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레스큐 -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한 소방관이 기억하는 그날의 기록
김강윤 지음 / 리더북스 / 202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앞서 읽은 책 <내가 UDT가 된 이유>의 여운을 가득 담고 시작한 레스큐였다. 첫 문장에서 만난 진해의 익숙함과 떠오르는 풍경들이 낯설지 않았다. UDT를 전역하고 여러 과정을 겪으며 소방관이 되어 부산에서 13년을 근무하는 중이며 이제 글쓰는 소방관이 되어야했던 이야기에 와있다. 모든 부산의 지명과 위치가 내가 자라고 누비고 다닌 곳들이라서 더욱 가깝게 들리기도 했다.
나는 어느새 책이라는 간접 경험으로 UDT의 혹독한 훈련을 어림잡을 수는 있게 되었다. 몸과 정신으로 버텨야하는 그 고통에는 감히 다가설 수 없겠지만 그들이 하루를 천년같았다고 말하는 고통의 시간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이해하고 싶은
또 하나의 마음이 있다.
저 뜨거운 불길 속으로, 위험속으로, 어두운 심연속으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전진하는 소방관의 마음을 감히 누가 짐작이나 해보려 했을까!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지만 꼭 알았으면 하는 이야기들을 책에서 만나게 되어 가슴아프고 감사해서 더욱 전하고 싶다.
소방관이 바라보는 진정한 삶이란,
지금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그리고 생의 순간에 감사하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다.
아파도 아픈지 모르고, 슬퍼도 슬픈지 모르며 살아가는 소방관들. 무너지고, 부서지는 처참한 현장에서 본 죽음의 나신(裸身)은 결코 지워질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어 온몸 구석구석 상흔이 되어 남는다. 그러려니 지내온 세월의 흔적들에 우리 사회의 영웅이라 불리는 자들은 결국 무너져 내린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식이었다.
이 책이 감사한 이유는 수없이 많다.
열악한 소방환경에서 시작해서 오늘날의 소방관들에게 이르기까지 그들 자신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것 뿐 아니라, 일반인들인 우리에게도 (그들의 노고와 희생을 잊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호소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전해주었기에 더욱 감사할 일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가슴 아프고 또 명료하게 전달 받았다.
책의 초반부 그가 소방관이 된 과정에서 시작해 진정한 구조대원으로 태어나기 까지의 모습들은 상상 그 이상었다.
소방관이 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도 몰랐고, 소방관들의 사명이 이렇게 가슴아프게 뜨거워야 했던 것도 몰랐고 그들의 가족이 이렇게 가슴 아픈지도 몰랐다. 안다고 생각했던 어떤 것들은 모르는 것이었고 그들의 희생을 필연으로 생각한 것에 죄송했다.
평생직장으로써의 소방공무원이 되기 위해 밤낮을 공부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무엇을 위한 공부와 배움이 필요한지를 잘 알려주고 있기도 했다.
그냥 초등학교 때 익힌 고마운 소방관 아저씨로만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고마움조차 현실에서는 먼산 보듯 스쳐 지나갔다. 소방차나 주황색 제복의 소방관들은 우리에게 그냥 직업이었다. 화재나 구조 현장에서 안타깝게 다치거나 생을 마치시는 소방관들의 뉴스도 잠시 안타까웠을뿐 더이상 크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어느새 잊고 잘 먹고 잘 자고 웃을 수 있는 나였다.
그런데 이젠 많은 것이 다르게 보일 것이. 분명했다. 소방관들이 요구조자들을 보며 그들의 가족이 겪을 슬픔까지 생각하듯이 나도 그들의 가족과 동료들을 생각해보게 될 것 같다.
책에 많은 사건 사고 현장의 생생한 모습들이 나온다. 글을 읽기만 했는데도 내가 숨이 차오르고 버겁다. 그가 잃은 동료들과 우리가 잃은 소방관들의 생이 너무 아팠다.
아프기만 했다면, 모두 포기했을 일이지만 생명을 구하는 보람과 자부심이 그들을 얼마나 더 강하게 만드는지를 보며 주황색 제복이 나역시 뿌듯했다.
소방관들에게 도움을 받아 위기를 면해본 경험이 있건 없건 이 책을 접한 사람이라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우연히 마주했을 때 기꺼이 손을 내밀지 않을까 한다. 작지만 도움 되는 순간들을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p134
PTSD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내가 소방관이 되어 일을 시작했던 10여 년 전만 해도 소방관 스스로 가진 마음의 병을 내색하지 못했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목숨을 잃은 이들에 대한 예우가 있을 때
살아남은 자들은 그들을 위로하고 다시 현장으로 뛰어들 용기를 가질 수 있다.


그가 마주한 모든 이별에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천천히 읽었다.
함께 고생한 동료를 잃거나 많은 죽음을 보며 마음의 병을 얻은 소방관들이 많다는 것을 인식했다. 저자가 찍은 소방관의 자살을 다룬 10분짜리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느낄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범석이가 왜 그렇게 됐는지 누가 이유를 말해줬으면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잊지 않는 것‘뿐이었다. - P252
일하다가 다칠 수도 있고 까딱 잘못하면 제 명에 못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바로 이 일이 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 P270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목숨을 잃은 이들에 대한 예우가 있을 때 살아남은 자들은 그들을 위로하고 다시 현장으로 뛰어들 용기를 가질 수 있다. - P271
더 많은 동료들의 죽음이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오랜 시간이 지난 이들의 죽은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 내내 가슴은 미친듯이 아려오고, 눈물이 하염없이 솟아올라 견디기 힘들었다. - P279
삶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반대로 보자면 죽음에 이르는 순간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제서야 알게 된다는 말일 수도 있다. 삶의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스스로 겪지 못한다면 타인의 삶을 보고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도 있다. - P2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