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 - 작고 찬란한 현미경 속 나의 우주
김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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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김초엽 강력 추천이라는 띠지를 보고서 소설일거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이 책은 세상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에서 중요성을 찾아가는 멋진 에세이였다.

그런게 대체 뭐가 중요해요?

만약 이공계의 어떤 분야든 관심이 있었고, 다양한 연구원이라는 직업이 막연히 궁금했다면 읽으면서 많은 상상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나처럼 전혀 연구적이지 않은 그저 덕후 기질을 조금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분명 매력을 느낄만한 이야기들이다.

그렇게 생명공학자에게서 듣는 예쁜꼬마선충 연구와 진화의 이야기는 덕후 기질이 가득한 저자 덕분에 상당히 재밌는 과정이었다.

단지 선충 연구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찾아가고, 의미를 찾는 사람들 모두를 응원하게 되는 글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스스로 재미있고 지금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아도 스스로 의미 있다고 생각된다면 어느 분야든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껴야 할 것 같다.

설령, 사람들이 너무 하찮게 생각하는 일이라도 그것들이 세상을 구해게 될거라는 제목만으로도 박수를 보내게 되는 책이다.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

더불어 SF작가들이 영감을 받아서 특별할것 없는 주인공과 사람들의 갈등이 등장하고 하찮은 취급을 받는 덕질에 기초한 작은 생명체의 연구가 결국 지구의 운명을 위기에서 구하는 스토리로 풀어낸다면 그 또한 멋지겠다는 생각에도 빠져 보았다.

어쩌다 과학자.

쓸모없는 것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저 너머.

어떤 오타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


이전에는 답할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시대에는 답할 수 있는 것

당대에 가장 중요하고 과학적인 질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부터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교배해서 태어나게 하고, 죽게 하고, 그 과정에서 돌연변이를 만들어내야 하는 연구가 왜 필요한지 색안경을 끼고 볼 수도 있는 일이지만, 지금껏 인류를 지켜온 항생제나, 진통제가 그런 실험을 통해 발견되었고, 바이러스와 질병에서 인류를 구한 원동력이니 뭐라 말할 수 없다.

꼬마선충이 없었더라면 더 많은 쥐나, 토끼, 개구리, 개, 고양이, 각종 동물을 실험 대상으로 희생시키고서도 생애주기가 길다는 이유로 그 연구들이 빛을 보기도 전에 연구원의 생이 끝나는 안타까움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니, 연구비용이 그렇게 크지 않은 선충연구에 매달릴만한 이유들은 많았지만, 역시나 누구도 쉽게 지속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발없고 꿈틀대며 기어다니는 것,

앞과 뒤, 혹은 처음과 끝의 구분이 어려운 것.

언제 생겼는지 모르게 나타나는 것이 나는 무섭다.

전혀 이쁘지 않은데, 왜 예쁜꼬마 선충이라고 불리는지 나로서는 모를 일이지만, 연구원 입장으로 보니 그럴만 했다.

인간이 고통스러운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도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길 위에서 우리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인류의 또 다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오늘도 예쁜꼬마선충을 들여다보고 있다.

작은 몸뚱이로 우아하게 꿈틀거린다고 하여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지만, 녀석들이 생물학의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했는지를 따져보면 '예쁜 꼬마 보다는 ‘우아한 거인'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아름다운 쓸모없는 것들

p 31

한번은 서울시립과학관에서 장비와 공간을 빌려 일반 시민들과 함께 선충 채집을 갔던 적이 있다. 그때 몇몇이 썩은 도토리를 주워 왔는데, 그 안에서 선충들이 바글바글 나와서 신나서 연구실로 데려왔다. 그 썩은 도토리 한 알에서만 무려 수백 마리도 넘는 선충이 기어 나왔다. 아쉽게도 그중 연구실에서 대장균을 먹고 살아남은 선충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대체 야생에서 사는 선충들에게는 뭘 먹여야 하는 걸까? 그럴 때마다 나는 아직도 선충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한 생명을 이해한다는 건 먹이고 키울줄 아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 47

어떤 세균을 먹이로 주느냐에 따라 자라는 정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또 어떤 세균은 몇몇 선충에게는 해를 끼치지만, 다른 선충에게는 별 영향도 못 주고 맛있는 한 끼 식사가 될 뿐이다. 이런 걸 자세히 연구할 수 있다면, 선충이 갖추고 있는 세균 공격용 무기도 가져다 쓸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물론 그것이 정말 가능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을 뒤흔든 과학의 발견은 때로는 우연히 찾아오기도 한다.

실험 도중 실수로 방치한 푸른곰팡이에서 발견한 항생 물질 '페니실린', 내복용 살균제를 개발하다가 탄생한 해열·진통제 '아스피린', 그리고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을 만들어내려다가 정작 금은 못 만들고 수많은 새로운 물질을 발견해 근대 화학의 발달을 이끈 연금술사들의 사례도 있다. 게다가 이제는 유전자를 조작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유전체 편집 기법'도 감기에 걸리지 않는 유산균을 연구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같은 행운을 발견하기 전까지 온갖 다양한 생물을 연구한 역사가 앞섰다는 것이다.

“하나만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아서 언제든 쉽게 대체될 수 있어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엮어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 통합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죠.”

인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킨 원동력은 바로 이 생각의 돌연변이들이지 않나 싶었다. 과학자들은 그렇게 질문을 할 수 있고, 질문에 파고 들어 해결해 보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고통을 과정으로 즐길 줄 아는 최고의 덕후들이자 얼핏 작고 하찮아 보이는 것을 크게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인생도 그렇듯 해보기 전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특히 과학 연구에서는 더욱 그렇다. 비록 지금은 쓸모없다고 손가락질받는 것들이 어쩌면 지식의 한계를 부술 결정적인 연구가 될 수도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그토록 애타게 찾던 정답은 아마도 아직 누구도 가보지 않은 저 너머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뷰어스크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 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작은 몸뚱이로 우아하게 꿈틀거린다고 하여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지만, 녀석들이 생물학의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했는지를 따져보면 ‘예쁜 꼬마 보다는 ‘우아한 거인‘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 P31

대체 야생에서 사는 선충들에게는 뭘 먹여야 하는 걸까? 그럴 때마다 나는 아직도 선충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한 생명을 이해한다는 건 먹이고 키울줄 아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P47

​인생도 그렇듯 해보기 전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특히 과학 연구에서는 더욱 그렇다. 비록 지금은 쓸모없다고 손가락질받는 것들이 어쩌면 지식의 한계를 부술 결정적인 연구가 될 수도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그토록 애타게 찾던 정답은 아마도 아직 누구도 가보지 않은 저 너머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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