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연구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한국경제를 두고 자유시장주의 즉 자본주의적 가치를 토대로 이루어진 시스템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라고 해서 자유시장 경제 체계를 자유권리를 가진 국민의 힘에 의해 움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유럽의 길드연합이 존재하던 시절이 더 자유롭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어도 국가의 통제권한이 지금과 비교하면 덜하면 덜 했지 더 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대 자본주의 체계가 자유시장 보단 국가의 개입이 완강하다. 지난 보수정권에서 자유주의 경제구조를 도입했다고 하나, 그 속에는 국가의 개입이 여전히 있었다.

 

국가의 개입이 없는 시장 따위는 없다. 결국 시장은 세계는 국가

라는 시스템과 더불어 경제활동을 하는 국민과 기업 그리고 여러 조건들에 의해 움직인다. 경제를 두고 사람들은 많은 말을 한다. 하지만 정작 경제학(經濟學)이란 영역을 들어가지 않는다. 정치학이란 영어철자는 economics로 불린다. 하지만 경제학은 단순히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적 요건이 갖추고, 세계적인 고전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를 읽게 되면 생각이 바뀐다.

 

세계 경제학의 시초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을 읽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학의 원리와 일반적으로 세계에서 흘러가는 경제학은 다르다. 경제학은 많은 재화가 생산되어 소비자에게 소비되어 그것으로 인해 소비자는 생활의 도움이 되고, 판매자는 수익을 거두어 이윤을 추구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원료, 노동력, 물류 등 각종 업무로 통해 많은 직업을 창출하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생계를 일구어 갈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을 목표로 하는 것이 스미스의 경제철학이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 이전에 윤리도덕학을 전공한 철학자였다. 그가 <국부론>을 적은 이유는 당시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공업화로 통해 재화가 대량생산되고, 거기에 많은 소비자가 소비를 했다. 결국 경제를 잘 돌아간다는 말은 더 많은 종류의 상품이 더 많이 생산되어 소비자가 계속 소비되는 것이 목표이다. 소비자는 노동자이기도 하지만, 결국 생계를 이어가는 국민이다. 소비와 생산의 관계성에서 자본주의는 그렇게 성장했다. 이번에 감상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바로 그런 시스템이 붕괴하던 한국의 지난날을 다시 돌아보는 작품이다.

 

IMF, 그것은 하나의 재난이고 저주였다. 많은 은행이 도산하고, 기업이 부도나고, 기업가들은 도망치거나 구속되고, 노동자들은 절망의 외침을 내거나 심각한 경우 목숨까지 버렸다. 한 해 자살 율이 40% 증가하던 그 절망의 시기, 이때의 우리에게 닥친 것은 불황이다. 경제학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자본주의의 시작은 자본이다. 자본은 무엇에서 시작하는가? 바로 화폐에서 시작된다. 화폐는 무엇을 중심으로 돌아가는가? 그것은 기축화폐,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통화(通貨)를 말한다. 통화의 움직임이 없다면 돈의 흐름도 없다.

 

돈의 흐름이 없다면, 돈이 돌 수가 없다. 돈이 돌 수 없으면 재정적으로 파탄 나고, 부도가 난다. 한국 경제학에 대한 성찰에서 경제학과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단지 애덤 스미스나, 존 스튜어트 밀, 루소, 마르크스&엥겔스 책 몇 권을 읽은 정도이니 완전 일반인으로 보기는 어렵지만)으로 보자면, 그래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경제사는 이제 100년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말은 무슨 뜻인가? 우리 경제는 일제에 의해 자본주의 개념이 들어왔으나, 자유경제는 없다. 전시 군국주의적 경제체계에 의해 자유경제가 아닌 식민지 경제에 돌입된 것이다. 자유경제구조라면 조선인이 가진 자본시장이 확대되어야 했지만, 일제는 거부했다. 독립군들의 자금이 거기에 흘러가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자본시장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고, 일본처럼 전시 이후 미국과 연합 국가들은 반공 이데올로기적 정책에 따라 경제성장을 올린 것이다. 경제성장이 정상적으로 일반 국민과 기업에 의해 움직인 게 아니라 국가의 대규모적인 정책에 따라 시행했고, 달러를 벌어들여 외화를 유치하고, 그 외화로 각종 공업기계를 도입해야 했으므로, 당연히 초반 공업은 경공업에 치중했다. 섬유공장은 늘 어린 여공들의 눈물로 가득했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강산은 폐수와 매연으로 물들어갔다. 자본주의의 시장성장 아래 인권이 밟히고, 자연이 오염되어 갔다. 그 과정에 따른 여파라고 하나, 지금 21세기 국민 중에서 옆에 매연이 나오는 공장 옆에서 살고 싶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장에서 매연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환경법규에 따라 벌금 내지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바로 성장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배분을 어떻게 할까 에서 대규모 공업을 투자하기 위해 대기업을 투자했고, 대기업은 부품 및 조립 그 밖의 외주를 시행하기 위해 중소기업이 성장했다. 문제는 수익금이다. 중소기업의 임금이 대기업의 임금에 비하여 격차가 심했고, 그것의 차이는 점점 심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 차이는 비교하지 못한다. 대기업 정직원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대기업 정직원이라도 어느 순간 권고사직 또는 명예퇴직이 닥쳐올지 모르는 시기다.

 

이 모든 것이 언제부터인가? 바로 IMF 통화구제부터이다. 군복무를 할 때 생각난다. 차량으로 출퇴근할 때 고속도로를 올려 비행장으로 가는데, 처음에 엄청 막히는 길로 갔다가 우연히 안 막히는 터널을 통해 갔다. 통행요금이 제법 비싸나, 편하게 출퇴근을 했다. 문제는 터널은 국가시설이고, 그것은 국민을 위한 시설이다. 터널요금의 수익금은 국가재정이나 거기에 투자한 시설공사 기업이 받는 것은 정당하나, 그것보단 공사에 투자한 투자자에게 배분이 더 큰 관건이었다. 맥쿼리코리아란 업체는 상당히 좋은 위치에 SOC 사업을 벌인다. 도로의 통행세를 받으면 아주 유리한 돈벌이다. 신대구 부산고속도로, 인천공항 영종도 고속도로, 각종 터널은 SOC 사업을 국가가 인허가를 주도하지만, 거기서 나온 수익금은 조금 다른 방식이 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검은머리의 외국인이 탄생하는 원인을 알 수는 있는 모습이 나온다. 미국이 IMF기구와 협상을 하고, IMF 구제통화는 미국으로부터 받는다. 미국의 자본침투로 통해 기존의 한국기업들은 순수 한국지분이 아니라 외국기업의 지분이 들어있고, 지분의 50% 이상이 어느 지분소유자에게 들어가면 기업운영권이 넘어간다. 기업운영권이 넘어가면 그것은 한국기업이 아니라 다국가 기업이 되고, 자본은 국경은 초월하여 그 나라의 경제까지 좌지우지 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보면 경제부 차관의 모습에서 정말 국가재정 파탄을 몰랐을까? 알았어도 왜 막을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유리한 경제적 조건을 알았다. 경제학에서 중요한 것은 기업과 소비자, 그리고 노동자, 이들을 법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국가가 있다. 국가가 국민 대다수인 소비자와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에게 모든 것을 부여했다. 기업이 이긴다는 것은 그 외의 사람은 죽어도 무방하다. 영화는 정경유착으로 망가진 지난 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업총수의 아들과 경제 관료의 밀실논의, 상황이 발효 되도 밀실에서 진행하는 모습, 자신의 이기심과 무지를 책임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국민의 과소비로 돌리는 모습도 보인다.

 

외화의 유출에서 외국여행도 어느 정도 나가지만, 최고 중요한 원인은 외국에서 한국의 은행에 투자한 것이다. 투자를 하면서 이자를 받거나 혹은 원금을 유지하면 몰라도 외화를 빼면 다른 말이 된다. 과거 외화 내지 금 같은 기축화폐들은 은행의 창고 속에 보관한다. 하지만 전산화 된 세상에서 화폐는 다른 개념이다. 미국기업이 우리에게 1억 달러를 투자하면 그 돈이 종이라는 화폐단위로 한국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전산망에 따라 1억 달러가 인터넷으로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하여 보는 기업인터넷뱅킹 서비스를 하면, 실제 100만원이 있다고 해서 그 100만원이 지폐다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전산으로 옮겨질 뿐이다.

 

순식간에 전산에서 사라진 화폐로 국내 남은 달러가 소멸되자,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는 폭등한다. 1달러에 500원이 천원이 되면, 자재를 구매할 수 없다. 원자재 수입을 통해 수출하는데 자재가 들어오지 않고, 달러가 없으면 대금결재를 할 수 없기에 무역 자체가 불가하다. 이런 무능한 사태는 바로 금융권의 대출시스템, 은행의 감독권의 부실이 문제이다. 가령 한국은행이 100만원을 시중은행에 대출하면 그 은행은 100만원만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현금보유액 10배만큼 대출할 수 있고, 만일 10배만큼만 하면 문제는 없으나, 그 이상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은행에 100만원을 보유하다 은행이용자들이 현금을 찾는 액이 200만원이 될 경우 뱅크런으로 은행은 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전산망의 금융시스템은 뱅크런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게 만든다. 투자자에게 아무런 사전조사 없이 대출하는 은행과 대부금융업체, 받은 돈을 사업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횡령하는 총수들은 결국 불굴의 기업이 도산하게 되는 길을 열게 되고, 이런 문제점이 쌓이고 쌓여 국가부도의 날로 이어진다. 물론 우리는 몇 년 안에 빚을 갚았다고 하나 그 여파는 강하다. 흔히 21세기란 길가에서 Hell-조선이란 신종어가 생겼다. 지옥 같은 조선, 한국은 그런 나라이다. 경제의 후퇴는 인구감소로 이어진다. 인구감소 심각성은 시장경제의 축소이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창출하자, 그들은 생계의 문제로 식료품 필수 의복을 제외한 나머지를 최소화한다.

 

그런 나머지 산업들이 후퇴를 하고, 거기에 문을 닫는다. 인구가 감소하기에 앞으로 식품산업도 시장규모가 축소한다. 그러면 그런 부류의 산업체계가 붕괴하고, 다시 경제적 문제가 생긴다. 한국의 문제는 소비할 수 있는 부류가 축소이다. 집도 차, 심지어 핸드폰조차 할부로 구입한다. 할부도 단기간이 아니라 장기간 할부이다. 채무를 안고 계속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부도의 날>에서 그날의 운명은 많은 이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영화에서 좋은 연출은 경제정책을 움직이는 관료, IMF 여파로 피해를 보는 일반 소시민,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삼은 사람들이 나온다.

 

절망의 심정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갑수가 있는 반면, 그 같은 거리를 웃으며 활보하는 정학도 있다. 정학이 새로 산 집에 가니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갑수의 거래처 사장이었다. 부도가 나고, 자신도 어렵지만 모두 어려우니 차마 돈을 받을 수 없고, 그런다고 해결되지 않으니 그 우울함에 극단적 선택을 고르게 된 것이다. 영화 주인공 한시현 팀장은 경제엘리트 관료이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따듯한 인간이었다. 그녀가 그런 마음을 가진 이유는 갑수라는 인물이 오빠였고, 그 오빠가 IMF로 괴로워하자,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없고, 간접적으로 정치적 대안조차 내놓을 수 없었다.

 

그녀가 현실에서 좌절한 모순은 바로 그녀 주변인에게 닥친 것이다. 또한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정치문화와 정경유착 체계는 소수 남성 지배계급(그런다고 갑수나 자살한 사장이나 해고된 노동자들은 지배계급이 아니다)이 움직이고 있었고, 새로운 경제지식인이던 한팀장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한팀장이 바라본 현실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한국은행 총장은 경제학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저 낙하산인사로 떨어진 인물이고, 사무실조차 제대로 붙어있지 않았다. 일에 무지하고, 책임에 무능한 그 자체가 결국 재난의 길로 빠진 것이다.

 

영화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해준다. 20년의 IMF가 영화에서는 그때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위기가 온다는 점이다, 운이 좋은 것은 당시 경제수석과 관료들은 국민을 버리던 자이나, 이제는 국민을 살리려는 자이다. 당시 나라경제를 말아먹은 자들은 기업의 임원으로 잘 먹고 잘 산다. 생각해보면 IMF 당시 경제업무를 맡은 관료 중 책임자가 아니라 실무자가 지난 정권에서 경제관료 책임자급으로 있었다. 부도사태를 나고도 다시 돌아온 그들에게 국가경제의 핵심은 누구인가?

 

부익부 빈익빈은 심각한 국가문제를 야기한다. 사회는 피폐해지고, 범죄도 증가한다. 게다가 소비위축은 새로운 경제위기로 이어진다.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재고가 남고, 재고가 남아 대금을 치루지 못하면 부도가 난다. 부도가 나면 은행의 채권들은 휴지조각이 되고, 부실채권의 돈에 투자한 사람들은 거리로 내몰린다. 위기는 기회가 되겠지만, 그 혜택을 볼 수 있는 부류는 극히 일부이다. 기회는 찬스라는 말 따위를 다수 사람에게 떠벌리는 인간만큼 무책임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국민의 책임이 아닌데도 물과 전기를 절약하고, 과소비를 억제하라 한다. 영화는 그런 지옥에서 겨우 살아남은 국민에게 다시 위기를 말한다. 다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때처럼 호락호락 당할 수 없지 않은가?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그때 일을 잊어서는 안 되고, 그때 그 지경까지 만든 놈들을 잊으면 안 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12-03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03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