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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루프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11
박서련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4월
평점 :
89년생의 박서련 작가는 문학동네 21년 젊은 작가 수상집에서 만난 바 있었다. 그리고 23년에는 <나, 나 마들렌>으로 이상문학상 우수상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고백 루프]에는 박서련 작가의 9개의 단편 소설이 담겨있다. 1부와 2부 소설 7개는 작가가 서른이 넘은 후에 쓴 것으로 자전적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고 2부는 순수 상상만으로 쓴 소설이며 3부는 작가가 고 2, 고 3 때 쓴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가 청소년일 때 쓴 소설 <가시>, <발톱>은 20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낡지 않았다.
단편 소설 9개로 작가의 시절을 관통해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허투루 읽기에는 소설가가 쏟아부은 열정과 고뇌의 시간이 참 헤아릴 수 없었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소설이 하나로 묶여 다시 한 권의 책이 되었기에 나도 이제 박서련 작가를 더 알게 되었고 이런 이야기들도 전할 수 있게 된 걸 기쁘게 생각한다.
청소년 소설, 성장 소설을 읽으면 어른이 된 후의 나이기 전의 나를 만날 수 있어서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아진다. 나를 생각하면 과거로의 여행이지만 딸을 생각하면 또 미래로의 여행이 되기도 해서 좋다.
박서련 작가를 비롯해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 주인공이 청소년은 아니지만 청소년이 보기에 적합한 소설, 청소년이 직접 쓴 소설을 더 읽어가고 싶어진다. 어른이 아니어야만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잔뜩 스민 소설에서 아직 어른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위로받고 성장해 나가길 바라면서 작가는 쓰고 독자는 읽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많은 청소년의 모습은 내 모습이기도 하고 친구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 똑똑하지 않고 주목받을 일도 없다고 생각하는 청소년, 대외적으로 소심하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느라 쩔쩔매는 청소년이 있는가 하면 계산적이고 조금 꼬인 성격에 자기가 꽤 똑똑하다고 믿고 있는 캐릭터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박서련 작가의 청소년 소설 속 화자로 등장하는 나의 원형이라고 한다.
p 133
생각을 해 보자. 나는 만화나 소설에 이런 내용이 나오는 걸 꽤 많이 봤다. 소위 '루프'라고 하는, 특정한 하루가 무한 반복되는 상황. 이럴 때는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루프를 빠져나가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특히나 청소년기에 마치 우물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뭔가가 잘못되고 있는 듯한 상황이지만 벗어날 방법도 딱히 알 수 없는 나이.
평소에 드러내지 못하는 어떤 마음이 우연한 계기로 전달되는 순간이 루프를 깨고 원래의 나로 돌아오게 한다는 의미는 아닐까 생각했다. 각각의 소설마다 그런 요소들이 있었고 좀처럼 통하지 않던 마음이 순간 이동해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소설이 좋았다.
솔직한 마음
첫 문장 - 학교에서 자다가 악몽을 꾸면 반 아이들이 다 내 꿈을 보고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이돌 가수로 데뷔하게 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딸아이와 자주 보곤 해서인지 소설 속 아이돌의 속마음을 읽어가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대박도 아니고 쪽박도 아니던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갖춘 아이돌 가수인 화자는 아이돌 활동으로 학교에 자주 오지 못했고 인기가 급하강 하고서야 출석 일수를 맞추기 위해 꼬박꼬박 학교에 오고 있다 보니 같은 반 친구들과 영 섞이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그룹 내 마지막으로 영입된 멤버가 올린 SNS 글로 왕따설이 돌고부터 인기가 급하락했고 가해자 아닌 방관적 가해자가 되면서 학교생활도 힘들어졌다. 같은 반에 원래부터 왕따를 당하던 친구의 뒤를 이어 새로운 왕따가 되었고 자동적으로 그 친구는 원따가 되었다. 둘 다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대화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원따가 성격적으로
따돌림을 받았다면 아이돌 왕따는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사랑받는 것이 당연하다고만 느끼며 가식적인 인사만 나누며 살았던 것이다. 친구들에게 온전히 자기의 실제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에 어려움을 겪으며 자연스레 왕따가 되었다. 아이돌 왕따는 원따와 친해지고 싶어 한다. 어쩌면 만만했는지도 모른다. 혼자 있기 두려워 기댈 곳을 찾은 곳이 원따였다. 그러고 나면 다른 아이들의 틈에 자연스레 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원따랑도 친해질 방법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말없이 원따의 뒤를 따라 같은 길을 나란히 걷는 것만으로도 친밀감을 느끼며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하지만 방법을 잘 모른다. 그래도 다행히 둘은 통하는 구석이 있다. 그동안 원따라고만 불렀던 그 아이. 아직 이름을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친구가 되고픈 진짜 마음도 열렸을 것이다. ( 여기가 바로 친구가 되고 싶다는 고백 루프이지 않을까...)
P 15
신기하게도 원따는 내가 눈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 같다. 나도 원따가 눈으로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P 27
수업이 끝날 때마다 드디어 오늘 끝났다, 하는 생각이 든다. 매일 이렇게 작은 끝이 반복되는데, 그 끝의 반복에도 과연 끝이 있을까 궁금하다.
P 31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
"이유가 있어서 사람을 사귀면 따돌리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돼."
이 소설이 학교폭력을 자세히 혹은 심각하게 그리진 않았지만 심적으로 상당히 힘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곧 사춘기에 들어설 딸아이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부모인 내가 어떤 위로와 힘이 되어줄 수 있을지 사실 난감하다. 눈빛만 보고도 무슨 생각 하는지 알 수 있는 친구가 있느냐고 슬쩍 물어보았다. 딸아이에게 단짝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는 같은 순간에 같은 말을 하는 친구가 있다고 했고 서로 생각이 똑같다며 신기해했다. 난 속으로 다행하고 흐뭇한 마음도 들다가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이유로 딸이 그 친구와 멀어지게 되면 상실감을 느끼지나 않을지, 마음이 잘 맞는 친구 말고 마음이 잘 맞지 않는 친구와도 잘 지낼 수 있을지 다방면으로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 '미리 걱정해서 무엇하랴.' 아이도 부딪혀보며 자신을 알아가게 될 것이다.
p 32
처음으로 걔의 진짜 이름이 궁금해진다. 원래부터 왕따가 아니었던 걔의 이름. 제일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 건 바로 그거였다는 걸 나는 아주 늦게야 깨닫는다.
이 순간을 참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시작점 만큼이나 삶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는 순간이지 않을까. 내가 상대를 인식하고 궁금해하고 의미가 생기고 나면 모든 것이 질서를 찾는 듯 달리 보인다. 그것이 바로 루프에서 탈출하는 순간인 것이다. 뿌옇던 필터가 제거되고 그 사람이 선명하게 보이는 영화 속 장면은 내게도 실재이곤 했다. 간단한 스토리였지만 굉장히 여운이 남는다.
안녕 장수 극장
첫 문장 - 중간고사가 끝난 금요일은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중학생)
장수 극장이 왜 문을 닫는지 사람들이 내 게 묻는다. '장수 극장"은 이름은 배우의 꿈을 이루지 못한 할아버지가 고향에 세운 극장 이름이다. 학교를 마치면 나는 장수 극장 매표소에서 아빠와 교대하고 표도 팔고 영사기를 틀어 영화도 상영한다. 그것이 나의 역할이니까. 그런데 장수 극장을 닫는다 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그리고 마을의 작은 축제 행사에 마을 사람들의 인사말을 인터뷰하여 상영하려고 하는 중학생 회장이 찍은 영상에서 장수 마을의 추억이 살아난다. 그동안 영화 티켓을 모아온 사람부터 그 시절의 좋은 데이트 장소였다는 사람,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람 등 꼭 나만 할 때부터 지금은 아저씨, 아줌마들이 된 많은 이야기들이 장수 극장과 함께 하고 있었다. 총체적으로 어설픈 영상이지만 나만 울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영상은 장수 극장의 마지막 상영 영화가 된다. 주인공이 장수 극장인 영화.
P 37
내가 속상했든 말든 할아버지가 아버지보다 세련된 사람인 건 사실인 모양이다. 이름 말고도 다방면으로, 그 점이 우리 가족에게 다방면의 고달픔을 안겨주었고 말이다.
P 38
"고생했다."
"고생 안 했어요"
시험 잘 봤느냐고 묻는 것도 아니고, 자식이 시험을 봤는지 말았는지 무관심한 것도 아니고, 그저 고생했다 말해 주는 게 아버지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좋았지만 같은 이유에서 아버지가 밉기도 했다. 아버지가 이렇게 좋은 사람이어서는 반항을 할 도리가 없으니까.
난 왜 이 대목이 그리 좋았을까. 나를 무턱대고 믿고 있는 엄마, 혼자서도 잘 한다고 나를 칭찬하는 엄마가 어디 가서 내 자랑을 하면 싫었다. 나는 착한 아이이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투정도 부리고 반항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인 엄마 앞에서 엄마가 맡긴 역할을 하는 것 말고는 무엇도 될 수가 없었다. 엄마가 미울 때가 있다는 게 공감되기도 하고 그것을 내색해 본 적이 없기도 했던 청소년기를 생각하며 한참 머물렀다. 더불어 마무리 좋아도 싫을 이유 역시 무한한 사춘기의 아이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P 42
나는 굳이 이목을 끄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학교에 다니고 조용히 졸업하고 좋은 대학에 가서 이 지긋지긋한 동네를 벗어나는 거, 그게 내 꿈이었다.
내가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처럼 들렸다. 어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지긋지긋하게 느끼는 뭔가로부터 완전히 새로워지고 달라지고 싶은 마음에 어른을 꿈꾸던 때다. 어른이 되어본 지금과는 아주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소중한 때가 아니었던가 돌아본다. 장수 극장의 또 하나의 여운은 지금의 어른들도 나 같은 때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는 것에 있다. 우리 모두의 젊은 날들이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듯 가벼워졌다. 그렇게 우리 인생은 한 편의 영화로 기억되는 게 아닐까.
엄마만큼 좋아해
첫 문장 - "이모 약속 꼭 지켜야 돼." 주비의 말에 이모는 응, 그래 대답하며 오징어 쪼가리를 집었다.
자기가 무엇에 끌리는지를 아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보름 지구
첫 문장 - "잇츠 낫 땡스기빙." 추수감사절하고는 달라요.
달에 살기 때문에 달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은 무엇을 보며 추석에 소원을 빌까? 사람들이 달에 가서 살 수 있는 때가 와도 추석은 우리에게 의미가 있을까? 같은 재밌는 상상을 담은 소설이다.
고-백-루-프
첫 문장 - 가능성은 반반. 진짜 고백을 하려는 거, 아니면 그냥 엿 먹이는 거. "나 노래하는 거 꼭 보러 와."
자기의 결핍이나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이상형에 가까운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다가왔을 때 오히려 도망을 치곤한다. 사랑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게 된다. 그렇게 루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지원 받아 감사히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신기하게도 원따는 내가 눈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 같다. 나도 원따가 눈으로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15
수업이 끝날 때마다 드디어 오늘 끝났다, 하는 생각이 든다. 매일 이렇게 작은 끝이 반복되는데, 그 끝의 반복에도 과연 끝이 있을까 궁금하다. - P27
처음으로 걔의 진짜 이름이 궁금해진다. 원래부터 왕따가 아니었던 걔의 이름. 제일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 건 바로 그거였다는 걸 나는 아주 늦게야 깨닫는다. - P32
"고생했다."
"고생 안 했어요"
시험 잘 봤느냐고 묻는 것도 아니고, 자식이 시험을 봤는지 말았는지 무관심한 것도 아니고, 그저 고생했다 말해 주는 게 아버지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좋았지만 같은 이유에서 아버지가 밉기도 했다. 아버지가 이렇게 좋은 사람이어서는 반항을 할 도리가 없으니까. - P38
나는 굳이 이목을 끄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학교에 다니고 조용히 졸업하고 좋은 대학에 가서 이 지긋지긋한 동네를 벗어나는 거, 그게 내 꿈이었다. - P42
생각을 해 보자. 나는 만화나 소설에 이런 내용이 나오는 걸 꽤 많이 봤다. 소위 ‘루프‘라고 하는, 특정한 하루가 무한 반복되는 상황. 이럴 때는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루프를 빠져나가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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