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미스터리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15
정명섭 외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그래비티 북스에서 출간되는 SF 소설들을 나름 쫓아가며 읽고 있다. 스프(SF) 미스터리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기술을 소재로 한 SF와 사건의 숨겨진 이야기를 뒤쫓는 미스터리를 결합시킨 새로운 장르를 말한다.

4편의 소설 모두 적절했고 함께 구성됨으로써 커진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4편의 소설 중에서 3편은 무너진 지구에서 인류가 선택한 4가지 버전의 갈림길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첫째, 고도로 발달된 기술의 수혜자와 소외자

둘째, 파괴된 지구에서 살 수 없어서 또 다른 살 곳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마찬가지로 화성을 파괴해야 건설 가능한 인류의 숙제

셋 째, 바이러스가 퍼지고 이대로 살 수 없다면 종의 변이를 통해 진화하게 되는 인간

넷 째, 넘치는 정보가 인간에게 득인지 실인지를 보게 했던 데이터 스릴

한국 작가들의 SF라서 소설 속에 있는 한국 지명들을 볼 때마다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새로운 기술들을 보는 재미와 미래를 상상하는 재미, 그리고 공포물에서나 느끼던 스릴까지 챙길 수 있었던 시간으로 한국 SF를 더욱 응원해 본다.

헤븐

저자 정명섭, SF를 비롯해서 역사와 추리, 좀비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다.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폐쇄 구역 서울>,<달이 부서진 밤>, <좀비 제너레이션>,<한성 프리메이슨>,<조선의 명탐정들>, <일상 감시구역>등

 

                              

'헤븐 Heaven 고속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낮은 안개가 낀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미래도시의 한 장면을 떠올리다 보면 상상이 된다. 상상이 된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실현 가능한 기술이 우리에게 있다는 얘기였고 기술로 인한 문제 제기 역시 필요한 시점을 보여주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가 천국일까? 헤븐?

한국이지만 한국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 대한민국보다 평균 3배나 높은 임금을 받으며 일체 세금이 없고 북유럽 수준의 복지 혜택에 비싼 명품들을 면세로 구입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헤븐에서 쫓겨나고 싶어 하는 거 주민들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러한 헤븐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살을 위장한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헤븐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에서 분리된 특권층의 땅이다. 상상 가능한 미래이기도 하다.

고도로 발달된 기술을 가진 타워들이 세워지고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은 돈과 명예를 누린다.

그 안에 추방자나 망명자가 있고 배후 세력들의 음모가 있다. 최첨단 사회로 모든 것이 전파와 연결된다는 것은 개인이 비밀을 가질 수 없는 환경이기도 했다.

"헤븐 스타일은 아니지."

"하긴 천국에서 살인 사건이 나면 안 되겠죠."

헤븐이라 불리는 곳으로 분리된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을 빗덴 소설로 이해하려 한다. 천국이 가지는 이미지로 사람들의 기대 이면의 실체를 알아간다. 이 시대의 천국은 어떤 곳을 말하는가?

"지상에 천국이 하나 있는 것도 나쁘진 않잖습니까?"

"껍데기만 천국이지, 사실은 가진 자들의 왕국이잖아"

 

화성의 폐허

저자 김이환, <양말 줍는 소년>, <절망의 구>, <디저트 월드>, <초인은 지금>등

 

 

화성은 광부의 예상보다 훨씬 기이한 곳이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화성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우선 이 소설의 결말이 무척 맘에 들었다. 인간이 지구를 쓸모없게 만들어 놓은 상태로 또다시 달이든 화성으로 가서 처음부터 우리 것이었다는 듯 자원을 착취하는 것은 소집단의 익익을 위함이지 인류를 위한 일도 아니다. 화성인이 있다면 물론 달가워하지 않을 일이다. 화성을 지키려 하는 문지기가 등장하고 인간을 막고자 하는 진화 로봇이 있어서 재밌게 봤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이 연상되기도 하는 화성인의 문명이 있는 동굴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여러 번 화성으로 쏘아 올려진 우주선으로 얼마나 많은 인간이 화성의 자원을 탐내는가를 보여준다. 처음엔 금을 캐러 갔지만 금 외에도 필요한 광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인공지능 진화 기계를 보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며 자원들을 끌어오려 한다.

실체가 없는 화성인~ 화성인이 존재했었고 화성인도 화성을 파괴하고 자멸한 상태로 이해된다. 지구인이 화성을 찾으면서 바이러스와 오염을 건넨 것은 아닌가, 그렇게 멸망된 문명이 있던 화성의 유일한 존재인 문지기는 화성이 화성으로 존재하길 바란다.

인간도 화성인도 단지 화성을

파괴했을 뿐이니까요.

          화성에서 진정한 주인은 누가 인가?

액체는 이곳을 지키는 문지기이다. 그동안은 지키기만 했지만 지구인이 오면서 화성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고 이곳의 정보를 기록했다. 막다른 곳도 연장되고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광부의 경우처럼 지구인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영화의 장면처럼 머릿속에 그려지는 소설이라 재밌게 봤다. 화성의 문지기를 이해하고, 인간의 생각을 아는 인간의 산물인 로봇 하오란의 역할이 특히 좋았고, 마지막 장면도 여운이 남으며 좋았다.

불면의 밤은 끝나고

저자 장아미, 신화적인 색채를 띤 장편 소설 <오직 달님만이>, 테이스티 문학상 작품집 수록 <비님이여 오시어>등

해수로 침식된 아스팔트 도로, 담장이며 가로등의 머리가 거꾸로 박혀 있던 표지판에는 '송도 5킬로'미터라고 적혀 있었다. 매립지에 세워진 도시에서 컨테이너에 의지해 살아가던 해인 앞에 바다로 뛰어든 작은 소녀가 나타난다. 이 소녀를 위해 홀로 고립되기를 원했던 해인은 움직이게 된다. 해이니 고립되고자 했던 이유와 이 소녀가 갑자기 나타난 이유가 궁금해지면서 소설을 이어간다.

각 지구 간의 교류가 제한된 곳에서 둘은 6지구로 가기 위해 나섰다. 사람들은 공동체를 만들고 벽을 높이 쌓아 공동체로의 접근과 이탈을 막았다.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공동체가 있고, 지구마다 퍼진 질병의 공포는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되었고, 유지하던 공동체 역시 무너져 간다.

아마도 네 편의 소설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미래인 동시에 먼 미래로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바이러스가 인류의 생활패턴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지금 읽다 보니 더 소름 끼치는 공포가 된 것 같다. 세상을 지배하던 지금의 이분법 남자와 여자가 종의 변이를 겪는 미래는 상상 이상이었다.

다시 소설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분명 의미가 담긴 문장임을 소설 말미에 알았다. 무언가가 바뀌었고 그것은 졌다는 의미로 흔드는 손수건처럼 느껴졌다.

풍향이 바뀌었다.

소나무 가지에 묶어둔

손수건이 나부꼈다.

                             

p143

결국은 어느 지구에도 속하지 못하고 버려졌겠죠. 인구는 손쓸 수 없을 만큼 줄고 있는 데다, 해안가에 지어진 도시들을 보존하기에는 비용이 감당 못할 수준이었으니까 방파제를 높이는데도 한계가 있었을 테고...

 

미래 뉴스

저자 남유하, <미래의 여자>,<푸른 머리카락>등

 

아직은 살아 있어?

어떻게 할 거야?

어떡하긴 죽여야지.

그래도...저렇게 어린애를...

우리 딱 하나만 생각하자. 우리 아들만~

 

                              

미래뉴스를 알 수 있다면 축복일까? 저주일까?

인간에게 축복의 결말을 미리 알려준다 해도 사소한 선택들로 인해 달라지는 미래를 살 것만 같다. 다소 예상 가능했던 스토리지만 범죄 스릴러 라기엔 미흡하고 쉽게 마무리 짓는 소설이 다른 의미를 가졌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읽었다.

소설의 시작과 내용이 그야말로 소설이라 시원하게 읽어갔다. SF와의 연결점은 미래뉴스를 들려주는 라디오 하나를 주었다는 것뿐이어서 조금 의아했지만 미래를 해킹한다는 관점으로 읽었다.

누군가는 분명 일반인보다 시간을 앞서는 결과지를 볼 수 있는 세상이라 생각한다. 주식의 등락도 세계정세도, 바이러스의 등장이 가져오는 변화도 먼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늘 있다. 정보가 인류를 위해 쓰이거나 소수의 약자를 위해 쓰일 리가 없는 씁쓸함이 남는다.

미래 정보가 개인과 소수의 집단의 이익을 불리는데 쓰이고 누군가는 희생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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