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확인한 결과 나는 사정이 어렵고 바쁜 부모님 사이에서 아이다움을 인정받지 못하고 철든 아이로 연기하며 착한아이의 가면을 쓰고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어쩔 수 없었던 그런 상황에 적응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덮었던 부분들을 다시 꺼내어 보았다.
내가 느꼈던 불안, 부모님께 나의 요구를 말하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며 부모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말썽 없고 조용한 아이, 혼자서 알아서 하는 나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부모님과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시간조차 삼켰던 외로움이 가득했다.
그것들이 문제가 될 만큼 크게 작용하진 않았지만 내가 자신감 없고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오래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부모님으로부터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받은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받는다는 그 말의 의미조차 사실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상태였다.
정말 중요하지만 애매하게 넘어가버린 나의 내면아이를 제대로 만나는 시간이고, 가족이 가진 챗바뀌같은 아픔의 시작점들로 인해 나뿐만아니라 가족 전체가 가진 문제를 이해하게 된다. 더이상 아무일 없는듯 가면을 쓰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해결책을 찾기위한 노력을 하게끔 다 털어놓고 싶게 만드는 책을 처음 만났다.

이상한 기억들, 그동안 신경쓰지 않던 작은 에피소드들이 자꾸 생각이 난다. 다소 힘들었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이 긁어 부스럼이 된듯이 처음엔 불편했지만 한편 이렇게 속시원할 수가 없다.
초등학교 때 무릎뼈에 금이 가서 깁스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상태로 학교를 갔을 때 친구들이 주는 관심과 배려가 너무 좋았던 탓에 그후로도 가끔씩 나를 나약하게 만들어 관심받고 싶어했던 어린 내가 기억났다.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런것이 아니라 사랑받고 싶은 본능적인 행동이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더 놀랍기만하다.
아이들은 자기가 얼만큼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고, 그 예민함은 마음의 상처에도 빠르게 반응했던 것 같다.
그 예민함에도 불구하고 모른체 무시당한 감정들이 무엇이었는지 이 책에 나온 사례자들을 통해 시원하게 볼 수 있었고, 이제 대충이 아니라 정확히 알게 된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