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인용하세요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34
김승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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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눈물의 방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이 언제 울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눈물의 방에서 살아가야 한다 - 눈물의 방 중

- 책에 써야지. 땅 속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종이에 쓰고보니 불필요했다. 그래서 지웠다 - 가장 좋은 목표 중

- 내가 너의 새를 사서 대신 날려주고 싶다 너는 남고 그 옆에 나도 남고 물가에 발을 담그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과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 같이 있단 생각이 먼저 들겠지 - 종로 육가 중

- 회상은 늙은이들이나 하는 것이고, 망각은 탐미주의자나 하는 것이다 - 에필로그 중

2020. 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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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도둑맞은 가난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1
박완서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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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파괴된 가족.
오죽하면 전쟁 전에 죽어버린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이 충분히 이해될 지경. 바스라진 내면을 제대로 하소연 할 곳 없이 생존을 위해 정신을 다잡은 딸이라는 무게가 제대로 느껴진다.

시대를 통찰할 뿐 아니라 인생역시 통찰하는 작가.
전율이 오는 대목들에서 멈칫거리는 생각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시련의 시대에는 깊은 내상을 입는 사람이 여성이기가 얼마나 쉬운지.

아닌 척, 모른 척 한다 한들. 사실이 그렇다.

- 가슴 밑 명치께가 요사이 늘 그렇듯이 체중 비슷한 거북함으로 보깨기 시작했다. 나는 엎드린 채 그 밑에 베개를 괴고 지그시 눌렀다. 난 알고 있었다. 그 속에서 사랑하고픈 마음이 얼마나 세차게 꿈틀대고 있는지를. 그러나 도대체 누구를 덩달아, 누구를, 무엇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인가? - 16

- 엄마, 우린 아직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건 변화하게 마련 아녜요. 우리도 최소한 살아 있다는 증거로라도 무슨 변화가 좀 있어얄게 아녜요?
왜? 이대로도 우린 살아 있는데.
변화는 생기를 줘요, 엄마. 난 생기에 굶주리고 있어요. 엄마가 밥을 만두로 바꿔만 줬더라도...... 그건 엄마가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잖아요. 그런 쉽고 작은 일이 딸에게 싱싱한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걸 엄만 왜 몰라요?
어머니의 부연 시선이 아무런 뜻도 지니지 않은 채 나를 보는지 내 어깨너머로 윗목의 장롱을 보는지 초점없이 한군데 머물러 있었다. 나는 이내 그녀가 다만 나에게 잡힌 그녀의 치맛자락을 놔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란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또한 내 바람이 완강하게 거부당하고 있음도, 그 거부 앞에 내가 얼마나 무력한가도 알아차렸다. 나는 치맛자락을 놓으면서 맥없이 지껄였다.
줄창 그러자는게 아니에요. 네, 엄마, 때때로, 아주 때때로 만이라도...... - 98

- 나는 늘 두 죽음을 억울하고 원통한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그 생각조차 바뀌어갔다. 정말로 억울한 것은 죽은 그들이 아니라 그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나일지도 모른다 싶었다. 그 나이에,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에, 가장 반짝거리고 향기로운 시기에 그런 것을, 그 끔찍한 것을 보았다니, 그리고 그것을 소리도 없이 삼켜야 했다니! 정말이지 정말이지 억울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인 것이다. 나는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삼킴 죽음을 토해 내고 싶었다. 그 무렵 나는 낯선 길모퉁이 초상집에서 들리는 곡성에도 황홀해져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오래 서성대기가 일쑤였다. 저들은 목이 쉬도록 곡을 함으로써, 엄살을 떪으로써, 그들이 겪은 죽음으로부터 놓여나리라. 나에겐 곡성이 마치 자유의 노래였다. - 324, 부처님 근처 중

- 나는 그것들을 다시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분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러나 내 가난을, 내 가난의 의미를 무슨 수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우리 집안의 몰락의 과정을 통해 부자들이 얼마나 탐욕스러운가를 알고 있는 터였다. 아흔아홉냥 가진놈이 한 냥을 탐내는 성미를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못 생각해 본 일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를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 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쳐 몰랐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나는 쓰레기더미에 쓰레기를 더하듯이 내 방 속에, 무의미한 황폐의 한가운데 몸을 던지고 뼈가 저린 추위에 온몸을 내맡겼다. - 442, 도둑맞은 가난 중


2020.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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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저리 ㅣ 스티븐 킹 걸작선 1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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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한 줌의 힘이 된 것은 폴의 작가로서의 자아 때문일 것이다.
철옹성같은 비이성의 괴물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포기하고 말아버릴 순간에도 창작에 대한 욕구, 열망이 있었기에 말이다.
애니의 전사는 다른 범죄자들에 비해 약간 인간적인 호기심이 생기는데, 고립된 환경과 메말랐던 정서적 상황이 그런 인물을 만들어 낸 것일 뿐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읽은 지 한참이 지나 독후감을 남기지만, 책을 조금만 들춰봐도 폴의 고통이 훤히 드러나서 두번 보기는 괴로운 책이다.
남은 일생을 애니라는 괴물의 기억과 함께 해나가야 할 예민한 감성의 작가에 대한 무한한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 처음으로 폴 셸던의 마음 속에 너무나 또렷한 생각이 떠올랐다. ‘큰일 났다. 이 여자는 제 정신이 아니야!‘ - 33

- 글쓰기가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것이다. - 몽테뉴

- ˝진작 타자기를 바꿔 줬어야 하는 건데.˝
애니는 정말로 미안해하는 기색이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폴은 가끔씩 찾아오는 그런 순간이 어느 때보다도 소름 끼친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면 어린 시절에 올바른 교육 환경에서 자랐거나 몸속에 자리잡은 얄궂고도 작은 내분비선들이 뿜어 댄 신경물질들이 조금이라도 덜 해로운 것이었더라면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인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환경도 좋고 해로운 신경 물질도 덜했더라면. - 511

- 위크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자기가 느끼는 상반된 감정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공포와 연민과 슬픔과 혐오감. 그 중에서도 가장 절절히 느낀 감정은 경이롭다고까지 할 만한 놀라움이었다. 이렇게까지 심한 몰골로 망가진 남자가 여태 살아남을 수 있었다니. 위크스는 자신의 심정을 정확히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 사람이 우리를 보더니만 울기 시작했어.˝
그는 말하고나서 뒷말을 조금 덧붙였다.
˝그는 나를 보고 계속 다윗이라고 부르더군. 왜 그랫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 543

2019.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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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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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서 비롯되는 파국.
어리석음이 눈을 가려 빚어지는 사건에서 데스데모나는 완벽한 피해자. 딸을 뺐기지 않으려는 브라반시오의 염려 역시 딸에 대한 걱정이라기 보다는 결국 인종 차별의 예시로만 보인다. 딸의 본심에 자식을 낳느니 차라리 입양이 낫겠다는 둥, 오셀로에게 딸을 넘겨주며?? 아버지를 속였으니 너도 속일 것이라고 악담이나 해쌌고... 으....

오셀로의 얄팍한, 셰익스피어적 귀는 주취에 의한 것으로 역시 음주는 동서고금 위험한 행위.

결정적이고 조언이 될, 쓸만한 대사는 언제나 조연들의 몫이라는 점도 재밌다.

- 천성요? 그까짓 거! 우리가 이런저런 인간이 되는 건 다 우리한테 달렸어요. 우리 몸은 정원이고 우리 의지는 정원사와 같은거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쐐기풀을 심거나 상추씨를 뿌리거나, 히솝풀을 꽂아놓고 사향초는 뽀아버리며, 한 가지 약초로 정원을 채우거나 여러가지를 마구 심어 놓거나, 또는 태만을 부려서 불모로 만들거나 부지런히 비료를 주거나 간에 글쎄, 그렇게 할 힘과 바로잡을 권한은 우리의 의지에 있다 이겁니다. - 54, 이야고

- 질투하는 이들에게 그건 답이 아니에요. 그들은 원인이 있어서가 아니라 질투하기 때문에 질투하는 거라고요. 그건 스스로 생기고 스스로 태어나는 한 마리 괴물이랍니다. - 133, 에밀리아

2019.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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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파는 가게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9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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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노트가 곁들여 있어 더 재밌게 읽었다.
130km에서 ‘길없음‘, ‘막다른 길‘ 앞의 호기심,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의로움을 보여주는 것은 환상특급(너무 오래된...비유..)같은 스릴을 준다.
이 글에서 문득 스티븐 킹이 미성년, 특히 초등학생 정도의 연령대 캐릭터를 잘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물론 다른 연령대도..)

동시대 작가인 레이먼드 카버를 뒤늦게 접하고 경의를 표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 남이 키우는 말이 됐건 몸집이 됐건 직업이 됐건 성적 취향이 됐건 그걸 두고 엿같은 소리는 하면 안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엿 같은 소리를 하기 시작하면 습관이 될 수 있었다. - 50

- 웃음이 나오지 않더라도 웃는 게 좋아. 그게 내 우라질 좌우명인데 나는 그걸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아. 미친놈처럼 살면 슬픈 세상도 아니거든. - 269

- 나는 프로이트가 불쾌했어요. 인간의 본성에 심오한 측면도 있다는 발상을 착각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인간의 본성에는 바닥이 없어요. - 293

2019.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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