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의 숭배자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18
민혜성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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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5년, 해리 카를로스의 기고

자, 이제 그야말로 인류의 숙원이었던 '멋진 신세계'가 지구 외부에서 만들어졌다.

결과는 어땠을까? 정말로 낙원이 되었을까?

지금 현실을 보았다면 그 개척자들은 자신들의 후손이 옛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는 데 슬픔을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 인간이 정착한 후 4000년 가까이 성계에는 수많은 광기와 반목이 벌어졌다. 작게는 행성 내부에서, 그게는 행성 간에, 작고 큰 전쟁의 숫자만 그 짧은 시기 동안 천여 회에 이른다.

왼손의 숭배자는 639페이지의 SF 소설이다. 3개의 장으로 만나는 이야기는 SF에 웬만한 애정이 없어서는 시작하기 힘든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다행히 나는 SF를 즐기는 편이라 부담을 지우고 시작했지만 역시나 만만치는 않았다.

1장 초반에 등장하는 연수라는 인물을 여자로 인식하고 잘못 시작한 탓에, 다시 앞으로 가서 읽고서야 스토리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생소한 이야기와 세계 속에서 나는 인물구도를 파악해가는 것마저 험난하지만 그 또한 소설을 읽는 재미라 초반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의지를 쓰는 편이다. 읽어 가다보면 한글을 깨치듯 기어이 알게 될 일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멋진 신세계>라는 단어가 그냥 있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3장에서 등장하는 총통이라는 단어 역시 반갑다고 해야하나!

<멋진 신세계>는 책도, 언어도 지워버리고 옛것을 수선하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옳다는 생각으로 인간의 모든 관습을 지워버린채 등급을 나누어 인공 출생되는 완벽한 신세계에서 소마라는 것으로 인간의 본질을 지배하는 미래가 소름끼치게 충격적이었던 소설이었다.

1932년에 출시된 최초의 SF 소설로 알려진 <멋진신세계>의 내용들이 잠시 떠올랐다. 내용과 달리 개인적으로 그 여운을 이 소설에서 이어가 본다.

우선 책의 첫 페이지의 내용이 열어주는 생각의 고리가 너무 좋았다.


우리의 후손들은, 자신들에게는 아주 뻔한 것들조차 우리가 모르고 있었음을 의아해 할 것이다. 수없이 많은 발견이 미래에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결국 우리에 대한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말것이다.

세네카 -자연학의 문제

기술이 빨리 성장하는 만큼 버려지거나, 잃거나, 기억에서 지워지는 많은 것들이 있음을 상기시겨 보게 되는 시작이었다. 때로는 권력의 다툼으로 의도적으로 왜곡되어져 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게 되는 이 소설을 잘 보여준다.

1장 성운이여 내 목소리를 들어라

저자는 상대적으로 소수자인 우리가 우주로 나간다면 어떤 모습일까? 를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땅의 크기에 상관없이 지정학적인 조건에 상관없이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을 상상해보지만, 우주에서도 역사는 반복될 여지가 크다고 보았다.

작가는 어느 날 문득 상상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미래의 슈퍼지구에 지구인들의 후손이 새로운 세계를 이루어 살고 있고 그들은 한국인의 후손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위협하는 일들이 발생한다면? 그러한 세계는 어떠한 과제들을 안고 있을 것인가?’ 거기서부터 출발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인류의 역사와 본성에 대한 생각, 새로운 세상과 우주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과거를 지운듯이 살지만, 미래인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과 전쟁의 역사를 다시 복기해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다투는 투쟁에서 배신,폭력, 사랑,정의에 대한 갈구가 인간의 본질이고 우주가 만들어진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저자의 디스토피아 SF가 하드보일드 세계관과 닿아 있다고 한다.


p407 왼손의 숭배자의 뜻

책 제목 왼손의 숭배자의 뜻

p407

우리 종족을 만든 문명의 어머니는 오른손이었소. 생명과 창조의 에너지를 알려주고,자연에 순응해서 순환하는 우주의 질서를 알려주었지. 그러나프로디토르는 우주의 파멸적인 면모와 타락에서 자신의 힘을찾아내었소, 타인의 생명력을 빼앗아 에너지로 만들고 그것으로 자신의 수명을 늘리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오. 그는 우주의 오른손이 아니라 그 뒷면, '왼손의 힘에 심취해버린 거요."빅토라누스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그리고 그 자를 따르는 무리들은 바로 그 힘을 숭배하지. 그들이 우리 정부를 장악하고 인간들의 생명을 앗아올 것을 명령을 내렸던 거요. 우리는 프로파누스와 천여 년 전부터 싸워왔소.”

조슈아는 지금 이 얘기들을 어디서부터 이해하고 감당해야할 지 감도 오지 않았다.

빅토라누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우주의 어두운 면에 빠진 자들, 우리는 그런 자들을 더 이상 유디안으로 보지 않소. 그들은 짐승이오. 파괴자일 뿐이지..문명의 어머니의 가르침을 어긴 자들, 우리는 그들을 그들이 숭배하는 이 심볼에서 착안해 이렇게 부르고 있소."

위 왼손을 뒤집어 손등을 보여주었다.

SF 영화 감독들은 SF가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에 매력적인 장르라고 말한다.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고,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를 자꾸만 들여다보려고 하는 근원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본성이 SF의 창작과 감상에도 관여가 되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기사를 보았다.

SF소설 역시 그런 기대감으로 보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들이 어떻게 구현되고, 어떻게 쓰이는지를 짐작하고 싶어하는 나의 호기심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SF소설 중에 스페이스 장르는 휴머노이드 이야기보다 더 멀어보이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그 이야기속에 휴머니즘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을 때 나는 더욱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그래비티의 SF 소설을 이어 읽는 행운이 좋다.



자신들의 뿌리를 지구와 원인류에게서 찾는 이들, 고향에서 머나먼 이주 성계의 모든 것이 잘못돼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데지레 성계의 인류들 중 자신들의 원 뿌리를 잊지 않고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 이들을 언제부턴가 뿌리복고파라 불렀다.
성계에 인류가 정착한 지 수백년이 흐르고 이민자들이 아닌, 그들의 자손 세대들이 태어나면서 성계의 인류들은 어느덧 선조들이 떠나온 고향에 대해서는 지식과 멀티미디어 자료로 기록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뿌리복고파는 리더이자 창시자인 ‘현인‘ 칼 료마가 주장하는 바 그대로 자신들이 태어난 멋진 신세계‘를 부정하고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리운, 모든 인류의 고향이자 어머니인 지구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연합은 이들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불온세력으로 단정짓고 대대적으로 단속하지 않았지만, 복고파는 연합 주민들의 단합에 잠재적인 위협이자 분리주의자들이었다.
- P27

지구인들은 부모의 성씨를 이어받아, 대부분의 문화권이 다 그랬어. 그러나 여기는 그렇지 않지 않니? 컴퓨터가 아이의 성씨를 무작위로 부여하니까. 누가 누구 자식인지 이름만으로는알 수 없게 됐지. 그건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야. 개성을 없애버리고 역사를 단절하는 행위지. 1차 이름 전쟁은… 그렇게 타인을 인정하지 않은 독선적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해 벌인 전쟁인 거지."칼 료마는 어쩌면 3차 이름 전쟁을 촉발할지도 모르는 자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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