌이 유대감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권실장은 달랐다. 골절되고 피 범벅이 되어도 조필호는 기가 죽지 않는다. 그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필호의 존재는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도덕이나 사회적 관념에 매몰되지 않고, 그저 자기가 마음에 들고 들지 않은 것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미나가 조필호에게 마음은 연 계기는 권실장에게 살해당하기 전보단, 미나의 친구 소희가 유산할 때 옆에서 도와준 것, 그리고 유산할 때 소녀성애자인 양심이 불량한 의사를 구타한 이유이다.

 

그 의사는 조필호가 데리고 온 여자아이를 본 후 조필호에게 돈을 주면서 자신도 미나하고 성적관계를 가지고 싶다고 했다. 조필호는 그 돈을 던지고, 병원내부를 엉망으로 만든다. 조필호가 그렇게 한 이유는 영화 마지막에 가면 나온다. 조필호가 권실장과 정회장을 살해할 때, 그 모습을 와이프가 본다. 와이프는 딸에게 메시지를 남겨 무조건 집에 빨리 오라고 말한다. 조필호가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그가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의라는 가치관, 법을 실행하는 경찰관만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단지 개인적 원한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영화의 전개성은 바로 악적인 존재에 대한 응징이 정의의 원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단순히 원한에 의해 실행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이다. 미나가 거인이 되어 청와대에 있는 인간들을 물어뜯어주고 싶은 것처럼 현실의 제도에서 부조리를 타파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조필호가 다른 것은 몰라도 미나가 입고 있는 옷을 지원의 아버지에게 돌려달라고 한다. 삼우제 지낼 때 옷을 태우려 하는데, 그렇지 못해 지원의 아버지가 무척 아쉬워한다고 말이다. 개인적 감정에서 나온 말이나 우리는 그 말에 심히 공감한다.

 

인간은 감정은 선과 악을 떠나 그저 그렇게 하고 싶을 뿐이다. 따라서 때로는 광기에 빠지기도 한다. 광기가 그저 순간적으로 머리가 이상해져서 표출되기보단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실행할 뿐이다. 7800억원을 횡령한 정회장은 조필호에게 7800만원을 주면서 말한다. 조필호는 7800억원에서 1000분의 1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미나는 780원밖에 되지 않는 쓰레기라 말한다. 친구의 시신을 수습해준 잠수부에게 3000만원을 건넨 미나가 780원짜리 인생으로 취급받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조필호에게 정회장은 법앞에 만민은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명만 평등하다.”라는 기득권의 논리를 말한다. 조필호는 그런 정회장의 머리를 겨누며 미나는 780원짜리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동료경찰이 발사한 총을 맞고 자리에 쓰러진다. 피눈물을 흘리는 조필호의 눈에 어떤 소녀가 줄넘기를 넘고 있었다. 그의 눈에 보인 환각은 경찰이 되고 싶은 지원이 줄넘기를 하는 장면이었다. 어찌 보면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친구에게 눈물은 그냥 눈물이 아닌 증오와 원한으로 가득한 피눈물일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조필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가 경찰압송차량에 태워져 가는 길에 추모공간을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때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미나를 본다. 조필호는 미나를 보면서 손을 흔들어댄다. 미나는 갑자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던지 순간 조필호를 보면서 미소를 환하게 짓는다. 분명 미나는 이 세상에 없는데 말이다. 미나와 그 옆에 있던 소녀들은 바로 세월호에서 희생당한 어린 아이였을 것이다.

 

영화는 냉소적 현실을 풀어낼 수 없기에 환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차라리 그게 더 현실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다. 정회장과 권실장이 죽자, 그들이 벌여온 행각이 드러난다. 권실장이 협박하던 핸드폰 여성기술자가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을 증언하고, 남검사가 기업과 손을 잡고 수사를 방해한 사실이 드러나자, 그들은 사회적 응징을 받는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합리적이고 법리적인 과정이 아니라 조필호의 광기에서 시작된 결과물이 아쉽다. 조필호는 분명 말한다. 정회장의 살인 동기는 개인적 원한이라고 말이다.

 

개인적 원한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조필호의 행동이 용서받지 못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갈등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매우 드라마틱하게 흘러간다. 드라마, 비극(悲劇)이라는 것은 비참하고 끔찍한 일들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하나의 개연성을 지닌 이야기서사이다. 조필호는 영웅도 아니고, 그런다고 악질경찰일망정 악당도 아니다.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성격이 더럽고, 내 마음대로 하는 인간군상이다. 다행히 악질만큼 성격도 모질다는 게 그의 장점이다. 인간의 극단성은 드라마틱한 이유는 그게 자신에게 틀린 답이고 이득이 없어도 그 일을 해야 하는 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다른 것은 모르지만, 정말 이선균씨의 노고가 돋보인다. 운전 중 사고 나는 장면, 건물에서 떨어지는 장면, 심지어 몸에 결박당한 채 목욕탕 수조의 뚜껑을 입으로 여는 장면도 생생하다. 욕도 잘 했고, 표정연기도 잘 했다. 이선균씨의 연기가 매우 돋보였다. 그리고 세월호의 아픔을 인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날의 슬픈 비극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되고, 계속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영화는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가 생각났다. 조필호의 이마에 남긴 상흔은 바로 세월호의 상처이다. 그 상처를 보고 미나는 지원의 아버지를 구한 사람이 조필호라는 것을 안다. 이마의 상처는 조필호만의 상처만이 아닐 것이다. 세월호라는 상처가 영상에서 조필호의 몸으로 각인이 된 것이다.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영원히 남는 것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