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우리의 삶이 어떠했더라?
내 어린날들의 언저리와 부모님의 삶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이었더라?
지난 시간들엔 목에 걸린 가시같은 것이 있어서 평범한 오늘을 삼키기도 버겁게 만들던 날들이 있었다. 방황이라고 하기엔 눈에 보이는 것 없는 내안의 큰 태풍이었다.
그 태풍은 심각하고, 위험하고 매우 큰 일이 날듯이 두렵다가고 시간이 지나고 날이 개이면 말짱해지며 푸른 하늘을 드러내는 날씨 같아서 반복되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러려니 살아가게 된다.
아프지만 그래도 잊고 싶진 않은 이야기들. 어느새 희미해진 기억들을 이 책으로 온전히 만나며 감사했다. 그래 우린 이랬었지. 나 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도 그랬지.
다시 만나는 지금은 그날들이 너무 소중했구나 싶지만 어디다 남기거나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지난날들을 회상하고 엄마를 생각하며 썼었던 글 몇 개가 이 책과 함께 하나가 되어 다시 내게 돌아오는 듯 해서 감격스러웠다랄까, 감사한 순간이었다.
작가의 소양이 없는 나로서는 그나마의 이야기를 써둘 수 있었던 것 마저도 참 다행이었다.
이런 내게 이 책은 내가 그리워 하던 것들을 다 보여준 것이다. 응답하라 1984를 보며 웃고 울었던 시간들처럼 내게 그시절의 것들을 보여주었다.
저자의 아버지가 직업없이 밖으로 돌며 바람을 피울 때, 저자는 골목을 해맸고, 엄마는 종아리가 부어오르도록 미싱을 밟았다. 그 어머니의 미싱밟는 소리는 내 어머니의 미싱 소리와 같았기에 울컥했다.

여자의 가난은 이제 매일
복리식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엄마는 정순왕후도 아니면서
아버지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밤낮으로 일했다
밤마다 마치
논개구리 울음 소리를 내는 듯 했다.
그때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음도 전염병도 아닌 가난이라고...
가난은 때때로 논개구리 울음소리를 낸다고.
40, 50, 60대 그 시절을 지나오지 않은 이가 없다. 내가 조금 어렸을 뿐, 나도 그시절과 함께 했고 내 부모님도 50대의 나이를 머금고, 지금 생각하면 아픈 청춘이었다.
우리의 이야기이자 부모님의 이야기로 읽게 되는 이 책이 담담히 쓰인만큼 더 아프고 나의 산복도로 집이 생각나서 가슴이 먹먹해질 수 밖에 없었다. 산복도로 아이들, 어린 가슴에 다들 큰 돌덩이를 하나씩 지고 살았던 눈이 맑은 내 친구들이 생각나서 몇 일은 그날들을 되새김질 했다.
흐르는 눈물을 왜 닦지 말라고 했을까!
그 아픔 ,슬픔 , 외로움 막지말고 자연스럽게 흘려내자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야 고여서 섞지 않고, 멍울이 되지 않고, 여전히 아픔으로만 남지는 않을테니~ 결국 흐르게 되어 있다.
이곳에 사는 아이들의 꿈은 어서 산꼭대기를 내려가 저 도시에 합류하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별이란 하늘에 떠있 것이 아니라 저 산 아래 반짝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