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편한 편의점 ㅣ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인데 정신차리고 보니저 제가 이래버렸네요. 다행히 아무 흔적 없이 잘 떨어지는 인덱스이고, 메모지이지만 책에서 떼어내기 싫은 마음을 어쩌지요.
순간 순간 좋았습니다. 나의 일들 같아서, 익숙해서 그것들이 스토리의 라임을 타고 착착 붙어주어서 미라클모닝이고 다 놓고 또 밤을 길게 보냈네요.
머지않아 당신은 다른 방식으로
숨을 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야 만다.
남들에겐 친절할 수 있지만, 정작 내 가족에게는 친절하지 못했던 재미 없는 내가 책 속에 있었어요. 이런저런 사정을 모르는 남들에겐 신경써 웃어보이면서도 어떠한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는지 뻔히 아는 내 가족을 보듬는 일에는 서툴죠. 그렇게 가족에게 웃어보일 수 없었던 마음을 이 책 불편한 편의점에서 만납니다.
가족의 엉킨 모습은 오히려 지지고 볶을 수 있지만 마음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무리 휘저어도 물과 기름이에요. 그렇게 불편한 가족이 되는 순간 우리는 모두 외로워지는 것 같구요. 저마다 그 외로운 마음을 가지고 편의점을 찾던 사람들이 묘하게 이어집니다.
불편한 편의점은 여러 의미로 그 불편함을 다루고 있고 말그대로 사람도 물건도 불편했던 불편한 편의점의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로 감동을 끌어냅니다.
ㆍ
ㆍ
ㆍ
그 사이에 독고씨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노숙자 사이에서 왔기에 가장 비천한 희망의 전령이 되어 나타난 것 같습니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파우치를 품고서 웅크려 앉아 귀한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있는 노숙자의 모습은 다른 노숙자들에게 타겟이 됩니다.
파우치를 찾아 돌려주는 사례로 기다리는 동안 편의점 도시락을 원했던 사내는 그마저 쉽게 먹질 못하고 파우치를 뺏아가려는 다른 노숙자 두명과의 사투를 벌이며 다쳐가면서도 염여사의 파우치를 지켜냅니다. 사례 대신 다시 도시락을 원하던 이 40대의 노숙자를 70대의 염여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편의점으로 데려오게 됩니다.
말은 어눌하고 행색과 냄새가 무서울지경이지만 염여사의 눈에 어쩐지 염치가 있고 경우가 있어보이는 이 노숙자는 알콜성 치매로 기억을 잃어 독고라는 것 밖에 모른다고 '독고'라고 소개합니다.
염여사는 독고씨에게 매일 편의점에 와서 도시락 먹고가라고, 폐기도시락 말고 옳은거 먹고가라고 하죠. 그렇게 독고씨는 매일 편의점으로 옵니다. 폐기도시락이 나오는 저녁 8시를 딱 맞춰와서는 바깥 테이블에서 폐기 도시락만 얌전히 먹습니다.
( 이렇게 생각하면 좀 이상할지 모르지만 길가에 버려졌던 외롭고 힘든 유기견이 독고와 겹처보였습니다. 거리에서 따뜻한 눈빛을 건내주고 눈을 맞춰준 사람에게 충성을 맹세한듯한 사납고 위험해 보이지만 여리고 슬픈 유기견이 생각났고, 이즈음에 왠지 작은 친절에 길들여진 유기견이 시간 딱 맞춰 가게집 문앞에 나타나던 동물농장 에피소드가 생각나 버렸습니다. 이 생각이 자연스러웠는지 뒤에 정말 그런 비유들이 있더군요. )
매출이 적은 편의점, 경쟁에 밀려 제품 구색도 변변치 않아서 손님들에게 다소 불편했고 그야말로 편의상 오는 편의점 수준이었지만 염여사는 사람 3명을 쓰고 남는것 없는 올웨이즈 편의점이 그들의 생계수단이 되어 주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죠.
그러다 오래도록 든든하게 편의점의 야간 알바를 맡아주던 남자분이 좋은 일자리가 있어서 그만두게 되자 그를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고 염여사는 구하지 못한 야간 점원대신 70대의 자신이 야간 편의점 일을 하게 되지만 젊고 그릇된 패기를 가진 손님들의 행패를 당연해내기 어려윘던 그 순간에 경찰을 미리 부르고 나타난 독고씨가 대신 난타전을 해주는 덕에 위기를 모면합니다.
염여사는 독고씨가 추운 겨울 따뜻하게 편의점에서 일하고 도시락 먹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야간일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시간이 길어서 한 달 200여 만원이 되는 일자리가 생긴 독고씨입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내가 도와준걸 고마워해라~~ 생색내기 바쁜 세상에서 노숙자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염여사에게 열린 마음은 곧 이 노숙자에게 옮겨 갑니다.
모든걸 잊고 야생에서 살던 노숙자가 편의점의 규칙들과 사람과의 관계를 잘 해날 수 있을까? 저역시 편견어린 걱정을 하고 있더라구요.
이책은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찰떡 스토리와 구성이 힙합 가사 라임처럼 이어집니다. 하나를 야기하면 줄줄이죠.
편의점의 에피소드마다는 한 사람의 삶이 그의 시선으로 보여집니다.
번듯한 대기업의 직원으로 대우 받다가 백수가 되고 나서 벌레처럼 변신해버린 염사장의 아들이나, 좋은 머리를 엉뚱한데 굴리며 변변치 않게 살아가는 오여사의 아들은 좋은 환경에 있으면서도 자기를 찾지 못하는 모습으로 어쩐지 독고씨와 비교됩니다.
처음엔 독고씨가 잘 적응할까 걱정했던 마음 날려버리는 통쾌함과 그의 성장을 보는것이 흐뭇했는데요. 독고씨를 문제있게 보거나 걱정했던 마음이 모두 정상적인 일상을 가졌지만 늘 불안정한 우리들에게로 옮겨옵니다.
독고씨의 친절은 마치
영화 <아름다운 세상>를 보는 것 같았어요.
세상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친절과 엄청난 행운을 다른 세사람에게 줄 수 있다면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기도 하죠.
상대를 모르고서 건내는 내선에서의 친절일지라도 상대에게는 진짜 최선이 되는 친절이었음을 만나는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는데요 그 사이사이 접착제들은 독자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참참참 3종 세트와
옥수수수염차 이야기를 꼭 만나보세요.
이후 독고씨의 관점에서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과 숨은 이야기까지 단숨에 달려오게 합니다.
인물들과 독고씨가 엮이는 감동적인 얘기도 해야하는데 역부족이네요. 읽다가 욕 감탄사 날릴만큼 멋지게 이어지는 라임에 저자의 팬이 되었습니다. 저자의 2013년 세계문학상 수상작 <망원동 브라더스>로 달려가봅니다.
읽고 후회하지 않으실 책.
불편한 서점이었습니다.
책온도 후끈, 뜨끈, 절절 @모든것이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