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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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재미가 엄청 있는 글은 아니지만, 작품과 함께 읽는 맛이 좋았다.
계획을 그리 세워놓고 좀처럼 진도가 안빠져서 문제였지만.

시평이 많아서 그렇기도 했는데, 안 읽은 작품의 평론을 읽는 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편혜영에 대한 평론을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 같다.

- 나는 늘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곤 했다. 생의 어느 고비에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부인 하나를 가지기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텅 빈 채로 가득 차 있었고 몰락 이후 그들의 표정은 숭고했다. 나를 뒤흔드는 작품들은 절정의 순간에 바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들은 왜 중요한가.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면서 이긴다. 성공을 찬미하는 세계는 그들의 몰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덕분에 세계는 잠시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들을 스스로 몰락하면서 이 세계의 완강한 일각을 더불어 침몰시킨다. 그 순간 우리의 생이 잠시 흔들리고 가치들의 좌표가 바뀐다. 그리고 질문하게 한다. 어떤 삶이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인가. - 5

- 그 소재가 무엇이건, 도대체가 미학적으로 태만한 작품은 옹호할 수가 없다. 소수자 혹은 약소자를 스테레오타입으로 재현하고 감상적인 해결책을 반복하는 작품들은 그것이 리얼리즘이냐 모더니즘이냐를 따지기 이전에 그저 ‘나쁜 소설’일 뿐이다. 좋은 소설은 늘 현실보다 더 과잉이거나 결핍이고 더 느리거나 빠르다. 좋은 소설에는 ‘현실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의 긴장’이 있다. - 23

- 90년대가 되면서 이념이라는 좌표는 희미해졌다. 좌표가 사라지면 자유가 오는 것이 아니라 좌표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온다. 폐허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자기 입법’의 자유와 책임을 떠맡아야 했다. 비로소 도덕이 아니라 윤리를 사유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작가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 143

- 한 편의 시가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었던 때가 있었다는 식의 의심스러운 노스탤지어는 갑갑할 뿐만 아니라 수상하다. 시는 하찮은 것이다. 시가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시는 하찮은 것이지만 다른 대단한 것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주체들이 앓고 있는 증상들을 언어라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을 통해 표현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시는 가장 근본주의적이고 하찮고 가장 진실하게 사소한 그 무엇이다. 도착적이고 반 고백적이며 환상적이고 비 계몽적인 이들의 시는 불투명한 우리 시대가 낳은 가장 투명한 증상들이다. 물론 진실은 언제나 건강한 자들이 아니라 앓는 자들의 편에 있다. - 230


2019.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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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조지 손더스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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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상적인 단편집.
독창적인 형식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용이 좋다.

그나저나 이북으로 봤는데, 정말 불편하고 되찾아보기 힘들어 좋은 책은 종이책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짐.

<거미머리 탈출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 끝까지 그렇게 살란 법은 없어. 네 인생도 어느날 갑자기 멋지게 피어날 수 있단다. 정말이야. 내가 그랬거든.
그러나 숨겨진 표정들이 있었다. 그 표정들이 아주 미세한 속삭임으로 수 많은 의미를 전하고 있었다. 그런 건 다 헛소리라고.


2019.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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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지음, 강승희 옮김 / 천문장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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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이라는 부분의 심각한 결여가 있는 인간인가 싶었던 아율라는 공포와 억압 폭력으로 망가진 사람이었을 뿐
그런 동생에게 환멸과 책임을 동시에 느끼는 코레데.
세상에 의지할 데라곤 오직 둘뿐인 이야기.

나이지리아라는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도 이 두 여성의 이야기를 공감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충분한 근거와 이유가 되는 자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여성작가의 이야기들이 더 많이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

- 그리고 나의 운명은 이미 오래 전에 정해졌다. 나는 언제나 그녀 곁에 있을 것이고, 그녀는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 254

2019.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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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9-06-14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맘에 들어서 찜해 둔 책이에요.

hellas 2019-06-14 15:54   좋아요 1 | URL
나이지리아 젊은 작가. 괜찮네요. 쑥쑥 읽히는 책이예요.
 
을들의 당나귀 귀 - 페미니스트를 위한 대중문화 실전 가이드 ㅣ 을들의 당나귀 귀 1
손희정 외 지음, 한국여성노동자회 외 기획 / 후마니타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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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전반에서 배제되어온 역사가 긴 여성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또 다시 들려오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아재들의 속사정...지겨운 것.

각각의 주제별로 주제에 걸맞는 전문가와 나누는 대화는 확실한 방향성이 있다는 장점.
사소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일들이 더 이상은 사소하지 않게 되는 분위기가 생겨서 다행이다.
공론화가 중요하다.

-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어떤 문화 안에서 뭐가 재밌다거나 슬프다거나 고통스럽다거나 하는 감정을 느끼는 건 관습적인 문제거든요. 특히나 ‘웃음 코드’같은 건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거란 말이죠. (...) ‘나쁜 웃음”과 연결돼 있는 우리의 관습의 고리를 깨서 다시금 질문하게 만드는 어떤 순간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중요한 작업입니다. - 26

- 지금 우리 시대의 가족은 거의 다 해체된 것처럼 보이는 것에 반해, 예능에서는 왜 이렇게 퇴행적으로 그려지는 걸까요? (...) 사회적 안전망이 무너지고 각자도생 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펼쳐졌을 때,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한데, 한국 사회에는 그런 공동체를 상상하는 방식이 가족밖에 없는거죠. 그나마도 이성애 중심, 결혼 계약에 기반한 핵가족밖에는 상상할 수가 없는 거고, 특히 여자들을 이 가족의 관계망 안에 넣지 않으면 상상이 안되는 거죠. - 29

- 이제 더는 노동자 서사를 써도 노동자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는게 문제인 것 같아요. 지금 한국 문학에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택배 배달원 등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할 거 없이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이야기가 쓰이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 소설들을 굳이 ‘노동문학’이나 ‘계급문학’일고 부르고 싶어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작가도 그런 딱지를 두려워하고, 독자들도 그런 범주에 속한 작품들을 선험적으로 꺼리죠. 계급화 된 앎, 계급화된 서사에 대한 감각이 과거와는 매우 달라진 거예요. 그런데 사실 ‘계급’과 무관한 서사는 없을뿐더러, 자신과 다른 계급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진 사회는 정말 위험해요. 아무리 계급 상승의 욕망이 좌절되더라도 그것을 꿈꾸는 서사는 사회변혁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하는 거죠. 그런데 요즘은 아예 ‘흙수저’ ‘금수저’ 같은 방식으로 계급을 나누고, 그걸 고정불변의 것으로 간주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다른 삶을 상상할 필요가 없으니 오직 자신이 속한 세계, 사진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세계가 이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되죠. 최근 대중서사에서 독립운동가나 사회 혁명가들이 숭고한 가치나 뚜렷한 이념의 주체가 아니라 먹고사니즘에 굴복한 ‘생계형’ 투사로 묘사되는 걸 보면 마음이 복잡해져요. 그런 서사들은 내가 모르는 다른 삶이 있다고 상상하지 않고, 인간은 그저 모두 먹고사니즘에 굴복하는 경제동물이라고 인식함으로써 인간과 세계에 대한 납작한 이해만을 강요하거든요.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다른 삶,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한 통로로서 <세 여자>와 <여공문학>을 소개해 봤습니다. - 238

2019.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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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에 선 남자 ㅣ 마르틴 베크 시리즈 3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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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한 범죄를 해결해야 하는 마르크 베틴의 수사팀.
장르소설로 가볍게 소비하던 와중에 그들의 인간적 고뇌와 공권력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1960년대의 배경이지만 촌스러운 감각이 전혀 없다는 점은 읽을 수록 놀랍다.

거의 없다시피한 단서들과 거듭되는 범죄에 무력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한 발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막연함에 고단함을 같이 느낀다. 소설 속의 경찰에 이토록 공감하면서도 왜 현실의 경찰은 못미덥기만 한지 모르겠다..ㅡ.ㅡ

- 발코니에 선 남자는 모든 것을 목격했다. - 18

- 이 모든 일이 과거에도 똑같이 벌어졌고 미래에도 틀림없이 다시 벌어질 것이라는 인식,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었다. - 70

- 자경단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범죄자나 갱단보다 사회에 더 큰 위험을 안깁니다. 무분별한 집단 응징의 정서와 자의적인 정의 구현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회의 보호 메커니즘을 방해합니다. - 255

2019.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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