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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기초 - 수와 인류의 3000년 과학철학사 ㅣ Philos 시리즈 21
데이비드 니런버그.리카도 L . 니런버그 지음, 이승희 옮김, 김민형 해제 / arte(아르테) / 2023년 7월
평점 :
인간의 감정과 이성적 사고의 3000년 역사
나는 너를 위한 가르침을 요약할 것이다.
그 가르침은 두 가지 규칙으로 구성된다.
'모든 다른 것은 같다.
모든 같은 것은 다르다.'
"너의 정신 안에서 이 두 가지 원리 사이를 오가라. 그러면 너는 우선 이 두 원리가 모순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발레리
자기 시대의 위기를 지식 발달에서의 선택과 연관 지어 이해하는 많은 사상가들은 잘못의 원인과 사태를 악화 시킨 선택이 무엇인지 그들이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 과정에 몇몇 수학자와 과학자의 독단적인 태도를 봤다.
이 책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뿐만 아니라 문학과 예술 분야 등에서 지성계 전체를 아우르는 화두이자 인류가 지식을 논하는 방법론인 ‘차이’와 ‘동일성’의 개념에 대해 다룬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근대 물리학과 경제학, 현대 양자 세계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3000년이라는 장대한 기간을 아우르며 광범위한 사상체들을 정교하게 탐구하고, 훌륭하게 통합한다.
『지식의 기초』는 ‘자연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어떤 경로로 발전해 왔으며, 그것이 ‘인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추적한다. 이 책은 과학철학사를 다룬 역사서임과 동시에 현시점에서 ‘인류의 자리’를 묻는 철학적, 시적 권고문이기도 하다.
❤️ 지식의 총서이자, 지식의 기초라는데 그 저반 지식이 없는 내가 읽어도 될까? 너무 겁 없이 손을 내민 것은 아닐까? 역대급으로 어려운 책이라 말할 수 있다. 잘 읽히는데도 이해는 어려웠다. 책의 두께도 만만치 않았으나 17세기 이후 과학의 발달과 19세기, 20세기까지 이어지는 문학들에 대한 작은 경험으로 어렵사리 땅 짚고 헤엄을 쳐보며 이 책의 고급진 지식 경험을 누린다.
이전에는 문학이나 사회경제 관련해서 만났던 이름들을 이제는 수학자, 과학자의 이름으로 만나며 인류사의 많은 현상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지식 자체가 재밌는 신세계였다. 이해했다기보다는 이런 지식체계가 있구나 하는 경험이다. 책 속의 문과적 언어들을 취하고 책 속에 등장하는 문학과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황홀경이었다. 온전한 이해보다는 이 경험을 통해 다음이 기대되는 책이다.
인식론에 비춰보면 내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는 너무나 많은 한계가 있고 무지가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아는 만큼의 세계를 잘 살아가고 있다. 여기서 더 많이 안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 같진 않지만 혹시 알아? 하는 마음으로 읽기도 했다. 또 모르지 않을까? 눈 감고 코끼리를 더듬다가 굉장한 깨달음을 얻을지? 석공이 돌을 깨어 조각하듯이 천천히 음미해야 할 책으로 묘한 기쁨이 있다.
이런 말들에 묘하게 끌린다면
이 책을 읽어봐도 좋겠다.
알려진 모든 것은 수를 갖는다. 수가 없으면 어떤 것도 이해하거나 알 수 없다.
모든 차이는 원리들이 쌍으로 표현된다. (경계가 있는, 경계가 없는 / 홀수, 짝수 /하나, 단수 / 오른쪽, 왼쪽/ 남성, 여성 /정지 중, 운동 중 /직선, 곡선/ 밝은, 어두운/ 좋은, 나쁜 /정사각형, 직사각형)
사유의 법칙으로 배중율과 비모순율이 있다. 배중율은 수는 반드시 홀수 아니면 짝수임을 확실히 하는데 필요하다. 비모순율은 어떤 수도 동시에 홀수이면서 짝수일 수 없음을 보장해 준다.
저자
프린스턴고등 연구소 소장으로서 종교, 인종, 철학, 수학 및 물리학에 이르는 폭넓은 분야에 전문 지식을 갖춘 세계적 역사학자 데이비드 니런버그와 그의 아버지이자 수학자이며 문학가인 리카도 L. 니런버그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출간 즉시 국내외 수학 및 과학계 인사와 철학 및 사회학계 인사가 극찬했으며, “앞으로 몇 년간 논의될 수학 대 다른 형태의 추론에 관한 비판에서 논쟁의 중요한 조건을 변화시킬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책은 21세기의 분열을 더 잘 이해하고 이 분열 속에서 더 잘 살아가기 위한 시도다. 인류의 다양한 사상은 어떻게 서로 맹렬하게 싸웠을까? 그리고 왜 이런 갈등 속에서 수와 수식 관계의 진리 주장이 그렇게 강력하게 떠올랐을까? ✔️
이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역사학의 과제이며, 이 책 전반부(1~5장)에서 그 역사를 제시한다. 1~5장에서는 고대 그리스철학 및 유일신교의 부상부터 근대 물리학과 경제학의 출현까지 다루면서 어떻게 수천 년 동안 사고의 이상, 실천, 습관들이 수를 지식과 확실성을 향한 인간적 요구의 초석으로 바꾸었는지 추적한다(고대의 역사, 철학, 종교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은 2~4장을 건너뛰어도 된다). 이런 분열 속에서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이 책 후반부의 목표다(6~10장).
이 책의 목표는 양자택일 해법이 잘못됐고, 동시에 위험하다는 것을 해명하는 데 있다.
‘직업으로서의 학문' 강연에서 베버는 근대사회에서 인간 지식이 ‘점점 지성화 및 합리화'된다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주장했다. “계산될 수 없는 신비로운 힘이 더는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 사람들은 원칙적으로 모든 것을 계산을 통해 정복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세계가 탈주술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탈주술화’가 인간에게 미치는 결과는 심대했다. '문명인'은 지식이 끝없이 진보하는 세계에 살기 때문에 성서에 나오는 족장들처럼 나이가 들어 인생에 만족하면서 충만함 속에 죽을 수가 없다. 근대적 주체는 삶에서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것은 언제나 잠정적인 것일 뿐 최종적인 것이 아니므로, 근대적 주체에게 죽음은 의미 없는 사건일 뿐'이라는 걸 안다.
세계의 탈주술화 수준에 대해서는 베버에게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근대에서 죽음의 무의미성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베버의 해석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 감지되던 반지성 혁명에 대한 이보다 더 설득력 있고 섬세한 관찰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베버는 이 상황이 플라톤의 [국가] 7권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와 반대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 고대의 비유에서 인간 해방은 삶의 환상과 그림자에 머물지 않고 생각이라는 빛을 통해 참된 존재를 보는 법을 배우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베버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반대로 느낍니다. 그들은 학문이라는 지성적 구조물이 인공적 추상물이라는 비현실적 영역을 만든다고 느낍니다. 젊은이들에게 '순수한 실재는 생생한 경험 속에서 고동치는' 것이다.
지성적 구조물, 즉 학문과 "그 나머지는 생명의 부산물일 뿐이고, 생명 없는 유령이며,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는 산 자와 죽은 자라는 개념에서 서로 대립하는 지식의 형태를 보게 된다. 베버는 이 혁명을 매우 위험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개인숭배와 대중 선동, 학문의 정치화와 카리스마적 교수 요구에 반대하는 내용을 강연에서 많이 다루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경고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베버는 이런 혁명을 인류의 다양한 측면 사이에서 일어나는 영원한 전쟁의 일부로 이해했으며, 이 전쟁을 다신론과 신들 간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비유했다.
"생명을 향해 취할 수 있는 여러 태도들은 궁극적으로 서로 화해할 수 없습니다. 이 투쟁은 결코 최종 결론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단호한 결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베버에게서 두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독단주의의 상대적 배제, 지성적 구조물의 기초보다 지붕에 더 큰 관심을 갖는 태도가 그것이다. 근대 주체에 도전하면서 베버가 발견한 것은 지식의 무한한 지평, 그리고 모든 단계와 모든 발견의 잠정적 성격이었다.
슈펭글러 같은 학자들은 주로 기초 부족에 초점을 맞췄다. 앞서 서술했던 수학 기초의 ‘위기’가 좋은 예다. 슈펭글러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이 논쟁에 직접 뛰어들었다.
“심지어 2×2=4 같은 가장 ‘자명한' 기본 산술 명제도 분석적으로 다루면 문제가 되고, 이 문제의 해답은 [집합론에 나오는]추론으로만 가능할 것이며, 많은 지점에서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슈펭글러는 수학 기초의 허약함이 자신의 논지를 지지해 준다고 보았지만, 그가 언급했던 작품을 쓴 수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완전히 다르게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1884년 고틀로프 프레게가 출판한 산수의 기초 덕분에 모순이나 역설 없는 순수한 논리라는 단단한 기초 위에 수학의 모든 것, 그리고 인간 지식의 많은 부분을 구축하는 꿈에 한 걸음 다가갔다고 생각했다.
버트런드 러셀이 나중에 회상했듯이 모든 순수수학은 순전히 논리적 전제에서 나오고, 논리적 용어로 정의될 수 있는 개념들만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일이 그들의 꿈이자 목표였다.
슈펭글러 같은 비판가들은 수학적 기초의 이런 허약함에 초점을 맞췄던 반면, 수학 옹호자들은 강력한 기초를 희망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에게는 수학 분야에서 기호논리학의 승리가 언어를 논리에 맞춰 언어와 실제의 관계를 확립하고 해석적 모호함과 오류를 제거하려는 기획의 부활을 의미했다. 예를 들면 프레게는 ‘아침 별’과 ‘저녁 별’을 분석했다. 두 단어는 같은 ‘실제’대상 우리가 금성이라고 부르는 행성을 언급하지만, 두 단어를 늘 서로 바꾸어 사용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로미오가 이 둘의 차이를 어떻게 경험했을지 생각해 보라.
1905년에 나온 러셀의 ‘기술 이론’도 비슷한 질문을 제기한다. “문장의 주어를 구성하는 데 사용되는 단어들이 사물들을 가리키고 사물들은 문장이 말하는 그대로라서 이 문장이 참이라고 생각될 때, 누군가 같은 사물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을 대체어로 사용한다면, 어떻게 참조하는 표현을 포함한 어떤 참인 문장들이 거짓이 될 수 있을까?" 러셀의 새 논리는 이 언어 ‘문제’를 제어하려고 했다.
이 책에 대한 철학과 교수님들의 추천사 또한 대단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감사히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