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정호승 지음 / 시공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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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을 때 입는 옷. 수의가 말을 하고, 여행지에 진열돼있는 어느 도예가의 룸비니 부처상이 말을 한다. 수의가 가진 이야기가 수의를 만나야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만나 말을 하고, 산산조각이 난 삶의 넋두리를 부처상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 안의 것을 다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순간 조각상은 노숙자가 된 남자에게도 나에게도 진짜 부처님이 되어 불성을 깨우고 평상심의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산산조각이 난 삶에서 그 고통의 파편들이 가진 소중함을 이렇게도 전할 수 있는 것을 보고 정호승 님이 궁금했다.

시인 정호승

쓰다 보니 시 속에 서사가 있고, 그 서사를 소설적 형태로 재탄생 시키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시인인 내가 그것을 소설로 쓰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다가 우화 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을 때 시가 소설로 재탄생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연과 사물과 인간이 지니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우화 소설의 그릇에 담을 때 보다 자연스러운 창작의 상상력과 구성력이 주어졌다. -정호승



철학서와 인생수업 책들에서 자연스레 만나던 진리와 가르침들이 동양 사상을 품고 비유와 은유, 의인화되어 이야기로 들려온다. 어릴 때 읽던 이솝우화가 우리의 전래동화보다 조금 멀리 느낀 것은 우리 삶의 모습이 덜 녹아있었기 때문일까!

이 책 [산산조각]은 우리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우화를 읽은 것이 오랜만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정서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 다 들리고 더 좋다. 


부처님 이야기를 품은 책은 많이도 보았지만 스님이 쓰신 책이 아니면서 불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은 만나기 힘들다. 더구나 부처님 예수님 가르지 않고 시인의 우화를 통해 만나는 이 길이 참 좋다.

법고 소리, 해인사 종소리를 봄 햇살처럼 느끼는 다람쥐가 되었다가 이내 다람쥐가 먹어야 할 양식이지만 거대한 참나무가 되어 훌륭한 목재가 되고 싶은 도토리의 꿈을 통해 꿈의 크기가 삶의 크기임을 느낀다. 그리고 참나무는 큰스님의 다비식 장작이 된다.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까.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내려둘 수 없었다.

생이불이. 삶이 곧 죽음이잖아.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는 거야.

생즉시고.

세상에 태어나는 즉시 인생은 고난이야. 그런데 모두 의미 있는 고난이야. 견딤 속에 스스로 부처가 되는 길이 있어.




이 책을 이루는 '산산조각 철학'이 맛있다.

작은 바윗돌은 야생 차밭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자랑과 긍지의 삶을 산다. 그러나 어느 날 스님이 바윗돌을 옮겨 선암사 해우소 아래층에 새로 세울 기둥 받침돌로 쓰게 된다.

"차 향기를 맡던 내가 똥 냄새를 맡으며 살아가다니!"

냄새와 무게의 중압감에 고통과 불만의 나날을 보낸다. 그때 옆에서 친구처럼 해우소 내력을 들려주던 바윗돌이 어느 날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견딤으로써 해우소 위층을 받쳐주고 사람들이 안심하고 똥을 눌 수 있는 거야." 자신의 받침돌로서의 삶이 "자비를 구현하는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알게 한다.

♡ 오랜만에 편히 읽으면서도 뭔가 차오르는 시간이 좋았어요. 세상에 하찮은 것은 없어요. 비오는 날, 우산이 되어 사람들을 품어보는 상상을 해봅니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은 것이고,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되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받아 감사히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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