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삼국유사 우리 역사에 담긴 과학을 찾는다
이종호 지음 / 동아시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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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이란 책을 통해 이 책의 저자를 처음 만났다. 과학자가 우리 문화유산을 연구하는 몇 안되는 전문가. 그래서 더 재밌게 흥미진진함으로 넘쳐나는 우리 문화유산의 자랑거리를 알게 되었다.
 

이번엔 과학 삼국사기와 과학 삼국유사란 이름으로 우리 문화유산에 담긴 과학원리, 기술의 우수성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어떤 주제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것들도 있고 어떤 것은 전혀 생소한 내용도 있고 어떤 것은 이것도 해당되나 싶을 정도의 소재도 더러 보이지만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두루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과학 삼국유사에는 총 20가지의 우리 문화유산에 담긴 과학을 풀어낸다.


당나라 임금이 보낸 그림을 보고 향기 없는 꽃이라 했던 선덕여왕의 지혜가 오늘날 밝혀진 것으로 보면 틀린 것이란다. 나비는 꽃을 찾아가는 것이 후각이 아니라 시각으로 찾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꽃가루가 있는 곳이 더 진한 노란 색이라는 것을.. 종족보존을 위한 꽃과 나비들의 공진화를 마다카스카르의 난초와 나비를 TV에서 본 기억이 난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보다 500년 앞서 중국의 진자가 구고현의 원리를 발견하였는데 그 원리는 동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도 이미 오래전부터 과학, 수학의 원리를 알고 있었고 그것들이 우리 문화유산에 녹아들어가 있음에도 기록 유산이 없고 우리가 모를 뿐이란 이야기다.

 

우리 유산에 과학이 없게 느껴지는 이유 4가지
1. 우리의 유산 중에서 제작 방법이라든가 작동 방법 같은 과학적인 설명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자료가 거의 없다. 기술적인 내용이라도 한자로 기록했고 그림도 많지 않아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2. 수많은 자료들이 그동안의 전란이나 관리 소홀로 거의 파손되거나 멸실되었다. 전란이라는 악재 앞에서 귀중한 자료를 모두 챙기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검토할 수 있는 유산의 수가 적다.


3. 위정자들이 필요에 의해 고의적으로 자료를 파괴하거나 훼손했다. 예를 들어, 아직도 일제의 잔재들이 우리의 문헌이나 자료에 남아 있어 애초 선조들이 물려준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 많다는 논란도 이런 이유다.


4. 전통적으로 한국인에게 뿌리 깊게 내려오고 있는 조상과 스승에 대한 숭배사상이다. 과학은 미지의 것을 탐구하는 학문인데, 스승의 이론이 자신의 생각과 다를 경우 스승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을 철회하는 것이 순리이자 도리로 보았다.

 

우리 유산에 과학이 없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어느 유산에 과학이 있는지를 찾는 것이 시급하다!


 

과학 삼국유사에 담긴 20여가 주제중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선덕여왕의 총기, 막걸리, 포석정, 로봇이야기, 온돌, 용, 소리개 통신원, 앵무새의 사랑, 차, 사리이야기,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 제대로 보기, 에밀레종, 석빙고, 가마솥, 김치, 국물 문화의 주인공 장, 사발의 기원과 방짜의 진수 징, 바둑

 

석빙고편을 보니 고체가 액체보다 밀도가 낮은 것은 얼음이 거의 유일하다고 하는데 만일 얼음이 밀도가 더 높다면 어떻게 될까. 강은 한번 얼기시작하면 얼음이 가라앉아 전체가 얼어버려 생명체가 살수 없게 된다니.. 여름에 얼음을 만든다는 이집트와 겨울에 얼음을 잘라 가을까지 보관하는 우리의 석빙고와 어디가 우수한가를 비교하는 대목을 보니 문화유산도 상대성이 있으므로 겉보기로 우열을 논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삼국유사는 현암사에 펴낸 것을 겨우 읽었고 삼국사기는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신라의 통일 이후 대부분의 왕조가 외세 영합적이고 이전 왕조나 국가들에 대한 폄하로 우리 역사를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책들이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책들을 보면 우리의 문화는 이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세계화된 문화, 기술을 보유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지금의 한반도를 보면 조금을 씁쓸해진다.


너무 흔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생각 역시 사대주의, 외국문화 우월주의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크게 반성이 된다.

남들을 따라가는 세계화가 아니라 우리 것의 세계화가 진정한 세계화라고 한다. 저자처럼 우리 문화유산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더 많아져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담긴 과학원리가 더 많이 밝혀졌으면...

 

과학 삼국사기엔 어떤 문화유산이 소개될지 자못 궁금하다.
알면 알수록 더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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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사기본기 1 사기 완역본 시리즈 (알마)
사마천 지음, 김영수 옮김 / 알마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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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刑
자신과 큰 인연도 없는 장군을 변호하다 도리어 중형을 받았고 50만냥이란 돈이 없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궁형을 선택하고 목숨을 부지한 사마천! 왜 그는 그토록 사기 저술을 위해 치욕을 감내하면서까지 살아남으려 했을까? 언제 죽어도 죽는 목숨, 영원히 살아남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아닌가?

언제 읽어도 가슴이 쿵쾅거리는 사마천의 사기, 52만 6500자, 본기(12편), 표(10편), 서(8편), 세가(30편), 열전(70편) 총 170편이 중국의 역사학만이 아니라 중국의 오늘을 있게한 하나의 구심점이 된 사서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기 열전에 소개된 일화나 영웅호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것들이 많아 쉽게 몰입이 되는 역사서다.

 

한자실력 부족으로 원서를 읽을 수준은 아니라서 사기 관련서를 자주 읽는다. 그중에서도 명불허전 국내 최고의 사기 전문가인 김영수교수의 책은 발품을 팔아가며 사마천이 걸어갔을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며 지은 책이라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또 다른 책으론 10년 가까이 중국의 오지와 유적지를 누비며 춘추전국이야기를 집필중인 공원국씨의 책도 이와 유사한 감동을 내게 선사하는 책이다. 김영수교수의 사기 완역본은 15권(분기 2권, 표1권, 서1권, 세가3권, 열전 8권), 공원국의 춘추전국이야기는 12권(현재 3권까지 출간)으로 완간될 예정이라 앞으로도 오랫동안 춘추전국시대를 누비는 여행길에 동참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 생각하니 항상 기대가 설렌다.  사마천, 김영수, 공원국 그들의 발품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더 심오하게 만들었으니 그들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았다.

 

김영수교수의 완역 사기 1권은 본기에서부터 시작하지 않고 사마천이 살았던 시대와 사마천의 생각, 사기를 집필하게 된 이유나 계기 등을 전반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보임안서(사기외의 글)과 마지막 170편인 태사공자서가 1부이고 2부는 오제본기, 하본기, 은본기, 주본기, 진본기까지를 다루고 진시황본기에서 효무본기는 2권으로 나올 예정이다.

 

사기에 대한 평가는 진본기와 진시황본기를 따로 다룬 것, 왕이 아닌 여태후와 항우를 본기에 포함한 것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것은 본기엔 왕들의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고 좁게 해석한 후학들의 잘못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사마천의 생각을 잘 못 이해했다고.

이 책은 단순한 완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편마다 역자 해제를 달아 전체 틀거리 이해를 돕고 각편마다 부록으로 인명, 지명, 주요사건, 왕조 세계도, 주요 고전들에 소개를 상세하게 해준다. 제대로 이해하려면 등장 인물은 물론이고 그 당시의 중국 대륙의 지도를 펼쳐놓고 지도를 짚어가야 읽어야 제맛이 나겠지만 시간관계상 눈요기에 그침이 아쉽다. 그러나 역자의 이러한 친절함이 각주로 달았으면 앞뒤를 오가며 읽는 불편함으로 인해 몰입에 다소간 방해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삼황오제의 이야기, 민족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시점의 이야기에서부터 정사로 받아들여지는 왕조사에 이르기까지, 사마천 개인이 홀로 그 많은 전거들을 두루 섭렵하고 스무살시절 부친의 권유로 주유천하하며 지역의 사람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까지 수록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간간히 등장하는 배달 민족의 이야기는 좀더 자세히 소개해주었으면 하는 나의 기대가 무너졌지만 사기는 중화민족의 오늘을 있게 만든 구심점이자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한 책 이상의 책이다.

 

중국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인 사기 읽기를 한글로 쉽게 접할 수 있게 만들어준 저자와 같이 한길을 가는 인문학자들이 더 많이 배출되어야 국격이 진정 올라가지 않을까. 문화란 구호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기를 통해 다시금 배우게 된다.

 

오직 한길을 가라. 그 길이 당대에는 치욕을 감내하는 삶일지라도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사나이는 진정 행복하리라. 그가 바로 사마천이다. 삶의 여유가 생긴다면 수시로 읽고 싶은 책중의 하나로 사기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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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이야기 1 - 최초의 경제학자 관중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1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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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교해 보이는 전망이 사실은 과거의 추세에 현재의 변수를 집어넣어 약간의 수정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과 과거의 수치, 곧 역사적으로 관찰된 사실이 없으면 어떤 예측도 불가능하다. 사회과학에서 현재는 과거의 종속변수이며, 미래는 현재의 종속변수다. -Page11

 

춘추전국 이야기는 역사의 전거를 기초로 오늘의 시각으로 인물들을 재평가한 또 다른 사기열전이란 생각이 든다. 사기열전 보다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춘추전국시대의 시대상과 한계와 역사적 의의를 조목조목 짚어준다.
특히 그 당시의 지리적 환경과 각 나라의 특성을 덧붙여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지도를 들고 역사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 당대의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관포지교로 익숙한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 관자란 문집이 후대에 전할 정도로 춘추시대의 패러다임을 정립한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나니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인물이다.

'관중은 춘추시대의 경제체제, 행정, 군사, 법률, 외교 등 모든 방면에 질서를 세운 사람이다.
사농공상의 분업, 시장의 활성화, 국제무역, 농지개간, 세제개혁, 중앙과 지방 행정체제 확립, 삼군제도의 정비, 법령의 집행방식 확립, 존왕양이와 회맹질서의 수립, 이 모든 것이 관중의 손에서 나왔다.'


"관이오가 말한 대로 하십시오."- 무한 신뢰가 관중을 만들었다.
나를 낳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다.라고 인정할 정도로 관중은 포숙아가 있었기에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장사에도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모사에도 실패하고, 출사에도 실패하고, 전투에도 실패한 관중을 끝까지 인정한 사람이 포숙아였고 그런 경험이 관중이 사람들의 어려움을 아는 정치인으로 만들었다.

어느 정도의 신뢰가 쌓여야 죽는 날까지 한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 관중보다 포숙아의 경지가 더 높은 것은 아닐까. 포숙아는 착한 사람이라 관중 사후의 제나라를 이끌 제목이 못된다고 추천하지 않는 관중을.. 항상 제몫을 더 많이 챙겼어도 한마디 불평도 없이 신뢰하는 친구..
최근에 읽은 책의 내용처럼 행운의 절반은 내가 만들고 나머지 절반은 친구가 만들어준다는 말처럼 관중은 친구하나는 정말 잘 사귀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적을 인재로 받아들인 환공
규의 스승이었던 관중과 소홀(관중은 살아서 이름을 남기고 소흘은 죽어서 절개를 지킨다.), 소백의 스승이었던 환공, 제나라의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망명지에서 제나라로 달려가던 환공에게 활을 쏘았던 관중을 포숙아의 천거도 있었지만 삼흔삼욕(三釁三浴, 세번 목욕재계하고 세번 향을 피우는 예, 삼고초려와 유사)의 지극 정성으로 인재로 등용한 환공도 대단한 인물이다.
사냥, 술, 미색을 좋아하는 자신의 단점을 실토하는 환공, 관중은 지도자의 사적인 욕망은 받아들이며선 과단성 있는 결정과 실행을 환공에게 요구한다. 관중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었던 그이지만 관중의 유언- 자신의 아이를 삶아바친 역아, 스스로 성기를 잘라  환관이 된 수조, 환공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15년간이나 부모를 찾지 않은 개방을 멀리하라-을 무시하여 끝내 자식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수십일간이나 시신이 방치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된다.

 관중이 천거한 습붕도 관중 사후 포숙아도 습붕도 금새 유명을 달리한다. 백년해로한 부부가 사별을 하면 오래지 않아 남은 사람도 저승을 따라가는 것처럼.

 

백성의 욕구를 억제한 진나라와 채워주려한 제나라의 차이

'창고가 가득차면 예절을 알게 되고, 입고 먹는 것이 족하면 영욕을 알게 된다.'

 

백성들이란 근심과 고생을 싫어하니, 나는(군주는) 그들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
백성들이란 가난과 비천함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을 부유하고 귀하게 해줘야 한다.
백성들이란 위험에 떨어지는 것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을 안전하게 보존해야 한다.
백성들이란 자신이 죽고 후대가 끊어지는 것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이 수명을 누리고 후대를 잇도록 화육해야 한다.


 

제나라 환공과 관중은 백성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 주려하였고 관리의 욕구를을 억제하였지만 진나라는 백성의 욕구을 억제하여 천하를 장악하고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정책이 바로서니 천하에서 사람이 몰려들다.
낮은 세율, 넘치는 물화,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자리잡은 제나라, 천하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농업 중심국가에선 인구수가 국가경쟁력이요, 힘이기에 서쪽 변방에 있던 진나라가 중원으로 진출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였다.


신뢰의 정치
'관중과 환공은 기존의 예법보다도 자신들의 입으로 말한 기준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기준을 남이 지키게 하려면 먼저 자신이 지킨다는 것이 이들의 원칙이었다. 관자는 법에 대한 기준을 되풀이해서 강조한다.

 

옳은 말인데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릇된 말인데도 폐기하지 않고, 공이 있는데도 상을 주지 않고, 죄가 있는데도 주살(벌)하지 않으면서 백성을 잘 다스린 예는 고래로 없었다. 옳으면 반드시 받아들이고, 그르면 반드시 폐기하고, 공이 있으면 반드시 상을 내리고, 죄가 있을 때 반드시 주살하면 어찌 다스릴 수 없겠는가? - 관자 七法

 

기준을 제시하고 지키지 않으면 질서의 주재자가 아니다. 법을 일관되게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법을 누구한테나 공정하게 행하는 사람도 드물다. 특히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305쪽

 

'환공의 누이로 노나라 장공에게 시집가 자식이 없었는 애강이 경보와 불륜을 저지르면서 패악을 저지르자 죽인 일로 환공을 애강을 죽인다.(제나라 양공과 근친상간에 빠진 문강의 문제로 양공은 노나라 환공을 죽인 일도 있음')

 

진 효종의 재상 상앙이 백성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행했다는 이목지신(移木之信)이란 말처럼 정치의 기본은 신뢰다.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부는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요 겉으로 강한 나라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역사가 반증한다.

平之如水라는 말처럼 관중은 정책이나 기준, 법을 공평무사하게 시행하였고 다른 나라를 정복할 수 있음에도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포기하는 모습은 그 시대에나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싶다.

 

더 많은 것을 주어라.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른 나라에게 빼앗은 땅을 되돌려 준 관중과 환공. 열 여섯차례의 회맹을 통해 맺은 신뢰로 융적이란 북방과 낭방의 초의 세력으로부터 제나라는 물론이요 중원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고향에서 먹을 거리가 오면 남에게 나누어줄 것은 가장 좋은 것으로 나누었더니 나중에 더 큰 것이 돌아오더란 누이의 말이 귓가 맴돈다.

종법 질서를 무너뜨리고서도 노예출신의 백리혜를 등용한 진목공, 남방의 초나라는 관중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기존의 전투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야금야금 중원을 향하고 있었다.


제초진진이란 춘추시대의 4강구도가 형성되고 관중의 사후엔 지금과는 다른 양상의 살육전이 일어날 줄은 관중도 몰랐지 않을까. 싸우다 보면 친해진다는 말처럼 다양한 민족, 다양한 문화가 버무려져 황화의 작은 부족국가가 자연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지역까지 아우르는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기틀이 춘추전국시대에 마련되었고 그 씨앗을 뿌린 사람이 바로 관중이 아닐까?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시대의 패러다임에 맞지 않는 정책은 실책이다. 관중과 환공이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렸더라면 중원을 최초로 통일한 제국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까란 상상도 해보지만 그 시대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물질적인 욕구충족을 아직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정책, 진시황이나 수나라처럼 전국방방곡곡을 토목공사의 현장화시키는 정책이 과연 이 시대에도 맞는 해법일까. 시대는 달라졌고 백성들도 달라졌으되 달라지지 않은 우리의 정치수준이 더 큰 화를 불러오기전에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백성의 소리에 귀닫고 법과 질서, 기준의 준수를 백성에게만 강요하고 위장전입, 탈법투기, 뇌물수수를 한 인사들을 고위직 인사로 천거하여 인사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 관중의 뒷꿈치만 따라간다면 대한민국은 엄청나게 다른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그들이 필독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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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제국 가야 - 잊혀진 왕국 가야의 실체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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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의 최고의 철기 문명국의 하나였던 가야에 대한 사료가 희소하여 가야에 대한 실체규명은 단편적으로 언급된 역사기록과 유물, 신화를 근거로 추정해야 하는 경우 많다는 저자의 고뇌가 가슴에 와닿는다. 이는 비단 가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조선, 삼한, 삼국시대, 발해에 이르기까지 우리 고대사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이다. 심지어 우리 기록보다 타국의 기록, 나아가 왜곡 폄하된 것이 분명한 일본서기의 기록을 참고하여야 하니 우리 사학계의 고충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우리의 고토 대부분이 중국과 분단된 조국의 북녘에 있는 한계점 역시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중국은 자기네 땅에 살았던 민족이 누구냐에 개의치 않고 영토 중심으로 중국사를 이야기한다면 역사의 주체가 누구냐 즉 우리 민족이냐에 따라 우리 역사를 이야기하는 차이점이 있다고 하며 이래서 중국이 동북공정에서 고조선과 심지어 고구려, 발해까지도 중국 변방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철의 제국 가야사는 가야의 철기문화의 우수성, 건국의 주체 세력에 대한 증명(토착세력, 김수로, 허황옥, 내쳐진 석탈해), 신라, 왜, 백제, 고구려와의 관계, 대외교류사, 쇠망사를 다루고 있다. 이 주제는 전에 읽은 이야기 가야사와 비슷한 맥락이나 이 책은 그 논의의 범주가 이전의 책을 뛰어넘는다. 이전에 제기된 한의 권력가문 김일제의 후손이 신라 왕가의 김씨라는 것을 넘어 김수로 역시 김일제의 후손이라 비정한다. 석탈해도 일본 동북쪽에 위치한 캄차카반도에서 도래한 도래인이라고 비정한다. 아직은 100% 역사적 사실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가야 건국의 또 하나의 세력인 허황옥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가야시대의 유물은 아니지만 현존하는 쌍어문이 인도와 허황옥이 경유한곳으로 추정되는 태국과 중국에서 발견되고, 가야의 분신이라고 추정되는 왕국에서도 동일한 유물이 발견되며, 또한 인도의 드라비다어와 우리 말의 유사성을 근거로 이동 경로를 비정한다.

 

김일제의 후손인 김수로, 인도 아유타 왕국의 공주 허황옥, 캄차카반도의 탈해의 이동경로를 고려하면 그 당시 얼마나 많은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나를 파악할 수 있고 가야는 그야말로 다양한 문명이 결합하여 탄생한 문명국이란 이야기다.

 

가야는 한때 신라를 속국(동양에서는 속국이 자주권은 인정받았다는 설명이 일본과 조선이 맺은 조약 등을 예시하며 설명)으로 삼았고

일본에 분신 왕국을 열고, 왜,백제와 더불어 신라와 고구려에 대항하였고  해상무역의 중심으로 도약하졌지면, 기후가 한랭해져 또 다른 민족의 대이동으로 중국의 5호 16국시대가 열린 기회를 이용 고구려가 북경 인근까지 진출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북위가 중국의 북쪽을 통일하여 위진남북조 시대가 되자 고구려 장수태왕의 독트린으로 남진정책을 펴자 고구려, 신라, 백제의 틈바구니에서 가야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가야는 멸망이후에도 금관가야 왕족이자 김일제의 후손인 김유신, 역시 김일제의 후손인 신라 김씨 왕족이 신라를 지배하고 오늘날에도 김해김씨가 대한민국의 최다 성씨로 이어지고 있다. 

 

철기문명의 전파 경로를 추적해보면 유목민족의 이동 혹은 침략으로 수많은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고, 철기시대의 전파된 지역의 가치관이 크게 변화되고 중앙집권적 권력이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청동기를 농기구로 활용하지 못했던 반면에 철기는 전쟁무기로도 대적할 자 없었지만 농기구의 혁명을 불러와 농업 생산량의 획기적 증가를 가져와 비옥한 농토를 기반으로 한 농경국가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하게 된다. 씨족, 부족사회가 해체되고 바야흐로 국가다운 국가가 성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철기 문명 전파기에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동서양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대사상가들이 탄생한 것도 이즈음이란 것이다.

아직도 우린 그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 놀랍지 아니한가. 말이다.

 

철기 전파의 시기에 아주 많은 지역에서 天孫신화가 많이 등장한다. 天을 北이라 할때 북방민족이 남하하여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이념적 기저가 되는 것이 천손신화라 할때 한반도에도 북방의 민족이 유입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가야의 건국전에 고조선이 한에게 멸망후 한반도로 유입된 고조선의 유민이 신라나 가야, 삼한의 지배세력이 되었을 가능성은 없겠는가? 여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드라마에선 정견모주가 도망쳐 올때 고조선 유민에 대한 언급이 조금 나오지만..

 

미스터리한 왕국 가야, 더 많은 유물과 기록이 발굴되어 가야사가 우리 역사의 주역으로 우뚝 서는 그날이 당겨지길 빈다.

사료의 부족으로 다양한 주장들이 봇물처럼 나오고 있다. 어떤 비정은 정말 사실이었으면 하는 부분도 많고 너무 앞서 나간 부분이 없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가야사에 대한 저자의 천착이 빛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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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가야사 - 신화 시대부터 가야의 후손 김유신까지
이희근.김경복 지음 / 청아출판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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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구야국~ 이 한마디 조차도 이해가 안되는 상식 이하의 가야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김수로를 본다는 것은 픽션과 역사적 사실을 구분조차도 할 수 없이 눈요기 거리로 가야사를 대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때쯤 만난 책이 이야기 가야사이다.

 

서기 42년에서 서기 562년까지 500년 이상이나 존속한 왕국(연맹체지만) 가야는 우리 역사서에도 제대로 대접을 해주지 않아 고구려, 신라, 백제보다는 미개한 부족 연맹체정도로 치부되어 온 것이 바로 나같은 무식쟁이를 만들어 놓았다.

 

주몽때도 그랬지만 드라마 김수로에서도 최대의 관심사는 바로 철 제련 기술이다. 주몽에선 야철장, 김수로는 단야장이다. 매번 팩션형 드라마는 좀 더 친절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용어의 설명, 등장인물의 설명, 어느 부분이 역사적 사실이고 픽션인지 종영후에라도 사이트에라도 올려주었으면~ 드라마를 보고 이게 모두 역사적 사실이야라고 믿을 사람들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착각 아닌 착각을 할수도 있으므로~ 나만의 바램인가.
 


이진아시, 정견모주(정견비), 허황옥 이비가(천군), 구야국, 야철장, 단야장, 염사치, 석탈해, 신귀간, 대천간~

 
이 책을 보니 등장인물중 누가 가공의 인물이고 누가 그나마 신화든 역사서에 기록된 인물인줄 구분이 확가고 단야장, 신귀간, 천군에 대한 이해가 확실히 된다. 간은 한자로 표현하면 干, 북방의 칸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아홉개의 집단의 우두머리가 간~ 신귀과는 귀신, 대천간은 천신을 모시는.. 기타 농업에 관련된 ~간 등등이 있다.

 

북방계통의 신화는 보통 난생이라 하더라도 1인이 등장하는데 가야의 건국신화는 하나의 알이 아니라 6개의 알이 등장한다. 그 알이 사람으로 화하여 모두 가야의 족장이 되었다는 이야기, 수로와 이진아시가 형제간이란 신화는 금관가야의 신화가 아니라 후기 가야의 맹주가 되는 대가야의 건국신화에 등장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정견비가 등장한다.

 

드라마 김수로는 역사적 기록을 이곳 저곳에서 모아서 짜깁기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것이 이 책을 보니 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상인 염사치는 가야인이 아니라 다른 민족출신의 노예상이란 것도.. 그 시절엔 복속의 대가로 사람을 노예로 주고 받았다는 것을.. 이후 우리가 숱하게 사대주의로 받들어 모시던 나라에 바치는 공녀처럼.. 서글픈 우리 역사..

 

이야기 가야사는 가야의 건국에 얽힌 비화들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는 것에서 부터 철기의 중요성, 임나일본부의 존재가능성, 기마민족 도래설, 전기 가야와 후기 가야의 역사, 주변국 신라, 백제, 고구려, 왜와의 관계,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쟁, 마지막으로 가야출신의 우륵과 김유신 일가에 대한 이야기들..

왜 김유신이 후대왕의 꿈에 나타와 슬픈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를 이제사 하게 된다. 왕족 대접을 받았던 김유신 일가가 후일 육두품 대접밖에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 무열왕계의 견제로 날이 갈수록 대우가 급전직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철기가 왜 그리 중요한가?
신귀간, 염사치, 석탈해가 철기에 목메다는 이유, 청동기는 무기로 사용할 순 있을지 몰라도 농기구론 사용을 못한다네요. 그래서 청동기시대에 반월형석도를 사용, 가야의 사정상 농경과 해상무역으로 일어선 나라, 풍부한 철자원을 바탕으로 철기기술을 가진자가 가야의 맹주가 될 수 있었으니 단야장이 사라지니 혼선을 겪을 수밖에요. 김수로는 아버지로부터 철기기술을 전수받았고 이젠 배를 만드네요~

 

가야는 왜 통일국가를 건설하지 못했을까?
그토록 우수한 철제련기술을 가진 기술강국, 해상강국이란 가야가 통일 왕국을 건설하지 못하고 연맹체 형식으로 존재하여 신라. 백제, 고구려, 왜에게까지 뭇매를 맞고 멸망했을까
이유는 좁다란 분지에 자리한 고만고만한 세력이라 전체를 장악할 세력이 형성되지 못한 반면에 고구려나 신라, 백제도 족장들중에서 전체를 아우을 세력이 형성되어 단일왕국을 건설했다고

 

임나일본부, 기마민족도래설~
일본이 식민지배의 타당성을 위해 내세우는 임나일본부설, 광개토대왕비문을 조작했다고도 하는데 정말 삼국시대엔 왜가 우리와 뗄래에 뗄 수없는 관계였다는 것이네요. 우리 역사서가 고려시대 것만 남아있어 일본 족속들이 우리 역사서를 참고하여 조작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근거로 주장하는데 사실무근이라고. 기마민족 도래설도 나오나 그당시 고조선, 부여의 유민들이 대거 한반도로 이주하였다는데 아직은 확정되지 않은~

 

허황옥은 인도에서 온~
외부 세력 도래는 정답, 인도에서 바로 오지는 않았다는 설에 무게중심.. 그당시 불교가 전래되기전, 김수로 역시 외부에서 철기기술을 가진 세력의 이주했다는 것으로 해석~

 

이야기 가야사는 무지했던 가야의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틔워주는 난생 처음 접한 가야의 역사를 다룬 역사서다. 아쉬운 것은 동일한 내용이 자주 서술된다는 것(반복학습으로 기억하기엔 그만)과 일제시대에 가야 고분의 매장문화재도 아주 많이 기록도 남기지 않고 싹쓸이해 갔다는 것이다. 강성대국이 되어 일본이 제발로 되돌려 주게 만들어야겠군요.

 

삼국시대가 아니라 가야가 포함된 새로운 역사서술 방식이 조속히 시행되고 더 많은 문화재가 발굴되고 일본이 개과천선하여 도굴해간 문화재나 우리 역사서 모두를 공개하여 가야사 복원은 물론 우리 고대사의 화려한 역사가 모두 복원되어 중국이나 일본의 아류가 아닌 독창적인 우리문화, 우리역사를 세계인들로부터 인정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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