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 이야기 1 - 최초의 경제학자 관중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1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정교해 보이는 전망이 사실은 과거의 추세에 현재의 변수를 집어넣어 약간의 수정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과 과거의 수치, 곧 역사적으로 관찰된 사실이 없으면 어떤 예측도 불가능하다. 사회과학에서 현재는 과거의 종속변수이며, 미래는 현재의 종속변수다. -Page11

 

춘추전국 이야기는 역사의 전거를 기초로 오늘의 시각으로 인물들을 재평가한 또 다른 사기열전이란 생각이 든다. 사기열전 보다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춘추전국시대의 시대상과 한계와 역사적 의의를 조목조목 짚어준다.
특히 그 당시의 지리적 환경과 각 나라의 특성을 덧붙여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지도를 들고 역사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 당대의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관포지교로 익숙한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 관자란 문집이 후대에 전할 정도로 춘추시대의 패러다임을 정립한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나니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인물이다.

'관중은 춘추시대의 경제체제, 행정, 군사, 법률, 외교 등 모든 방면에 질서를 세운 사람이다.
사농공상의 분업, 시장의 활성화, 국제무역, 농지개간, 세제개혁, 중앙과 지방 행정체제 확립, 삼군제도의 정비, 법령의 집행방식 확립, 존왕양이와 회맹질서의 수립, 이 모든 것이 관중의 손에서 나왔다.'


"관이오가 말한 대로 하십시오."- 무한 신뢰가 관중을 만들었다.
나를 낳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다.라고 인정할 정도로 관중은 포숙아가 있었기에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장사에도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모사에도 실패하고, 출사에도 실패하고, 전투에도 실패한 관중을 끝까지 인정한 사람이 포숙아였고 그런 경험이 관중이 사람들의 어려움을 아는 정치인으로 만들었다.

어느 정도의 신뢰가 쌓여야 죽는 날까지 한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 관중보다 포숙아의 경지가 더 높은 것은 아닐까. 포숙아는 착한 사람이라 관중 사후의 제나라를 이끌 제목이 못된다고 추천하지 않는 관중을.. 항상 제몫을 더 많이 챙겼어도 한마디 불평도 없이 신뢰하는 친구..
최근에 읽은 책의 내용처럼 행운의 절반은 내가 만들고 나머지 절반은 친구가 만들어준다는 말처럼 관중은 친구하나는 정말 잘 사귀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적을 인재로 받아들인 환공
규의 스승이었던 관중과 소홀(관중은 살아서 이름을 남기고 소흘은 죽어서 절개를 지킨다.), 소백의 스승이었던 환공, 제나라의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망명지에서 제나라로 달려가던 환공에게 활을 쏘았던 관중을 포숙아의 천거도 있었지만 삼흔삼욕(三釁三浴, 세번 목욕재계하고 세번 향을 피우는 예, 삼고초려와 유사)의 지극 정성으로 인재로 등용한 환공도 대단한 인물이다.
사냥, 술, 미색을 좋아하는 자신의 단점을 실토하는 환공, 관중은 지도자의 사적인 욕망은 받아들이며선 과단성 있는 결정과 실행을 환공에게 요구한다. 관중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었던 그이지만 관중의 유언- 자신의 아이를 삶아바친 역아, 스스로 성기를 잘라  환관이 된 수조, 환공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15년간이나 부모를 찾지 않은 개방을 멀리하라-을 무시하여 끝내 자식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수십일간이나 시신이 방치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된다.

 관중이 천거한 습붕도 관중 사후 포숙아도 습붕도 금새 유명을 달리한다. 백년해로한 부부가 사별을 하면 오래지 않아 남은 사람도 저승을 따라가는 것처럼.

 

백성의 욕구를 억제한 진나라와 채워주려한 제나라의 차이

'창고가 가득차면 예절을 알게 되고, 입고 먹는 것이 족하면 영욕을 알게 된다.'

 

백성들이란 근심과 고생을 싫어하니, 나는(군주는) 그들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
백성들이란 가난과 비천함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을 부유하고 귀하게 해줘야 한다.
백성들이란 위험에 떨어지는 것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을 안전하게 보존해야 한다.
백성들이란 자신이 죽고 후대가 끊어지는 것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이 수명을 누리고 후대를 잇도록 화육해야 한다.


 

제나라 환공과 관중은 백성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 주려하였고 관리의 욕구를을 억제하였지만 진나라는 백성의 욕구을 억제하여 천하를 장악하고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정책이 바로서니 천하에서 사람이 몰려들다.
낮은 세율, 넘치는 물화,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자리잡은 제나라, 천하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농업 중심국가에선 인구수가 국가경쟁력이요, 힘이기에 서쪽 변방에 있던 진나라가 중원으로 진출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였다.


신뢰의 정치
'관중과 환공은 기존의 예법보다도 자신들의 입으로 말한 기준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기준을 남이 지키게 하려면 먼저 자신이 지킨다는 것이 이들의 원칙이었다. 관자는 법에 대한 기준을 되풀이해서 강조한다.

 

옳은 말인데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릇된 말인데도 폐기하지 않고, 공이 있는데도 상을 주지 않고, 죄가 있는데도 주살(벌)하지 않으면서 백성을 잘 다스린 예는 고래로 없었다. 옳으면 반드시 받아들이고, 그르면 반드시 폐기하고, 공이 있으면 반드시 상을 내리고, 죄가 있을 때 반드시 주살하면 어찌 다스릴 수 없겠는가? - 관자 七法

 

기준을 제시하고 지키지 않으면 질서의 주재자가 아니다. 법을 일관되게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법을 누구한테나 공정하게 행하는 사람도 드물다. 특히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305쪽

 

'환공의 누이로 노나라 장공에게 시집가 자식이 없었는 애강이 경보와 불륜을 저지르면서 패악을 저지르자 죽인 일로 환공을 애강을 죽인다.(제나라 양공과 근친상간에 빠진 문강의 문제로 양공은 노나라 환공을 죽인 일도 있음')

 

진 효종의 재상 상앙이 백성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행했다는 이목지신(移木之信)이란 말처럼 정치의 기본은 신뢰다.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부는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요 겉으로 강한 나라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역사가 반증한다.

平之如水라는 말처럼 관중은 정책이나 기준, 법을 공평무사하게 시행하였고 다른 나라를 정복할 수 있음에도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포기하는 모습은 그 시대에나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싶다.

 

더 많은 것을 주어라.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른 나라에게 빼앗은 땅을 되돌려 준 관중과 환공. 열 여섯차례의 회맹을 통해 맺은 신뢰로 융적이란 북방과 낭방의 초의 세력으로부터 제나라는 물론이요 중원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고향에서 먹을 거리가 오면 남에게 나누어줄 것은 가장 좋은 것으로 나누었더니 나중에 더 큰 것이 돌아오더란 누이의 말이 귓가 맴돈다.

종법 질서를 무너뜨리고서도 노예출신의 백리혜를 등용한 진목공, 남방의 초나라는 관중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기존의 전투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야금야금 중원을 향하고 있었다.


제초진진이란 춘추시대의 4강구도가 형성되고 관중의 사후엔 지금과는 다른 양상의 살육전이 일어날 줄은 관중도 몰랐지 않을까. 싸우다 보면 친해진다는 말처럼 다양한 민족, 다양한 문화가 버무려져 황화의 작은 부족국가가 자연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지역까지 아우르는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기틀이 춘추전국시대에 마련되었고 그 씨앗을 뿌린 사람이 바로 관중이 아닐까?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시대의 패러다임에 맞지 않는 정책은 실책이다. 관중과 환공이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렸더라면 중원을 최초로 통일한 제국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까란 상상도 해보지만 그 시대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물질적인 욕구충족을 아직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정책, 진시황이나 수나라처럼 전국방방곡곡을 토목공사의 현장화시키는 정책이 과연 이 시대에도 맞는 해법일까. 시대는 달라졌고 백성들도 달라졌으되 달라지지 않은 우리의 정치수준이 더 큰 화를 불러오기전에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백성의 소리에 귀닫고 법과 질서, 기준의 준수를 백성에게만 강요하고 위장전입, 탈법투기, 뇌물수수를 한 인사들을 고위직 인사로 천거하여 인사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 관중의 뒷꿈치만 따라간다면 대한민국은 엄청나게 다른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그들이 필독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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