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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별로 배우는 통합형 세계사 교과서 1 통합형 세계사 교과서 1
알렉스 울프 지음, 김민수 옮김 / 빅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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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작용의 연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학창시절 필독서였던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카(E. H. Carr)가 내린 역사의 정의다. 그런데 최근 역사에서 가치를 빼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과거사를 해석하려는 사관이 등장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일제시대가 한반도의 근대화에 기였했다는둥,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 유신독재가 경제 근대화에 이바지 했으므로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만 보자는 둥..

교과과정 개편으로 수능에서 선택과목으로, 행정. 외무고시에서 한국사가 없어졌다가 한국사능력검정 자격시험 인증제로 변경되는 둥, 이런 대접을 해서는 안되는 과목이 바로 역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역사는 암기과목인가 이해과목인가? 교과서와 많은 참고도서를 함께 읽은 학생이라면 어느 누구보다 역사 공부가 재미있을테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암기 위주로 공부하다보니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과목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전국의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방문하면 고사리같은 손으로 인솔자의 설명을 필기하는 아이들의 눈망울에서 희망의 싹을 보게 된다.

 

이 책은 영국의 학자가 쓴 책을 번역한 2권 중의 한권으로 동서양의 시대사를 통시적으로 두루 섭렵하여 종래 교과서에선 보기 힘든 문명을 두루 소개하고 있다. 아프리카에도 고대문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본 교과서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긴 해도 서술이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의 역사는 주변부에 머물러 있어 아쉽다. 더구나 우리 역사를 언급하는 대목에선 한국, 북한이란 현대사 용어가 과거사를 설명하는데 자주 눈에 띄고, 오역이나 오기도 눈에 보여 좋은 느낌보다는 좋지 않은 인상을 준 책이다.

 

다양한 사진, 간략간략한 설명을 하고 있지만 큼직큼직한 전쟁 위주로 주마간산격으로 소개하다보니 제대로 된 이해와 인식을 하긴 부족하고 어떤 점에선 우리 교과과정에 맞는 통합형 역사교과서라 하긴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하지 않았나 싶다. 마치 연표를 좀 더 상세하게 읽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거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 과거사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 것, 통합의 효과, 현대사를 바라보는 인식의 힘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닐까?

 

수많은 전쟁, 유목민의 이동을 통하여 문명의 파괴도 있었지만 문화의 전파, 새로운 문화의 탄생, 기술의 발달로 오늘을 만들었다면 세계화도 소수 문화, 문명의 파괴가 아니라 문화다양성이 보존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직립보행을 하고 도구를 만들고 문화,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여 지구를 지배하는 종이 된 인류,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역사들, 아이들과 함께 동서양의 문명을 두루 섭렵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책이다.

 

바로잡아야 하는 것들.
기원전 5세기에 양사오(仰韶) 문화가 탄생했고, 기원전 4세기 말엽에는 룽산(龍山)인들이 중국 북부에 등장했다. 몇 가지 고고학 증거로 볼 때 기원전 3세게의 하왕조가 중국 최초의 왕조였다는 전설이 사실일 가능성도 있지만,   87쪽

 

이 시기 중국은 남쪽으로는 오늘날의 티넷, 북쪽으로는 베트남 북부와 북한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174쪽

 

1170년 쿠데타가 일어나 군주제가 무너졌고, 한국엔 한동안 통치자가 없는 공백상태가 이어지다가 1196년 최씨 가문이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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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
김용만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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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이 아니라 태왕
동창이 고교시절 본인의 이름이 호태라는 빌미로 책마다 국강상광개토평안호태왕이라고 적어놓은 것을 보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알던 광개토왕, 광개토대왕이란 칭호와 너무 달랐기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국강상(國岡上)은 광개토태왕이 묻힌 지역, 광개토경(廣開土境)은 나라의 영토를 넓힌 광개토태왕의 업적, 평안(平安)은 백성을 편안하게 한 치세를 표현, 호(好)는 왕을 아름답게 부르는 미칭,  太王은 일국의 왕이 아니라 제국의 황제를 의미한다. 영락(永樂)이란 독자연호를 최초로 사용했고 장수왕은 건흥이란 연호를 사용하였다. 신라는 법흥왕대에 연호를 사용하였으나 진덕왕 2년 이후엔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였고 이는 조선에도 이어지다가 대한제국에야 독자연호를 사용하게 된다.

우리에겐 광개토대왕이란 명칭이 익숙하나 이보다는 광개토태왕이 맞는 칭호이며 모두루의 묘지석엔 국강상광개토지호태성왕이라고 칭하기도 하고 신라 호우총에서 발견된 호우엔 국강상 강개토지호태왕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광개토태왕대에 고구려는 일개의 국가가 아니라 신라, 백제, 가야, 북여, 거란, 말갈, 숙신 등을 속민으로 거느린 제국이 되었고 왕의 호칭이 대왕이 아니라 태왕으로 부르게 된다.



광개토태왕비에 담긴 의미
초가집보다 키가 큰 높이 6.39m, 무게 37톤, 총 1775자의 글자가 새겨진 비문, 그중 일부는 해독이 불가하여 갖은 억측이 난무하고 더구나 1883년 최초 발견 탁본자가 일본 육군 참모본부의 밀정 사코 가게아키인지라 사서답지 못한 일본서기의 기록에 짜맞추는 임나일본부설을 정당화시키는 사료로 인용되기도 하나 이 책을 읽고 보면 비문이란 사서와 달리 주인공의 입장에서 읽어야 제대로 해독이 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터무니 없는 억측이요 주장이다. 더구나 일본 날조설도 제기된바에야 일러 무엇하랴

 

장수태왕은 광개토태왕의 비를 세운 이유가  후연과 백제에 대한 복수를 하고 백성을 평안케 하고 고구려제국을 연 아버지의 위업을 높이고 천손인 고구려 왕실의 기개를 널리 알리고자 함이었다면 일본에 유리한, 고구려에 불리한 기록은 비문에 담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비문은 추모왕의 건국신화, 광개토태왕의 업적, 묘지기에 대한 규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광개토태왕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하는 것이 드물어 조선시대엔 잊혀진 왕이었다가 근래 들어 태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이란 저자의 분석이 씁쓰레하다. 삼국사기와 비문의 연도가 1년차이가 나는 것은 비문이 옳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18세에 즉위하여 22년간 치세를 한 태왕, 그가 벌린 정복전쟁, 신라 구원전쟁, 그와 동시대의 인물이나 제도에 대한 기록이 일천하여 더 많은 사료가 발굴되기를 기다려야 그분의 위업을 제대로 알수 있을 것이라니 안타깝다.

 

Faction보다 Fiction이 강한 사극
삼국시대와 그 이전의 기록이 일천하여 역사적 기록만으론 그 시대를 복원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대하 드라마는 팩션보다 픽션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바램이 있다면 부록이든 자막으로 역사적 사실과 픽션을 구분하여 시청자들에게 가이드를 제공하여 혼선을 줄여주었으면 한다. 수사반장에서 범인은 언제나 흉악하게 생기고 무식쟁이든 우리 적국의 인사들을 모두 그렇게 그리는 것도 썩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에 때한 깡짜 등의 이유로 사극이 인기절정이다. 계백, 무사 백동수,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공주의 남자를 제외하고는 영웅을 다룬 이전의 사극의 판박이를 보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영웅은 극한 시련을 극복(장보고, 대조영, 대무신왕, 연개소문..), 반대파와의 극한의 암투에 이르고 보면 어디선가 본듯한 장면처럼 보여 아쉽다.


사극의 고정 패턴을 따라하는 것이 잦으면 찬물을 끼얹게 된다는 kbs의 사극에 대한 평가가 담긴 시사프로그램을 보고 바로 긍정하게 된 연유가 바로 이런 까닭이다.

이 책을 읽고 보니 드라마의 픽션이 더 도드라지게 들어온다. 근초고왕이란 드라마에 나왔던 전연의 황제 모용황(이를 연기한 송용태씨가 광개토태왕에선 고국양왕을 연기)의 다섯째 아들 모용수가 후연을 개창하여 광개토태왕의 적수로 등장한다. 선비족이 모용선비, 우문선비 등으로 갈래가 나누어진다
국상의 아들이자 상인으로 등장하는 고운은 훗날 풍발(후연의 장수)의 지원으로 북연의 왕이 된다고 한다. 유주자사 진의 무덤으로 알려진 덕흥리 고분의 묵서, 모두루고분 등의 사료를 기준으로 봐도 광개토태왕과 함께 싸운 장수나 신하의 이름은 오리무중이다.

 

거란, 백제, 후연, 신라, 가야, 왜, 그리고 부여
후연은 고구려 황제의 능을 도굴해가고 근초고왕과 근구수와의 싸움에서 고국원왕은 숨을 거둔 원한. 소수림왕과 그의 아우 고국양왕은 외치보다는 내치로 광개토왕이 할아버지의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주었다.
태왕은 후연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으로 후연을 바로 공격하지 않고 북쪽의 거란을 정복하여 배후를 튼튼히 하고 내물왕의 요청으로 가야와 백제 왜의 세력을 물리치나 후연의 침입으로 군대를 북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고. 백제를 공격하여 수많은 성을 빼앗아 항복을 받았음에도 완전 지배하지는 못했다.
후연과의 일전을 벌일때 백제의 사주를 받은 왜가 침입하여 다시 눈물을 머금고 회군을 해야 했다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동부여를 아룰러 그의 정복사업은 막을 내린다.

 

평양천도 이유.
광개토태왕부터 추진된 평양천도는 국내성은 수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기엔 부족한 도읍지, 5부족으로 나뉘어진 귀족이 좌지우지 하는 나라(드라마만 보면)였기에 왕권강화를 위해 평양으로 천도한 것이지 장수태왕의 남진정책이 이유가 아니라는 소리다.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광활한 대륙을 누볐던 영웅 광개토대왕, 정복군주라서 영웅이 아니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백성을 평안케 한 점을 더 높이 사 호태왕이란 미칭을 얻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고구려의 고분들, 아직도 발굴되지 않는 사적지를 남북한이 함께 투자하여 발굴해 나간다면 광개토태왕의 위업, 고구려제국에 대한 구체적인 사료, 나아가 우리 고대사의 수수께끼가 하시라도 빨리 밝혀져 일본의 강짜와 중국의 억지가 백일하에 들어났으면 좋겠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을 선조로 둔 우리는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도 충분하며 거란, 말갈, 선비, 숙신, 백제, 가야, 신라인을 아우루는 제국을 분열이 아니라 통합으로 일군 태왕의 정신을 다문화되어가는 대한민국이 따라 배워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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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수다 - 진보에 홀린 나라 대한민국을 망치는 5가지 코드
조우석 지음 / 동아시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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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라면 나는 이 나라의 앞날이 두렵다!" 맞는 말씀이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담하다.
이런 말은 보수주의자의 입만이 아니라 진보주의자의 입에서도 들린다. 누구도 내 잘못이다란 말을 잘 하지 않는다. 모두가 네탓이다이라고 한다. 저자가 마치 진보가 다수파이고 보수가 소수파로 전락하여 헤게모니를 진보가 잡은 것인양 엄살을 떠는 주장엔 동의할 수 없다. 하진지만 그들의 시각으로 보면 보수의 목소리가 조중동을 중심으로 하는 구 미디어엔 말발이 서지만 뉴미디어인 블로그, 카페, SNS에선 신통치 않아 젊은 층으로부터 이반된 현주소를 지극히 두려워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천편일률이 되어선 곤란하다. 새가 좌우 날개로 날듯이 인간 사회에도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양날개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그 어느 나라보다 중도 보수, 중도좌파, 중립을 시류에 따라 표방하는 정치인이 많아서인지 나는 보수다란 검색어로 검색하니 새는 좌와 우날개와 몸통으로 난다고 중도를 강조하는 글도 보인다.

 

공이 크다고 해서 과에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현대판 파라오라던 무바라크가 시민혁명으로 법정에 섰는데 방청객의 돌발적인 위해행위를 막기 위해 그와 그 아들이 철창으로 보호된 공간에서 심문에 응하는 모습을 오늘 아침 뉴스에서 보았는데 그는 그의 범죄사실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보수가 위정자들이 지난 날 범한 불법행위에 대해 갖는 태도가 아닐까?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의 나는 대한민국 보수다란 한겨레 칼럼(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87919.html)의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란 말이 나는 보수다란 책에 적용되는 말이다. 저자의 주장에 일견 공감이 가는 면이 많지만 결과가 좋으니 덮어두자.  국부라고 숭앙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전쟁영웅 백선엽을 부각시키려는 프로그램을 방영하여 여론을 환기시키려는 그들의 시도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저자가 대한민국을 망치는 다섯가지 코드로 진보진영의 5가지 고질병으로 진보와 리버럴이란 신기루, 백안시와 부정 일변도의 역사 허무주의, 반기업 심리와 부에 대한 적대감, 내출혈을 반복하는 과도한 이념분쟁, 신라이후 우리를 지배한 오래된 질병 근본주의 DNA를 들어서 진보진영에 대한 비판과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부분부분 저자의 지적에 공감이 가는 바가 전무하지 않지만 진보진영에 근본적인 문제점 모두가 진보의 문제인가, 아니면 원인제공자가 보수라는 점에 대해선 얼버무리지 않았나 싶다. 어떤 점에선 진보의 시각도 보이고 어떤 점에선 보수의 시각이 혼재되어 있다.

그가 말하는 대한민국의 빛나는 역사는 세계 10위 이내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탁월한 지도자 박정희의 허물을 지적하고 흠집내기는 그만하고 우리의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갖자고 이야기한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나 해방전후사의 인식, 비판적 시각으로 쓴 역사서 모두를 싸잡아 비판하고 우파의 시각으로 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등의 책을 높이 사고 있다. 그런 점에선 보수와 진보의 양분론에서 탈피하고자 이책을 썼다는 그의 의도가 모호해진다.

 

어느 사회든 비판적인 지식인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마치 있어서는 안될 존재처럼 간주해서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반기업정서는 국민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문제를 있게 만든 정경유착의 고리, 부정부패, 탈법행위, 강부자 고소영이란 신조어를 만든 MB정부의 인사문제 등에 대한 해결없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이념논쟁의 뿌리는 실로 깊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직도 사상의 자유가 온전하게 보장되지 않는 것이 국제적으로 공인되어 있는 나라다.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아직도 보수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고 보수가 유발하는 이념논쟁도 너무나 많다.

송시열의 의리 명분에 입각한 소중화, 조광조의 도덕주의, 중국 대륙에 불교가 들어가든, 맑시즘이 들어가든 중국화된다는데 우리는 유교, 불교, 기독교든 모두 근본주의의 틀에 갇힌 꼴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공감이 간다. 한문만 보더라도 중국은 간체 등으로 간소화한 반면에 우린 당나라가 쓰던 한자를 아직도 사용한다, 공자 문묘제례의 전범을 중국이 우리나라에서 배워갔다는 소리도 들리는 것을 보면 변화를 거부하는 우리의 DNA가 강하긴 강한 모양이다.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존경하는 인물을 조사했는데 1위가 김구주석, 저자는 김구를 존경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나라를 세운 국부 이승만이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경제강국으로 발돋움시킨 일등공신 박정희대통령이나 전현직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의원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림형제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쥐를 쫓아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 그들의 미래인 아이들을 잃어버린 주민들처럼 지금 대한민국의 미래를 허물어뜨리는 근본이 진보 혹은 좌파에게 있다고. 그리고 춘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옹호하는 대목에선 뉴라이트의 잔상이 보인다. 일제가 한반도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하는 그 역사관을..과거사 청산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입장도 이해할 수 없다. 용서를 하든 처벌을 하든 진상만은 규명해야 하지 않는가? 물론 과거사의 상처를 들추어 덧나는 문제점도 있다하더라도. 과거사 청산을 반대하는 이유가 상처가 덧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구린내가 나는 과거가 더 두려운 것이 아닐까?

 

보수의 입장에서 유구하게 내려온 진보에 대한 시각은 대한민국을 혼란스럽게 하고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다급해지면 너 빨갱이지라고 낙인만 한번 쾅 찍으면 만사형통인 시대가 있었다.(물론 지금도 그것에서 온전하게 놓여나지 않았지만).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우리 몸안에 내재된 근본주의 DNA는 기층에서 심어준 것이 아니라 주류가 심어준것이 아닌가.

이대로라면 나는 이 나라의 앞날이 두렵다!" 맞는 말씀이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담하다.
보수가 대한민국의 중추세력으로 길이길이 존재하려면 과거사의 잘못에 대한 인정과 고해성사가 필요하고 반기업정서, 부에 대한 거부감은 국민이 아니라 원인제공자가 과오을 인정하고 깨끗해지는 것이 해법이다.  MB 집권후 기독교 근본주의가 급부상하고 있어 근본주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시각은 극과 극이다. 그리고 쟁점에 대한 시각도 극과 극이다. 이는 비단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엔 보수와 진보가 모두 필요하다. 어느 시각도 절대선은 없다.
무상급식, 4대강 살리기, 반값등록금, 주한미군, 통일 등 어떤 문제도 원만한 합의에 의해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4~50년대, 7~80년대의 틀로 21세기의 오늘을 살아갈 수는 없다. 진보든 보수든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시대가 요청하고 국민들이 바라고 있다.


출발선부터 삐그덕거렸던 대한민국의 현대사, 빛나는 영광의 역사, 오욕으로 점철된 과거사 모두가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보수만이 대한민국의 중심이 아니라 진보도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파트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좌와 우, 지역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이 우리모두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되는 첫걸음이 아닐까?

 

보수는 진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진보는 보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서로를 한걸음 더 이해하기 위해 나는 보수다라는 책이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보수가 집권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진보가 집권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라는 좋은 나라가 아니다. 진보냐 보수냐를 선택하는 것은 얼마나 집권세력이 국민을 행복하게 했는지 불행하게 했는지에 대한 평가요 선택이므로.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아직도 대한민국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은 진보가 아니라 보수다.

진보의 시각에서 대한민국을 망치는 보수의 5가지 코드는 무엇일까?

 

저자의 생각에 100% 공감하지 못하고 역심이 드는 나는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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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초고왕을 고백하다 백제를 이끌어간 지도자들의 재발견 1
이희진 지음 / 가람기획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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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한을 오래 전에 읽었다. 그리고 KBS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근초고왕을 애청한다. 그런데 요서백제를 경영했다는 것과 고난을 딛고 왕이 되었다는 내용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동향의 작가 이문열을 다시보게 되었고(지금은 존경의 염은 사라졌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백제에 대한 나의 무지를 통감하고 그것이 사실일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기록되지 않았다고 의문을 품는 것은 기존 강단 사학자들이 심어놓은 아니 식민사관, 신라중심의 역사기록을 확고하게 믿어왔던 나의 신념체계가 저항하고 있었음이다.

 

근초고왕을 고백하다는 이런 나의 의문부호를 잠재우고 좀 더 구체적인 근초고왕대의 역사를 고구하고 싶었음이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여인을 가운데 두고 고민하는 나약한 근초고왕을 그렸다는 저자의 지적에 깊이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오래전에 출간된 책을 증보하여 어찌보면 방송에 기대려하는 출판사의 마케팅이 눈에 가시처럼 돋아났다.  방송을 비판하면서 그것에 대한 명쾌한 답은 솔직히 이책은 나에게 주지 못했다. 이 책은 근초고왕대의 역사와 백제 부흥을 꿈꿨으나 관산성 전투에 참전한 태자 여창(훗날 위덕왕)을 위무하러 갔다가 신라군의 매복에 걸려 죽음을 맞은 성왕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을 근초고왕을 고백하다에서 근초고왕과 성왕을 고백하다가 더 어울린다.

 

각설하고 저자의 백제의 역사를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은 높이 사고 싶다. 남겨진 기록이 일천하고 신라중심의 역사서와 왜곡이 심한 일본서기를 중심으로 사라진 왕국 백제의 역사를 복원해내기란 실로 고난의 행군이다.

당시의 상황, 잔존하는 기록을 고구하고 학자의 상상력과 추론에 기대어 백제의 역사를 올바르게 보여주고자 하는 노력이 담긴 책이다.

 

일본이 식민시대를 정당화하기 위해 줄창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에 대한 의문점이 이 책을 통해 거의 대부분 해소되었다. 근초고왕이 연나라와 고구려의 대립을 이용하여 마한과 가야지역을 공략하는 방송이 최근 보았다.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려 하는 근초고왕의 가야나 마한의 공략이 정답이나 후일 불씨가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연맹체인 가야와 왜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백제의 편에 서게 만들기 위해 운용한 임나. 거기에 설치된 일본부.. 그것이 임나일본부렷다.

당시의 상황을 한눈에 보여주는 각 나라들의 면적과 역량, 전투지역을 보여주는 지도를 단 한장도 없는 상황에 다소 아쉬웠다.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왜의 역학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기존에 가졌던 신라중심의 역사관에서 탈피할 수 없다는 것. 그렇다고 국수주의적인 시각에서 대백제의 호화찬란함, 강국의 면모만을 여과없이 보여준다는 것도 위험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한다.

 

그러나 아직도 식민사관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 사학의 현실을 넘어서는 젊은 사학자의 강단있는 연구가 지속되어 잃어버렸던 백제, 고구려의 역사가 복원되어 신라중심의 역사에서 하시라도 벗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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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 평전 - 민생을 살펴 태평성대를 이룩한 대통합의 지도자 중국 역대 제왕 전기 시리즈
장자오청 지음, 이은자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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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년초에 책을 들었지만 춘삼월에도 마지막 장을 덮지 못하면 안되겠다 싶어 주말에 욕심을 내어 마지막 장을 드디어 덮었다.

 

정말 큰 나라, 정말 대단한 황제 강희제를 만났습니다. 너무 많은 등장인물이 우루루 몰려나와서 머리가 복잡해지기도 했지만 청나라를 다시 보게 되고 거대한 나라 중국, 그들의 저력이 어디에서부터 연유하는지 다시 보게 됩니다. 변방의 오랑캐가 절대 다수인 한족을 포용하여 강건성세를 이루어냈는지를 부지불식간에 인지하게 만듭니다.

 

시대상황을 오판한 조선이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삼배구고두례의 치욕을 안겨준 청태종 홍타이지와 순치제에 이어 8살에 황제가 된 이후 60년 이상을 중국을 다스린 전무후무한 영웅 강희제를 오늘의 중국의 위정자들이 앞다투어 따라배우려 한다니 또 다시 우리를 긴장하게 만듭니다.

8살에 즉위한 황제는 조모인 효장문황후와 네명의 보정대신의 보좌를 받아 통치를 한다고는 했지만 네명의 대신은 사실상 전횡을 일삼았고 그중 권신 오배는 황제의 뜻을 거스르고 조서를 조작하여 정적을 제거할 정도로 오만했지만 친정을 한지 2년이 된 16세에 오배를 속이고 그를 처단한 것은 황제의 지혜에 뭇사람들을 탄복하게 합니다.

 

삼번의 반란중 가장 극렬하게 반란의 깃발을 올렸던 오삼계 무리를 물리치고 대만의 반람도 잠재우고 러시아의 침략을 잠재우고 오늘의 국경선을 확정한 네르친스크 조약에 맺고,  티벳과 몽고지역의 반란도 잠재우는 등 그의 치세는 한시도 바람잘 날이 없었지만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군벌을 어르고 달래어 그가 생각하던 바를 이룹니다.

 

끊임없이 범람하여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게 만들던 황하와 회수를 다스려 민생고를 해결한 것과 황무지를 개간한 일이며 민생고 해결에 앞장선 그의 모습을 보면 세종대왕을 연상케도 합니다.

 

 " 백성들을 쉬도록 하는것도 치도의 첫 번째 중요한 일이다. 백성들을 쉬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백성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아야 한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므로 먼저 휴식이 이루어져야 한다"

 

백성을 피곤하게 하지 않고 배 고프게 만들지 않는 정책이 나라를 부흥케 하는 제 1원칙임을 이 책에서도 확인하게 만듭니다. 한족, 몽고족, 만주족, 기타 다수의 이민족을 포용하고 감싸않았던 그의 모습에서 오늘 우리가 직면한 다문화가정, 이주노동자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줍니다.

종교로서 천주교를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서구에서 파견된 많은 선교사들을 등용하여 선진기술을 받아들이는데도 주저함이 없었고 이들이 만든 대포로 러시아의 침략을 막아내었고, 강희자전 등 수많은 책들을 발간하는 등의 이학치국(理學治國)를 실현한 황제였습니다.
강건성세 이후 청이 서구 열강에게 무참히도 박살이 났다지만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성리학의 명분주의에 사로잡혀 날려버린 조선과는 달랐습니다. 조선에도 하멜과 같은 서양인들이 찾아들었지만 이들을 이용할줄 알았던 청과 일본과는 다른 길을 걸었던 조선이 제국주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었던 것을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도 피해갈 수 없었던 후계자 문제, 세자를 폐했다가 다시 세웠다가 또 폐하고 또 다른 황자를 후계자로 세운 이력을 보면 권력은 누구와도 나누어 가질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다시 배웁니다.

 

너무나 방대하여 그의 진면목이 또렷하게 맺히진 않았지만 오늘날 중국의 지도자들이 그를 배우려 하는 이유는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 이유는 수많은 환란이 있었지만 이민족을 포용하고 통합하는 리더십, 백성의 곤궁함을 덜어주려는 애민의 정신, 서구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일 줄 아는 시대감각, 인재를 고루 등용할 줄 알았던 그를 통해 오늘의 중국의 지도자들이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으려는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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