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러비드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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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장면, 예견되는 풍경 그 모든 걸 뛰어넘는 인간성이 말살되고 픽밥받는 개인이 무너지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뜨겁게 고통스러운,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야기라서 머리가 아플 정도로 몰두한 독서였다.

‘사랑받은‘ 인간이고 싶은 간절함이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극단적이 사건이 된다. 그렇게 하게 되는 선택이 틀렸다거나 불가해한 일이라 할 수 조차 없겠다 싶은 무거운 마음이 남는다. 최악의 상황을 액면 그대로 이해해보려는 독자로서의 시도조차 죄책감을 남기는 비이성의 시대를 읽는 일은 고단하기 조차 하다.

직접적인 구체적 묘사가 없어서 다행일지 모르겠지만, 벌어지는 일의 한계를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나의 상상력이 더 끔찍해졌다. 나의 이 소스라칠 감정은 안중에도 없는 세서는 자꾸 앞으로 내일로 걸어간다.

-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을 내 백성이라, 사랑받지 못하던 자들을 사랑하는 자라 부르리라. - 로마서 9:45

- 내 등에는 나무가 자라고, 내 집에서는 귀신이 나오고, 그 사이엔 품에 안은 딸 아이 하나 밖에 없지만 더 이상 도망은 안쳐. 절대로. 이 세상 그 무엇도 두 번 다시 날 도망치게 하지 못해. - 33

- 세월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단다. 세월이란 걸 믿기가 힘들다고. 어떤 순간은 떠나가. 그냥 흘러가지. 또 어떤 순간은 그냥 머물러 있고. 예전에는 그게 내 재기억 때문이라고 생각했단다. 너도 알 거야. 어떤 일들은 까맣게 잊어 버리지만, 또 어떤 일들은 절대 잊지 못하잖니.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 내 말은, 설사 내가 그걸 생각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내가 죽더라도, 내가 했거나 알았거나 본 일들의 광경은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거지. 그 일이 벌어진 바로 그 자리에. - 67

- 그녀는 삶을 정화하라든가,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 땅의 축복받은 존재라든가, 세상을 물려받을 온화한 존재라든가, 영광을 누릴 순결한 존재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은총은 오직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은총 뿐이라고 말했다. 은총을 볼 수 없다면, 누리리 수도 없다고. - 149

- 세발달린 개처럼 절뚝거리는 예순도 넘은 노예 할망구에게 자유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그리고 마침내 자유의 땅에 발을 내디뎠을 때, 베이비 석스는 자기도 몰랐던 사실을 아들 핼리가 알고 있었다는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자유로운 공기라고는 단 한 숨도 마셔보지 못한 핼리가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이 세상에 자유처럼 좋은 게 없다는 사실을, 베이비 석스는 그게 두려웠다. 뭔가 잘못되었다. 뭐가 문제일까? 뭘까?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녀는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손이 보였고, 눈 앞이 아찔할 만큼 단순 명쾌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 손은 내거야. 내 손이야.˝ 뒤이어 가슴이 쿵쿵 거리는 것이 느껴졌고, 또 다른 무언가를 새로 발견했다. 자신의 심장박동이었다. 이게 내내 여기 있었단 말인가? 이 쿵쿵 뛰는 것이? 그녀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져서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가너씨가 고개를 돌려 커다란 갈색 눈으로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뭐가 그렇게 우습니, 제니?˝ 그녀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제 심장이 뛰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 235

- 정원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다가오는 그들을 보고, 학교 선생의 모자를 알아보았을때, 그녀는 날개가 파닥이는 소리를 들었다. 작은 벌새들이 바늘처럼 뾰족한 부리로 머릿수건을 뚫고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를 콕콕 쪼아대며 날개를 파닥거렸다. 혹시 생각이라는 걸 했다면,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라는 절규 뿐이었다. 간단했다. 그녀는 무작정 달려갔다. 자신이 만든 생명들, 귀중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자신의 일부들을 빠짐없이 끌어모아서, 이 세상의 장막 너머 멀리, 아무도 그들을 해칠 수 없는 저편으로 들고, 밀고 끌고 갔던 것이다. - 270

- 당신과 나, 우리에겐 어느 누구보다 많은 어제가 있어. 이젠 무엇이 됐든 내일이 필요해. - 445

- 글로 쓰기엔 분노는 너무 시시하고 연민은 너무 질척거리는 감정입니다. - 토니 모리슨 인터뷰 중

2019.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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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과거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31
장승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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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료하지만 흐릿하고, 무언가에 대한 후회와 무언가에 대한 기대의 감정이 반복되었다. 그 감정이 나쁘지 않았다.

- 네가 내게 온 건 어제일 같고,
네가 나를 떠난 건 아주 오래 전 일 같다 - 시인의 말

<에덴의 서쪽>
나뭇잎으로 가려지지 않는 앙상함
허기를 추월한
더 이상 발라낼 수 없는 빛 앞에서
눈이 부시다
셀 수 없는데도 부족하다

<달콤한 인생>
내가 한말 하나에도 겁을 먹었어 무수하게 취소한 말들이 비로 내렸어 비가 시체를 건너뛰었어 시체가 웃음을 터뜨렸어 달콤한 것들이 얼마나 짠지 계속 물을 들이켜야 했어 갈증이 비를 취소했어 저 비를 잊어 버리면 안되는데 안 되는데만 기억이 났어 엄마를 때렸어 잘못했어와 미안해를 구분하지 못했어 모르는 걸 아는 것보다 모르지 않는 걸 아는 것이 더 어려웠어 사면이 예리한 유리와 춤을 추는 동안 붉게 지는 해가 아름다웠어

2019.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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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 피해자 없는 범죄, 성폭력 수사 관행 고발 보고서
T. 크리스천 밀러.켄 암스트롱 지음, 노지양 옮김 / 반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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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는 이제 울먹이지 않았다. 위탁 기관 간사는 ‘그래서 말인데, 너 강간당한게 맞니?‘라고 묻는다. ‘그래서 말인데, 너 강도 당한거 맞니?‘라고도 물을 수 있나? 그래서 말인데...라니.
전 세계 강간 무고죄 연대기의 기록에는 1674년부터 공식화된 사건만 1188건이라고 주장한다.
강간 허위신고, 거짓말쟁이들의 몰염치한 행태라고 말이다. 그런 식으로 피해자 입에 재갈을 물리고, 가해자들의 연대를 공고히 하던 그런 더러운 역사의 기록이 아닌지.

그런 측면에서 다른 관할이지만 형사들이 공조하여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이차 가해를 저질렀던 경찰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결말은 아름다운 편이다.
‘피해자 다움‘이 얼마나 엉망진창인 말인지 이제는 그 인식이 조금 나아졌지만, 여성의 육체가 사건현장인 성폭력에 정의가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면 아득하다.

마리의 사건은 unfounded, 사실 무근이라는 섣부른 결론으로 마무리되어 그녀의 삶을 파괴한 사건이다.
결국에 실현된 정의, 밝혀진 진실이 있다해도 마리의 파괴된 삶의 그 영역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의 현실 속에도 수많은 마리가 존재할 것이다. 그들을 잠깐 떠올리는 일만으로도 마음이 답답해져온다.

- 마리는 성폭력 피해자가 오히려 기소 당하는 이례적인 경우였지만 사실 전국적으로 이와 비슷한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는 일부 경찰서에서 성폭력 신고자를 불신하고 때로 적대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 292

- 내가 한 것이라곤 살아 남은 것뿐인데 나는 살아 남았다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 294

- 강간이라는 범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찰이 도달할 수 있는 목적지는 하나 뿐이다. - 297

- 마리의 사건은 경찰의 회의주의가 얼마나 자기충족적인 예언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피해자를 취조하듯 신문하고 진술의 불일치를 따지는 것은 그저 피해자를 입 다물게 하고 진술을 번복하게 함으로써, 많은 성폭력 고소가 사실 무근으로 끝난다는 법 집행기관의 편견을 강화하게 된다. - 353

2019.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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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먹고살려고요 ㅣ 작가특보
백두리 글.그림 / 마음산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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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특보 기획, 마음산책의 책.
다른 두 권과는 심정적으로 조금 더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글.
진지하고 실존적 접근이라 재미는 조금 덜하지만, 오히려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유용할 듯하고 관련 업계의 전반적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냉소적인 묘사지만 업이며 좋아하는 일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보인다.
이름은 몰랐지만, 이 그림들 자주 본 것같다.

- 예술가인 줄 알았는데 예술을 하는게 아니었고,
예술이 아님을 어렵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예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 13

2019.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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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재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3
황현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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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재. 라니 제목 한번 얄궂다. 게다 그게 등장인물의 이름이라니 고약하다.
한 가족의 대물림 되는 비극, 비극이라고 까지 거창하게 말하는게 좀 걸린다면 삼대(어쩌면 사대)에 걸쳐 내려오는 무신경하고 체념을 뒤집어 쓴 가풍이라고나 할까.
그 체념이 불안하게 읽히는 이야기다.

인생의 호재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은 호재에게 호재는 올까?
호재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면 줄줄이 개발 호재에 대한 기사와 이야깃거리만 떠오른다. 그래서 호재라는 이름이 더 슬퍼진다.

무람한 시간들을, 빈궁한 가정 경제를 부심한 부모를 견디고 어찌저찌 정규과정을 지나온 동생을 가엽게 여기는 마음, 제대로라는건 아닐지라도 어긋나지는 않기를, 어떤 노력을 해도 도움이 될 수 없는 피붙이가 염려하는 마음, 뭐가 이리 애매하게 짠하기만 할까.

- 남들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추측하다 보면 호재는 기어이 울적해지고 말았다. 예전부터 혼자였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혼자일 호재의 삶을 사람들도 은연 중에 느끼고 알아 버렸기 때문일까? 꾸준히 혼자라서 영영 그러할 거라서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면 언제나 분하고 억울했다. - 67

- ˝재수없는 날에는 자꾸 옛날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호재가 말머리를 돌렸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 본적도 있었는데 거듭 이유를 찾아봐도 답은 명백했다.
˝이유를 알고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우연히 불행한 건지, 당연히 불행한 건지.˝ - 69

- 계속 생각하는 것만으로
질문을 놓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버렸다. - 작가의 말 중

2019.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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