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와 파도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8
강석희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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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아이들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이 표지의 그림을 이해하게 되기까지, 그러니까 적어도 이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기 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이 아이들이 견뎌야 했던 이야기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왜 그런 일이 있어야 하는지? 어른으로서 아무 답도 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그 대신 나 역시 이 아이들과 나란히 서있다고 그렇게 '우리'가 되자고 말해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이 소설을 어른인 나로 읽기보다 같은 반 옆자리에 앉아 있을 법한 친구가 되어 읽고자 했다.​​

무경, 예찬, 현정, 서연 그리고 이 그림에는 없는 지선과, 종률이 얽힌 이야기들은 사실 아프다. 그 이야기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불편한 내 마음은, 어쩌면 사건을 덮으려 애쓰는 학교와 마찬가지로 잘못 없는 이 아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띠지의 추천서가 이 소설을 읽은 뒤의 감상과 잘 맞아서 꼭 언급하고 싶었다.

모두의 안녕을 바라는 이 파수꾼 같은 소설이 너무 반갑고 그저 감사하다. - 이희영

​듣고 싶던, 말 하고 싶던 말, 만나고 싶던 사람들이 이 소설에 모두 담겨 있다. - 최진영

아픈 곳은 계속 만지게 된다. 상처를 방치하는 것은 상처가 아물고 새 살이 돋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만나야 하는 이야기이다.

​축구 선수를 꿈꾸는 중학생 무경은 같이 운동하던 단짝 친구가 성폭력 사건을 겪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한다. 무경은 친구의 피해를 알려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지만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 낙담하고는 축구를 그만둔다. 다른 도시의 고등학교로 진학한 무경은 친구들 사이에서 약자로 지내는 예찬, 데이트 폭력으로 상처 받은 서연, 교사의 폭언에 상처 받은 친구를 도우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는 현정을 만나 서로 속내를 털어놓고 위로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이들은 매년 열리는 지역 유등축제를 이용해 피해 사실을 알리고 마침내 공동체의 관심을 이끌어 낸다.


p 191

누구한테 말을 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말끝을 흐리던 미란이었다. 그런 일도 있지. 털어놓으면 좀 가벼워지는일도 있지. 하지만 너에게 일어난 일은 그런 일이 아닌 거지.​

p 201

​"지선이 강한 애야."

​“나도 처음엔 오해했던 것 같아. 아픈 사연이 있는 애니까 약할 거라고, 줄곧 무너져 있을 애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아니었어. 필요한 건 아파할 시간이었던 것 같아.​

p 202

그리고 지선을 생각했다. 편지 속에서 지선은 자신의 방식대로 일어서고 있었다. 꾹꾹 눌러쓴 글씨에서 지선이 손으로 땅을 짚고 무릎과 허벅지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그려졌다. 여행을 끝낸 지선이 어떤 얼굴일지 무경은 궁금했다.

p 215

"세상에 나쁜 새끼들이 왜 이렇게 많지?"

​탄식하듯 말하는 현정에게 마음을 맡기고 겨우 말을 마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끝낸 뒤에 서연은 현정의 표정을 살폈다. 말하는데만 집중하느라 긴장했던 탓에 걱정이 뒤늦게 밀려왔다. 얘가 어떤 생각을 하는걸까? 문득 미란의 얼굴이 떠올랐다. 겪어 보니까 알겠니? 도와줄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런데넌 그때 어디 있었니? 미란이에게 도움이 필요했을 때, 다들 방치했을 때, 너도 똑같았잖아. 무관심했잖아. 서연은 현정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워졌다. 서연의 고개가 다시 떨어졌고 현정이 말했다.

“그럼 이제 뭐부터 할까?"

​서연은 잘못들었나 싶어 현정을 쳐다봤다.

​"가자"

​서연은 앉은 채로 현정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디를…………?”

​현정이 대답했다.

​“바로잡으러 가자. 잘못된 것들 싹다."​​


『꼬리와 파도』는 고질적인 학교 폭력은 물론 운동부 사제 관계 간 폭력, 데이트 폭력 등 다양한 폭력의 양상을 섬세하면서도 밀도 높게 다룬다. 아울러 이에 맞서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경쾌하면서도 힘 있게 그려 내 이들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할 수 있게 한다. 십 대가 감당하기 버거운 문제들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유연하게 풀어 가는 무경, 예찬, 서연, 현정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낼 작은 용기의 위력을 실감하는 동시에 내적으로 한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창비 성장소설 수상작《 꼬리와 파도 》가 우수상을 받을만 하다는 느낌은 충분히 받았다. 그러면서도 사실 아이를 키우면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도움을 청하는 아이들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 선생님과 부모라는 이름의 어른들이 내 모습이기도 하다는 불편함을 딛고 서본다. 어떻게 손을 내밀고 잡아 줄 수 있는지 소설 속 문장마다 콕콕~ 던져주는 시그널이 그 방향을 제시 하는 것 같았고 어른들도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p 42

통증이 없어진건 아니었지만 조심해서 움직이면 편한 자세를 찾을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친 통증을 말하고 있었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이 받는 상처에 의한 통증을 은유하고 있다고 느꼈다.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 상태에서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조금이라도 숨 쉴 틈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같이 힘들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p 71

달갑지는 않아도 약자의 자리에서 숨어있으면 괜찮을 거라 믿었는데. 약자는 가만히 있다가도 당하니까 약자인가? 예찬은 처음으로 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도움을 필요로한 아이들이 믿고 잡았던 손이 오히려 불구덩이가 되는 것을 본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보다도 더 마음이 단단한 '무경'이 있어서 끝까지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기도 했다. 그렇다면 '무경'에게는 누가 힘을 보탤 수 있고 의지가 될까? 그 답을 찾아가면서 만나는 예찬, 현정, 서연이 우리 곁에 많다는 것을 보고 있다.

성장소설이니 아이들도 만나봐야겠지만 폭력과 성적인 상처가 포함되어서인지 선뜻 아이에게 전하기는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싶기도 한 이야기에 멈칫하는 마음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불신이기도 했다.

미리 안다면 피할 수 있을까?

이 상황이 된다면 희망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진짜 도움이 될까?

완벽한 해결이란 없어서 반복되는 상처 뒤로 많은 의구심과 걱정이 뒤섞이기도 했다. 그러나 '상처 입은 자의 치유' 처럼, 무경과 현정, 최아라 선생님이 그랬듯이 무엇이 이들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지를 아는 사람들의 연대가 조금씩 바꾸어 낼거라 믿고 싶다.

 

지켜줄게. 혼자서는 못 하지만

우리가 되어 너를 지켜줄게

꼬리와 파도

폭력 앞에 무력했던 아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보듬고 연대해 가는 이야기. 결국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성장 이야기지만 그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를 남긴다.

지금 어른인 내게 이런 일이 닥친다 해도 이 아이들만큼 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어른으로 군림하다니~ 부끄럽다. '아이는 하나의 세계'라는 생각이 커지며 소설을 마무리 했다. 완독하고 나면 다시 가슴 한켠 따뜻해질 파수꾼 같은 이야기다.

자기가 가진 상처를 먼저 내보이는 것이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고 희망했으면 좋겠다. 이 마음을 전달 받았던 무경과 지선의 축구 장면이 인상 깊다.

 

p 53

마지막 시합의 마지막 찬스, 무경이 자로 잰 듯한 크로스를 올렸으나 그것을 받아야할 지선은 없었고 그는 반대편 사이드 라인 밖으로 나갔다.​

 내가 던진 골을 받아낼 사람은 공이 떨어지는 포인트를 미리 읽어줄 사람이다. 내 감정의 연장선을 읽어 주는 사람, 그 감정의 밑바닥을 알아주는 사람, 그 부재로 인한 외로움을 읽는 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 받아 감사히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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