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국 부모를 떠나보낸다 - 부모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깨달은 삶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진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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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늙어버린 부모님에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혼자 지내시는 시아버님의 생활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아직은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시지만 혼자 계시면서 약 드셔야 하는 걸 잊으시니까 그게 가장 걱정이다. 여기로 모시고 와서 함께 살면 되지 했지만 그것도 맞지 않았다. 아버님 말씀대로 "아직은 그 정도가 아니다"인 것이다. 아버님의 평생 근간인 동네를 떠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여러 사건으로 새삼 느낀다. 우리 집으로 모신다 해도 일하러 나가고 나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적적하실 테고 아는 얼굴 하나 없는 아파트 동네보다는 여기저기 눈 인사하고, 안부를 물을 이웃들이 많이 있는 주택가가 아버님께 좋을 것이다. 평생 루소 같은 루틴을 가지신 아버님이라서 자주 산책하고 운동하고 바람 쐬기에도 자유로운 익숙한 그곳이 좋다고 하신다. 그래도 아직은 이만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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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아프시면 자식도 같이 병이 든다던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간병이라는 생활병. 생애 주기에서 부모님 케어는 당연히 도래할 일일 테지만 솔직히 그동안은 이런 날이 오리란 걸 거의 생각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가 크는 동안 부모님의 세월도 흐른 것이다. 친정 부모님 건강도 늘 좋지만은 않았고 상대적으로 정말 건강하시다고 생각했던 시아버님도 이렇게 신호등에 노란 불 정도는 들어오다 보니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부모님 곁에 있는 것.

그 자체로 의미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이때 마침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로 기시미 이치로 님의 에세이 <우리는 결국 부모를 떠나보낸다>이다. 기시미 이치로는 30대의 나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던 다양한 책의 저자이다. 독자인 내가 나이가 들었듯이 작가님도 나이가 드셨고 이렇게 언젠가 부모님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같은 입장에 놓였다고 생각하니 한숨을 쉬게 더더라. 이 글들은 먼저 경험하고 깨달으신 것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담아 주신 것 같다. 그 누구라도 피해 갈 수 없는 것.

심리학 박사, 의사, 철학가이기도 한 기시미 이치로에게 이 책은 무엇보다 그 자신의 애도 일기이면서도 인생 회고이고 누군가에겐 안내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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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경색으로 어머님 보내드리고 시간이 흘러 아버님은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셨고 그러는 사이에 본인도 뇌경색으로 고비를 넘기셨는데 간병과 생계의 무거운 짐을 생각하면 가슴이 묵직해지고 답답해지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100세 시대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사회적 난제이기도 해서 읽고 심리적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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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88

무언가 못하게 된다고 해도 시간이 걸려 서서히 앤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짧게 보면 어제와 오늘로는 변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많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이 '변화 없음'에 주목해 기뻐해야 합니다.



P.25​

돌아가신 어머니는 더 이상 나이가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저는 어머니와 같은 나이가 되었고, 결국에는 어머니의 나이를 넘어 어머니가 경험해 본 적 없으신 쉰 살이 되었습니다. 쉰 살이 된 제게 남은 삶은 마치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여행과도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한 번도 가본 적 없으신 곳에 저 혼자 받을 내디디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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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38​

더 이상 어머니 꿈을 꾸지 않게 된 것은 어머니를 위하여 제가 할 수 있었던 일과 할 수 없었던 일이 있었고,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용기를 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네 인생이란 가끔은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지금의 저보다도 훨씬 젊은 나이에 병으로 돌아가신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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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3​

저는 아버지가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계신 동안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일을 하곤 했습니다. 아버지가 잠드시면 그야말로 아버지를 위해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요. 하루는 아버지에게 “하루 종일 이렇게 주무시기만 하시니 제가 안 와도 되겠네요”라고 한숨 쉬듯 말하자 아버지는 뜻밖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게 아니야. 네가 옆에 있으니까 내가 안심하고 잠드는 거야.” 그 말씀이 마음에 확 와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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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8~199​

저는 아버지의 “고맙다”라는 말이 기뻤습니다. 그 말이 확실히 힘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고맙다”라는 말을 듣지 못한다고 해서 낙담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님이 “고맙다”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 혹은 원래 그런 말을 잘하지 않는 부모님이라면 간병은 고통스러운 일이 되니까요. 부모님이 방금 밥 먹은 사실도 잊어버리고, 어떤 일을 해줘도 기억하지 못하고, 무슨 일을 해도 당연하다는 태도를 취한다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 수는 있습니다. 간병 그 자체가 힘든 것은 견딜 수 있어도 내가 하는 일이 쓸데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간병은 어쩌면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을 먼저 납득시켜야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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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7​

인생을 미루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숨이 막힐 것 같은 현실의 긴박한 상황을 이겨내며 살라는 뜻은 아닙니다. 소설 속 남자가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표현에 현실이 있습니다. 시간을 하나하나 계산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복입니다.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대충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간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의미입니다. 자유로워졌기에 지금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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